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138화 (138/250)

138화

런던 올림픽 개막식을 끝내고 나서야 여유가 생겼다.

근 3개월 만에 온 여유로운 시간.

여타 단원들이 휴가를 만끽하는 동안 나는 그동안 수많은 파일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여기, 네가 말한 파일이다.”

엄청난 양의 파일들.

큰아버지가 내민 파일의 양은 차마 한 손으로는 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시작은 이번 오케스트라 창단에 대한 반응이었다.

큰아버지가 내민 파일에는 리히트 오케스트라에 대한 여러 반응들이 기재되어 있었다.

각종 커뮤니티의 반응이나, 경연을 라이브로 송출시켰던 것에 대한 댓글 반응, 등.

리히트 오케스트라에 대한 여론을 알 수 있는 것들이 보고서 형태로 정리되어 있었다.

ㄴ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되네?

ㄴ 천재라는 말로도 부족함. 이건 그냥 ‘이안스러운’ 거임.

ㄴ 객석 반응 보면 그냥 대단하다는 말이 필요 없음. 멍하니 보잖아!

기사들도 적지 않았다.

프라임플러스에서 ‘더 마스터’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기사는 물론, 오케스트라 경연, 게다가 올림픽 개막식에 대한 기사들도 엄청난 수를 차지할 정도.

특히 올림픽의 경우, 국내 기사를 비롯해 해외 기사까지 합치면 그 수를 셀 수 없을 지경이었다.

프라임플러스의 첫 라이브 중계. 매출 48% 증가라는 커다란 성과를 얻었다고 밝혀…

신생 오케스트라, 리히트. 로얄 오케스트라 경연 우승! 단장, 함께 따라준 단원들에게 영광을 돌려…

런던 올림픽 개막식. 타국 음악가가 참여하는 유례없는 개막식을 펼치다.

미라클 側, 이안과의 협업은 영광이었다.

스트롱콜드 側,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꼭 함께하고 싶다고 밝혀 전 세계 락팬들의 시선을 집중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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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개막식의 여파에 힘입어, 여타 제안들도 이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게다가 이번에는 결이 달랐다.

오케스트라 창단 직후에는 연주회를 제안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개막식에서 밴드와의 협연을 하고 나서 대중음악과의 콜라보도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인지, 앞서 함께했던 락밴드는 물론, 아이돌급 연예인들의 제안도 많았다.

‘성공적인 데뷔였네.’

수많은 반응들과 협연 제안들이 이를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이전에도 유라나 피스와의 작업 이후 아이돌들의 연락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그 수준이 엄청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ING엔터테이너먼트입니다. 이번에 기획 중인 핑크블랙의 신곡을 이안씨와 함께 하고 싶어서 메일 보냅니다.-

공식 유튜브 채널에 7,500만 구독자를 보유한 K-pop 걸그룹을 시작으로.

-귀하의 음악 잘 들었습니다. 이번에 오케스트라 선율을 첨가한 신곡을 계획 중인데, 함께 하실 수 있으신가요?-

영국의 영원한 디바.

특유의 소울과 감성 섞인 목소리로 영국은 물론, 전 세계의 팬을 거느린 싱어송라이터도 내게 연락을 보냈다.

그뿐만이랴.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미국의 악동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슈퍼스타.

뮤직비디오가 업로드되었다 하면 기본적으로 천만 조회수를 달성하는 아이돌 가수도 있었다.

이외에도 다른 오케스트라에서 피드백을 부탁하는가 하면, 몇몇 유수 경연의 심사위원 자리를 부탁하기도 했다.

심지어 개인적으로 리히트 오케스트라에 입단하고 싶다는 연락도 있었다.

수많은 제안들을 큰아버지는 딱 한마디로 정리했다.

“음악 좀 한다는 사람들은 다 너한테 연락을 보냈다고 해도 무방할 거다.”

큰아버지의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카타리네 스튜디오의 OST와 서천 그룹의 자동차 광고 음악을 만들었을 때도 숱한 업계 사람들이 러브콜을 보냈었는데.

이번에는 그것들에 얹어 예술가들의 연락도 파다했다.

‘이번 기회를 잘 살려야지.’

지금 음악가들의 주목은 모두 나와 리히트 오케스트라 고정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특히 ‘더 마스터’로 주목받은 상태에서 올림픽으로 직격타를 날린 덕에 그 반응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으니까.

게다가 오케스트라 창단기를 담은 ‘더 마스터’ 2부는 아직 방영도 되기 이전.

한 달 전후로 방영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으니 그에 맞춰 타이밍을 맞춰야 하는 일이 있었다.

‘신입 단원 영입.’

이제 만들어진 지 3개월이 넘은 리히트 오케스트라.

조금 이른 감이 없지 않았지만, 상 없었다.

처음 만들 때부터 특정 완성된 로드맵을 그리고 만들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창립 멤버들의 실력들 또한 이미 갈피가 잡힌 상태.

기존 단원들이 수습 단원들로 들어온 사람들을 가르쳐줄 수 있다면 오케스트라에 더욱 사조가 원활하게 퍼질 것이니까.

개인의 힘이 아닌 조직의 힘, 음악도 혼자보다는 여럿이 하는 것이 힘을 가진다.

영입과 동시에 그 체계를 만드는 손길이 바쁘게 움직였다.

***

“만나서 영광입니다. 문체부 장관, 강홍식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문체부 장관이라고 설명한 남자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 예술을 비롯한 체육까지 관장하는 부서인 만큼, 대한민국에서 문체부가 가지는 입지는 무척 컸다.

특히 체육과 관련된 만큼 올림픽에 온 것은 당연지사일 테지.

그 또한 이번 런던 올림픽에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런던에 찾아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선수들도 선수이지만, 박이안 피아니스트님을 만나 뵙는 게 먼저인 것 같았습니다.”

홍식이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이미 개막식을 본 대다수 국민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특히,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굳센 영국임에도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 타국의 예술가를 초청했다는 것에 놀라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에서도 그 수준을 무척 잘 알기에.

내게 보답을 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님께서도 이안씨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나라를 알리고 하는 것은 응당 정부에서 할 일인데, 이안씨께서 해주시고 계시다고요.”

남북 정상회담 축하 무대에 이어 국제적으로도 많은 시선이 쏟아지는 상태.

한국에 대한 위상도 덩달아 올라간 덕에 그에 걸맞은 답례를 해야 한다고 표현했다.

그리하여 선택한 것이 바로 훈장이었다.

“이전에 화관 문화 훈장을 수여 받으셨던 것을 압니다. 사실 훈장만으로는 답례할 수 없는 사안이지만, 부족한 저희를 용서해주십시오.”

이번에도 훈장밖에 주지 못하여 대단히 죄송하다고.

허리 숙여 사과할 정도였지만, 나는 그 수준이 대단한지 이미 알고 있었다.

홍식이 언급한 훈장은 무려 금관 문화훈장이었으니까.

‘국내 훈장 중 최고 레벨일 텐데.’

지난번에 훈장을 받은 것에 검색하면서 알게 된 사실.

문화 훈장에도 급수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총 5개의 급수로 이뤄진 문화 훈장들 중, 내가 받았던 화관 훈장은 가장 아래 단계인 5등급.

하지만, 그마저도 사후에 노고를 치하하는 사람들이 받았던 것을 고려하면 수준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에 비해 금관 문화 훈장은 차원이 달랐다.

훈장을 수여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그 분야의 거장, 대가라는 것을 인증하는 수준이었다.

김소월, 주시경과 같이 교과서에 등장할 법한 예술가들이 받은 훈장.

절대 홍식의 말처럼 ‘부족’한 수준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담담하지만, 진심이 묻어나도록.

이전에 거절했던 평화 메달과 달리, 문화 훈장은 실제 예술가, 문화인들에게 내려지는 상이었다.

국가에서 최고의 연주자로 인정하는 바를 거절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국가적으로 관심을 받는 오케스트라가 되었다는 말이다.

내 반응에 홍식은 그제야 흡족한 듯 표정을 펴고 나를 바라봤다.

“이제 저는 우리 태극 전사들 격려차 갈 예정입니다. 혹 이안씨도 시간이 되면 같이 가시겠습니까?”

문체부 장관이 런던까지 온 본래 이유.

대한민국의 체육을 관장하는 장관인 만큼, 그의 등장은 국가가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까.

실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운동선수들의 입장에서는 커다른 우군을 얻는 셈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운동과는 거리가 먼 음악가인데.

“제가 무슨 격려가 되겠습니까.”

홍식은 내 말에 사색이 되어서 손사래를 쳤다.

그는 내가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사기가 오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특히 올림픽 개막식에서 열띤 호응을 얻었던 만큼, 그 효과가 무척 대단할 것이라고.

존재만으로도 응원과 격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반가워할 겁니다. 이안씨는 런던 올림픽의 길을 뚫어준 한국인이니까요!”

***

낮 동안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던 기억이 생생한데.

어느덧 시간은 저녁을 넘어 밤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전날 보았던 반응들을 살피며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큰아버지도 합세한 상태로 진행하는 토의.

주된 내용은 앞으로 오케스트라를 더욱 넓히기 위한 향방이었다.

“이번에 오디션을 연다면 이전보다 규모를 더 키워야겠죠?”

큰아버지는 내 생각에 긍정표를 던졌다.

창립 멤버를 뽑기 위한 오디션도 꽤 규모가 컸지만, 뽑은 수는 40명가량.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 중에서도 일부 오케스트라에 손색이 없는 사람도 있었지만, 안전성과 소리의 조화 등을 고려하여 숫자를 낮춘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숙련된 선임 단원들이 있으니 안전성은 확보된 것이나 마찬가지.

게다가 새로 온 단원들이 선임 단원을 통해 다시금 배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나의 사조가 전달되는 것이니까.

“악기에도 가능성을 보았으니, 다음 홍보 때는 악기를 더욱 어필해도 될 것 같다.”

큰아버지는 특히 악기의 다양성에 집중했다.

이전에 악기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말은 했지만, 그것이 큰 임팩트는 되지 않았다고.

분명 기존 오케스트라의 구조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곧바로 참가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오케스트라에 테레민과 같이 오케스트라에서 사용한 전례가 없는 생소한 악기가 들어오긴 했지만, 그 수는 무척 적은 상태였다.

‘이미 전례가 만들어졌으니 더욱 반응이 오겠지.’

테레민은 물론, 국내 국악계에서도 큰 파급이 일지 않았던가.

가야금을 다루는 선화에 이어, 그녀의 제자들도 상당수 오케스트라에 참여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선화를 필두로 한다면, 수습 단원들의 교육도 원활하게 진행될 터.

게다가 단원들 중에는 음악에 대한 교육 수준이 무척 높은 사람도 많았다.

일전에 플루티스트인 아람이 첼리스트인 서령을 가르쳐줬듯, 기본적인 것을 몰라도 음악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소리를 알려주는 것은 문제없으리라.

‘더 많은 이들에게 나의 사조를 입힐 수 있도록.’

새로운 단원이 들어온다는 말은 더 많은 사람이 내 사조를 직접 접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앞으로 더욱 나아가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시킬 생각까지 하고 있기에.

내 머릿속에서는 그림을 그리듯 나아가는 사조를 다른 사람, 다른 악기들에 고스란히 입히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특히 이미 장르를 불문하고 사조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니까.

그 가능성을 빠르게 펼치는 것도 방법일 테지.

“거점을 다시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겠죠.”

“그래, 인원이 늘어나면 지금의 체임버홀보다는 규모가 커야 할 거다.”

나와 큰아버지 사이에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오디션 계획은 물론, 그만한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를 섭외하는 것까지.

아직 확실히 결정된 사안은 아니지만, 미리 정한다고 해서 나쁠 것 없을 테니까.

도리어 미리 대비해야 그에 맞는 전략을 짤 수 있을 테니까.

한창 이야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띠리리리리-

큰아버지의 전화가 집중을 깨뜨렸다.

크게 개의치 않았던 것에 비해 전화를 받은 큰아버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아무래도 예사 전화가 아닌 모양.

게다가 큰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는 한국어가 아닌 영어였다.

그 말인즉슨, 국내가 아닌 국외에서 전해온 소식이라는 것.

한참 이야기를 하던 큰아버지는 내 의향을 확인하려는 것인지 수화기를 귀에서 뗐다.

그리고 큰아버지가 던진 한마디.

“영국 왕실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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