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159화 (159/250)

159화

록펠러 센터 무대를 확인하는 상황실.

모닝쇼 PD인 그래머는 흐뭇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시작한 지 5분이 채 되지 않은 시점부터 지금까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 있던 실시간 집계표에는 인터넷 뉴스 기사가 1초에 1개씩 갱신되고, 유튜브 실시간 시청자수는 단숨에 300만을 넘어섰다.

무대가 끝나자 그래머는 옆에 있던 남자에게 당당한 어투로 물었다.

“어때? 놀랍다고 했지?”

그래머의 물음에도 남자는 곧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마치 화면에 시선을 뺏긴 듯.

그래머가 흔들고 나서야 남자가 정신을 차렸다.

“뭐야 선배. 그렇게 거품일 거라고 얘기하더니.”

남자의 멍한 표정에 그래머는 되레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머의 앞에 선 남자는 모닝쇼와 미국 방송계 양대 산맥이라고 불리는 ‘파이널쇼’의 PD, 제임스 파커였다.

두 사람은 미국 방송계에 손꼽히는 PD들이었다.

미국의 첫 아침 TV쇼인 ‘모닝쇼’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그래머와, 수년간 장수한 프로그램, 파이널쇼를 제작한 제임스.

그래머와 제임스의 성공기는 미국 내 모든 PD들의 귀감이 되곤 했다.

하지만, 처음 모닝쇼에 이안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임스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거 다 거품일 것 같은데.’

분명, 제임스가 보기에도 이안의 행보는 지금껏 있었던 어느 음악가보다 독보적이었다.

유수의 자작곡으로 피아니스트로서 명성을 떨친 사람.

음악가로서 이름을 알린 지 1년이 조금 넘은 상태에서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인물.

게다가 다른 나라 올림픽 무대에 초청되어 굵직한 업적을 보이지 않았던가.

그러나 제임스는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가는 것과 실력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언론에서 띄워줘서 성공하는 사례는 많으니까.’

제임스 또한 PD기에 언론과 방송계의 흐름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언론의 주목을 받은 스타가 한순간에 월드 스타급으로 띄워지다가 사장되기 일쑤였으니까.

이안 또한 동양인 음악 천재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뿐, 실력은 지금껏 나온 천재들과 크게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 주변에서는 이안에 대한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개중에는 이안에게 직접 섭외 제안을 했지만, 번번이 거절했다고.

제임스는 동료 PD들에게 왜 그리 매달리고 있냐고 타박하기 일쑤였다.

그중 제임스의 대학교 후배이자, 모닝쇼 PD인 그래머의 이안 사랑은 유별났다.

이안이 모닝쇼에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전한다면서 자랑 반, 칭찬 반이 섞인 말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제임스는 그래머의 말에 딱 잘라 기대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런 제임스에게 그래머는 작은 제안을 내밀었다.

“직접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직접 목도하면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 거라고.

그래머의 말에 다른 PD들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연이어 칭찬을 쏟아내고, 음악에 대해 말이 끊이지 않자 결국 제임스도 그래머의 제안을 수락했다.

대체 얼마나 잘하기에 사람들이 반쯤 홀린 듯 반응을 보일까.

그 궁금증의 대답을 모닝쇼에서 볼 수 있었다.

‘상상 이상, 아니, 상상을 그대로 펼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동안 이안을 향해 얼마나 대단하겠냐고 생각했는데.

그건 자신의 오산이자 착각, 더 나아가 자신의 오만이었다.

이안의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제임스의 심장은 이안의 연주에 맞춰 쉴 새 없이 뛰기 시작했으니까.

‘피아노로 이렇게 강렬한 멜로디를 만들 수 있다니.’

감미로운 시작을 볼 때만 해도 제임스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익숙한 클래식 선율이고, 피아노에서 나올 법한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반전이 더해진 선율이 펼쳐지자 제임스의 입이 자신도 모르게 벌어졌다.

클래식적인 선율이 어느 순간 재즈풍으로 뒤바뀌었다.

우아하고 연하게 움직였던 이안의 손가락은 어느덧 재치 있고 발랄하게 건반을 쳤다.

이내 피아노 선율을 중심으로 트럼펫, 기타 세션이 차례대로 더해지자 마치 하나의 오케스트라처럼 선율이 터져 나왔다.

이어지는 솔로 무대는 또 어떤가.

원곡이 어떤 것인지 몰라도, 이안의 곡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이전 곡이 심장에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기분이었다면, 이번 곡은 뭉클한 따뜻함을 전하는 느낌이었다.

마치 사랑하는 이를 앞둔 사람처럼.

노래를 듣는 내내 묘한 두근거림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동안 PD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곡을 들었던 제임스에게도 처음 겪는 신기한 일.

그 모든 신비한 순간의 중심에 이안이 있었다.

‘There's no smoke without fire.’

한국어로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 법이다.’라고 번역할 수 있는 말이었다.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다는 말을 여기서 깨달을 줄은 몰랐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이유가 있었어.’

연주를 듣는 내내 제임스는 자신도 모르게 박자에 맞춰 발을 구르지 않았던가.

상황실에 있는 것만 아니면 당장 인파에 스며들어 뛰었을 것이다.

그동안 피아노는 정적인 악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안의 손에서 움직이는 피아노 선율은 경쾌함 그 자체였다.

게다가 이안의 연주는 무언가 말로 채 형용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감돌았다.

‘뭐랄까… 선율만으로도 활기를 감돌게 하는 느낌?’

제임스는 눈을 감은 채 연주에 더욱 몰입했다.

그의 눈앞에서 열의에 넘쳤던 자신이 지나가듯, 이안이 음악으로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평소 삶에 미치고, 원하는 만큼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의미를 담은 재익의 <매니악>.

한국어를 오늘 처음 들어본 제임스임에도, 그 의미가 자연스럽게 전달되었다.

곡 자체가 뛰어난 것도 있겠지만, 이러한 내용을 고스란히 피아노로 표현했다는 것.

이안의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것 말고는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젊은 거장이라는 타이틀이 이해되는 순간.

제임스의 머릿속에 생각이 떠올랐다.

미국 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NBJ 방송사의 간판 프로그램, ‘파이널쇼’.

제임스가 PD로 재직 중인 유명 토크쇼였다.

토크쇼 진행자, 파이 드제너러스가 무려 20년간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

특히 이번에 준비하는 회차는 무척 특별하고 중요했다.

그렇기에 이안이 필요했다.

제임스는 화면 너머로 보이는 이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꼭 섭외하고 싶다.’

***

모든 무대를 마친 후.

나와 재익은 대기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지웠다.

무대에 내려온 지 꽤 지난 시점인데도 재익은 아직 흥분감이 가시지 않은 듯 연이어 말문을 열었다.

“진짜 대단했습니다. 외국인들이 이렇게나 열광할 줄은 몰랐거든요.”

지금껏 여러 행사를 뛰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이번과 같은 성원은 처음이었다고.

“게다가 이안씨가 제 곡을 편곡해서 연주하다니. 가문의 영광이 따로 없습니다.”

미국 무대에 나의 연주까지, 자신이 오늘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재익은 내가 자신의 곡을 편곡해서 펼칠 줄은 전혀 몰랐다고 전했다.

그동안 한 번도 연습한 것을 보지 못했다며.

혹 미리 이런 상황을 예상했냐는 질문을 건넸다.

“예전에 자주 들었던 걸 즉흥적으로 바꿔봤습니다.”

“즉흥으로 바꿨다고요?”

담담한 대답에 재익은 입을 떡 벌렸다.

이내 무언가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인 재익은 ‘이안씨라면 그럴 수 있지.’라고 중얼거렸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이안씨.”

매번 흥에 겨운 얼굴이 무척 진지하고 뭉클한 기색이 보였다.

자신의 부탁에 먼 미국 땅까지 와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제대로 된 무대를, 제대로 된 한국 대중가요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여줬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약소하지만 저녁이라도 사겠다며.

재익은 미국에 자신만 아는 최고의 스테이크 하우스가 있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누군가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 무대는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모닝쇼의 PD, 그래머 굿맨이었다.

그는 들어옴과 동시에 나와 재익의 무대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았다.

상황실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던 것이 너무나도 아깝다고.

자신이 PD만 아니었어도 청중에 섞여 연주를 완전히 즐겼을 것이라고.

평소 관리자 직급이라는 생각에 평정심을 놓친 적이 없었는데, 내 연주와 재익의 노래를 듣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며 신남을 주체할 수 없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한참 무대에 대한 칭찬을 이어가던 그래머는 그제야 자신이 온 이유를 깨달은 듯 본론을 이어갔다.

“오늘 저녁에 만찬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무대를 펼친 손님에게 수고했다는 의미로 진행한다는 만찬회.

일종의 행사 뒤풀이 같은 셈이었다.

한국에서는 뒤풀이라고 한다면 술 마시며 수고했다고 즐기는 일이지만, 서양에서는 단순한 즐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행사였다.

‘일종의 사교장이지.’

파티 속에서도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가기 마련.

그것도 모닝쇼를 주관한 곳에서 진행하는 만찬회다.

그래머 또한 단순히 모닝쇼에 출연하는 손님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올 것이라고 전해주었다.

그동안 모닝쇼에 출연했던 사람들이나, 모닝쇼와 연이 있으면서 이번 게스트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

특히 그래머는 재익이 단번에 뜬 스타임과 동시에, 내가 동행해서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이미 방문 의사를 밝히신 분도 있습니다.”

유명 헐리우드 배우부터, 미국의 디바라고 불리는 가수,

그래머의 입에서 이름이 하나둘씩 나올 때마다 재익의 동공이 커지길 반복했다.

나도 누구인지 단번에 알 정도로 유명인들이었으니까.

그만한 유명인들이 나온다면, 재익에게 이번 만찬회는 미국에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회이자 미국 대중 가요계에 진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테니까.

재익은 격하게 수락 의사를 보냈다.

“저는 무척 좋습니다.”

이미 그의 얼굴은 꽤 신이 난 듯 밝아져 있었다.

일전의 격한 공연에 땀을 비 오듯 흘렸던 재익인데, 어느덧 지친 기색은 사라져 있었다.

무언가 다른 가능성을 엿보는 듯.

재익의 눈길에서 묘한 기색이 드러났다.

“이안씨는 어떤가요?”

재익이 내 컨디션을 물었다.

재익도 재익이지만, 나 또한 미국에 오자마자 강행군을 펼쳤으니까.

첫날부터 VR 전시장을 찾아가는 것은 물론, 이후에도 모닝쇼 무대를 위해 연습을 이어갔으니까.

제대로 쉰 적이 없어 피곤할 법도 하건만.

나도 재익과 비슷한 것을 보고 있었다.

‘미국 무대를 확보할 수도 있겠지.’

아직 나를 만나고 싶다고 얘기한 사람이 누군지는 알 수 없겠지.

하지만, 지난 오디션 준비 때도 카네기 홀과 같은 거물급 인사들이 연락을 보내왔지 않던가.

이번에도 그런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동조하듯, 그래머는 조심스레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사실 이안씨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윽고 그래머의 입이 열리고.

이름을 들은 재익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란 제스처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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