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140화 (140/250)

140화

어색한 기운을 떨칠 수 없었기에.

나는 요한나가 건넨 음원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다.

분명 화려하게 나아가는 음색임에도 어느 한 편에 불쾌감이 느껴지는 미묘한 선율.

수차례 음원을 반복해서 듣자 내가 했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뀐다.

곡을 들으면서 묘하게 우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티끌만큼이나 아주 사소한 차이라서 요한나를 비롯해 아무도 제대로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하물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도 곡을 제출했을 정도이니.

대부분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묘한 부분으로 곡의 분위기를 비틀고 있었다.

‘음악 아래에 메시지를 숨겨놨어.’

곡을 듣는 동안 떠오르는 이미지.

머릿속에 가상의 오선지가 그려짐과 동시에 영국군이 행진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영국 특유의 붉은 코트와 하얀 바지를 입은 군인들이 나아가는 그림.

웅장함과 동시에 화려함을 동시에 잡은 듯 보였다.

과거 용맹한 영국군의 이미지와 동시에 현대에 선진국으로 부상한 영국을 동시에 찬양하는 듯한 선율.

하지만, 선율이 만들어낸 그림 속에는 뭔가 다른 것이 숨어있었다.

기저에서 깔린 화음들의 음색들.

마치 군인들이 나아가는 길이 핏빛으로 물든 듯 우울한 선율이 느껴졌다.

‘아마 과거 식민지 통치를 담고 싶었던 거겠지.’

마치 화려한 일상과 업적의 이면을 보여주려는 듯.

미묘하게 더해진 선율은 자연스럽게 나아가면서도 약간의 이질감을 드러낸다.

풍족한 생활을 보여주듯 스타카토들 사이에서는 흐릿한 선율이 들리자 그것을 만드느라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는 식민지 사람들의 이미지가 그려지고.

장엄한 영국 궁정을 보여주듯 화려한 소리들 사이에서는 공사에 동원된 사람들의 고뇌를 표현하듯 딱딱한 선율이 더해진다.

‘당시를 고발하려고 만든 곡 같다.’

대영제국.

영국으로 불리기 이전, 영국은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둔 제국이었다.

끝없이 전쟁을 벌이고, 영토를 넓히고, 식민지인들을 만들었던 시기.

역사적으로 서구화를 빠르게 만들고, 각 대륙의 문명화를 가속시켰다는 평가도 있지만, 무력으로 타국을 지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순 없었다.

마치 그때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미묘하게 섞인 선율은 화려한 영국의 이면을 보여주는 듯 나아갔다.

‘이런 것을 숨기면서 표현할 수 있을 줄이야.’

내가 그림을 그리듯, 무형의 악보를 떠올리며 곡을 만드는 것과는 별개의 방식이었다.

여타 곡을 만들었을 때도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곡들은 많았지만, 의도적으로 이면의 내용을 넣으려고 한 곡은 없었으니까.

지금 요한나가 들려준 곡은 겉으로 듣기에는 화려한 행진을 떠올리게 하지만, 행렬이 밟고 있는 땅은 핏빛으로 물들었다는 것을 보여주듯.

사소한 차이였음에도 묘하게 분위기를 비틀어내고 있었다.

반복해서 음악을 듣자 나는 그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피아노가 범인이다.’

호른, 트럼펫, 바순, 플루트, 바이올린, 첼로, 등 수많은 악기들의 사이.

모두가 활기찬 음색을 보이는 것과 달리 피아노는 묘하게 다른 음색을 섞어내고 있었다.

게다가 섞는 방식도 무척 기발했다.

오른손으로는 다른 악기들과 동일하게 나아가면서도, 왼손으로 조금씩 차이를 벌리는 것처럼 사소한 변화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단 하나의 음의 차이.

기존 세 개의 음으로 화음을 만들어내던 것에 한 음을 추가하여 7도 화음으로 바뀌자 곡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화음으로도 손색이 없고, 한 음만 추가된 것이라 지휘자도 제대로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혹시 이 곡을 만들었을 때 피아니스트가 누군지 아십니까?”

내 질문에 요한나는 잠깐 생각을 하는 듯 미간을 좁혔다.

이내 기억을 더듬던 그녀는 생각이 났다는 듯 한 인물의 이름을 이야기했다.

아이번 클라크.

그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피아니스트이자, 부단장을 역임했던 사람이었다.

여든이 넘는 나이까지 필하모니아에 몸담았던 아이번은 최근 은퇴를 하며 유일하게 지휘자가 아닌 연주자 신분으로 명예 단원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분은 왜요?”

갑작스레 피아니스트를 묻는 질문에 요한나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궁금해하는 요한나를 향해 나는 나의 생각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아무래도 당시 곡을 만들 때 피아니스트가 예정과 다른 연주를 한 것 같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나는 설명을 길게 내뱉는 대신 피아노 앞으로 다가갔다.

곧장 머릿속에 무형의 악보에서 피아노 파트를 떠올린 나는 손가락으로 피아노 파트를 고스란히 펼쳤다.

유려하게 나아가는 선율.

하지만, 피아노 하나의 음색만 펼쳐지자 아이번이 숨긴 것으로 보이는 선율이 고스란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단독으로 연주하면 바로 이질감이 튀어나온다.’

화려한 장조의 선율과 합쳐졌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

의도적으로 넣은 7도 화음이 자꾸만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아마 다른 악기들과 합쳐졌을 때는 다른 악기의 화음과 섞여서 문제가 없었겠지만, 피아노만 쳤을 때는 불협화음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요한나도 그제야 소리의 차이점을 느낀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자신도 피아노 파트를 들어봤지만, 이런 소리가 날 줄은 몰랐다고.

불협화음처럼 끼어 있는 7도 화음들에 대해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미묘하게 추가한 불협화음들은 아주 연하게 쳐서 피아노 소리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이 화음을 아이번씨가 넣었다면, 원곡은 이랬을 겁니다.”

이번에는 7도 화음이 빠진 선율이 피아노에서 펼쳐진다.

하나의 음이 더해지고, 빠지고의 차이였지만 변화는 극명하게 갈렸다.

마치 과속방지턱이 없어진 도로를 지나는 것처럼.

선율에는 어떠한 걸림도 없이 매끄럽게 나아갔다.

본래 그대로 나아갔어야 한다고 알리는 듯, 유려한 음색들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악보들도 그게 훨씬 자연스럽다고 알려주는 듯 새롭게 오선지를 채워갔다.

“…저는 아직 배울 게 많이 남았네요.”

요한나는 반성적인 어조로 말했다.

피아니스트로 수십 년을 살아왔으면서 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고.

그 미세한 차이를 알아챈 내가 신기할 지경이라고 덧붙였다.

가르쳐달라는 요한나의 요청에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먼저인 일이 있었다.

음의 차이뿐만 아니라, 묘하게 분위기까지 집어넣은 아이번의 능력을 두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그래야 나 또한 그리할 수 있을 테니까.

“혹시 그분과 만남을 주선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

머리가 벗겨진 노인이 하얗게 바랜 수염을 쓰다듬었다.

홍차 한 모금을 홀짝인 노인의 시선이 머문 곳은 다름 아닌 TV였다.

‘참으로 대단한 연주란 말이지.’

TV에서는 개막식 재방송이 한창이었다.

뮤지컬에 가까운 개막식이었던 만큼, 여러 방송사에서 개막식을 다시금 틀어주곤 했다.

특히 노인은 개막식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이안의 연주를 눈여겨보았다.

‘나도 저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노인은 씁쓸한 마음을 홍차 한 모금과 함께 내려보냈다.

아이번 클라크.

그는 한때 런던의 4대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피아니스트이자, 부단장으로 지냈던 사내였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어.’

아이번은 시선을 TV에 고정시킨 채 과거를 떠올렸다.

인도인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에서 태어난 유라시안.

그는 혼혈이라는 이유로 과거부터 많은 차별을 당한 사람이었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나서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인종 차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음악을 계속 붙들 수 있었던 이유는 영국인인 어머니의 노력이 컸다.

일찍이 아이번의 재능을 알아본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영국 유학을 독려하고,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즐거웠지.’

피아노 건반을 칠 때마다 튀어나오는 소리.

아이번은 그러한 자유로움이 좋았다.

건반을 누르는 정도에 따라서 새로운 소리가 나오는 피아노였기에.

그 새로운 음들을 수십, 수백 가지 조합하여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

마치 억양에 따라 의도가 달라지듯.

아이번은 음악도 셈여림과 음의 차이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우쳤다.

그 덕에 이후에 어떤 음이 들어가면, 어떤 분위기가 연출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그런 특유의 재능에도 음악을 수학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아이번. 자네의 연주는 다소 단조로운 경향이 있네.”

아이번이 몇 번이고 들었던 비판이었다.

혼혈로서 음악판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뛰어난 연주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아이번이 가진 상대음감은 연주 실력과 다음에 칠 음을 어떻게 유려하게 표현할지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다음 음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갔고, 음을 느끼는 아이번의 생각이 고스란히 곡에 들어갔다.

하지만, 연주 실력을 올리는데 집중한 나머지, 곡에 아이번의 생각이 들어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게다가 지속적인 오케스트라 무대는 아이번의 색깔을 찾아내기보다는, 많은 이들과 함께하는 연주에 동화되도록 만들었다.

상대음감이라는 출중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펼쳐낼 수 있는 상황이 없던 것이었다.

‘그게 천추의 한이었지.’

단조로움을 탈피하기 위해 수많은 연습과 연주를 했지만,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습관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굳은 머리로 인해 더 이상 새로운 방식의 연주를 하기도 어려웠던 것.

아이번은 그렇게 새로운 방도를 포기하고 기존에 하던 오케스트라에 녹아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아이번의 눈을 띄운 것은 필하모니아에서 영국 왕실에 헌정할 곡을 만든다는 소식이었다.

찬양에 가까운 선율이 더해진 영국 헌정곡.

하지만, 다른 단원들과 달리 아이번의 생각은 곡의 이미지와 달랐다.

‘피로 세워진 제국이면서.’

아버지가 인도인이었던 까닭에 아이번은 인도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영국은 다른 군주제 국가에 비해 각국의 상황을 존중했지만, 그 사실만으로는 면죄부를 받을 수 없었다.

영국에서 강탈해간 자원들과, 독립과 동시에 영국인들이 공장을 철수한 탓에 인도는 꽤 오랫동안 회복기를 거쳐야 했으니까.

그렇기에 아이번은 은퇴 직전, 영국에 바치는 헌정곡에 그의 감정을 쏟아냈다.

아이번이 당했던 인종 차별과 초기 영국으로 왔을 때 받았던 멸시의 시선들.

감정이 담긴 손가락에 예정되지 않은 미묘한 선율이 곡에 녹아들었다.

음 몇 개의 차이, 단장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화음의 연속이었다.

홀로 곡을 바꿀 순 없지만, 작은 변화를 주어서라도 제국의 영광 아래 그림자를 담아내고 싶었다.

선율을 깊게 감상하는 사람들은 알아차려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당시의 아이번은 알지 못했다.

‘내게도 기회가 일찍 주어졌다면 저리될 수 있었을까.’

TV 속에 보이는 이안을 향해 아이번은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다.

듣는 것만으로도 다음 음들이 떠오르는 즐거움은 남아있었지만, 이제는 그걸 표현할 손가락이 남아있지 않았다.

삐걱거리는 관절과 오랜 세월 쌓인 노고가 만들어낸 건초염은 더 이상 전성기 때만큼 피아노를 만질 수 없게 만들었으니까.

띠리리리-

회한 가득한 눈빛으로 화면만 보고 있던 찰나.

전화가 시끄럽게 울렸다.

아이번은 힘겹게 몸을 이끌고 전화기로 향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무척 뜻밖의 인물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아이번 선생님. 저는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단장, 박이안이라고 합니다.-

방금까지만 해도 부럽다고 눈길을 보낸 사내의 연락.

아이번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떨면서 영광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전화 고맙습니다. 안 그래도 이안씨의 무대를 보고 있었습니다.”

보고 있다.

아이번에게 그 말은 중의적인 의미였다.

말 그대로 TV를 보고 있다는 말과 동시에 이안의 음악을 보고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이안이 연주하는 모든 것.

연주하는 이안의 자세는 물론, 곡에 담긴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또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보는 것까지.

이안이 그림을 보듯, 아이번 역시 곡의 여러 면모를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안의 능력을 알 리 없는 아이번은 이안의 질문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영국 왕실의 헌정곡을 들어봤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피아노가 독특해서요. 마치 식민 지배의 아픔을 그려 넣은 것 같았습니다.”

이안의 말에 아이번은 뒷목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필하모니아를 이끌었던 단장도, 자신과 함께 오케스트라에 있었던 숱한 음악 능력자들도 알아채지 못한 미세한 차이였다.

아이번이 미세하게 끼워 넣은 음은 좁쌀 사이에 쌀알을 넣은 것과 다름없을 정도였으니까.

그 차이를 스물 남짓 청년이 발견했다는 생각에.

아이번은 마치 취조를 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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