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167화 (167/250)

167화

[왓슨 스튜디오. 이안 VR 전시관 추가 건립 예정. CCO, 프랭크. ‘이 모든 것은 이안의 덕’.]

[파이널쇼, 500회 특집 영상 조회수 4천만 달성.]

[CBC 방송국, ‘기회가 된다면 이안의 무대를 다시금 요청하고 싶어…’]

내가 한국에 오고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뉴욕 소식은 끊이지 않았다.

파이널쇼와 모닝쇼에서도 연이어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VR전시회는 개방한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관객들의 발걸음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특히, 빅토리랩에서는 이번에 새로 만든 <개화>도 어서 VR 컨텐츠로 만들자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 기세라면 세계 각지에 추가 건립을 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빅토리랩의 담당자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뉴욕과 한국뿐만 아니라, 목표 지역을 보았던 독일과 홍콩, 등 다양한 후보를 나열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물론, 클래식의 성지에도 건립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자는 의견도 나왔다.

“<개화>의 VR컨텐츠 제작을 진행하면서 전시관 확장도 고려해보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율을 알릴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칼린도 알겠다며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곤 전화를 끊었다.

옆에 있던 큰아버지는 차근히 메모를 하는 것은 물론, 어떤 파일을 보낼지까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일에 엄청난 열의를 보냈다.

그때, 큰아버지가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내게 물었다.

“정기 연주회 열 생각은 있냐?”

정기 연주회.

대부분 오케스트라들의 주 활동이자, 오케스트라 고유의 스타일과 연주 성격을 보여줄 수 있는 자리.

대한을 비롯, 빈 필, 콘체르테, 등 대부분의 오케스트라가 빠짐없이 진행하는 것이었다.

다만, 나는 지금껏 이벤트성 연주회를 열었을 뿐, 정기 연주회를 한 번도 열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신입 단원들도 그러한 행보에 놀라면서도 이유가 있을 거라며 수긍하곤 했으니까.

이미 기존 단원들과 활동한 것도 반년 이상.

그럼에도 당시 정기 연주회를 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시작은 사조를 익히는 데 집중했었으니까.’

처음 리히트 오케스트라를 창단했을 때.

내 목표는 더욱 많은 사람들과 사조를 나누고, 이를 차후에 내가 손대지 않아도 퍼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야 음악을 체득한 단원들의 연주가 청중에게 닿을 테니까.

뿐만 아니라 이제 사조에 완전히 녹아든 기존 단원들이 신입 단원들을 알려줄 정도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던가.

나를 통해 사조를 배웠던 사람이, 이젠 다른 사람에게 사조를 전달한다.

처음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며 했던 목표가 하나 달성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는 충분해졌지.’

이미 리히트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실력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모두가 대부분 천재성을 가진 것은 물론, 오랜 시간 한 악기를 파고든 베테랑들이니까.

듣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 악보가 자연스레 떠오를 정도로 명확한 연주를 하는 것은 물론,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사조까지 펼칠 수 있는 사람들.

마치 깔끔하게 붓터치를 하듯, 기존, 신입 단원 구분 없이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떠오르는 연주를 펼칠 수 있게 되었다.

<개화>를 연주할 때도 가상의 화원에 꽃이 피는 것을 느끼지 않았던가.

이미 단원들은 기교와 스타일 모두에서 완성된 사람들이다.

파이널쇼에서 화려하게 데뷔전을 치렀다면, 이젠 진득하게 리히트의 매력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나 또한 정기 연주회를 항상 생각해두었기에.

가장 먼저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장소부터 알아봐야겠어.’

지금 리히트의 홈그라운드인 체임버 홀은 연습에 용이한 공간이지, 공연에 특화된 공간이 아니었으니까.

더욱 커진 리히트의 모습과 그만한 위용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 알리려면 콘서트홀급의 무대가 필요하다.

게다가 넓은 것만으로 다가 아니었다.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온전히 관객석에 전달할 수 있는 내부 설계가 된 공간.

울림으로 리히트의 선율을 더욱 부각시켜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혹시 괜찮은 제안이 들어온 곳이 있어요?”

반쯤 확신을 가진 채 물은 질문이었다.

큰아버지라면 이미 정기 연주회 의향을 물었을 때부터 로드맵을 얼핏 그렸을 테니까.

이미 대관 관련 제안들도 정리해뒀을 것이다.

큰아버지는 내 질문에 곧바로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마침 좋은 제안이 들어왔다.”

10장가량에 이르는 서류 뭉치.

리히트가 오를 무대에 대한 설명과 오케스트라 선율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다는 장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처음 만든 오케스트라 홀에서 연주를 펼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제안.

정기 연주회를 앞둔 나에겐 무척 달콤한 제안인 것이 사실이었다.

게다가 제안을 보낸 곳도 설명할 필요가 없는 곳 아닌가.

정부 직인과 워터마크까지 찍힌 서류.

“문체부 쪽에서 제안한 거다.”

***

미국, 에비게일의 집에서 앞으로 리히트의 향방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걸려온 국제전화.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는 다름 아닌 강홍식, 문체부 장관의 연락이었다.

한 국가의 문화 예술 관련을 담당하는 장관이 직접 연락을 보내온 것에 현철의 표정이 무척 진지하게 바뀌었다.

-안녕하십니까. 마에스트로 때부터 저도 팬이었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헌데 무슨 일이십니까?”

단순히 안부를 물으려고 국제전화까지 사용해서 연락을 할 리는 없을 테니까.

현철이 대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국제적으로 큰 위상을 떨쳤을 때도, 문체부에서 축하 서한을 보낸 적은 있었으나, 직접 전화가 온 적은 없었다.

그것도 장관급 인사의 전화다.

그렇다면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이리라.

급박한 상황에서 이안이 절실히 필요하거나, 이안에게 특별한 제안을 하려고 하거나.

현철의 예상이 적중한 듯.

소개와 안부를 묻는 과정까지만 해도 사근사근하던 홍식의 목소리가 변했다.

날카로우면서도 무거운 분위기가 깔린 억양이 수화기 너머로 넘어왔다.

-선생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기존 콘서트홀에 문제가 많지 않았습니까.-

홍식의 말에 현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 예술의 전당.

대한 오케스트라에 몸담을 때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가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대한민국 대표적인 음악당이자, 이안이 일전에 오디션을 개최한 곳.

무려 7개의 홀을 보유한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음악당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유명세와 명성과 달리 허점이 많기로 유명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나라의 위용을 보여주기 위해 지은 예술의 전당.

건축 당시, 겉모습에 힘을 쓰느라 정작 공연에 적합한 내부 디자인이 틀어진 것이 화근이었다.

적절한 울림이 온전히 객석에 닿지 못하는 지적은 물론, 좌석에 따른 소리 편차가 과하다는 말도 있었다.

특히 소리에 민감한 클래식 청중들에게는 콘서트홀의 단점이 더욱 빨리 알아채곤 했다.

그 때문에 일반적인 콘서트나, 공연을 펼치기엔 좋았지만,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내기엔 좋은 자리가 아니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래서 그러한 단점을 보완한 새로운 오케스트라 홀을 짓고 있었습니다.-

이안이 피아니스트로 활약하고, 리히트 오케스트라 단장으로 활약할 때.

정부에서는 나라 전체에 퍼진 클래식 관심에 계속해서 언급되던 예술의 전당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문체부 장관이 아닌, 개인적으로도 무척 뿌듯합니다. 이안씨가 아니었다면 관심조차 받지 못했을 텐데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안의 덕이라며.

이안이 없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고, 예술의 전당은 차츰 다른 음악당에 밀렸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안씨만 괜찮으시다면, 새로운 오케스트라 홀의 포문을 열어주시겠습니까? 그보다 뜻깊은 개관식은 없을 것 같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무리될 예정인 오케스트라 홀의 개관식.

오케스트라 홀의 첫발을 이안이 끊어주면 좋겠다는 요청이었다.

특히 리히트 오케스트라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들이 뜨거워진 상태에서 연주를 펼치면 그것만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

홍식은 일전에 이안의 공연들이 순식간에 매진되었듯, 개관식도 그리될 것이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안씨가 원하신다면 개관식 무대는 물론, 앞으로 정기적인 오케스트라 공연도 지원드릴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개화>를 발표하고 난 이후 사람들이 이안의 국내 공연을 무척 많이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홍식은 자신도 그러한 팬들 중 하나라고 밝혔다.

특히 <개화>에서 선보였던 연주와 동시에 지휘를 하는 모습은 경악 그 자체였다고.

그것을 실제로 보고 싶어서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른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기회가 나쁘지 않군.’

홍식의 말에 현철은 머릿속에서 한창 그림을 그렸다.

이안이 오케스트라를 결성한 지 근 1년이 되어간다.

새로 들어온 단원들도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충분한 실력자인데다 이안이 원하는 스타일의 연주까지 연마했다.

다만, 이안이 선택한 체임버홀은 연습을 위한 것이지, 공연을 위한 홀은 아니었다.

공연을 위해 공간이 필요하던 참이었는데.

현철은 머릿속에서 계산을 끝냈다.

“그럼 한국에 가서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시죠.”

***

뉴욕 타임스.

세계 여론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언론사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곳이었다.

특히, 뉴욕 타임스에서 저술하는 대중문화 예술 분야는 항상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곤 했다.

오죽하면 무명 작가의 책이 뉴욕 타임스에 한 번 오르자마자 베스트셀러로 등극했겠는가.

그런 언론사에서도 주목 받는 사람이 있었다.

“선배님, 이번에는 누구를 쓰실 건가요?”

한 후배 기자의 질문에 다른 기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남자에게 향했다.

옅은 금발에 벽안을 가진 사내.

고민이 가득한 눈빛에 사람들이 긴장한 채 침을 삼켰다.

끝내 고민하던 남자는 입을 열었다.

“글쎄,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박이안 단장을 써보려고 하는데.”

“좋죠! 드디어 쓰시는 거예요?”

요즘 미국에서 이안에게 빠져있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닝쇼에 재익과 함께 출연한 것은 물론, 파이널쇼에서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개화>를 공개하기까지.

게다가 최근 개관한 VR 전시관은 매일 같이 관객이 몰려들어 들어가지도 못한 채 발걸음을 돌리는 사람만 수백에 이르렀다.

언론계에서는 주목하는 것이 당연한 인물.

하지만, 남자가 이안을 주목하고 있다는 말에 기대 가득한 시선을 보낸 것은 남자가 배런 포터이기 때문이었다.

배런 포터.

그는 뉴욕 타임스의 기자 출신이자, 명망 높은 음악 평론가였다.

이안의 연주는 ‘보이는 것’이라고 가장 먼저 표현한 평론가.

미국에서는 이안의 연주를 가장 먼저 알린 기자로 언론계에서는 이미 유명인사였다.

안목은 물론, 곡을 느끼는 감각, 등.

단순히 기사를 쓰는 것을 넘어, 그는 정말로 천재를 알아본다는 소문이 언론계에서 파다했다.

하지만, 이번에 이안에 대한 평론은 평소 배런이 쓰던 것과는 결이 달랐다.

‘이번엔 음악만으로 저술할 수 없어.’

배런은 그동안 대중친화적인 평론을 써오기로 유명했다.

여타 평론가처럼 어려운 단어와 사회 사항들을 가득 끌어오는 대신, 대중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을 쉽게 갈무리했다.

대중들은 과거의 유물을 보기보다, 현재의 산물을 보기 좋아하니까.

그 때문에 배런은 배경지식을 자세히 조사하는 대신, 직접 곡을 듣거나 책을 읽고 그대로의 평론을 작성했다.

이미 배런의 머릿속에 배경지식들을 간결하게 정리할 정도로 지식이 쌓여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안의 연주, 이안이 만든 곡, 이안이 창단한 오케스트라는 배런의 배경지식을 완전히 뒤틀었다.

‘가늠이 되지 않는 사람.’

평론가로 살아간 지도 어언 10년이 넘었다.

작품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얼핏 알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증명한 사람이 바로 배런이었다.

하지만, 이안의 작품들은 배런의 예상을 항상 뛰어넘었다.

‘보통 연주가들은 패턴이 있기 마련인데.’

화음이 되었든, 리듬이 되었든, 곡을 만드는 연주가들은 일정한 습관이 있기 마련이다.

이미 거장으로 이름을 날린 작곡가도 예외가 아닐 정도.

그러나 이안은 매 곡을 다른 사람이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선율을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배런에게 이안은 마치 한 번도 탐험하지 않은 미지의 숲 같은 존재였다.

기자로서, 평론가로서 들어가고는 못 배기는 숲.

‘한국에 가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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