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181화 (181/250)

181화

콘서트의 화려한 첫 문을 연 것은 미국의 유명 가수들의 콜라보 무대였다.

독보적인 음색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밀리와, 뛰어난 곡 제작 능력으로 단숨에 메이저로 올라온 칼리의 음악이 거대한 전광판에 비쳐 나왔다.

한국은 물론, 미국, 프랑스, 영국, 브라질, 호주에서 동시에 펼쳐지는 UN 글로벌 라이브 콘서트.

화려한 오프닝 무대로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숭례문 광장을 비롯해 통제된 주변 10차선 도로에 콘서트를 관람하러 온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대중들의 관심이 만만치 않네.’

실시간 중계 현황판에 떠오른 숫자들이 끝도 없이 치솟았다.

TV 중계는 물론, 인터넷 온라인 중계까지 적게는 수만, 많게는 수십만에 달하는 시청자가 몰려 있었다.

그 총합이 무려 억에 달하는 수치.

특히, 이번 무대는 유명 가수들의 콜라보가 큰 관심을 끌었다.

독무대로도 충분히 유명한 팝가수들이 하나의 곡으로 무대를 선보인다.

화합을 강조하는 것은 물론,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무대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이다.

‘나도 준비를 해야겠지.’

수 시간에 걸쳐 진행된 UN 콘서트.

어느덧 시간은 막바지, 하이라이트를 남겨두고 있었다.

UN 콘서트의 막을 내리는 중요한 무대.

그 자리를 리히트 오케스트라가 맡았다.

“단장님, 이 옷 정말 독특하네요.”

요한나가 옷을 입은 채 이리저리 움직이며 말했다.

연미복 형태를 띤 개량 한복.

남색 바탕에 금실과 은실로 이뤄진 자수가 요한나가 움직일 때마다 고고한 자태를 드러냈다.

한국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추가로 요청한 사항.

무대에 기획과 컨셉 권한을 가져온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외국인 단원들은 무대가 끝나고 옷을 가져가고 싶다며 너스레를 떨곤 했다.

모두 긴장보다는 커다란 무대 위에서 클래식을 보여줄 생각에.

단원들 사이에서는 기대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기대와 들뜸은 과하면 독이 되건만, 단원들은 농담하며 분위기를 가볍게 가지면서도 잠깐씩 악기를 들 때는 그 흥분감을 순식간에 가라앉히고 연주에 임했다.

초기에 자신의 연주를 신기해하던 단원들도 어느덧 그 상태에 적응한 상태였다.

“리히트 오케스트라 들어가실게요!”

스태프의 인솔에 단원들이 일제히 무대로 향했다.

준비된 의자에 앉아 막바지 점검을 하는 단원들.

아까의 가벼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우직한 연주가의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회자의 짧은 설명에 나는 청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박수와 환호성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관중이 모였는지 짐작될 정도.

도로까지 통제해가며 관객석을 만든 탓에 일반적인 무대와는 차원이 다른 관객이 몰려 있었다.

더 나아가 카메라 송출을 통해 이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이 1억이 넘지 않는가.

그러나 숫자가 당장 무슨 소용이랴.

나는 그저 이렇게 찾아온 사람들에게 내가 만든, 리히트가 선보일 연주를 보이면 될 뿐이니까.

나는 뒤로 돌아 손을 들어 올렸다.

곧바로 단원들이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기세로 악기를 고쳐잡았다.

이내 움직이는 손길에 포문을 열듯, 트럼펫이 강렬한 소리로 청중을 압도한다.

내가 만든 15번째 곡.

<동화(同和)>가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

‘이런 무대에 서게 될 줄이야.’

현삼이 벅차오르는 감정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민속촌 모랫바닥에서 수없이 뛰던 세월만 40년이다.

언젠가는 더 큰 무대에서, 더 큰 기회에서 우리 고유의 농악을 알려보고 싶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건만.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워지고, 발걸음도 점차 줄어들었다.

오죽하면 민속촌에서도 고유 전통의 면모가 아닌,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것을 추구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현삼은 이 모든 것이 순리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위치를 지켜왔다.

그러나 이안의 제안에, 그리고 리히트가 펼치는 연주에 현삼은 자리를 지켰던 자신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일전에 자신도 전국 각지를 돌며 농악을 부흥시키기 위해 발로 뛰어다니지 않았던가.

없는 살림도 쪼개가며 인재를 데려오기 위해 직접 5시간 동안 차를 몰고 다니는가 하면, 따뜻한 내 집 대신 연습실에서 쪽잠을 자기 일쑤.

하지만 그 덕에 농악 사관학교를 만들고, 지금까지 농악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도 늙었군.’

언제부터 현실에 안주했던가.

제자들과 호흡을 맞추고, 민속촌이라는 작은 무대에서 얽매였던 세월.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건만, 이안이라는 젊은 거장을 만나고 무대를 직접 목도하자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 떠오르는 생각은 단 하나.

그 생각을 담은 한 마디를 제자들에게 건넸다.

“자 놀아보자꾸나!”

“예!!”

현삼에 구령에 맞춰 건실한 제자들이 목청껏 소리를 내었다.

이어 스태프의 안내에 맞춰 열댓 명의 농악패가 무대 위로 올랐다.

오방색이 담긴 한복을 입은 사내들이 줄지어 등장하며 풍악을 울린다.

꽹과리를 선두로 하여 장구와 북들이 신명 난 음색을 터뜨려내고, 자유로운 움직임을 더한다.

줄지어 나아가면서 주변에 돌아가는 흰 상모는 무대의 입체감을 더한다.

평소에 듣는 대중가요가 아님에도, 가사 하나 없는 풍물에 불과한데도 어느덧 관객들은 신명 난 박자에 맞춰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그 타이밍을 리히트는 놓치지 않았다.

‘지금 들어도 이건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단 말이지.’

이미 리히트와 수십 번도 더 연습한 소리였건만.

무대에 올라 리히트의 본모습을 보자 스스로도 감탄이 터져 나왔다.

양악과 국악의 조화부터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거늘.

마치 풍물과 오케스트라, 커다란 악기 두 개가 합주를 하듯.

어느덧 스며든 악기들의 선율이 강렬한 기색으로 뻗어나갔다.

연주에 취한 현삼의 머릿속에 이안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이미 국악과 양악의 조화를 이룬 오케스트라가 아닌가.

그럼에도 농악이라는 새로운 것과 합치시키려는 의도가 궁금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현삼의 질문에, 이안은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생각을 내려놓았다.

“농악의 시작 또한 기원이지 않습니까. 그게 세계 평화라는 UN 콘서트의 취지에 가장 걸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안의 생각에, 현삼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본디 농악은 마을의 화합과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던가.

마을신을 위한 제사를 지내거나, 액을 쫓고 복을 부르기 위한 굿판에도 사용되며,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열매를 수확하는 것을 기원하는 축원까지.

그 사이에서 사람들을 화합하고 단결하게 만드는 역할이 있지 않았던가.

가사를 몰라도, 국악기를 몰라도, 그저 신명 난 장단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되는 소리.

이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겠다는 이안의 생각에 현삼은 실소를 터뜨렸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군.’

그렇기에 현삼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에 대한 보답과, 이 소리가 뻗어나가 세계인을 화합시키길 기원하며.

현삼의 꽹과리가 그의 심장 박동만큼이나 요동쳤다.

***

“역대 최고 기록입니다. 총장님.”

콘서트 담당자인 수잔이 이번 콘서트 성과를 발표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수잔 또한 몇 번이고 UN 콘서트를 담당했지만, 이러한 기록은 처음이었다.

무려 11억 달러.

한화로 약 1조 4천억에 달하는 금액이 단 4시간 만에 모였다.

그중 리히트의 연주가 펼쳐진 것은 20분가량.

단 20분 만에 무려 4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이 모였다.

리히트가 연주를 시작함과 동시에 기부금이 폭발적으로 오르더니, 갑작스레 2억 달러가량을 한 번에 내놓은 거물도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무대였지.’

UN 사무총장, 오스카 슈나이더의 머릿속에서도 리히트의 무대가 떠나가지 않았다.

한복을 입은 단원들이 팔을 움직일 때마다 그들의 옷에 박힌 자수가 스스로 빛을 내는 것 같은 착각이 일지 않았던가.

게다가 그 선율 또한 매력적이라 눈과 귀를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나온 오색찬란한 복장의 사내들은 사뭇 답답할 수 있는 무대에 새바람을 불어넣은 듯했다.

황금빛 금속 타악기와 가죽으로 만든 북이 만들어낸 소리에 오스카마저 어깨를 들썩일 정도.

리히트의 저력을 단숨에 알 수 있는 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점잖기로 유명한 스미스 교황이 흥분한 이유가 있었군.’

일전에 스미스 교황과 평화 회담을 하며 들었던 이안의 명성.

평온하기로 유명한 스미스가 행진곡 선물에 흥분에 겨워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무대가 진행되는 동안 들어온 기부 행렬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별도로 UN에게 기부 의사를 밝힐 정도.

전년도 콘서트와 다른 점은 이안이 참여했냐, 안 했냐 뿐인데.

엄청난 차이에 오스카도 절로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오스카는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한국으로 연락을 넣어주세요.”

오스카의 요청에 이내 수신음이 가더니 수화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사무총장님, 대통령 비서실장, 최진웅입니다.-

“오랜만입니다. 미스터 최. 잘 지냈지요?”

시작은 얕은 사담이었다.

일전에도 UN 관련 협의로 이야기가 오갔던 두 사람이기에.

서로의 소식은 물론, 이안의 무대에 대한 서로의 찬사가 이어졌다.

진웅 또한 남북 정상회담 무대를 확인하면서 이안의 진가를 목도한 사람이었으니까.

이야기는 어느덧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한창 이야기가 오가던 중.

오스카는 넌지시 전화를 한 이유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곧 문화교류목표 고위급회의가 열리지 않습니까?”

문화교류목표 고위급회의.

앞으로의 세계 화합은 문화의 교환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진행되는 특별행사였다.

과거 홍콩 영화가 전 세계를 주름잡고, 지금은 K-pop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따라부르는 것처럼.

그러한 문화의 화합과 교류가 세계 간의 방벽을 낮춰주는 매개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를 각국 대표들과 나누는 것.

각국이 서로 협의하여 더욱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자리였다.

특히 이번 고위급회의에서는 K-pop으로 세계를 호령하는 만큼, 대한민국 대통령이 초청되어 연설을 진행하기로 되어 있는 상태였다.

진웅 또한 이미 일정을 알고 있었기에, 청와대에서는 연설 원고에 대한 논의로 매우 바쁜 시점이었다.

거기에 오스카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 자리에 이안씨를 초청하고 싶습니다.”

오스카 사무총장의 의견은 무척 직설적이었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회의를 박이안과 함께하고 싶다는 이야기.

게다가 오스카는 단순히 자리를 빛내는 것 이상의 것을 원하고 있었다.

“이안씨에게 연설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명실상부 현재 문화계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장본인 아닌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족의 문화라고 치부되었던 클래식을 전 세계로 퍼뜨린 사람이자, 현재 클래식을 가장 많이 알리는데 기여한 사람.

오죽하면 베토벤은 몰라도, 박이안은 아는 경우도 있었다.

이안의 행보에 자극을 받은 여타 다른 오케스트라도 새로운 선율을 만들어가며 클래식계를 비롯해 각국의 음악계가 부흥되고 있는 것은 비서실장 진웅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한 나라의 대통령, 그 아래 직속 비서일지라도 한 나라의 국민을 마음대로 움직이게 할 수는 없는 법.

오스카 또한 그 부분을 잘 알고 있기에, 직접 이안에게 연락하는 대신 청와대로 연락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진웅 또한 묘한 기대감이 감돌았다.

일전에 북한의 강연 요청을 반려하되, 되레 지도부 사람이 너털웃음을 짓게 만들고.

더 나아가 최고 지도자의 시계를 받은 사람이 바로 박이안이었으니까.

되레 곤란해질 뻔한 남북관계를 순식간에 휘어잡은 사람이 과연 연설장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이안씨께 용의를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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