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132화 (132/250)

132화

미라클과 스트롱콜드.

나 또한 두 밴드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다.

부모님 세대의 인기는 물론, 나도 그들의 명곡을 몇 알고 있을 정도니까.

제목과 밴드 이름은 몰라도 곡을 들어보면 곧바로 안다는 말이 튀어나오는 곡들의 소유자였다.

영국 락 밴드의 전설들이라고 불리는 밴드들이기에.

협업을 하는 것만으로도 영국에서 대서특필 될 사안이었다.

‘올림픽 무대라.’

두 밴드가 찾아온 이유는 같았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진행하는 무대에 함께 서달라는 요청.

밴드 개인의 제안이 아닌, 국가적 공식 행사에 대한 요청이었다.

단순히 팬들과 소통하는 무대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 스케일을 평가할 수 없을 정도.

게다가 올림픽 무대라면, 그 스케일을 종잡을 수 없는 수준이다.

하계-동계, 2년마다 돌아오는 전 세계인의 축제이자, 평화와 화합의 상징.

어쩌면 최근에 <평안>을 공개했던 남북 정상회담 축하 무대보다 더욱 뜻깊은 무대일 것이다.

‘오케스트라를 알리기에도 더욱 좋은 무대겠지.’

무려 200여 개의 국가가 한 번에 참여하는 거대 이벤트.

그만큼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오케스트라를 알리기 위해 창단기를 프라임플러스로 공개했던 것처럼.

올림픽에서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무대를 선보인다면, 더욱 널리 알려질 발판이 될 것이다.

게다가 올림픽 무대를 통해 새로운 본보기를 마련한다면, 차후 새로운 단원 모집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테지.

이미 머릿속에 생각은 끝난 상태.

그런데 되려 내 앞에 있는 두 사람이 묘한 눈빛을 쏘고 있었다.

호텔 방에 제공된 소파.

각자 자리에 앉은 밴드의 리더 둘이 눈빛으로 승부욕을 드러냈다.

시작은 스트롱콜드의 리더, 마틴이었다.

“이미 런던 필이랑 하기로 내정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런던 필과 주제곡을 올리기로 하지 않았냐며.

주제곡이라는 커다란 무대를 맡은 사람이면 더욱 책임감 있게, 본래의 사안대로 진행해야 하지 않겠냐며 말문을 열었다.

특히, 영국을 대표하는 무대인 만큼 런던 필과 작업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며 애써 에둘러 견제의 의사를 보냈다.

하지만, 미라클의 리더, 하워드도 이에 지지 않았다.

“애국적인 것도 좋지만, 주제곡을 세계에 알리려면 응당 좋은 소리를 넣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워드는 슬며시 미소를 띄워놓고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았다.

과한 국수주의는 좋지 않다며, 음악에는 국경이 없는 만큼 더욱 좋은 소리를 추구하는 것뿐이라며 마틴의 말을 교묘하게 피해갔다.

게다가 주제곡을 영국에서 만드는 것일 뿐, 결국 즐기는 사람은 전 세계 사람이라고.

내가 곡에 손을 댄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즐길 것이라며 칭찬 섞인 평가도 내놓았다.

“그리고 제가 먼저 방문했는데, 조금 체통을 지키는 것은 어떻습니까?”

둘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얼핏 보면 어린아이들의 싸움 같지만, 그 속에서 드러나는 말 표현들은 전생의 기억 속 귀족들의 싸움과 같았다.

남들 앞에서 체통은 지키면서,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것을 포기하게끔 만드는 언변들.

애써 웃으면서도 굳은 표정들이 그러한 방향들을 여지없이 보이고 있었다.

샬롯은 내가 그들 중 어떤 사람을 선택할지 궁금하다는 듯 웃음 섞인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내가 할 말은 간단했다.

“제가 둘 다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

올림픽 무대.

애써 표현하지 않아도 모든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무대였다.

세계 최대 규모의 축제인 만큼, 개최국에서는 저마다 특색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개막식과 폐막식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한다.

올림픽 개최는 개최국의 국력을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개막식과 폐막식 무대는 개최국의 국력과 더불어, 얼마나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었다.

그런 중요한 무대인 만큼,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개최국의 특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만큼 색다른 연출을 보러 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오죽하면 스포츠는 안 봐도, 개막식과 폐막식은 본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

‘그렇기에 더욱 오케스트라 무대로 제격이겠지.’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무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리히트 오케스트라를 볼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 무대를 오를 기회가 있다면, 최대한 잡는 것이 좋을 터.

두 밴드와 함께하겠다는 말에 밴드의 리더가 동시에 감탄사를 터뜨렸다.

“둘 다 가능하겠습니까?”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사람은 언제 싸웠냐는 듯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마 짧은 시간 동안 두 무대를 맡겠다는 말이 어렵게 느껴진 모양이지.

밴드의 리더들이 두 사람이 제시한 무대는 두 개였다.

하나는 개막의 시작을 알리는 주제곡.

미라클 밴드의 하워드 터너가 진행하는 개막식 오프닝 곡이었다.

이후에는 스트롱콜드가 맡은 개막식 마지막을 장식하는 피날레 무대.

숱한 명곡을 만들어낸 스트롱콜드의 곡 중 하나를 올릴 예정이었다.

개막식의 시작과 끝을 모두 장식하게 된 것이다.

“가능합니다.”

이미 기존 <항해>의 선율을 연습하고, 예선으로 새롭게 만든 <조선>을 추가로 연습한 리히트 오케스트라니까.

완성을 하고도 군데군데 손을 봤던 내 창작곡들과 달리, 주제곡과 스트롱콜드의 명곡은 이미 완성이 되어 있는 상태니까.

내 자작곡에도 곧잘 적응하는 단원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나 또한 곡의 특이점을 빠르게 파악하고 단원들에게 전달하고, 각 악기가 가진 특색을 살릴 자신이 있었다.

가능하다는 의사에 두 리더 모두 기대된다는 말과 함께 호텔 방을 나섰다

이미 내 손에는 그들이 건넨 악보들이 들려있었다.

매니저인 큰아버지를 통해서 가져온 악보들.

거기에 큰아버지는 오늘 있었던 라이브 무대에 대한 결과를 일러주었다.

“벌써부터 반응들이 뜨겁더라.”

큰아버지는 국내 기사들을 몇 개 내밀었다.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라이브 송출을 펼친 프라임플러스이기에.

국내에서도 라이브 송출에 대한 반응이 올라오고 있던 것이다.

천재 피아니스트 박이안의 리히트 오케스트라. 영국 로얄 경연에서 본격 데뷔전 치러.

영국 유명 음반사, 브리티쉬 그라모폰. “클래식과 대중의 조화를 보는 것 같았다.” 표현.

크라운 재단, 이번 프라임플러스와의 협업은 무척 긍정적. 차후 협업도 검토 중이라고 밝혀 화제.

데뷔 무대 자체에 대한 기대감은 물론, 외신의 반응들까지.

숱한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비단 전해진 소식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속보. 영국의 밴드 양대산맥, 두 리더가 박이안 피아니스트를 찾아간 것으로 확인돼…

외국은 파파라치가 유명하다고 했던가.

하워드와 마틴의 방문까지 외신을 통해 전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아직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모르는 듯 보였다.

큰아버지가 부연 설명을 하듯 한 마디를 더했다.

“주제곡 맡았다는 이야기까지 공개되면 어떻게 될지 볼 만하겠다.”

***

“미라클과 스트롱콜드 두 밴드에서 말입니까?”

로얄 오케스트라 경연의 주최장, 아론 포스터는 안경까지 벗어가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론의 반응에 샬롯은 옅은 미소를 띠며 재차 설명을 덧붙였다.

“네. 어제 본선 무대가 끝나고 두 밴드의 리더들이 이안씨의 방에 찾아왔더라고요.”

상황을 직접 목격한 샬롯이 그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펼쳤다.

미라클의 리더, 하워드가 들어와 먼저 제안을 한 것만으로도 놀라웠는데.

이어서 스트롱콜드의 리더인 마틴까지 들어와서 이안과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연이어 두 거물이 등장하는 것에 입을 다물 시간이 없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샬롯의 이야기를 듣던 아론은 차근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직접 들어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주최 측의 자격으로 경연을 참관했던 아론도 리히트 오케스트라에 대한 평을 내놓았다.

기대보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우려 대신 기대를 한껏 품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지금껏 많은 이들을 후원하고, 숱한 경연에서 뛰어난 연주를 봐왔다고 자부했는데, 그 모든 것보다 앞선 연주라고 평가했다.

신생 오케스트라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완숙미가 느껴진다는 말까지.

놀랍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부끄럽군요. 예선 탈락하면 촬영은 어찌하냐고 얘기했지 않습니까.”

아론은 얼굴까지 연하게 붉히며 민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현실적인 이야기라며 실컷 이야기를 늘어놨는데, 도리어 자타공인 최고의 밴드들이 먼저 인정한다고 나섰으니.

기회가 된다면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농담 섞인 진담을 던졌다.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죽을 때까지 함께 다큐멘터리를 찍어도 분량이 계속 나올 것 같은 사람은 이안씨가 처음이었거든요.”

샬롯은 애써 아론을 다독이며 농담 섞인 진담을 내뱉었다.

지금껏 숱한 거장들과 ‘더 마스터’를 찍어온 샬롯이었건만.

이안이 보이는 행보는 독보적이다 못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교황의 행진곡을 만든 것도 놀라운데, 스스로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기까지.

게다가 그렇게 만든 오케스트라로 밴드 계의 전설로 불리는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않았던가.

도리어 이제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기대가 되었다.

‘더 마스터’ 촬영을 떠나 이안이 어떤 행보를 이어나갈지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그저 이번 라이브 공연을 끝으로 촬영이 마지막이라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이안씨 덕분에 우리 대회가 더욱 빛나게 생겼습니다. 우승자가 올림픽 무대에까지 오르는 사례가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우승자? 이안씨가 우승자라는 말씀이신가요? 우승자가 정해졌나요?!”

아직 공식적으로 우승자 발표가 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아론의 한 마디에 샬롯은 눈을 크게 떴다.

리히트 오케스트라가 우승자임을 시사하는 말에 샬롯의 눈이 번뜩거렸다.

샬롯의 반응에 아론은 차근히 손사래를 쳤다.

“아직 확정된 사안은 아닙니다만,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아론은 한발 물러선 자세를 취했다.

내부에서도 아직 발표가 나지 않은 사안이라고.

현재도 심사위원들이 고민에 고민을 더해 심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반응을 보았을 때는 딱 알 것 같다고 전했다.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하고 있을 때 아론이 뒤에 있었다고.

특히 이안의 무대가 끝났을 때.

심사위원들은 평가지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 이안의 무대를 향해 박수 치기 바빴다고 전했다.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30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 이래 동양인 우승자가 나온 것은 말이죠. 그것도 아직 첫 데뷔전을 치른 신생 오케스트라가 말입니다. 껄껄.”

아론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장담했다.

아론의 말을 듣는 샬롯은 온몸에 감도는 전율에 입꼬리를 차마 내리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안이 해낸 것은 엄청난 것이었으니까.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인정받은 것뿐만 아니라 첫 데뷔전을 치른 신생 오케스트라가 오케스트라 경연에서 우승했다는 것.

이안의 대단함을 사뭇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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