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130화 (130/250)

130화

미라클.

1994년에 밴드를 결성하여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전설적인 영국 락 밴드였다.

락 밴드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존재이자, 전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밴드.

하워드 터너는 그러한 밴드의 리드보컬이자 리더였다.

영국에서도 이러한 하워드의 굵직한 행보를 인정한 것인지, 이번 런던 올림픽의 주제곡을 맡겼다.

하워드는 이번 기회를 보다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런던에서 클래식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를 찾았다.

개중에서 모든 오케스트라들을 통틀어 가장 먼저 음원 시장에 뛰어들고, 지금도 여러 앨범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오케스트라.

다름 아닌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였다.

“런던 필이 경연에 참여할 줄은 몰랐습니다.”

“허허, 멈춰 있으면 나아갈 수 없죠. 정통 클래식이 나아가려면 결국 새로운 행보를 이어가야 합니다.”

런던 필의 수장, 모건이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했다.

멈춰 있기만 해서는 되는 것이 없다고.

정통을 지키는 방법은 그저 방구석에서 연주를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표현했다.

하워드 또한 모건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쳤다.

“쉬시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경연이 끝나자마자 주제곡에 손대시려면 힘드실 텐데요.”

“제안만으로도 감사한 사안을 어찌 참겠습니까. 걱정 말고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본선을 끝내고 곧바로 합류할 자신이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경연만 아니었으면 곧바로 합류했을 것이라고.

그동안 제안을 보류한 것을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덧붙였다.

다른 팀들보다 늦은 감이 있지만, 본선을 끝마치고 참여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모건은 호언장담을 했다.

하워드도 모건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무대는 런던 필과 미라클, 모두에게 중요한 무대였다.

무려 올림픽 주제곡이다.

선택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자타공인 국가를 대표할 수 있다는 위치를 증명한 셈.

이를 알리는 무대는 무려 올림픽 개막식이다.

음악으로만 알고, 그들을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도 자신들의 모습을 알릴 수 있는 기회.

전 세계 사람들의 시선이 주목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성과였다.

혹 모르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밴드와 오케스트라와 협연이라는 웅장한 조합에 단번에 화제를 이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박이안이라는 한국 피아니스트가 만든 오케스트라도 참여했다던데. 세간에서 말하는 대로 대단했습니까?”

하워드는 문득 궁금한 기색을 드러냈다.

대중음악계에서도 이안을 모르는 이가 거의 없었다.

이전에 유라, 피스와의 작업으로 국내뿐만 아니라 K-pop이 뻗어나간 외국에서도 이안을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

게다가 카타리네 스튜디오 OST에 참여하며 이안의 능력이 비단 클래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았던가.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개념에 국한되지 않은 천재의 발견이라고.

사십 평생 음악에 투자했던 하워드 또한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건은 사뭇 달랐다.

“뭐… 연주자의 삶을 살면서 떴다가 지는 사람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모건이 내린 이안에 대한 평은 무척 박했다.

그저 운이 좋아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주관적 감정을 우연히 간질였던 것뿐이라고 평했다.

게다가 이안의 인기는 거품이 낀 결과물이라고 덧붙였다.

언론사에서 자극적인 타이틀로 계속해서 홍보한 탓에 과하게 부풀려진 사실들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 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워드는 도리어 그런 모건의 태도에 궁금증이 일렁였다.

‘런던 필의 마에스트로가 저리 생각할 정도라면…’

모건이 무관심했다면 비판적인 말도 하지 못했으리라.

아이러니하게 비판을 늘어놓았던 모건이지만, 그 이야기들은 결국 모건 또한 이안에게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었다.

거대 오케스트라의 수장이 저리도 분석하게 만들 정도의 사람이라면.

무언가 더 있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한 궁금증에 하워드는 모건에게 더 많은 질문을 건넸다.

음악에 대한 평이나, 오케스트라의 음색, 등 여러 문답들이 둘 사이를 오갔다.

‘그만할 때도 되었거늘.’

한참 문답이 이어질 즈음 모건이 속으로 혀를 찼다.

어느덧 런던 필에 대한 이야기보다 이안의 이야기를 한 시간이 더 많아지고 있었다.

미팅에 왔다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예의일 터.

하워드도 문득 자신이 과했다는 것을 인식한 듯 웃으며 한 마디를 건넸다.

“그래도 최고는 런던 필 아니겠습니까.”

단순한 사탕발림이 아니었다.

런던 필은 영국 4대 오케스트라 중 가장 발전한 악단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으니까.

유수의 명곡을 연주하여 인정받은 것은 기본.

숱한 앨범들을 제작하여 대중에게 클래식을 전파한 것으로도 명성이 자자했다.

오랜 시간 밴드에서 활약한 하워드가 런던 필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선율을 낼 수 있는 곳이자, 대중에게도 클래식을 전파할 정도로 막강한 실행력과 인프라를 가지고 있기에.

올림픽 무대에서 펼친다면 그 수준은 남다를 테니까.

“그럼 본선 끝나고 제대로 미팅을 하셔서 여러 가지를 조율해 보시죠.”

“함께 올림픽 주제곡을 할 수 있게 되려나요. 저희 런던 필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

‘더 마스터’의 CP, 샬롯은 벌써부터 쾌재를 불렀다.

최대 규모의 오케스트라 경연인 로얄 오케스트라 경연을 생중계할 수 있을 뿐더러 이번 기회로 숱한 오케스트라의 인터뷰도 따내지 않았던가.

촬영을 하면서도 군데군데 편집점이 떠오를 정도였기에.

한 편으로는 어서 편집을 해서 방영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솟아나고 있었다.

‘이번 프로그램도 대박이겠다.’

몇 달 전만 해도 이안의 두 번째 ‘더 마스터’를 어떻게 꾸려야 할지 고민했는데.

이안의 연주는 물론,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모습은 마치 한 명의 기사 같았다.

신생 오케스트라임에도 영국 최대 오케스트라 경연에 출사표를 내밀 정도.

그걸 따라 가는 것만으로도 명장면이 탄생하는 것에 기염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라이브만 잘 되면 모든 것은 완벽해.’

크라운 재단에서 마련해준 백스테이지 공간 한편.

샬롯과 스태프들은 온갖 라이브 송출 기기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이제 이안이 올라오면 라이브를 송출하기만 하면 그만이리라.

그런데, 스태프들 중 일부가 한쪽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나 해서 가봤더니.

스태프들의 시야 끝에는 샬롯도 아는 인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미라클의 하워드 터너가 여기에?’

영국 팝의 계보를 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밴드, 미라클.

그러한 곡들을 만들고, 노래하는 리더이자 리드보컬 하워드를 모를 수 없었다.

게다가 이번 런던 올림픽의 주제곡을 맡음과 동시에 런던 필과의 협업까지 예정되어 있다고 할 정도이니.

그들의 위용은 이루 말할 필요가 없었다.

샬롯은 아마 런던 필이 이번 경연에 참여한 만큼 런던 필을 보러 왔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와 동시에 영국 유명 밴드에게서 코멘트를 받으면 좋은 장면이 탄생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인터뷰 요청을 보내려고 하던 찰나.

샬롯은 스태프들의 손가락이 한 곳이 아닌, 두 곳에 향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트롱콜드의 마틴 프라이스도 왔어?!’

미라클과 스트롱콜드.

영국의 밴드 양대 산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밴드들이었다.

유일한 대적자는 서로라는 말이 있을 정도.

두 사람의 인터뷰를 따올 수 있다면, 이번 ‘더 마스터’의 영국 반응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곧 이안의 순서라 자신이 직접 나설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

샬롯은 직원을 보내 인터뷰 요청만 해두라고 지시했다.

“CP님. 이제 이안씨 올라온다고 합니다.”

“오케이~ 다들 스탠바이할게요.”

스태프의 언지에 샬롯은 모두를 준비시켰다.

카메라에 붉은 빛이 들어오고 이내 백스테이지를 통해 리히트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입장했다.

독특한 악기, 색다른 배치들의 향연에 등장만으로도 객석은 크게 술렁였다.

단원들이 모두 착석하자 이윽고 이안이 등장하여 인사를 건넸다.

2천에 가까운 사람들 앞에서도 떨지 않고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안의 모습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혔다.

객석을 등지고 단원들을 향해 지휘봉을 들자 단원들이 일제히 악기를 고쳐 들었다.

휘릭 휙.

이안의 지휘봉이 허공을 가르자 출정을 알리듯 커다란 플루트 소리가 오페라극장을 가득 메운다.

‘몇 번이고 들었는데, 들을 때마다 새롭단 말이지…’

<항해>

샬롯은 촬영을 하면서 수없이 많이 들었던 곡이었다.

연습을 함께하다시피 하던 탓에 다음 선율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을 정도.

하지만, 들을 때마다 새로운 감각이 떠오르는 것은 신기함을 넘어 경이로울 정도였다.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생각을 했음에도 다음 연주에서는 더욱 좋은 음색이 터져 나온다.

뱃고동처럼 울리는 관악의 선율에 현악이 더해지면 곡조에 힘이 들어가 더욱 앞으로 나아간다.

마치 객석으로 물결이 일듯, 리히트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낸 소리가 전진한다.

샬롯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땀방울을 흘리며 지휘봉을 흔드는 이안, 집중하고 있는 단원들의 표정, 이러한 모습들을 보고 입을 벌리거나 눈을 감고 감상하는 관객들.

모든 사람들의 반응이 차례대로 카메라 속에 담겼다.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끊남과 동시에 여러 곳에서 박수 세례가 터졌다.

경쟁 상대임에도 박수를 보내는 단원들도 있었고, 경연을 구경 온 일반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샬롯의 눈길이 향한 곳은 오직 두 곳뿐이었다.

‘둘 다 반응이 장난 아닌데?’

기립 박수까지 보내며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하워드와 마틴.

영국 밴드 양대 산맥의 리더들이 동시에 이안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

미라클 밴드의 리더, 하워드 터너.

그는 런던 필의 수장, 모건의 초대로 객석에 앉을 수 있었다.

모건의 초대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미리 실력을 보여주겠다는 의지이고, 하나는 제안을 보류한 동안 자신들을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의미였다.

그 뜻을 모르지 않았기에, 하워드는 여타 스케줄이 있음에도 모건의 초대에 응했다.

게다가 이번 기회를 통해 런던 필의 소리를 듣고, 이를 차후에 유용하게 활용하기 위함도 있었다.

연주 스타일을 최대한 습득한다는 생각에.

하워드의 눈과 귀에 힘이 들어갔다.

런던 필의 무대는 말할 필요 없었다.

빗발을 연상케 하는 빠른 바이올린 보잉에도 단원들은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단단한 합과 조화를 자랑하듯, 그들의 소리는 장엄하게 나아갔다.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정석을 보여주는 무대.

하지만, 다른 오케스트라들도 다르지 않았다.

모두 익숙한 관현악을 가지고 나와 연주를 펼쳤기에.

하워드는 그저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저긴 뭐지?’

단원 수만 백에 달하는 여타 오케스트라와 다른 오케스트라였다.

사십 명이 전부인 단원에, 악기들은 오케스트라 무대에서는 좀처럼 본 적이 없는 악기들이었다.

혼자 오케스트라 경연이 아닌 것 같은 무대.

하지만, 지휘자가 지휘봉을 휘두름과 동시에 터져 나오는 소리는 마틴의 귓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게 오케스트라라고?’

생각지도 못한 음색들의 향연.

하지만, 그 생소한 음색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솔로 플루트의 선율을 시작으로 화음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더니 중반부에 들어서서는 다른 오케스트라와 비견할 정도로 웅장한 음색이 나왔다.

놀라운 시도들에 하워드는 자연스레 머릿속으로 런던 필과 그들을 비교했다.

‘런던 필은 이미 완성된 연주였지.’

고전의 음색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런던 필이기에.

그들이 내는 소리는 일관성이 있었다.

같은 소리라 할지라도 묘하게 섞여나가는 표현력의 차이가 그들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반해 저쪽은…’

리히트 오케스트라는 하워드도 보지 못한 악기들의 향연으로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게다가 악기를 활용하는 모습은 오랜 밴드 경력을 가진 마틴도 기염을 토할 정도.

특히, 새로운 악기들이 많다는 것에서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밴드에서 리더를 맡고 있는 하워드는 악기들의 조합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베이스, 기타, 피아노의 조합같이 오랜 전통을 가진 조합이 있는 이유.

다른 소리들과 융화되기 쉬운 악기들이기에 교과서적인 조합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렸는지 생각한다면 차마 표현할 수 없을 정도.

‘그런데 저기는 그걸 해냈어?’

가야금과 해금, 북, 등 하워드에겐 낯선 국악기들의 음색이 교묘하게 양악의 선율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러한 새로운 악기 간의 조화를 만들어내려면 숱한 시간을 투자해야 했을 텐데.

그 노고를 생각하면 하워드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음색들과 그들의 조화.

하워드는 자연스레 팜플렛을 꺼내 들었다.

‘곡의 이름이… <항해>라.’

팜플렛에 새겨진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본선곡, <항해>

제목을 보자마자 하워드는 오묘한 그림이 그려지는 기분을 느꼈다.

청량한 선율들 사이에서 묵직하게 전진하는 피아노와 여타 다른 악기들의 향연.

하워드는 무언가 새로운 발견을 했다는 얼굴로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무대를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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