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연임을 축하합니다. 오스카 사무총장님의 연임 덕에 세계가 더욱 평화롭겠습니다.”
“과찬이십니다. 평화의 상징이라 하면 교황님만 한 사람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바티칸시 교황청.
두 사람 사이에 묵직한 칭찬이 오갔다.
교황청의 수장이자, 종교인들의 우두머리인 스미스 교황.
교황의 옆에 있는 사람은 연임에 성공한 유엔사무총장, 오스카였다.
오스카 슈나이더.
그는 독일에서 선망받던 외교관이자, 9대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한 사람이었다.
국제 사회에서 국가 원수 수준의 대우를 받는 자리.
오스카는 첫 부임과 동시에 내전, 및 평화 수호 관련 정책들을 펼치며 주목을 받았다.
특히 평화와 관련해서 북핵 문제를 조정하거나 유엔 평화 유지 활동 개혁 방안을 제시하여 한때 노벨 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사무총장님이 아니면 누가 노벨 평화상을 받겠습니까?”
“모두의 힘을 합쳐 이뤄낸 일입니다. 저 혼자 받기엔 과분한 상이지요.”
오스카는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모두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지, 절대 자신 혼자의 업적이 아니라며 한 발자국 물러나는 태도를 취했다.
도리어 아무런 대가 없이 올림픽을 준비하는 올림픽 자원봉사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상을 줘야 한다고 시사했다.
교황 또한 오스카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런 혜택이 없음에도 올림픽을 지원하겠다고 모인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도 올림픽의 주축이라는 오스카의 주장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고 보니 런던 올림픽이 곧 열리겠군요.”
얼마 남지 않은 올림픽.
정상급 위인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올림픽으로 번졌다.
올림픽 또한 평화의 상징이나 마찬가지기에.
오스카와 스미스 모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벌써부터 개막식 열기로 뜨겁다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이번 개막식에 무척 특별한 무대가 준비되어 있다고 난리입니다.”
이안의 개막식 참여 소식은 영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지고 있었다.
오스카 또한 이안의 소식을 접한 지 오래.
오스트라아와 인접한 독일 출신이었기에, 오스카는 이안의 업적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작곡으로 만들어낸 독주회를 개최하고, 최근에는 ‘더 마스터’를 통해 교황의 행진곡 제작 과정까지 공개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이번 올림픽 무대에 오른 이안이 더욱 특별했다.
교포나 혼혈이 아닌, 토종 한국인이 무대의 세션을 참여한다는 사실.
전 세계인의 통합을 강조하는 올림픽 정신에도 무척 걸맞은 행보라고 생각했다.
“교황님께서도 박이안 피아니스트를 잘 알고 있지 않으십니까.”
“잘 알기보다는 은혜를 입었지요.”
그 때를 상상하는 스미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별다른 혜택을 주지도 못하였건만, 이안이 열성적으로 곡을 만드는 모습을 직접 목도했던 스미스 교황이었다.
대가 없이 무언가를 해주려는 마음.
그것이 평화의 본질이라 생각했던 스미스였기에, 이안이야말로 평화의 상징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대단한 청년입니다. 심지어 남북 정상회담 공연에 대해 북한에서도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까.”
폐쇄국가에, 다른 나라의 행동을 규탄하기 바빴던 북한이 이안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언사를 보냈다.
남북 합동 공연에서 보여줬던 행보에 이어 무상으로 교재를 제공하는 배포까지.
체제 유지를 위해 다른 이들에게 칭찬을 건네지 않던 북한의 이러한 행보는 무척 의외였다.
게다가 북한 최고 지도자는 국악을 활용한 오케스트라 소식에 ‘우리 고유의 소리를 세계에 알리는 뛰어난 동지.’라고 칭했다.
일각에서는 이안의 행보가 북한의 태도를 유순하게 바꿔놓았다는 반응이 있을 정도.
“그뿐이겠습니까. 북한뿐만 아니라 여타 개발도상국에서도 이안의 교재로 배우는 사람이 있다더군요.”
북한뿐만 아니라 여러 개발도상국에서도 이안의 교재를 사용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예술적 수요가 많지 않은 개발도상국에서 음악 교재가 배부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
게다가 별도로 수출 라인이 없음에도 출판사의 책이 전파되었다는 것은 판매가 아닌, 기부로 전달된 책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사안은 분명 원곡자인 이안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북한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은 물론, 수많은 국가에 악보를 배포하고, 기부하는 행실, 거기다 이번에 올림픽 개막식 무대를 맡은 것까지.
이안의 행보는 여타 평화 운동보다 큰 파급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안씨에게 유엔 평화 메달을 수여할까 계획하고 있습니다.”
유엔 평화 메달.
국제 평화에 이바지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유엔의 특별 메달이었다.
유엔 내부 협의를 거쳐 수상자가 결정되는 만큼, 그 무게는 대단했다.
만약 이안이 메달을 받게 된다면 국내에서는 두 번째, 국제적으로 최연소 수상자가 될 예정이었다.
협의는 빠르게 이루어져 며칠 뒤.
유엔 사무국에서는 한국으로 공문을 하나 보냈다.
한국의 박이안 피아니스트에게 유엔 평화 메달을 수상하려 한다는 공문.
공문을 받은 국무총리, 태수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올라갔다.
“박이안 피아니스트가 이렇게 성장할진 몰랐습니다.”
태수는 호탕한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애써 의연한 자세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이안의 행보를 떠올릴 때마다 태수의 몸에 활기가 넘쳤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로 유순해진 북한의 태도는 물론, 런던 올림픽의 개막 무대를 맡게 되었다는 소식만으로도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지는 일이었거늘.
유엔에서도 이리 메달 수여 계획을 밝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리도 발맞춰 훈장 수여를 준비해야겠는데?’
지난 남북 정상회담 축하 무대를 다녀온 이후로 5등급 문화 훈장, 화관 훈장을 수여 받은 이안이었다.
그것도 국내 최연소 훈장 수여였는데, 이번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서는 1등급 문화 훈장인 금관 훈장도 아깝지 않았다.
역사적, 세계적 대가에게 주어지는 훈장.
이미 젊은 대가라는 타이틀로 세계에 알려진 이안에게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훈장이었다.
***
드레스 리허설.
의상과 순서, 모든 것을 실전에 맞춰서 연습하는 과정이다.
이제 런던 올림픽 개막까지 남은 시간은 10일.
이번 드레스 리허설은 개막식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진행되는 리허설이었다.
똑딱똑딱.
시계바늘 소리와 함께 전광판에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런던 거리 곳곳, 축구 선수의 등 번호 등을 활용한 스톱모션 카운트다운.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어둠에 잠겨있던 무대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피아노 앞에 앉은 나를 향해 조명이 비추면 내 등 뒤에 있던 대형 스크린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피아노 편집 영상이 펼쳐진다.
화음들의 연속이지만, 편집의 한계로 끊김이 느껴지는 영상.
그 위에 내 손가락이 만들어낸 선율이 덮어진다.
Adagio.
침착한 발걸음 같은 음색이 차근히 앞으로 나아간다.
화음에 멜로디를 덧대듯 선율이 나아가던 중, 반대 방향에서 스포트라이트가 켜지며 기타를 잡은 하워드가 나타난다.
강렬하게 전개되는 일렉기타의 음색이 추가된 뒤에 하워드의 목소리가 추가된다.
“I’m ready to go. road to race…”
.
이번 런던 올림픽의 주제곡이자, 모든 승리자를 위해 헌정한다는 의미를 가진 곡이었다.
마치 모든 이를 응원하려고 하는 듯, 격려 어린 가사들이 점철된 노래.
밴드와 피아노가 적절하게 어우러졌을 즈음, 나는 요한나에게 피아노 자리를 맡기고 지휘봉을 들었다.
리히트 오케스트라가 합세하자 곡은 순식간에 장엄해진다.
갖가지 관현악 선율과 독특한 테레민의 음색까지.
특히 테레민 특유의 전자음은 일렉기타와 조합이 무척 좋아 마치 두 사람이 대결을 하듯 전개된다.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강렬한 밴드의 소리가 합쳐지자 개막식 리허설은 순식간에 뜨거운 열기가 감돌았다.
“For the winners!!!”
클라이맥스의 대미를 장식하는 하워드의 샤우팅과 뻗어나가는 불꽃 효과들.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음색이 한꺼번에 퍼지다가 단숨에 멎는다.
순식간에 암전이 된 무대를 향해 대기중인 사람들과 자원봉사자의 박수 소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아직 커다란 올림픽 경기장에 관중 하나, 각국에서 온 운동선수도 없는 상태인데도 박수와 함성은 엄청났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물론, 미라클의 멤버들도 잠시의 감흥을 만끽하며 기대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대에서 내려온 나는 곧바로 환복을 마치고 순서 대열로 복귀했다.
본래 올림픽 개막식은 수 시간이 걸리는 행사이지만, 지금은 드레스 리허설인 만큼 참여자들의 도열이 없으니 우리 무대가 돌아오는 것은 순식간이리라.
그 사이에 개막식 무대는 가히 뮤지컬을 연상케 만들 정도였다.
‘영국 왕실, 해리포터, 산업 혁명까지.’
왕실의 자랑을 보여주는가 하면, 그들의 문화적 면모를 무척 강하게 보여주었다.
영국의 자랑, 해리포터를 묘사하기 위해 볼드모트 형상을 한 구조물이 나타났고, 또 다른 영국 작가의 작품, 메리 포핀스를 형상화한 우산 행렬이 줄을 이었다.
특히, 이번 런던 올림픽에는 오륜기 형성이 무척 독특했다.
매번 올림픽 무대는 오륜기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화제를 몰곤 했다.
서울 88올림픽 때는 스카이다이빙으로 오륜기를 만들어 화제를 몰지 않았던가.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는 산업 혁명 테마에 걸맞게, 철물로 오륜기의 형상을 만들고, 이를 공중으로 띄워 오륜기를 만드는 과정을 그려냈다.
한참 공연을 보고 있을 찰나, 몇몇 사람들이 내게 다가왔다.
“한국의 박이안 피아니스트 맞죠!”
분장을 한 얼굴이었지만, 나는 곧바로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영국의 내로라하는 톱 배우들.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거미에게 물린 후 영웅이 되었다는 영화 주인공을 맡은 청년이었다.
그는 노래가 너무 좋다며 사인까지 받아 갔다.
“저와도 사진 한 번 찍어주겠어요?”
뒤이어 나타난 배우.
그는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수여 받을 정도로 유명한 배우였다.
심지어 영국의 추리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 ‘셜록’의 주인공을 맡아 한국에도 익숙한 사람.
지금은 히어로 영화 유니버스의 선택을 받아 할리우드에도 진출하여 세계인들이 모두 아는 배우였다.
“정말 좋았습니다. 개막식을 빛내주더군요.”
박쥐를 모티브로 만든 다크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 또한 나를 알아보고 손을 내밀었다.
이외에도 숱한 사람들이 나를 향해 다가와 사인을 요청하거나 사진을 찍자고 했다.
계속되는 요청에 개막식에 눈길을 둘 수 없을 정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스태프 하나가 소리쳤다.
“박이안씨 스탠바이해주세요!”
스태프의 말에 나를 둘러싸고 있던 출연진들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마치 어서 무대로 올라가 연주를 하라는 듯, 그들의 눈망울에는 기대감이 잔뜩 어려있었다.
음악에 대한 궁금증과 신기함이 동시에 감돌았다.
이번 런던 올림픽 무대에 두 번씩 오르는 사람은 나와 리히트 오케스트라가 유일했으니까.
나는 사람들이 만들어준 길을 따라 무대로 향했다.
성화 봉송까지 끝낸 후, 개막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무대.
마지막 리허설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
총연출자 앨런은 쉴 틈이 없었다.
끊임없이 출연진의 순서를 체크하고, 동선을 확인하는 것까지.
모든 작업은 앨런을 거치고 이뤄질 정도.
약 2시간에 걸친 리허설도 어느덧 막바지에 치닫고 있었다.
성화 봉송 리허설까지 마친 상황.
이제 마지막은 리히트 오케스트라와 락 밴드, 스트롱콜드의 무대뿐이었다.
“자! 마지막까지 힘냅시다!”
앨런의 격려에 맞춰 무대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조명이 켜짐과 동시에 강렬한 현악 스타카토들이 경기장에 가득 울려 퍼진다.
바이올린, 첼를 포함한 수많은 현악기들의 보잉만 나왔을 뿐인데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어서 밴드 멤버의 팀파니에 맞춰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타악기들도 일제히 같은 박자를 내뱉는다.
‘저렇게 편곡을 할 줄이야.’
처음 마틴이 편곡을 엎는다고 했을 때.
좀처럼 당황하지 않던 앨런은 처음으로 당황했다.
무려 8개월가량을 연습하던 곡을 엎고 새로 연습하겠다는 것은 자신이 만든 것을 스스로 물거품으로 만들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곡을 온전히 이안에게 맡기겠다는 마틴의 눈에는 확신이 가득 찼다.
앨런도 중간 점검에서 그들의 연주를 들어보고 나서 걱정 대신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미라클도 감당하지 못한 특색을 어째 저렇게 담았지?’
락 밴드 중에서도 무척 부드러움을 추구하던 스트롱콜드였기에.
40년 밴드 경력의 미라클도 그와 같은 소리를 내지 못했다.
비단 밴드 스타일이 다른 것뿐만 아니라 스트롱콜드의 음악은 합쳐지기 힘든 독보적인 화음과 선율을 활용하고 있었기에.
스트롱콜드와 융화되기 힘들다는 사실은 앨런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안의 손에서 재탄생한 는 리히트 오케스트라와 스트롱콜드를 완벽하게 녹여내는 데 성공했다.
기존 악기들의 선율을 오케스트라로 강화시키는 것은 물론, 다소 난해할 수 있는 화음들은 분산하여 관현악들에게 적절하게 분배했다.
특히 일명 ‘떼창 포인트’.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곳에는 플루트를 앞세워 음을 일러주듯 나아갔다.
곡을 아는 앨런은 지켜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가사를 읊조리곤 했다.
‘명곡이 명곡으로 재탄생했네.’
마틴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무대였다.
리드 보컬인 마틴도 무대 이곳저곳을 누비며 신난 듯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니까.
연주를 하는 모든 이들의 얼굴에도 올림픽의 활기를 상징하듯 밝은 기운이 퍼져있었다.
게다가 연주가 끝나고 터져 나오는 함성과 박수 세례.
차후에 본 공연이 펼쳐졌을 때 얼마나 많은 반응이 나올지 앨런조차 가늠이 안 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