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144화 (144/250)

144화

-이안씨. 그대로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서 왕세자는 초안이 무척 마음에 드는 것은 물론, 첫 번째 곡을 들은 여왕이 무척 기대하고 있다고 연락을 보내왔다.

직접 연락을 한 아서의 목소리는 근엄했지만,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어머니도 5년 전 들었던 헌정곡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듣자마자 낯익은 곡이라고 말했다고.

하지만, 5년 전 그때처럼 눈살을 찌푸리진 않았다고 했다.

되레 여왕은 심취한 듯 듣는 내내 고개를 까딱거린 것은 물론, 곡이 끝났을 때 마음에 든다는 듯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고 전했다.

곡이 이렇게 바뀔 수 있는지 몰랐다며, 아서가 그랬듯 여왕 또한 신기해했다고.

-게다가 곡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라셨습니다.-

기존의 필하모니아의 헌정곡을 편곡한 것이 아닌 새로운 곡.

녹음하지 않은 두 번째 곡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특히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나를 향해 올림픽 개막식 무대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고, 이미 자작곡에 대해 명성이 자자하지 않냐며.

아서는 기대 어린 시선을 보내는 여왕의 모습에 뭉클한 감정이 피어올랐다고 덧붙였다.

-저도 어머니가 기대하시는 모습을 정말 오랜만에 봤습니다.-

즉위한 지 무려 75년째다.

5년마다 크게 행사를 진행해도, 그 또한 10번이 넘어간다.

아서가 말하길, 처음엔 감회가 새롭다거나 기념 무대를 기대하고 했던 여왕이지만, 30년가량이 흐르고 나선 그런 감각도 무뎌졌다고 설명했다.

그랬던 여왕이 내가 연주한다는 사실 진심 어린 기대감을 표현했다고.

초안이 확정되었으니 이제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습하는 것이 필요할 터.

나 또한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단원들에게 사실을 공표했다.

“다음 달에 있을 여왕 즉위 75주년 기념 무대에서 저희 리히트 오케스트라가 헌정곡을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선언에 단원들이 대거 놀라운 탄성을 질렀다.

영국 왕실과 관련된 무대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무게감이 대단하니까.

몇몇 사람은 곡은 언제 나오냐며 되레 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초안을 발표하러 함께 갔던 요한나는 벌써 연락이 온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네요.”

오랜 오케스트라 생활을 했던 요한나는 각국의 오케스트라 사정을 뻔히 꿰고 있었다.

특히 영국의 헌정곡 제작 소식은 관현악단계의 커다란 소식이었기에.

요한나는 영국 헌정곡이 지금껏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역대 헌정곡들은 완성된 곡을 가지고 오케스트라 간의 묘한 경쟁이 일어나는 것이 특징이었다.

영국 왕실의 인정을 받는 것 자체만으로도 오케스트라의 위상이 무척이나 높아지기에.

즉위 기념식이 열릴 즈음에는 숱한 오케스트라에서 완성된 헌정곡을 바치곤 했다.

그러나.

“이안씨는 왕세자가 직접 곡을 의뢰한 것은 물론, 초안만으로도 통과한 셈이잖아요!”

요한나는 감탄 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왕실 인물이 개인적으로 곡을 부탁한 사례는 전무후무하다고.

게다가 미완 단계의 곡에서 헌정곡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요한나는 완벽한 곡을 만들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가 없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왕실에서 나를 무척 좋게 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 저희의 영국행이 조금 길어질 것 같습니다.”

본래 예정보다 영국행이 연장되는 상태.

기타 숙박 비용은 왕실에서 제공한다고 했으니 상관없지만, 개인의 의사 또한 중요하리라.

하지만, 이야기를 듣는 단원들은 도리어 이번 상황을 즐기듯 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연습에 들어가도 좋다는 듯한 분위기에.

나는 전날 완성한 악보를 꺼내 들었다.

새 악보를 받은 단원들이 일제히 연습 행렬을 이어가고 있던 찰나.

큰아버지가 서류 뭉치를 들고 들어왔다.

“네 오디션 소식에 아주 난리다.”

일전에 논의했던 오디션.

새 단원을 모집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알려진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숱한 곳에서 제안서가 들어왔다고 덧붙였다.

큰아버지가 건넨 서류는 각국에서 보낸 제안서들이 가득했다.

한국은 기본. 일본과 오스트리아, 독일의 수많은 도시들에서 오디션 유치를 위한 제안서를 보낸 것이다.

마치 경합을 벌이려는 듯.

각 지자체들이 보낸 서류들에는 오디션 개최 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지원 사항들이 빼곡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아마 지자체들 사이에서는 큰 행사가 될 거라고 예측하는 모양이더라.”

이미 ‘더 마스터’를 통해 리히트 오케스트라에 대한 사실은 물론, 이번 올림픽 개막식 공연을 통해 리히트가 전역으로 알려진 상태니까.

이전에 오디션 개최를 준비하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지자체들이 노리는 부분은 바로 그것.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해당 도시는 커다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방문하는 사람들이 도시에서 소비만 해도 경제적으로 큰 이익이 될 테니까.

제안서를 둘러보던 나는 무척 의외의 곳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뉴욕에서도 제안서를 보냈네요.”

뉴욕.

도쿄,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도시이자 세계적으로 명망이 높은 대도시.

패션, 교육, 예술에 이어 수많은 분야에 엄청난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도시 아닌가.

뉴욕시에서 개최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수많은 참가자를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이 제공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엄청난 곳이었다.

“카네기 홀을 3개월간 무상으로 대관해주겠다네요.”

클래식의 전당이라고 불리는 카네기 홀.

미국의 링컨 센터와 함께 뉴욕에 존재하는 예술극장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오죽했으면 전 세계 음악가들이 한 번쯤 공연하고 싶은 꿈의 무대라고 표현할 정도인 무대.

그곳에서 오디션을 진행하는 것은 음악가들 사이에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다.

게다가 3개월이란 긴 시간은 오디션뿐만 아니라 연습이나 연주회 개최와 같은 부가적인 것을 해도 된다고 허락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뉴욕시뿐만 아니라, 뉴욕에 존재하는 수많은 재단이 후원 의향을 밝혔을 거다.”

큰아버지의 부가 설명에 걸맞게 뉴욕시뿐만 아니라 뉴욕에 존재하는 숱한 거물급 재단들이 리스트에 올라가 있었다.

록펠러 재단, 뉴욕 카네기 재단, 등

상업과 금융의 메카인 뉴욕답게 이름만으로도 억 소리가 나는 재단들이 후원 손길을 보내고 있었다.

제안은 좋았지만, 내 선택은 하나였다.

“우리 홈그라운드를 지켜야죠.”

대한민국 서울.

이미 리드미컬 체임버홀이라는 홈그라운드까지 있는 곳이다.

물론 후원을 받아 움직이면 좋겠지만, 굳이 마흔이라는 인원을 옮겨가며 진행할 필요는 없었다.

되레 먼 거리를 이동하고, 낯선 공간에서 연습하는 것은 단원들의 컨디션을 떨어뜨릴 수 있다.

게다가 유수의 후원체가 제시한 장소들은 모두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내부의 소리를 제대로 확인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새롭게 들어오는 단원들도 배우기에는 체임버홀이 더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원래 체임버홀을 선택한 이유 또한 청중이 아닌, 단원들에게 소리를 더욱 집중시키기 위해서였으니까.

“그래도 지리적 위치를 고려해야 할 텐데?”

큰아버지의 생각은 무척 현실적이었다.

모든 나라의 중간 지점을 선택할 순 없겠지만, 몇몇 지역에는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야 한국에 올 수 있으니까.

그들의 호응을 얻기 위해서는 비교적 가까운 중간 지점을 찾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내 생각은 확고했다.

“진정 제 오케스트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장소를 가리지 않겠죠?”

그 말에 큰아버지는 그 또한 맞는 소리라며 맞장구를 쳤다.

어쩌면 그 자체만으로도 애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거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럼 서울권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마.”

***

서울시 홍보담당관.

서울시청에 대한 홍보를 담당하는 부서이자,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모든 행사를 담당하는 부서였다.

서울 내에서 펼쳐진 벚꽃 축제와, 청계천 빛 축제 등, 다양한 행사들이 그들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사계절이 완연한 한국에 맞춰 계절에 맞는 축제들을 진행했건만.

성과는 그들이 바라는 만큼 크게 돌아오지 않았다.

‘애매한 부서.’

서울시 홍보담당관에 붙은 오명이었다.

매번 봄마다 벚꽃 축제는 큰 인기를 끌었지만, 사실상 홍보담당관 측에서는 정리만 했을 뿐 실질적인 행사 주최사가 아니었다.

게다가 빛 축제는 지방 축제와 비슷하다며 표절 의혹에 휩싸인 탓에 되레 서울시의 이미지를 안 좋게 만들었다며 험담을 듣기도 했다.

그러한 험담들을 해소하기 위해 더욱 열의를 불태웠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도 별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타부서와 합병될 겁니다.”

상관에게서 떨어진 마지막 기회였다.

이미 존재하는 축제나 기존 축제를 홍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서울시를 직접 홍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는 뜻.

이번에도 뚜렷한 홍보 방안을 만들지 못하면 홍보담당관 주무관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하지만, 이미 수차례 도전해봤음에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은 조용히 전출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박이안 피아니스트가 오디션을 서울에서 한답니다!”

한 주무관의 말에 모두가 발칵 뒤집혔다.

최근 새로운 단원 모집 계획이 있다고 밝혔던 리히트 오케스트라.

하지만, 최근 런던 올림픽 개막 무대는 물론, 해외에서 행보를 이어갔던 리히트였기에 서울시에서는 기대를 내려놓은 지 오래였다.

해외 유명 홀에서 오디션이 개최될 것이라는 루머가 되는 것은 물론, 해외 진출에 성공한 이안이 다시금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모든 루머에도 한국에서 오디션을 열겠다는 말에.

마지막으로 주무관들이 머리를 맞댔다.

“저희도 유튜브를 활용하는 건 어떨까요? 다른 지자체들에서는 시립 관현악단 홍보도 본인들이 하더라고요!”

“아니면 아예 예술 방향으로 컨텐츠를 짜서 행사를 만들까요? 리히트 오케스트라 참여하고, 이안씨가 참여한다고만 해도 반응이 엄청 뜨거울 테니까요!”

현재 한국에서 이안의 입지는 웬만한 연예인 뺨치는 수준이었다.

이안과 무언가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동안 오명들을 씻어내는 것은 물론, 홍보담당관 부서의 위상 또한 한껏 올라갈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디어가 무척 중요했다.

해외를 망라하며 일반적인 제안은 다 받아봤을 이안과 함께하려면 보통의 것으로는 부족할 테니까.

‘제발…’

머리를 맞댄 주무관들의 생각은 모두 같았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

제대로 해야 해체되지 않고 지금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들은 야근을 불사해가며 마지막 열의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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