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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178화 (178/250)

178화

10시간에 걸친 비행의 끝.

오스트리아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인체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큰아버지와 함께 짐을 들고 나오니 익숙한 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고생 많았다.”

나와 큰아버지를 마중 나오신 아버지.

아버지는 나를 보자마자 수고했다며 어깨를 토닥이며 짐을 트렁크에 실었다.

집으로 가는 길.

이야기의 화두는 그라모폰 어워드 수상이었다.

“1년이 채 되지 않은 오케스트라가 그라모폰 어워드라니. 세상 사람들이 많이 놀란 모양이더라.”

이미 유수의 기사들이 증명하고 있다고.

아버지 입에서 최근 내가 한 일에 대해 고스란히 나왔다.

영국 왕립음악대학에서 연주한 것은 물론, 학생과의 깊은 대화를 나눈 것.

그날 저녁 그라모폰 어워드에 참석하여 올해의 오케스트라상을 받은 것.

이어서 레오의 부탁으로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 갔다가 빈 필 지휘자 오디션까지 다녀온 일까지.

분명 나와 다닌 것은 큰아버지인데, 아버지가 더욱 자세히 꿰고 있는 듯했다.

일전에 나의 1호 팬이라며 스크랩북까지 만들었던 아버지 아닌가.

“이번 일정이 꽤 힘들었을 텐데, 잠깐 휴식기를 가지는 건 어때?”

아버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걱정이 묻어났다.

이번 일정이 무척 급작하게 펼쳐진 것은 사실이니까.

해외투어를 할 때도 충분한 휴식기를 가지고 다니기 마련인데, 이번 일정은 예정에 없던 일들의 연속이라 더욱 쉴 틈이 없었다.

영국과 프랑스, 오스트리아 3국에 걸친 여정.

게다가 급히 무대를 꾸리고, 오디션도 바삐 진행하느라 무척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한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 단장님 그럴 시간 없으시다.”

큰아버지가 나 대신 대답했다.

애초에 지금이 휴식기이지 않은가.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다음 일정을 정하기 전.

나도, 큰아버지도 그사이를 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큰아버지는 다시금 제안을 검토하기 위해 태블릿을 펼치고 있었다.

“검토해야 할 제안이 한두 개가 아니야.”

비행기에 탑승한 동안에는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니까.

인터넷 기능을 켜자마자 태블릿에 수십 개의 알림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랐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는데도 알림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큰아버지는 꽤나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아예 태블릿을 밀어놓고 차근히 기다렸다.

한참 지났을 때쯤, 태블릿의 알림이 멈췄다.

그제야 큰아버지는 여유롭게 태블릿을 바라보며 제안들을 하나하나 검토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연주회 제안을 비롯해 광고 출연 및 방송 출연 제안도 다수.

큰아버지는 분야별로 제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손이 멈추지 않기를 한세월.

메일 하나를 본 큰아버지의 손이 멈췄다.

“UN에서 연락이 왔네.”

“UN이?”

난데없는 국제기구의 등장에 아버지가 물음표를 던졌다.

겉보기엔 음악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UN의 명성을 생각하면 단순한 제안은 아닌 듯 보였다.

큰아버지는 제안서를 한 차례 읽곤 입을 열었다.

“UN 글로벌 자선 콘서트에 리히트가 무대를 함께해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이다.”

UN 글로벌 자선 콘서트.

세계 기아와 인권 신장을 위해 UN 주요 가입국에서 펼치는 음악 무대였다.

각국의 명망 높은 뮤지션들이 참여하는 것은 물론, 그 모든 수익이 기부로 돌아가기에 더욱 뜻깊은 행사.

특히 UN이 주관하는 만큼 행사의 범위도 무척 광범위했다.

UN 가입국은 모두 참석을 비롯해 관람까지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나 또한 온라인 영상을 몇 번 본 기억이 있었다.

국내는 물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이 오르는 무대로 알고 있었다.

“해외 일정이야?”

“아니, 국내 일정이다.”

아버지의 질문에 큰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UN 사무국이 뉴욕에 있으니 당연한 물음이겠지.

하지만, 큰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이번 콘서트는 국내에서 진행하는 것이었다.

이전과 달리 이번 UN 글로벌 자선 콘서트는 각국에서 펼치되, 이를 온라인으로 동시 송출할 예정이라고.

최근 해외 출국이 잦은 내가 걱정되셨던 것인지 아버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큰아버지의 물음에 한차례 생각에 잠겼다.

UN의 이름을 걸고 오르는 만큼, 그 파급력은 다른 곳에 견줄 필요가 없겠지.

이전 콘서트도 우리나라 아이돌이 출연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 인기는 물론, 해외 인기도 한눈에 받을 수 있는 기회.

게다가 자선 콘서트라는 무대에 걸맞게 좋은 인식도 심어줄 수 있을 터.

“한 번 연락해보죠.”

***

이른 아침부터 콘서트 준비 위원회가 바삐 움직였다.

곧 있을 UN 글로벌 자선 콘서트를 위한 섭외를 진행하던 때.

그중 담당자인 수잔과 마이크를 가장 기다리게 만든 사람이 연락을 해왔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박이안입니다.-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단장인 이안이 화면에 나타났다.

수잔은 곧바로 인사로 화답함과 동시에 본격적인 이야기를 내놓았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UN 글로벌 자선 콘서트의 피날레를 장식해주실 수 있나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매번 수익금을 세계 평화와 기아 해결에 활용하는 UN 글로벌 자선 콘서트.

특히 이번 콘서트는 평소보다 특별했다.

처음 온라인으로 생중계를 하는 것은 물론, 6개의 대륙에서 라이브로 진행되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공연.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을 비롯해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 등 각 대륙의 내로라하는 명소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중 한국은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쟁을 제치고 우뚝 설 정도.

그 때문에 전 세계 K-pop 팬들이 더욱 이번 한국 무대에 주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클래식이어도 상관없겠습니까?-

“물론이죠, 클래식을 떠나 이안씨, 리히트의 음악을 원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수잔은 사뭇 이안의 태도에 감탄 어린 시선을 보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무대를 먼저 하려고 앞다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UN 글로벌 자선 콘서트는 쉽사리 오는 기회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이안은 자신의 음악이 무대와 어울릴지 먼저 확인하지 않는가.

짧게 이야기하는 것에서 자신의 음악은 물론, 이번 콘서트의 무대가 어떤 무대인지까지 파악했다는 것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언변이었다.

“게다가 UN 사무총장님께서도 무척 기대하고 계세요. 리히트가 자리를 빛내주면 그것만큼 영광스러운 일이 없을 것 같다고요.”

처음 앙케이트 조사 결과가 UN 사무총장에 들어갔을 때.

사무총장도 넌지시 이안을 섭외하는 데 힘써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무총장뿐만 아니라 앙케이트 결과를 들은 사람들이 섭외 가능성에 대해 무척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었다.

이야기를 이어가는 수잔도 이안의 확답을 무척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함께 진행해보도록 하죠.-

“탁월한 선택이세요.”

수잔은 박수까지 치면서 이안의 참여를 환영했다.

그런데, 이안은 단순히 참여에서 멈추지 않았다.

-콘서트에 사용할 새로운 곡을 만들려는데, 언제까지 알려드리면 되겠습니까?-

이안의 말에 수잔과 마이크의 숨이 턱 막혔다.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신곡을 UN 콘서트에서 연주하겠다는 선언.

소식이 전해진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피날레 무대를 보러 참여하리라.

수잔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더해 이안이 한 마디를 더했다.

-무대의 구성과 컨셉도 제가 짜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이안의 물음에 수잔과 마이크가 동시에 육성을 터뜨렸다.

이미 리히트 오케스트라가 펼친 공연은 세계 클래식계는 물론, 공연 문화계에서도 엄청난 파급력을 전하지 않았던가.

지휘자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개화>를 비롯해 가야금을 앞세운 <조우>의 무대는 리히트이기에 할 수 있는 무대라며 평이 자자했다.

그런 이안이 직접 구성과 컨셉을 짠다?

소식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길을 돌릴지.

두 담당자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럼 구성 방안을 마치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

한국에 도착한 것부터 UN 콘서트 담당자와 화상회의까지.

어느덧 시간은 밤에 다다르고 있었다.

내 손에는 그라모폰 어워드에서 받은 트로피가 들려있었다.

‘모두가 받은 상이니까.’

상 이름부터가 ‘올해의 오케스트라상’이다.

혼자의 힘으로는 효율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사조의 순환과 전파.

이를 훌륭하게 한 단원들이 있기에 1년 경력의 리히트 오케스트라가 이 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일이면 단원들이 하나둘씩 한국으로 돌아올 테니.

트로피를 그 전에 두어야겠다고 생각한 상태였다.

밤 중에 찾아온 리드미컬 체임버홀은 무척 어두웠다.

방음을 위해 창문도 몇 없는 탓에 달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스위치 위치를 떠올리며 손을 더듬던 그때.

“축하합니다 단장님!”

순간, 불이 한꺼번에 켜지며 작은 폭죽들이 흩뿌려졌다.

휴가 일정으로 다들 뿔뿔이 흩어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단원들이 리드미컬 체임버홀에 모두 모여있었다.

“단장님! 어서 촛불 부세요!”

작은 케이크에 꽂힌 하나의 초.

내가 짧은 숨으로 초를 끄자 단원들이 일제히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쳤다.

“누구 아이디어입니까?”

“루이사요! 루이사가 단장님을 위해 깜짝파티를 하자고 했거든요!”

내 질문에 아람이 대신 답했다.

루이사가 조용히 하라는 듯 아람을 바라봤지만, 아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루이사는 사뭇 쌀쌀맞게 구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덧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부끄러운 듯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던 루이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니 저희끼리 축하를 못 했더라구요.”

그럴 수밖에.

시상식을 마침과 동시에 내가 곧바로 레오의 행방을 찾았고, 곧바로 병원으로 갔으니까.

거기에 이어 곧바로 파리 공연을 위해 준비하고, 파리 공연을 끝내곤 다시 영국과 오스트리아를 오가는 강행군까지 펼쳤으니.

상을 받았을 뿐, 그에 대해 축하할 일이 없었다.

“저도 내내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무척 기쁜 날인데 저희만 노는 것 같더라고요.”

이번에는 에비게일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갑작스런 파리 공연을 마친 후.

나는 영국행에 이어 파리까지 오간 단원들에게 휴가를 주었다.

당분간 당장 필요한 일정도 없었으니 가능한 일.

게다가 빈 필 지휘자 오디션에 단원들을 불필요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내린 결론이었다.

단원들은 그게 내내 걸렸다고.

“게다가 다른 곳에서도 축하 인사를 보냈어요.”

단원들이 옆으로 비키자 그제야 체임버 홀 한편을 가득 메운 화환들이 보였다.

뉴욕 공연을 함께했던 재익을 비롯해 파이널쇼의 제작진, 왓슨 스튜디오의 프랭크 등 국내외를 떠나 나와 연이 있는 사람들이 보낸 화환들로 가득했다.

하나 같이 그라모폰 어워드 수상을 축하하는 문구들이 적힌 화환들.

화환에 달린 꽃과 단원들의 웃음이 <개화>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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