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대한민국 공연 예술의 메카를 꼽자면 단연코 예술의 전당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무려 6개의 공연장이 한 곳에 보인 국내 최대 규모 종합 예술 시설.
동시에 이번 리히트 오케스트라 신인 단원 오디션이 이뤄지는 장소이기도 했다.
“난리다.”
큰아버지의 감탄과 함께 밖을 바라보자 엄청난 인파가 눈에 들어왔다.
여러 개의 극장들 사이에 존재하는 광장 이곳저곳에는 천막과 부스가 여럿 보였다.
서울시 홍보담당관들이 이번 오디션에 박람회를 곁들여 꾸며보겠다고 한 것.
이를 보여주듯, 각 부스에서는 몇몇 음악가들이 악기를 점검하거나 새로운 악기를 확인하고 있었다.
몇몇은 부스에서는 버스킹 무대를 펼치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참가자들도 벌써 줄지어 있네.”
아직 오디션 시작까지 1시간가량이 남은 시간.
그럼에도 사람들은 대기 순번을 앞당기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밖에 있는 줄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었는데, 이미 극장 안에 입장한 사람들까지 감안하면 그 숫자가 까마득할 정도였다.
‘포트폴리오만 80만 개에 가까웠지.’
한차례 인기몰이를 한 이후에 진행한 오디션인 탓에 서류는 지난번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그 모두를 검토하는 데 시간을 모두 쏟을 정도였다.
그중 포트폴리오에서 합격한 3천여 명이 줄지어 서 있는 셈이었다.
크고작은 악기 케이스를 들고 줄을 서 있는 사람은 기본.
줄을 선 상태에서 암보를 하는 듯, 눈을 감고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몇몇은 대기시간 동안이라도 연습을 하려는 듯 악기를 꺼내 연주를 펼치고 있었다.
익숙한 멜로디가 여타 악기들에 섞여 독특하게 펼쳐진다.
‘다양한 해석이 섞인 자작곡.’
그동안 만들었던 12개의 자작곡이 이번 오디션 과제 곡이었다.
머릿속에 이미지를 떠올리고, 그 이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파할 수 있도록 만든 곡들.
자작곡을 오디션 곡으로 선정한 것은, 그 그림을 알아채는 사람을 찾는 작업이자, 그것을 자신만의 색깔로 그려낼 수 있는지 보기 위함이었다.
혼잡하게 섞이는 멜로디 속에서도 가능성이 엿보이는 선율도 간간이 들렸다.
“기자들도 너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큰아버지가 가리킨 쪽을 바라보자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국내 방송사는 물론, BBC를 비롯한 해외 방송사들까지.
모두 이번 오디션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한마디 하는 건 어떻냐?”
큰아버지가 건조하게 제안했다.
성원을 무시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고, 대중 친화적인 행보에도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었다.
나 또한 큰아버지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
내 요청에 큰아버지는 곧바로 차를 멈춰 세웠다.
문을 열고 나오기 무섭게, 수많은 플래시 세례가 쏟아짐과 동시에 기자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안씨! 이번 오디션 규모가 어느 정도 됩니까?”
“이번 오디션 곡으로 자작곡을 선정하셨던데, 이유가 있습니까?”
“향후 일정에 대해 정해진 것이 있습니까?”
기자들은 대답을 꺼내기도 전에 질문을 쏟아냈다.
대개 오디션에 대한 질문이거나, 오케스트라 관련 질문, 향후 계획에 대해 묻는 질문들이 대다수였다.
차근히 대답을 이어갈 때마다 주변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오죽하면 소리 때문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나왔는지 광장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인파들이 빽빽하던 찰나.
“이안씨가 뽑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리포터의 질문에 주변이 마법처럼 고요해졌다.
뽑고자 하는 사람, 즉 합격자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 조건을 들을 수 있는 기회.
오디션을 보러온 참가자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마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탐닉하려는 듯, 조용한 가운데 참가자들의 시선에 열정이 감돌았다.
나는 리포터를 향해,
그리고 모든 참가자들을 향해 간단하게 말했다.
“감동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
***
전직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부단장.
아이번 클라크는 호텔을 나와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택시에 올라 예술의 전당까지 가는 길.
도로를 지나는 내내 아이번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이안씨가 무척 유명한 모양이야.’
도로에 줄지어 서 있는 가로등.
가로등을 중심으로 양옆에 배너가 하나씩 걸려있었다.
한쪽에는 이안의 오디션에 대한 배너와 함께 ‘이안의 생각이 깃든 도시, 서울’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고, 다른 한쪽 배너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음악 박람회가 열린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이안에 대한 홍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서울시는 뮤지션들을 응원합니다.]
[서울시, 박이안 피아니스트의 영감이 숨 쉬는 곳.]
[10월의 서울. 음악의 도시로 발돋움하다. with 박이안]
가로등은 시작에 불과했다.
오디션을 위해 입국한 음악가들을 겨냥한 것인지, 이곳저곳 영어로 된 배너도 존재했다.
가로등과 버스, 옥외 배너까지.
예술의 전당에 가까워질수록 배너는 더욱 많이, 자주 보였다.
이윽고 예술의 전당에 당도했을 때.
아이번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허허 이렇게 축제의 장을 만들 줄이야.’
여러 개의 극장을 보고도 놀랐지만, 아이번이 가장 놀란 것은 광장의 풍경이었다.
회색 보도블록이 깔린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축제 분위기를 한껏 느끼고 있었다.
하얀색 천막으로 만들어진 부스 아래 쉼터를 마련한 것은 물론, 연주가들이 버스킹을 하면서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 명이 연습하다가도, 같은 곡을 연주하던 몇몇 사람들이 모여 화음을 이뤄내며 새로운 음악을 탄생시켰다.
분위기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악기 무료 점검해드립니다~”
몇몇 부스에서는 악기를 무료로 점검해준다는 말과 함께 자연스럽게 손님을 끌어들였다.
그렇게 끌어들인 연주가에게 자사에서 만든 악기에 대한 PR을 하며 고객을 유치하기도 했다.
일부는 실제 계약을 성사시켰는지 서로 밝은 얼굴을 한 채 악수를 했다.
“여러분~ 선생님 잘 따라와야 해요!”
“네에!!”
자리에는 현장학습을 하러 온 초등학생 무리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안을 시작으로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이를 일찍부터 음악 학원에 보내는 것이 트렌드로 자리 잡아 있었다.
학교에서도 그 열의를 반영하여 아이들을 음악 박람회에 데려온 것이다.
단순히 오디션에 참여하러 온 아이번은 어리둥절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오디션 현장인지, 축제의 향연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분위기.
하지만, 어색하면서도 아이번은 이러한 행사에 미소를 떨칠 수 없었다.
진정으로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아이번은 그 향취를 느끼느라 한참 뒤에 본관으로 들어갔다.
“아이번 클라크님, 참가 번호 1154번이십니다. 피아노는 5층 콘서트홀로 가시면 되세요.”
아이번 클라크?
그의 이름을 들은 몇몇 이들이 아이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케스트라에 관심이 많은 클래식 생도들 중 일부가 아이번을 알아본 것이다.
특히, 런던에서 온 참가자들은 필하모니아의 부단장 시절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은퇴한 지 꽤 되었음에도 부단장의 위상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을 하며 아이번을 향해 악수를 청하기도 했다.
“선생님께서도 참여하시다니. 피아노 참가자들은 일찌감치 포기해야겠습니다.”
몇몇 참가자들은 너스레를 떨며 아이번의 위상에 대해 칭찬을 곁들였다.
이토록 영향력 있는 인물이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며.
연이어 찬사를 내뱉는 사람들 앞에서 아이번은 그저 허허하며 웃었다.
‘부끄러운 수준이지.’
이 자리에 모인 참가자들은 모두 이안을 따르기 위해 온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참가자들이 아이번의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아이번은 전성기 때도 이러한 사람들을 모으는 재주는 없었다.
아이번은 이안에 대해 감탄하면서도 옅게 손을 떨었다.
‘잘할 수 있겠지?’
***
2시 50분.
앞으로 10분 뒤면 리히트 오케스트라 오디션이 진행된다.
각자 맡은 구역으로 이동하기 전, 나는 단원들을 한데 모았다.
‘다들 눈빛이 살아있네.’
늠름하게 선 단원들의 모습은 책임감을 넘어 비장함까지 묻어난다.
무대에 오를 때보다 치장에 신경 쓴 단원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오디션의 심사위원들은 나를 비롯한 모든 단원들이었으니까.
처음 진행했던 오디션에서는 나 혼자 모든 참가자의 연주를 지켜봤지만, 이번에는 반대였다.
‘이미 천재, 아니면 베테랑인 단원들이다.’
듣는 것만으로 내 머릿속에 뚜렷한 그림이 그려질 정도의 출중한 실력을 갖춘 것은 기본.
일전에 즉흥 연주를 시켜봤음에도 어색한 느낌 없이 곧바로 연주를 이어간 단원들이었다.
이미 서로의 소리에 동화되어 완벽한 하모니를 자랑하는 사람들이기에.
나 또한 이들에게 심사를 맡길 수 있었다.
“여러분이 오케스트라에서 익혔던 것, 들었던 것을 고스란히 펼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주십시오.”
나는 선언하듯 이야기를 내뱉었다.
무척 추상적인 내용임에도 단원들은 당황한 기색 대신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
모두 똑같은 눈빛, 똑같은 타이밍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은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된 모습이었다.
짝-
“자, 그럼 이제 시작해봅시다.”
단원들은 저마다 파이팅 구호를 외치며 빠르게 흩어졌다.
무려 6개의 홀로 이뤄진 예술의 전당 전체를 사용하면서 진행되는 오디션.
그 서막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피아노 심사가 이뤄지는 콘서트홀로 가는 사이,
함께 동행하던 큰아버지가 대뜸 물었다.
“너도 에비게일 스트링을 알지 않냐?”
알다마다.
유튜브에서 구독자 천만 명을 거느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일전에 내가 편곡한 유라의 <세레나데>를 커버하고 싶다고 연락을 보냈던 인물이었다.
“그 사람이 지금 오디션장에 와있더라.”
큰아버지는 긴 설명 대신 태블릿 하나를 내밀었다.
에비게일의 유튜브에 들어가자 떠 있는 ‘LIVE’ 표시.
그녀가 지금 라이브 송출을 진행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라이브 영상 속 에비게일은 바깥에서 운영 중인 VR 체험 부스에 있었다.
‘VR컨텐츠가 하나 있댔지.’
곧바로 오디션 준비를 하느라 직접 보진 못했지만, 큰아버지에게 전해 들은 기억이 있었다.
한 중소기업에서 내가 만든 자작곡으로 영상을 만들고, 이를 VR로 체험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그 결과물이 지금 예술의 전당 중앙광장 부스에 있었다.
‘이안의 연주를 볼 수 있다’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참여자들 사이에서도 꽤 인기가 있다고.
VR기기를 쓴 에비게일이 무언가 보는 듯 자신이 보는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번 영상은 이안씨가 만든 곡, <염라>에 대한 영상이네요.”
에비게일은 영상을 짧게 설명하곤 감상하는 듯 말을 아꼈다.
카메라에 잡힌 모습 한편에는 에비게일이 보고 있는 영상을 비추는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큰아버지의 인생을 담은 <염라>의 본 내용과 달리, 영상에서는 동화에서 등장할 법한 도깨비 캐릭터를 사용하여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제작사에서 음악에 대한 조사가 부족했나 본데.’
<염라>는 제목 그대로 ‘염라’처럼 강직했으나, 그 속에서도 여러 역경을 거쳤던 큰아버지의 인생을 담은 곡.
하지만, 영상에서 나오는 것은 그저 ‘염라’를 고스란히 영상화시킨 것에 그치지 않았다.
아마 큰아버지의 전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곧바로 맞지 않다고 일갈할 수준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만든 탓에 일어난 것이라 생각하고 넘기려 하던 찰나.
VR 헬멧을 벗은 에비게일이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대 이하인데요? 그림이 없는 게 나을 뻔했어요.”
에비게일의 독설은 생각 이상이었다.
당장이라도 제작사에게 따질 준비가 되었다는 양,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염라>는 이런 유아틱한 내용이 아니라고 표현했다.
반전이 숨겨진 무언가가 전혀 느껴지지 않은 영상이라며.
에비게일은 내가 생각했듯, 제작자가 제대로 된 조사조차 하지 않고 급히 만든 것 같다며 독설을 늘어놓았다.
“다음에는 좀 더 사전 조사를 하고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저는 이제 오디션 시간이 다 되어서 이만!”
라이브 송출이 종료되었다는 알림과 함께 영상은 종료되었다.
문득 VR기기를 떠올리던 나는 묘한 생각이 떠올랐다.
‘VR을 잘 활용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음악이 어려운 이유가 보이지 않는 예술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
그렇다면 연주를 보여주되, 연주에 담긴 그림을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직접 보여준다면 보다 대중들이 곡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VR이라는 것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닌, 실제 그 장소에 있다는 체험을 하는 요소니까.
보다 곡을 흡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이미 내 곡은 평론가들 사이에서 ‘보이는 음악’이라고 표현되지 않았던가.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들을 더욱 면밀히 보여줄 수 있다면 좋은 기회일 것이다.
VR에 대한 생각을 함과 동시에 나는 그녀의 말을 다시금 곱씹었다.
‘<염라>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었지.’
<염라>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했던 에비게일.
그녀의 표현은 짧으면서도 압축된 액기스 같았다.
곡에 담긴 염라의 반전미, 인생처럼 느껴지는 굴곡, 등.
굵직한 표현들만으로도 에비게일이 <염라>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큰아버지, 피아노와 현악 파트는 콘서트홀에서 진행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