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131화 (131/250)

131화

‘미라클이냐, 스트롱콜드냐. 스트롱콜드냐, 미라클이냐.’

마치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 중 누가 더 좋냐고 묻는 것처럼.

두 밴드 중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세기의 난제나 다름없었다.

영국 밴드계의 양대 산맥이자, 최고의 라이벌이었기에.

두 밴드의 업적은 매번 비교되기 마련이었다.

그런 거대 락 밴드가 함께 개막식에 오른다는 소식만으로 언론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평화와 화합의 올림픽인 만큼, 두 밴드가 합작 무대를 만드는 것은 어떻겠냐는 제안도 있었다.

양대 산맥의 화합을 무대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큰 이벤트가 될 테니까.

일각에서는 협주 무대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음악적 성향이 너무 달랐지.’

오랜 협의를 끝에 나온 결과였다.

서로가 지향하는 방향이 너무나도 달랐던 것.

미라클에서는 심장을 달아오르게 할 파이팅 넘치는 곡을 원했고, 스트롱콜드는 브릿팝에 가까운 부드러운 곡을 원했다.

결국, 영국 올림픽 위원회에서 개막식에 더욱 적합한 곡에 대해 미라클의 손을 들어주었고, 스트롱콜드는 다른 개막식 무대를 진행하게 되었다.

‘최대한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마틴의 다짐은 강인했다.

주제곡을 떠나, 한 무대를 맡은 음악가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틴은 팀원들과 머리를 맞대 무대를 기획했다.

하지만, 여러 아이디어를 내보았지만, 좀처럼 좋은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기획 일자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능글맞은 총연출의 추천을 받아들였다.

이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진부하다고 생각했지만, 총연출이 새로운 영감을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말에 못 이긴 척 경연장에 들어왔다.

큰 기대 없이 보고 있던 찰나.

마틴에게 뮤즈가 될 만큼 신비한 존재가 나타났다.

‘저건 대체 뭐지?’

단원들의 입장에서부터 눈길이 갔다.

일반적인 오케스트라에서 볼 수 있는 악기를 비롯해, 밴드에서도 희소하게 보이는 전자 악기, 게다가 전혀 본 적이 없는 악기들까지 있는 요상한 오케스트라.

처음 리히트 오케스트라에 대한 인상은 오합지졸이었다.

그러나 이내 지휘석에 올라오는 모습에 마틴은 오케스트라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저게 그 오케스트라인가?’

마틴 또한 프라임플러스의 구독자였다.

‘더 마스터’에 나오는 이안의 교황곡 제작기를 모두 본 그였기에.

지휘석에 선 이안의 모습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방송의 말미에 오케스트라를 구성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곧바로 경연에 나설 줄은 몰랐던 것.

이미 이안의 연주를 알고 있던 마틴은 조금 더 흥미로운 표정으로 무대를 지켜봤다.

그리고, 이안이 지휘봉을 휘두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틴의 표정은 경이로움에 가득 찼다.

***

본선 무대가 모두 끝난 시점.

모건은 호텔 방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안락의자에 앉아 몸을 늘어뜨린 모건은 차근히 눈을 감고 오늘의 연주를 복기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그 날의 연주를 떠올리고, 수정사항을 떠올리는 면모.

자신을 포함한 런던 필이 지금의 위상을 떨칠 수 있는 이유였다.

그런데, 생각을 하는 과정에서 자꾸 이안의 오케스트라가 스쳐 지나갔다.

‘잘하긴 했지.’

예선에서도 보았건만.

본선에서 선보인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모습은 또 다른 새로움을 선사했다.

지휘봉의 움직임에 따라 춤추듯 움직이며 플루트를 부는 여인은 모건마저 놀라게 할 정도.

단장과 단원들에서 묘한 생기가 흘러나오는 연주였다.

자작곡으로 무대를 오른다고 했을 때부터 비판적인 시선을 던졌던 모건이기에.

실제 연주를 지켜봤던 모건은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자작곡이라 해도 난이도는 다른 팀들과 다를 바 없었지.’

경연의 기본.

연주하는 곡의 난이도에 따라 점수가 달라진다.

쉬운 곡을 완벽하게 한 것과 어려운 곡을 완벽하게 한 것은 천지 차이니까.

이번 경연에 높은 수준의 연주를 펼친 팀들도 적지 않았다.

리히트 오케스트라는 단장인 이안의 자작곡이었음에도 그 난이도는 무척 높았다.

차례대로 이어가는 분산화음 사이에서 악기들이 교차되고, 그 교차된 화음이 새로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과정.

개인의 실력과 합이 중요한 부분들을 신생 오케스트라임에도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게다가 악기들의 조합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런던필에서도 하지 않은 것.

바로 악기의 조합을 크게 뒤바꾸는 것이었다.

악기의 조합을 바꾸는 것은 단순히 악기가 몇 개 빠지고, 더해지는 차이가 아니다.

그 종류와 개수에 따라서 소리가 크게 바뀌기에.

오랫동안 런던 필을 이끌어왔던 모건도 그 간극을 메우지 못해 악기는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리히트 오케스트라는 모건도 보지 못한 생소한 악기들을 가지고 완벽한 화음을 만들어냈다.

마치 각 악기의 장점만 떼다가 붙인 듯.

적절한 음색들이 섞이는 모습이 고스란히 모건의 기억에 떠올랐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어.’

신선함과 실력.

리히트 오케스트라는 그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악단이었다.

악기들의 조합으로 기존 오케스트라 계보를 잇지 않은 신선함을 가진 것은 기본.

거기에 이러한 도전들이 치기 어린 것이 아닌, 깊은 생각이 묻어나온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그 뜻을 알아챈 것인지 관객석에서도 무대가 끝나자 뜨거운 박수를 보내지 않았던가.

모건도 자신이 초대한 하워드가 이안을 향해 기립 박수를 보낸 것을 알고 있었다.

40년 경력의 밴드 리더도 일어나게 만든 셈이다.

이러한 것들을 스물두 살 청년이 해냈다는 것.

이안에게서 벌써부터 노련함이 느껴진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띵-동.

한참 생각에 빠져있던 찰나.

초인종이 울리며 집중력을 흐렸다.

안락의자에서 벗어나 문을 열었을 때, 앞에는 미라클의 리더, 하워드 터너가 서 있었다.

일전에 본선 무대가 끝나고 자세한 일정을 논의하기로 했기에.

모건은 응당 하워드를 반겼다.

“안으로 오시오. 준비할 게 많지 않습니까.”

“예… 그렇습니다만, 제가 온 이유는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자연스레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모건은 하워드의 말에 급히 몸을 돌렸다.

일정 조율 때문에 왔는 줄 알았더니.

하워드의 입에서는 정 반대되는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미팅을 조금 미뤘으면 합니다.”

일이 생겨서 논의를 조금 미루자는 이야기.

주제곡의 완성은 물론, 그 스타일을 매만지는 과정을 모두 생각하면 절대 일정이 여유로운 수준은 아니었다.

세부 일정과 오케스트라들이 적응하려면 다소 빠듯한 시점.

그럼에도 하워드는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설마.’

아니겠지.

모건은 애써 자신의 추측을 부정했다.

리히트 오케스트라가 보여준 무대는 분명 출중했다.

하지만, 40년 경력의 밴드 리더가 현실 분간조차 못 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모건은 하워드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문을 닫았다.

***

“이미 라이브 공연만으로도 사람들이 난리예요. 본편이 공개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될지…!”

샬롯은 이안 앞에서 흥분감을 참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본사 연락을 받자마자 참지 못해 이안의 호텔 방으로 달려왔겠는가.

이안에게 말을 건네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샬롯의 휴대폰은 울리고 있었다.

라이브 송출이 진행되는 시간 동안 총 동시 접속자 수는 무려 150만.

첫 라이브라 비교 대상이 없음에도 어마어마한 수치라는 것은 알 수 있는 정도였다.

게다가 이미 누적 조회 수는 천만 회를 넘기고 있는 시점이었기에.

앞으로 얼마나 더 올라갈지 기대가 될 정도였다.

게다가.

-CP님, 회원권 결제량도 엄청 늘어났어요!-

총괄팀 직원의 목소리가 샬롯의 귀에 어른거렸다.

프라임플러스는 유료 회원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더 마스터’를 비롯해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무대를 보기 위해서는 유료 결제가 필요하다.

그 때문인지, 리히트 오케스트라 라이브 방영 이틀 전부터 결제량이 폭증했다.

매번 구독 회원을 어떻게 늘일지 고민하고 있던 홍보팀에서는 이번 일로 쾌재를 불렀다.

심지어 아직 이안의 오케스트라 창단기를 담은 ‘더 마스터’는 방영도 하지 않은 시점.

‘더 마스터’ 본편이 업로드되면 얼마나 더 늘어날지 샬롯조차 좀처럼 감이 오지 않았다.

연주가 말도 안 됐다는 말을 시작으로 화면이 어떻게 잡혔느니, 숱한 오케스트라 반응들이 대단했다는 말까지.

샬롯은 연이어 흥분감을 고스란히 내비쳤다.

“아, 그리고 이안씨! 경연장에 누가 왔었냐면…”

띵-동

난데없는 초인종 소리에 샬롯의 이야기가 끊어졌다.

여유롭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안은 초인종 소리에 현관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샬롯에게는 이미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이안씨. 쉬는 중에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저는 밴드 미라클의 리더, 하워드라고 합니다.”

영국 억양이 섞인 영어를 구사하는 남자.

그는 미라클의 리드 보컬이자 리더, 하워드 터너였다.

영국 락 밴드의 양대 산맥 중 하나를 차지하는 사람이 이안의 방에 찾아온 것이다.

인터뷰하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인물.

그런 하워드가 이안의 방에 직접 찾아왔다는 것에 샬롯은 입을 떡 벌렸다.

거기에 그가 찾아온 이유는 더욱 그녀를 놀라게 만들었다.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하워드는 리히트 오케스트라에 대한 칭찬들을 늘어놓았다.

신선한 악기들의 등장과 그러한 것들을 소름 돋을 정도로 잘 어우러지게 만든 조합.

게다가 악기들을 적재적소로 사용한 자작곡까지.

오랜 시간 음악계에 몸담으며 수없이 특이한 공연을 봐왔지만, 이안의 오케스트라와 같은 것은 본 적이 없다고 시사했다.

그러한 것들을 종합해보았을 때.

지금 자신이 만들려는 무대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이안이라고 덧붙였다.

“런던 올림픽 개막식 공연 무대에 함께 서주시겠습니까?”

얼마 뒤 열리는 런던 올림픽.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개막식 공연 무대를 함께 해달라는 제안이었다.

올림픽이 얼마나 큰 대회인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는 부분.

게다가 샬롯은 떠오르는 의구심에 물음을 참지 못했다.

“미라클의 개막식 공연은 런던 필 오케스트라와 한다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이미 접한 소식에 의하면 미라클은 런던 필과 협업하여 개막식 주제곡을 펼친다고 했다.

이번 로얄 오케스트라 경연에 온 것도 런던 필의 초대 때문이었다고 들었거늘.

갑작스런 변화에 샬롯은 신비함을 참을 수 없었다.

“본래는 그랬죠. 하지만, 이번 경연 무대를 보면서 느꼈습니다. 저희가 맡은 주제곡의 선율을 더욱 우수하게 표현할 곳은 박이안씨의 리히트 오케스트라라고요.”

피아니스트로서 이안에 대한 평가일 뿐만 아니라, 리히트 오케스트라 전체에 대한 평가.

개인의 연주 실력도 출중한데다 이안은 그러한 개인의 선율을 한 번에 묶는 실력까지 가지고 있지 않은가.

분명 이안이라면 기존의 주제곡에 밴드, 오케스트라의 선율까지 조절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더 이상 대박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안의 다큐 촬영을 하면서 몇 번이나 ‘대박’이라는 말을 내뱉었는지 이젠 셀 수 없을 정도.

영국 락 밴드 계보는 물론, 전 세계에 팬을 거느린 미라클과의 협주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올라서는 무대마저 올림픽 개막식이다.

오히려 가능하다면 올림픽 무대마저 다큐멘터리로 담고 싶다는 생각이 일렁이고 있었다.

샬롯이 남몰래 흥분과 긴장감에 손톱을 물어뜯고 있을 찰나.

띵-동

재차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현관문으로 집중되었다.

이안은 짧은 양해의 말과 함께 문으로 다가갔다.

문이 열렸을 때 나타난 남성의 모습에 샬롯은 아까보다 더욱 눈을 크게, 동그랗게 떴다.

‘스트롱콜드까지?!’

미라클과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밴드, 스트롱콜드.

스트롱콜드의 리더인 마틴 프라이스가 문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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