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현악은 부드러운 아르페지오의 선율로, 관악은 강렬하게 울리는 트릴로.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피아노 하나로 담아내기 위한 연주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아이번이 넣었던 불협화음이 제거되어 새롭게 탄생한 곡.
빵빠레를 터뜨리듯 여러 개의 건반을 한꺼번에 누르고 나서야 연주가 끝났다.
짝짝짝짝-
“정말 대단한 연주였습니다.”
아서 왕세자가 찬사를 보냈다.
더군다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던 곡을 혼자서 소화해내는 내가 신기할 지경이라고 덧붙였다.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가는 아서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가득 차 있었다.
아서 또한 클래식을 꽤 깊이 공부했던 것인지 그의 질문에는 전문적인 지식들이 묻어났다.
숱한 질문들 사이.
아서가 가장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내뱉은 질문은 여왕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안씨는 왜 어머니께서 불쾌감을 느끼셨는지 아시겠습니까?”
아서는 당시의 상황을 털어놓듯 이야기했다.
즉위 70주년 기념 연주회에서 필하모니아가 빼어난 연주를 펼쳤음에도 여왕은 답답하고 불쾌한 기색을 지우지 못했었다고.
그것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헌정곡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불쾌하고 답답한 이유.
아마 여왕도 곡에 숨겨진 미묘한 우울감을 느꼈던 것이겠지.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곡에 숨겨진 의미는 ‘불쾌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왕님께서 불쾌한 감정을 느끼셨다면, 아마 미묘하게 숨겨진 화음을 느끼셨을 겁니다.”
나는 내가 느낀 바와 함께 연주를 슬며시 펼쳤다.
아이번이 숨겨둔 화음의 차이.
기존 헌정곡의 피아노 선율만 따로 떼어 연주하자 아서 왕세자도 그 차이를 금방 눈치챈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에는 이런 선율이 숨겨져 있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그제야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그저 무게감을 더하는 화음처럼 보이지만, 화려한 감성을 방해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불쾌감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다만, 여왕님께서는 연주자의 의도를 조금 다르게 해석하신 것 같습니다.”
나는 아이번과의 대화를 얼핏 떠올렸다.
아이번은 억하심정이며, 과거 자신의 핍박을 떠올린 탓에 곡이 어그러졌다고.
자신은 사람들을 우롱하려고 했던 나쁜 연주가라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지.
분노어린 아이번의 연주에는 식민 지배에 대한 비판,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설움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아이번이 그런 비판적인 선율을 넣은 것은 의도적으로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심어주려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직접 만나본 아이번은 자신의 과오에 자책하고 기회만 된다면 돌이키고 싶어 하던 사람이었으니까.
“아마 연주가는 기억해달라는 의미로 이런 화음을 넣었을 겁니다.”
실제 아이번의 생각은 그러했다.
그 또한 영국인인 어머니를 두고 간접적으로 영국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었으니까.
혼혈인 그에게도 영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명예와 자부심이 있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있었던 수많은 희생이 그저 지나가는 세월처럼 여겨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넋을 기리고, 동시에 겸손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그것이 과거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이자, 아이번이 앞으로 나아갈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있지요.”
아서 왕세자 또한 차근히 이야기를 듣더니 동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모든 의문점이 해결되었다는 듯.
왕세자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져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 생각에 일부 수용하여 만들어낸 곡입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령이 첼로를 꺼내 들고, 요한나는 피아노 앞에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이 준비되었다는 시선을 보내자 나는 지휘봉 대신 손으로 그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쌓을 수 있는 음악.’
아이번이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이야기를 곡에 담아내고자 했다.
별도의 방법을 알기 위해 아이번을 초청했지만, 모른다고 했으니.
아이번의 방식을 일부 차용하는 것 또한 방법일 것이다.
‘도리어 숨기지 않고 눈치챌 수 있도록.’
곡의 특이점을 넣는 것은 일종의 장치였다.
눈을 감고 편안하게 감상해도 충분히 좋은 곡이지만, 심혈을 기울여서 들었을 때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그 초석을 아이번의 피아노 선율에서 차용하여 가져온 것이다.
내 손짓에 따라 요한나가 피아노 건반을 빠르게 쳐 내려간다.
불협화음은 잘못 쓰면 어긋나지만, 적절하게 활용하면 음색에 특이점을 부여한다.
아이번이 썼던 화음을 사용하되, 단독으로 들었을 때 어색함이 없도록.
이에 맞춰 흐름이 밝아졌다가도 어두워지며 특유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그 흐름에 동조하듯, 서령의 첼로가 은은한 선율을 더해간다.
‘마치 그때의 감각에 동조하듯.’
눈을 감은 서령의 연주는 내가 원하는 그대로 나아간다.
밝은 음색에 나아갈 때는 스타카토에 보잉을 활용하여 뛰어나가듯 선율을 뽑아내고, 어두운 음색이 나아갈 때는 무척 아련한 선율을 자랑한다.
그에 맞춰 서령의 표정도 조금씩 변화한다.
마치 그때의 상황을 머릿속에서 직면하는 사람처럼.
입가에 미소가 떠 있다가도 설움에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다.
‘강제로 주입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느끼도록.’
곡에 들어간 슬픈 선율.
이를 듣고 누군가는 영국이 지배했던 수많은 식민지를 떠올릴 수도 있고, 누군가는 영국에 스쳐 지나갔던 힘든 세월을 떠올릴 수도 있다.
내가 만든 곡은 청중에게 특정 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니까.
과거 <영감>을 만들었을 때 느꼈던 것처럼, 내가 하는 것은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과 악상을 그대로 선보이는 것.
그러나 이를 보다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연주자의 책무이리라.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번이 애써 숨기려고 했던 슬픈 선율은 도리어 내 손에서 강화되어 새로운 이미지를 그려낸다.
연주가 끝나자 아서 왕세자가 아까와 같이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아서의 얼굴에는 묘한 슬픔이 묻어나왔다.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느낀 듯, 아서의 눈에 옅은 물기가 들어 있었다.
“정말 놀랍다는 말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희로애락(喜怒哀樂).
하나의 곡에서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분노를 모두 느꼈다고.
특히 아까의 내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더욱 그 감정이 뼈저리게 느껴진다고 답했다.
“자부심과 행복을 가지되,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기리고 겸손함을 갖는 것. 그것이 앞으로 영국이 가져야 하는 마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저 잘 된 것만 부각시키는 것이 아닌, 지난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그것이 진정 선진국이 가져야 하는 국격이라고 표현했다.
“두 곡 모두 너무 좋았습니다. 도리어 앞으로가 기대됩니다.”
되레 아서 왕세자는 한 번 더 연주를 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애피타이저처럼 여왕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그러면 더욱 기대하실 것이라며 생각을 내비쳤다.
요한나와 서령은 기꺼이 할 수 있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애피타이저 곡만 녹음하고, 본식으로 삼을 곡은 그때 들려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편곡한 기존의 헌정곡을 들려주되, 새롭게 만들어진 곡을 미공개하려 했다.
말 그대로 편곡된 곡은 완성이 되어 있지만 새로운 곡은 초안일 뿐 미완이니까.
내 의견에 아서는 긍정표를 던졌다.
되레 미완성곡을 녹음하려고 했던 자신의 재촉을 양해 바란다는 말까지 할 정도.
나는 괜찮다는 말과 함께 다시금 피아노 앞에 앉았다.
아서가 휴대폰을 꺼내 들어 녹음을 켜는 순간.
내 손가락이 빠르게 피아노를 훑었다.
***
초안을 점검하는 것은 성황리에 끝났다.
이제는 초안에서 실제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곡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할 터.
심상들을 떠올리는 머릿속에서 악보와 그림들이 여럿 스쳐 지나간다.
영국의 성장 과정을 그리되, 단순히 찬양이 아닌 역사를 고스란히 담을 수 있도록.
그 과정에서 나는 아이번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당시 과오를 떠올리는 아이번을 향해.
나는 간단한 말을 덧붙였다.
“억압과 착취, 희생을 당했다는 내용이 들어갔으니 우울감이 선율에 깃들 수밖에 없겠죠.”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간단한 연주여도, 연주에는 사람의 성격이 고스란히 묻기 마련이다.
핍박받은 과거와 역사를 떠올렸던 아이번이 만들어낸 선율이니 당연히 그러한 흐름이 들어갈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그러나 오늘 선생님과 이야기해보니 알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곡에 선율을 넣은 것은 누군가는 선생님의 마음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겁니다.”
자조적인 반성을 하고,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칭할 정도였으니까.
그런 면에서 알 수 있었다.
아이번은 그저 그 당시를 기억하고, 잊혀지지 않길 원하는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을.
“…맞습니다. 그냥 한 명이라도 좋으니 그 그림자를 잊지 말고 기억해줬으면 했습니다.”
자신의 심정을 모두 들켰다는 듯.
아이번은 옅은 한숨을 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진심을 담아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기리고 겸손해져야 한다고 생각들.
아이번 또한 지금과 같은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과거 수많은 희생들이 있었을 것이라 답했다.
영국도, 인도도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 숱한 고생을 겪었을 테니까.
그걸 직접 목도하고, 지켜봤던 사람으로서 곡에 그 부분들을 녹여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모든 생각을 내려놓은 아이번은 되레 한결 편안 얼굴을 했다.
“그런데 참으로 놀랍습니다. 곡을 알아보고, 제 심정까지 알아내다니.”
곡에 숨겨진 뜻을 알아내고, 그것으로 자신의 생각까지 일부 유추해내는 면모.
그리고 그것을 다시금 곡으로 옮겨내는 과정까지.
아이번은 일련의 과정을 펼치는 내가 신기하다고 평가했다.
한결 편해진 그는 내가 젊은 거장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동안 수많은 자작곡에서도 범상치 않다 생각했는데, 그러한 세세한 것들을 어찌 선율로 만들 생각을 했습니까?”
“그저 많이 들여다보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헌정곡을 만들기 이전에도 숱한 곡을 듣고,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듯 저장했으니까.
<환생>을 위해 과거 전생이 가진 기억을 뜯어보고, 카타리네 스튜디오 OST들을 만들기 위해 환경을 떠올렸듯.
더 나아가 <평안>을 만들기 위해 과거 대한민국까지 조사했던 나였으니까.
억압과, 아픔, 희생에 대한 곡을 연주하고 연구하면서 나는 거기에서 그려지는 그림들을 펼쳐 다시금 살폈다.
어떤 부분이 그러한 감각을 고취시키는지, 왜 그런 감정이 일렁이게 하는지.
숱한 조사와 연구 끝에 그들에게서 떠오르는 공통적인 감각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슬픈 곡은 단조뿐만 아니라 흔들리는 사람의 감정처럼 흔들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기본적인 이론상에서 단조는 슬픈 곡에서 사용되는 조성이다.
반음이 처진 소리를 통해 가라앉은 분위기를 표현하고, 듣는 이로 하여금 우울함을 느끼도록 만든다.
하지만, 단순히 조성의 변화로는 사람의 감정을 흔들 수 없다.
단조로 만든 흔들림을 더욱 가중시켜 사람의 감정을 길게 끌고 와야 한다.
그걸 만들어 가는 것이 음악가가 할 일이었다.
“저는 그 감각이 선율에 담겨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말로 설명하는 대신 연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이번이 했던 것과 같은 불협화음의 연주.
하지만, 애매하게 숨겨내지 않고 도리어 어울리도록 불협화음을 강조하자 선율은 더욱 힘을 얻는다.
밝은 이미지를 보여주면서도, 종이 한 끗 차이로 서글픈 선율이 이어지게끔.
반전이 더해진 음색은 더욱 주제를 명확하게 보여주며 나아간다.
“선생님이 모두가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듯, 그 심정을 더욱 담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젯소칠로 덮어버린 그림도 특정 빛을 비추면 모습을 드러낸다.
그처럼 심혈을 기울여 감상하는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만들어낸 선율들.
아이번이 만들었던 선율들이 그 뜻에 변형되어 새로운 헌정곡의 초석이 되었다.
새로 만든 헌정곡을 듣던 아이번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맞닥뜨린 얼굴로.
아이번은 주름이 가득한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이런 것이 연주군요. 무궁한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