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169화 (169/250)

169화

뉴욕에 돌아온 배런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안의 첫 정기 연주회 소식을 알리는 것이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녘에 뉴욕 땅을 밟은 그였건만.

배런은 후배 기자들은 물론, 뉴욕타임스 편집장에게까지 전화를 돌렸다.

처음엔 난데없는 전화에 자다 깬 목소리로 웅얼거리던 사람들이 이안의 소식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첫 정기 연주회?!”

“그렇다니까!”

1시간이 채 되지 않아서 일간지 담당 인원이 모두 모였다.

첫 신문이 인쇄되기 직전.

배런의 활약으로 이안의 정기 연주회 소식은 일간지 1면에 실렸다.

[뉴욕 타임스 단독. 박이안 “첫 정기 연주회 한국에서 진행할 예정.”]

인쇄와 동시에 온라인 뉴욕 타임스에도 가장 먼저 이안의 기사가 실렸다.

가장 먼저 소식을 접한 타사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네, 정식으로 확인된 사실 맞습니다.”

“직접 만나서 확인한 사실입니다.”

“선배! 티켓팅 일정도 들으셨어요?”

이안의 소식은 뉴욕에 한정되지 않았다.

뉴욕을 시작으로 미국 전역, 더 나아가 세계 전체로 이안의 첫 정기 연주회 소식이 빠르게 번져 나갔다.

명망 높은 음악가들이 기대된다는 입장을 밝히는가 하면, 이름만 들어도 위엄을 알 수 있는 마에스트로들이 대거 한국행을 선택하겠다고 뜻을 전했다.

“티켓팅 일정은 아껴둬. 나중에 다시 언급하면 붐이 일어날 테니까.”

배런의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갔다.

티켓 일정만으로도 엄청난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는데 곧바로 아이템을 날릴 수는 없는 법.

평론을 읽게끔 만드는 장치이기도 했다.

[젊은 거장, 박이안의 개화를 직접 목도하다.]

[그의 곡, 리히트의 연주는 모든 이름을 떼어 내고 비로소 나온다. 누구의 관점을 개의치 않고, 오직 본인의 곡을 이어나가는 행보. 그리고 단장을 의심치 않고 곡을 연주하는 단원들은 마치 군인을 연상케 한다.]

자신의 뜻을 고스란히 펼치는 평론.

이번 <개화>에 대한 평과 함께 그가 연습을 목도하며 느꼈던 감정들이 평론에 실렸다.

살벌한 눈빛으로 이안의 손을 바라보는 단원들과, 그 강렬한 의지에 따라 반응하는 악기들.

차마 연습으로 남겨두기 아까운 선율들이 고스란히 평론에 담겼다.

또한, 배런은 이안에게서 받은 정보 또한 잊지 않았다.

[15일 오후 2시. 리히트의 기적을 직접 목도하고 싶다면 이 시간을 잊어선 안 된다.]

배런의 평론이 올라오고 다음 날.

이번에도 뉴욕 타임스의 전화가 불티나게 울렸다.

정기 연주회라는 말을 일절 하지 않았음에도, 기자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해당 시간이 티켓 예매 일정이냐고 묻는 질문이 쇄도한 것이다.

이내 한국에서도 티켓 일정이 발표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리히트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 예매로 쏠렸다.

그리고 대망의 15일.

오후 1시 30분부터 타임스 사옥이 일제히 술렁였다.

기자 초청이 있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리히트 오케스트라를 보고 싶은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배런도 그들 중 하나였다.

어떻게든 티켓팅에 성공하겠다는 마음으로 30분 전에 접속하고 있었건만.

이안의 인기를 방증하듯, 아직 오픈 시간도 아닌데 공식 예매 사이트 서버가 다운되기 일쑤였다.

게다가.

‘58초 걸렸다고?’

1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매진 기록.

배런도 지금껏 평론가로 살아오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경이로운 기록이었다.

***

대중들에게 처음 공개되는 예술의 전당의 새로운 오케스트라 홀.

외관에서부터 건축에 공을 들인 티가 났다.

한옥의 기본인 주춧돌과 배흘림기둥을 형상화한 외관에, 기와를 연상케 하는 길게 뻗은 지붕.

한옥과 궁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면 이런 모습일 것 같았다.

“잘 짓긴 했네.”

내부를 바라보던 큰아버지가 짧게 평가했다.

서구적인 로비를 지나 내부의 홀까지.

홀은 뉴욕에서 연주를 펼쳤던 카네기홀 못지 않은 비주얼을 자랑했다.

사전에 테스트했을 때도 충분한 울림을 보유한 것은 물론, 좌석마저 3천 석에 이른다.

“여길 다 채울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무대를 바라보고 온 서령이 감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3천 석에 달하는 좌석이 만석이라고.

개관식임과 동시에 첫 정기 연주회라는 말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많은 관객들이 몰려들어 왔다.

티켓 매진이 되는데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던가.

백스테이지에서 막바지 연습을 하고 있는 사이.

문체부 장관인 홍식이 대기실을 찾았다.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안씨, 잘 지내셨죠?”

“네. 덕분에 이런 좋은 기회도 얻었네요.”

“아휴, 덕분이라뇨. 그렇게 생각하면 저희가 이안씨에게 큰 은혜를 입었죠.”

홍식은 일전에 올림픽 때 대가 없이 선수단을 방문한 것은 물론, 서울시에서 오디션을 주최한 덕에 얼마나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찾았는지 모른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심지어 이번 오케스트라홀을 짓게 된 것도 다 내가 만든 클래식 인기 때문이라며.

되레 앞으로의 내 행보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너무 시간을 뺏으면 안 되겠군요. 이따 무대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홍식의 말대로 이내 스태프가 들어와서 올라가야 한다는 사인을 보냈다.

무대에 오르자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청했다.

홀은 그 박수 소리마저 울려서 전달하는 듯, 사람들의 반응이 한꺼번에 무대로 쏟아지는 듯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인사를 간단하게 하곤 곧바로 단원들을 쳐다봤다.

창단 초기에만 해도 이런 사람들 앞에서 떠는 단원들이었건만.

이제는 긴장보다는 기대가 담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손이 움직이자 단원들은 기다리기라도 한 듯 일제히 악기를 고쳐 들었다.

시작은 나의 첫 자작곡, <환생>이었다.

Allegro.

어린아이의 발걸음을 연상케 하는 발랄한 선율이 빠르게 전개된다.

튀어 나가는 바이올린의 스타카토와 그것을 에워싸듯 나아가는 바순의 울림.

내가 펼쳤던 빠른 피아노 선율은 요한나가 대신 표현한다.

그 위에 자연스레 합류한 선화와 서령이 제각기 다른 매력의 현악 선율을 덧댄다.

사뭇 어울리지 않을 법한 소리인데.

국악의 매기고 받는 형식을 차용한 선율이 더해지자 마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고스란히 펼쳐내는 듯하다.

신나는 분위기의 1악장이 끝나자, 이번에는 낮고 진한 2악장이 시작된다.

‘좌절감.’

전생과 내가 느꼈던 좌절.

재능을 널리 펼치지 못했던 전생과 바이올린을 내려놓아야 했던 나.

우울하고 나지막한 선율이 더블베이스와 테레민으로 재탄생되어 오케스트라홀을 가득 메운다.

가끔은 그 좌절감에서 헤어나오고 싶은 마음으로, 바이올린을 비롯한 거문고가 짧은 소리를 더해 곡의 풍성함을 추가한다.

‘하지만, 끝내 나는 다시 일어서고. 지금의 위치에 다다랐지.’

단순히 음악을 들려주는 수준을 넘어, 보여주고,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그것이 위대한 음악가로 향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나의 믿음이 선율의 힘에 더해 뻗어나간다.

다시금 되돌아온 현악의 스타카토와 활기찬 플루트와 오보에의 선율.

거기에 아쟁의 선율이 더해지자 환희에 찬 듯한 소리가 화려하게 터져 나온다.

시작부터 몰아친 유려한 선율.

주먹을 쥐어 지휘의 끝을 알림과 동시에 일제히 악기들이 소리를 멈추고, 대신 객석에서 사람들의 환호성이 대신 오케스트라 홀을 가득 채운다.

한참 동안 이어진 기립 박수와 외침.

3분가량 이어졌음에도 사람들의 열띤 반응은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의 함성은 내가 마이크 테스트를 할 때까지 이어졌다.

툭-툭.

마치 무언가 거창한 담화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사람들이 내게 시선을 보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짤막하게.

나의 위치를 간단하게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단장, 박이안입니다.”

***

첫 정기 연주회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즈음이었다.

뜨거운 조명의 열기에 단원들은 땀범벅이 된 지 오래.

이제 공연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마지막 협주를 앞둔 사이.

가야금 연주가 선화는 문득 며칠 전이 떠올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할 줄은 몰랐는데.’

무대를 앞두기 일주일 전.

새벽 시간이 넘었는데도 선화의 연습실에서는 가야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손끝이 빨갛게 상기되고, 땀방울이 이마에 송골송골한데도.

선화의 연주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선화가 가야금에서 손을 뗀 것은 연습을 시작한 지 6시간이 넘은 후였다.

‘역시… 이걸로는 부족해.’

만약 옆에 누군가 있었다면 부족하다는 말에 당치도 않다고 했을 것이다.

이미 완성형 그 이상, 국악 특유의 얼이 가미된 선율은 그야말로 대단하다는 말로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그럼에도 선화의 머릿속에서는 합주 때의 기억이 자꾸만 스쳐 지나갔다.

이미 가야금 하나의 선율로도 빼어나지만,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더욱 확실히 <조우>를 표현하기 위해선 소리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가야금 연주자를 새로 뽑는 것도 불가능하지.’

이미 리히트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선화도 잘 알고 있었다.

선화를 비롯한 국악 단원들이 리히트에서 승승장구하자 국악원에서도 몇몇 사람들이 리히트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며 묻지 않던가.

그중 가야금을 연주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연주를 잘 아는 선화는 고개를 저었다.

‘리히트에 들어오기엔 한참 미달되는 실력들이야.’

선화는 리히트의 단원 중 유일하게 오디션을 보지 않은 인물이었다.

시작부터 이안의 인정을 받은 선화였기에, 처음에는 이안이 어떤 기준으로 음악을 파악하는지 알지 못했다.

첫 오디션에서도 지켜보면서 이안이 어떤 기준으로 뽑는지 알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저 선출된 단원들을 보았을 때, 자신도 모르게 납득이 되었던 것뿐.

‘좋다’는 생각을 넘어서 듣는데 욕심이 날 정도의 선율을 표현한 사람만이 합격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이안이 선율에서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 그 선율을 어떻게 나타내야 하는지.

그것이 바로 선화가 이안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유였다.

그렇기에 이안의 제안 또한 무척 흥미로웠다.

터무니없는 요청이었지만, 듣는 순간 이것이 정답이라고 확신하지 않았던가.

‘내가 할 수 있을까?’

만약 선화가 리히트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단박에 할 수 없다고 했으리라.

하지만, 선화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이안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단원을 새로 뽑지 않아도, 가야금의 선율을 훨씬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

그걸 가능케 하는 물건이 지금 무대 위에 놓여있었다.

선화가 가야금을 들고 무대 앞으로 나서자 스태프가 보라색 보자기에 싸인 무언가를 들고 왔다.

선화의 방 한편에 놓여있던 무언가.

선화는 조심스레 보자기를 거뒀다.

<조우>에 필요한 소리를 더하기 위한 열쇠가 선화의 손에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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