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157화 (157/250)

157화

VR 전시관 준비는 순풍을 타고 흘러갔다.

뉴욕과 홍콩, 등 대도시의 위치가 정해지는가 하면, 컨텐츠의 완성도도 빠른 속도로 채워졌다.

-이게 다 이안씨 덕분인걸요. 개발팀에서도 매번 놀라워했답니다.-

빅토리랩에서 이번 VR 전시회 총책임을 맡은 칼린이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처음 빅토리랩에서는 이번 작업이 무척 오래 걸릴 거라 예상했다고.

특히 이전에 만들었던 자작곡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바꾸는 과정이 더해져서 넉넉하게 반년 이상 장기 프로젝트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단 한 달 만에 녹음을 끝마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게다가 악기별 녹음을 따로 해서 주실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개인에 따라 관심을 가지는 악기는 다를 테니까.

전생이 떠오르기 이전, 나도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면 바이올린으로 자연스레 시선이 가지 않았던가.

같은 곡이라도, 악기가 내는 소리는 다르고, 악기의 볼륨에 따라 곡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무대에서 듣는 것과 헤드셋으로 들을 때는 다를 테니, 그 부분을 조정할 수 있도록 악기별 녹음 파일을 따로 준 것이었다.

그 부분은 왓슨사 CCO, 프랭크도 생각지 못한 부분이라고.

깐깐하기로 소문난 프랭크가 칭찬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고 표현했다.

-VR 컨텐츠와 세계관 초안이 완성되었습니다.-

칼린은 먼저 완성된 컨텐츠라며 파일 몇 개를 보냈다.

특히, 일전에 카타리네 스튜디오 OST로 만들었던 <환상>은 내게도 무척 신선했다.

왓슨 사에서 애니메이션 장면을 제공한 덕에 VR기기를 착용하자 실제 애니메이션 세상에 들어온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음악을 감상함과 동시에 <환상>이 표현한 미지의 숲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카타리네 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뉴욕 전시회 오픈 일정도 잡혀서 저희도 서두르고 있답니다.-

가장 먼저 컨텐츠를 공개하는 곳은 뉴욕이었다.

그것도 전시회장은 맨해튼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타임스퀘어에 있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뉴욕의 중심부에 자리 잡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마침 오픈 일정이 재익과의 뉴욕 공연 일정과 겹쳐있었기에.

나는 공연 전에 전시회장에 들르겠다고 알렸다.

되레 칼린은 내 방문 소식에 무척이나 놀라며 더욱 준비에 힘써야겠다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음악을 이렇게 활용한 건 처음이랬지.’

칼린은 연거푸 이런 시도는 세계 최초일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처음 교육용으로 사용하려 했건만.

제대로 만든 VR이 얼마나 흡입력이 있는지 직접 지켜봤기에.

나 또한 내가 만든 음악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껏 연주회를 360도 카메라를 활용해 녹음하거나, 연주하는 모습을 VR기법으로 촬영하는 것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VR 컨텐츠를 만든 경우는 없었다.

“아, 그리고 한국에서는 재이가 힘써줄 예정입니다.”

재이. ‘익’을 발음하기 힘든 영어권 사람들을 타켓으로 하기 위해 재익이 지은 예명(藝名)이었다.

일전에 뉴욕 공연에 함께하는 대신, VR 전시회 홍보를 제안하지 않았던가.

되레 재익이 들떠서 게릴라 콘서트를 하며 홍보할 것이라고 전하자 칼린은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그 ‘재이’ 말입니까?-

칼린 또한 재익에 대해 알고 있었다.

뮤직비디오를 본 칼린마저 자신도 모르게 따라 할 뻔했다고.

이미 해외에서 알려져 있듯, 국내에서도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고 말하자 칼린은 무척 잘된 일이라며 기대감을 보였다.

-한국은 이안씨 덕에 걱정이 없네요. 이안씨의 기대에 저버리지 않도록 뉴욕 전시회장 준비도 철저히 하겠습니다.-

칼린은 기대 이상의 전시회를 만들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컨텐츠의 퀄리티도 수준급이고, 홍보 계획도 착착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다.

‘좀 더 이목을 끌거나 파급력을 줄 수 있는 홍보가 없을까.’

***

매번 신나고 경쾌한 음악을 만든 재익이지만, 그의 사무실은 달랐다.

회색과 검은색이 조화된 인테리어, 검은 소파는 중후한 느낌마저 묻어났다.

소파 뒤편 벽에는 ‘쏘에이션’이라는 소속사 네임이 크게 프린팅되어 있었다.

벽 한편에는 그동안 받았던 수많은 대중음악상 트로피들이 음악에 대한 재익의 열정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평소 같으면 조용했을 사무실이지만, 오늘따라 재익의 전화가 연속적으로 울렸다.

“박이안 피아니스트가 함께할 예정입니다.”

재익이 참여하는 모닝쇼에 이안도 출연할 것이라는 선언.

이안의 참여 소식에 에이전시는 발칵 뒤집혔다.

에이전시에서는 그 소식을 전하면 모닝쇼에서 당장 무대를 준비해줄 것이라며.

모닝쇼 방송 이래 이보다 더한 게스트는 없을 것이라 답했다.

그 반응을 방증하듯, 에이전시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모닝쇼에서 직접 전화가 걸려왔다.

매번 에이전시를 통해 의견을 전달했던 모닝쇼 PD가 직접 연락을 보내온 것이다.

-정말 저희가 아는 박이안씨가 맞습니까?-

“예,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단장, 박이안 피아니스트가 맞습니다.”

재익의 자신 있는 답변에 격앙된 감탄사가 연신 수화기 너머로 흘러들어왔다.

오마이갓, 어메이징, 등 쉴 새 없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대체 어떻게 섭외한 겁니까? 우리도 러브콜을 보내봤지만, 매번 거절 의사를 보냈는데…-

비단 모닝쇼뿐만 아니라, 이미 미국 방송계에서는 이안에게 수차례 러브콜을 보냈다.

뉴스 인터뷰를 비롯해 프로그램 출연 제안은 물론, 리히트 오케스트라를 생중계하고 싶다는 요청까지.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대답은 오케스트라 준비로 바쁘다는 답변뿐이었다.

그런 이안을 처음 미국 공중파로 내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모닝쇼 PD는 연신 놀랍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한참이 지나 조금 진정된 듯, PD가 업무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무대 지원뿐만 아니라, 재익은 물론, 이안이 지낼 호텔까지 알아볼 기세로 조건들을 내세웠다.

PD가 제공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필요한 게 있다면 말만 하십쇼.-

PD의 말에 재익은 곡을 더욱 돋보이게 할 것들을 여럿 요청했다.

<서울 패션>에 등장하는 독특한 의상은 물론, 기존에 기획했던 플래시몹을 위한 인원 충당, 심지어 무대의 기획까지.

이안이 합류하면서 어떤 곡을 할 것인지, 어떤 스타일의 무대를 펼칠지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PD는 뭐든 괜찮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PD의 권한 이상을 요구하는 부탁일 텐데도, PD는 그저 계속 오케이 사인만 보냈다.

‘아마 그게 이득이라고 생각하겠지.’

무려 이안이 출연하는 것이다.

올림픽 무대를 두 번이나 오른 이안이, 최근 리히트 오케스트라 단원 오디션을 개최한 이안이, 모닝쇼에 출연한다.

세계적인 관심이 고스란히 시청률에 반영될 생각이 가미된 선택이리라.

시청률은 곧 수익으로 연결되니, 아무리 무리한 요청이라도 모닝쇼에서는 받아들이는 것일 테지.

게다가 모닝쇼 입장에서는 재익이 이안과 연결통로를 만들어주는 셈이었으니까.

이번에 좋은 인식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게다가 더 나아가 PD는 또 다른 제안까지 곁들였다.

-이안씨를 스페셜 게스트로 공개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곧바로 이안이 출연한다고 광고하는 대신, 사실을 숨긴 채 조금씩 정보를 풀어나가며 보여주자고.

이미 한국에서는 아이돌 데뷔 며칠 전부터 실루엣이나 SNS에서 연습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하여 보여주는 것이 있던 덕에 재익에게도 익숙한 방식이었다.

일차적으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어느 정도 증거가 모여 사람들이 확신하게 되면 더욱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이안과 같은 스페셜 게스트를 위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식이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네, 뉴욕에서 뵙도록 하죠.-

모닝쇼 PD는 전화를 끊기 직전까지 상냥한 목소리를 잃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재익은 상황을 정리하며 슬며시 웃었다.

‘새삼 알았지만, 이안씨의 명성이 대단하단 말이지.’

고고하던 모닝쇼 PD가 버선발로 뛰어올 기세로 전화를 하지 않았던가.

모닝쇼의 높은 기준을 단숨에 넘어버릴 정도로 이안이 현재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자신을 도와준 이안이, 되레 자신에게 제안하지 않았던가.

곧 오픈할 이안의 VR 전시회에 대한 홍보.

홍보를 위해서라면 게릴라 콘서트라도 열겠다고 한 재익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안이 출연해주는 것은 콘서트를 진행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퉁 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것이었으니까.

재익도 그에 상응하는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곧장 그는 소속사 홍보팀으로 전화를 걸었다.

***

뉴욕 타임스퀘어.

맨해튼의 심장부이자, 꺼지지 않는 거리로 유명한 곳이었다.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이곳, 저마다 다른 형태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빅토리랩의 담당자, 칼린의 인도를 받아 타임스퀘어 VR 전시회장은 벌써부터 인파가 북적였다.

“Wow, This is fantastic.”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생각을 했지?”

이곳저곳에서 VR기기를 낀 사람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웅장한 무언가를 바라보는 듯 입을 떡 벌린 사람부터, 곡을 듣고 뭉클한 감정을 느껴 손깍지를 끼는 사람까지.

VR로 <죽음>을 체험한 어떤 관객은 압도적인 선율에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열띤 사람들의 반응에 칼린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개관 3시간 만에 관객 수가 5천을 넘겼습니다.”

칼린의 말을 대신 증명하듯, 엄청난 공간에 사람들이 즐비했다.

타임스퀘어에서 가장 큰 공간이라는 쇼핑몰 라운지.

칼린이 말하길, 약 1,000평에 달하는 공간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평수가 무색하게 사람들이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관리실이 있는 2층에서 바라보자 사람들의 움직임이 마치 물결처럼 보였다.

“입구부터 이안씨의 첫 곡인 <환생>부터 체험할 수 있도록 루트를 짰습니다. 지금까지 공개하신 13개의 곡에 대한 테마에 맞춰서 흐름을 정리했고요.”

소개를 이어가는 칼린의 모습은 큐레이터 같았다.

테마에 대한 설명은 물론, 곡의 어느 지점에 방점을 찍었는지까지.

최우선 목표는 내가 제시한 것을 최대한 따라가되,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VR로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방향성이 나쁘지 않네.’

리히트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던 이유는 내 특유의 사조를 만들고, 그것을 단원들에게 알려주며 자연스럽게 사조에 녹아들게 하기 위함이었으니까.

VR을 만드는 개발자들 또한 단원과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사조에 녹아들어야 이를 보는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사조를 익힐 수 있을 테니까.

칼린이 건넨 기기를 통해 본 화면들은 그러한 사조의 흡수를 원활하게 하는데 충분했다.

“게다가 재익씨가 만든 챌린지가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무대를 준비하느라 꽤 바빴을 텐데도 재익은 VR 전시회 홍보 컨텐츠를 만들어냈다.

내가 만든 곡을 활용한 챌린지.

재익이 <추격>의 선율에 맞춰 춤을 추는가 하면, 재익의 소속사 가수나 작곡가들이 내 곡을 연주하는 영상이 연이어 올라왔다.

그가 만들어낸 챌린지는 SNS를 타고 삽시간으로 번졌고, 단원들까지 가세하자 온라인상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특히, 미국에서 엄청난 팬층을 보유한 에비게일이 합세하자 챌린지는 삽시간에 번져 엄청난 홍보 효과를 만들어냈다.

“정말, 이안씨는 대단한 것 같아요. 저희도 챌린지 홍보를 해봤지만, 이 정도로 파급력이 큰 건 본 적이 없습니다.”

#연주 #챌린지 #박이안 #VR

챌린지를 위해 건 태그 관련 게시물만 수백만 건에 이른다고.

칼린은 챌린지도 챌린지이지만, 그걸 가능케 하는 나의 자작곡도 대단하다고 얘기했다.

오죽했으면 자신도 VR 컨텐츠를 테스트하면서 더욱 내가 만든 곡에 매료될 정도였다고.

내 음악이야말로 이번 전시회의 성공 비결이라고 표현했다.

“지금껏 진행했던 전시회 중 역대급입니다. 저희 회사 자체 기록을 경신할 지경이에요.”

이전에 빅토리랩에서 역대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한 헐리우드 영화의 VR홍보관을 연 적이 있다고.

당시 미지의 환경을 뛰어난 그래픽으로 녹여냈다는 평을 받던 영화였다.

영화에 사용된 뛰어난 그래픽을 VR로 재현했다는 것은 물론, 영화 속 세계를 그대로 체험할 수 있다며 엄청난 반응을 이끈 기억이 있었다.

그때도 500평 남짓 되는 전시장을 가득 채우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천 평에 가까운 라운지 전체가 빅토리랩의 제품으로 가득 찬 것은 물론, 이를 본 사람들도 가득 차 있는 모습이 뭉클하다고 전했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는 말과 함께 문득 칼린은 무엇이 생각났다는 듯 내게 물었다.

“내일 공연까지 하면 얼마나 사람이 몰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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