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161화 (161/250)

161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뉴욕 VR 전시장을 확인하기 위해 타임스퀘어를 찾았다.

관계자가 아닌, 한 명의 관객으로서 참여하기 위해 사측에도 알리지 않고 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다 줄이야?’

쇼핑몰 입구 앞에 사람들이 연이어 줄지어 서 있었다.

심지어 주최 측에서 친 가이드 펜스도 부족했던 것인지, 가이드 펜스를 넘어 사람들이 끝없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 줄이 건물을 한 바퀴 두를 정도.

라운지가 6층인 것을 고려하면, 건물 내부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도저히 들어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긴 줄에.

나는 결국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죄송합니다 이안씨. 많이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제가 연락도 안 하고 온걸요.”

나는 칼린의 도움으로 관계자 전용 통로를 통해 겨우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2층에서 바라보는 라운지의 모습은 그야말로 인산인해(人山人海).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라운지 홀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빅토리랩이 추산해본 결과, 방문객이 4배나 증가했다고.

“아무래도 재이씨와의 합동 무대가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프랭크는 나와 재익의 합동무대가 사람들의 방문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닝쇼의 시청률은 무려 13%.

수많은 TV 프로그램이 난무하는 미국에서 기록적인 시청률이라고 덧붙였다.

게다가 유튜브에 업로드된 공연 영상도 천만 조회수를 달성하면서 반응이 더욱 폭발적이라고.

얼마나 대단한 반응이었으면 왓슨사의 CCO인 프랭크도 직접 전시회장을 찾았다.

나를 발견한 프랭크는 곧바로 내 손에 악수를 청했다.

그 또한 수년간 왓슨 스튜디오에서 다양한 사업에 참여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영화 콜라보는 물론, 자사 캐릭터 VR 전시도 해봤지만, 이렇게까지 뜨거운 성원을 보내온 건 제가 부임한 이래로 본 적이 없습니다.”

박스오피스 1위 영화뿐만 아니라, 왓슨 스튜디오의 오리지널 캐릭터 VR 컨텐츠도 무척 반응이 좋았다고.

지금의 왓슨 스튜디오를 오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곰돌이 형상을 한 캐릭터.

장년층과 키덜트 세대를 겨냥하여 만든 VR 행사 때도 만만치 않게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는데.

지금과 비교하면 부끄러울 지경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안씨는 사람들의 갈망을 정확히 짚어내는 것 같습니다. 마치 평소에는 외면하던 감정을 이안씨의 연주를 보면 저도 모르게 직면하는 기분이랄까요.”

모닝쇼에서 펼쳤던 무대.

나와 재익의 합동 무대는 물론, 내 독주 무대도 무척 인상 깊었다고 표현했다.

특히 단순히 곡을 듣는 것인데도 묘하게 환상이 펼쳐지는 기분이었다고.

신나는 재즈풍의 선율에는 자연스레 경기장을 누비는 축구선수가 떠올랐고, 가련한 가락이 일품인 독주에는 아내를 처음 만났던 설레는 감정이 다시금 피어올랐다고 덧붙였다.

마치 잊고 살았던 과거를 고스란히 떠올리게 만드는 묘한 선율에.

내가 연주를 이어가는 동안 차마 TV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이제는 VR 자체만으로 이 콘텐츠를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이안의 음악을 느끼고 싶어서 보는 것이지 저희의 VR 기술력만으로 이런 성과가 이뤄진 것은 아니니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관심이 더욱 집중되고 있습니다.”

비단 뉴욕 전시장에 오는 손님이 많아진 것이 능사가 아니었다.

온라인 검색량은 물론, 챌린지 참여자도 이전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답했다.

심지어 빅토리랩을 비롯한 왓슨 스튜디오의 고객센터로도 문의 전화가 쇄도한다고도 전했다.

“하루에도 문의 전화만 수천 통이랍니다. 일각에서는 운영 시간을 늘려달라는 말도 있고요.”

이미 여러 번 운영 시간을 연장시킨 상태다.

오후 6시까지 운영되던 것을 2시간이나 연장했고, 다시 한번 연장해서 밤 10시까지 운영 시간을 연장했음에도 부족하다는 평이 줄을 이었다고 덧붙였다.

그 밖에도 단체 예매를 할 수는 없는지, 전체 대관을 할 수는 없는지, 등.

게다가 프랭크는 또 다른 곳에서도 연락이 왔다고 전했다.

“심지어 제게 개인 연락까지 보내는 사람도 있지 뭡니까. 새벽 시간이라도 좋으니 이안씨의 작품들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게 해달라고요.”

프랭크가 무척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대 기업의 CCO라는 그의 위치를 생각하면 사소한 연락도 사소한 것이 아닐 테지.

그에게 개인적으로 부탁을 했다면 최소 정재계 인사급 인물일 것이다.

아마 거절하기 힘든 상태이겠지.

“편하게 결정하세요. 그게 왓슨 사에 도움이 된다면 저야 괜찮습니다.”

내 말에 프랭크는 사뭇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치 말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알았냐는 듯.

하지만, 내가 대답 없이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자, 그는 질문 대신 미소로 화답했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제가 다 마음이 놓이네요.”

***

뉴욕 공연은 물론, VR 전시관까지 원활하게 운영되는 것을 봤으니.

이제 이별할 시간이었다.

뉴욕 라과디어 공항.

모닝쇼의 PD, 그래머를 포함하여 칼린과 프랭크까지 배웅 행렬에 참여했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빨리 가신다니 아쉽습니다.”

프랭크를 옅은 울상을 지은 채 말했다.

며칠 더 지내면서 음악은 물론, 또 다른 협업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고.

카타리네 스튜디오를 인수할 정도로 애니메이션 산업이 발달한 왓슨 스튜디오와의 협업을 하면 분명 이점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지금 당장 할 일이 있었다.

‘<개화>의 완성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완성 직전 시기에 뉴욕행을 택한 만큼 <개화>의 완성이 먼저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야 기존 단원은 물론, 신입 단원들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

“다음에 또 이야기 나누죠.”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말에 프랭크는 그제야 표정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재익은 출국 게이트를 통과하자 나를 곧바로 라운지로 안내했다.

길게 늘어선 줄을 지나 VIP 전용 라운지를 통해 들어가자 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반갑게 나와 재익을 맞이했다.

이윽고 전용 통로를 따라 비행기로 들어가자 평소와는 다른 좌석이 눈에 들어왔다.

침대처럼 완전히 펼쳐지는 좌석에, 최고급 기내식, 호출하면 즉각 친절한 미소를 띤 채 오는 승무원까지.

비행기 좌석 중 제일이라는 퍼스트 클래스 좌석이었다.

“우리 젊은 거장님을 누추한 곳에 모실 수 있나요.”

재익이 너스레를 떨면서 말했다.

14시간에 달하는 비행시간.

오랜 시간 고생한 나를 위해 준비한 약소한 선물이라고 덧붙였다.

별거 아니지만, 한국에 가는 동안 편안하게 갔으면 좋겠다며 빙긋 웃어 보였다.

“이안씨가 없었다면 이만한 인기를 끌지 못했을 테니까요.”

이미 재익의 신곡, <서울 패션>의 유튜브 조회수가 30억을 달성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이번 신곡으로 미국의 관심을 얻었다고 해도, 내가 아니었으면 이 정도는 못 했을 것이라며.

이리 보상하는 것도 약소하여 뭐든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미 챌린지로 크게 도와주셨는데요 뭘.”

재익의 소속사, 쏘에이션에서 시작한 음악 챌린지.

SNS의 파급력을 책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재익은 그 공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제가 뭘 크게 한 것도 아닌걸요. 리히트 오케스트라들이 더 대단했습니다. 어쩜 단원들도 하나같이 천재에, 실력이 수준급인지.”

리히트 단원가 없었다면 이번 챌린지는 이리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애비게일이 신호탄을 크게 터뜨려준 덕에 커진 것이지, 자신은 그저 자리만 깔았던 것이라고 표현했다.

심지어 단원들 하나하나의 실력이 출중하여 리히트 단원만 아니었다면 소속사 섭외 제안을 했을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봤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군요.”

재익의 말에 나 또한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원들의 챌린지 참여 영상을 보며 단원들의 연주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에비게일을 비롯하여 혼자, 또는 함께 참여한 여러 단원들.

이미 내가 일전에 지적했던 부분들은 모두 고친 상태였다.

더 나아가 그들의 연주를 듣고 있자면 내가 원곡을 썼을 때 담았던 감정과 이미지들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기존 단원뿐만 아니라 신입 단원들도 유려한 연주를 펼치는 모습에.

<개화>의 완성을 더욱 앞당길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 도착한 대한민국.

수속을 마친 나는 입국 게이트 앞에 섰다.

자동문이 천천히 열리던 사이, 수많은 인파가 가장 먼저 들어왔다.

이내 그 사이에서 일제히 하얀 플래시 세례가 터져 나왔다.

수십 개에 달하는 카메라들이 셔터음을 내며 장내를 시끄럽게 울렸다.

기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팬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플래카드를 든 채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클래식이 이렇게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될 줄은 몰랐네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클래식은 부유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되었으니까.

재익은 내가 그 고정 관념을 깬 사람이자, 그렇기에 더욱 대단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젠 과격하고 자극적인 랩 대신, 가요에 부드러운 클래식을 접목시키고 있다고.

내가 만든 변화가 클래식을 넘어 가요에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전했다.

그 정도이니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온 것이라고.

재익도 몇 번 이런 경험이 있던 탓에 재빨리 경호팀을 배치한 것이었다.

다만, 예상을 뛰어넘는 인파에 재익마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지나가겠습니다!”

덩치 큰 경호실장이 소리치자 열이 넘는 경호원들이 일제히 움직여 길을 열었다.

그럼에도 인파가 몰린 탓에 경호원들이 몰려오는 사람들을 막기 바빴다.

누군가는 내 이름을 부르면서 환호하거나, 내 이름과 사진이 걸린 플레카드를 흔들며 팬심을 자랑했다.

출국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차량이 대기 중인 바깥으로 나오자 그제야 사람들의 반응이 조금 수그러들었다.

나와 재익이 차에 오르자, 차량은 곧바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다.

재익은 숨을 고르면서 내게 시선을 옮겼다.

그는 나를 무척 신기하다는 눈치로 바라봤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비행도 힘들었을 텐데, 바로 전시회장을 가보실 생각을 하다니…”

***

본래 뉴욕 VR 전시회장과 동시 개방을 하기로 했던 한국 전시회.

갤러리 해체 과정 때문에 개방이 조금 미뤄진 상태였다.

하지만, 되레 그것이 이점으로 작용했던 것인지, 전시회장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2층에 마련된 VR 전시회.

기존에 있던 가벽과 유리창을 제거하자 갤러리는 꽤 넓은 공간을 자랑했다.

그 속에 내 연주를 담은 VR 컨텐츠가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뉴욕에 유럽 국가 관객이 몰렸다면, 국내에는 아시아 국가 관객들이 몰린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전시를 담당한 홍보담당관 수범이 격앙된 눈빛을 한 채 이야기했다.

이미 뉴욕에서의 전시도 대박이 났음을 잘 알고 있다고.

심지어 몇몇 방문객은 뉴욕 전시회장 입장에 실패해서 한국으로 온 경우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 덕에 DDP 주변에는 전시회장으로 들어가기 위한 대기줄이 길게 뻗어나갔다.

사뭇 기다리는 동안 지루할 수도 있는 상태.

그 지루함을 단박에 날려주는 사람이 있었다.

“Are you ready~~”

DDP 옆에 마련된 소규모 무대.

나팔바지를 입은 재익이 시그니처 선글라스를 낀 채 춤을 췄다.

본래 홍보를 위해 게릴라 콘서트를 펼치기로 했던 재익은 한 번만으로 끝내지 않았다.

오픈식을 한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에도 무대를 자처한 것이다.

그것도 오후 3시와 7시.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시간을 노려 무대를 진행했다.

“이 두 시간대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릴 때고, 이때 공연을 하면 관객 이탈을 방지할 수 있을 테니까요.”

재익의 생각은 적중했다.

뉴욕에서는 긴 줄을 보고 제풀에 나가떨어졌던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사람들의 이탈이 거의 없었다.

무대를 중심으로 대기줄을 만든 것도 신의 한 수로 적용했다.

열성적인 재익의 무대에 사람들은 지루함도 잊은 채 기다렸다.

“쉬엄쉬엄하세요. 그러다 쓰러지세요.”

오죽하면 항시 대기하던 수범이 재익을 향해 걱정스런 눈길을 보낼 정도였다.

하지만, 재익은 내게 눈길을 고정한 채 당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부족해요. 이안씨가 제게 해준 걸 다 갚으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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