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작은 강당에서 콘서트가 한창이었다.
장애 아동을 위한 꿈나무 콘서트 공연.
장애를 가진 아동과 부모라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콘서트이기에, 강당에는 꽤 많은 사람이 밀집해 있었다.
다양한 장애를 가진 아동들이 소란스럽게 있던 순간.
피아노 선율에 아이들이 무대를 빤히 쳐다봤다.
피아노 앞에 선 여인이 차례대로 건반을 훑는다.
압도적인 속도를 표현하는가 하면, 화려한 연주를 선보일 때마다 사람들이 한편에서 감탄 어린 탄성을 내뱉었다.
모든 것은 여타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선율, 박자, 노련한 스킬까지 모든 것이 완벽의 경지.
다르다면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6개라는 것이었다.
이연아.
그녀는 선천성 사지 기형 장애를 가진 피아니스트였다.
양손을 합쳐 여섯 손가락을 가진 그녀지만, 열 손가락을 가진 비장애인과 비견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연주를 펼칠 수 있는 사람.
스물한 살이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도 포기를 모르던 그녀는 ‘기적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전국 곳곳에서 공연을 하곤 했다.
물론, 여섯 개의 손가락으로 칠 수 없는 연주도 있지만,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임과 동시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고의 연주를 보이곤 했다.
그녀의 명성은 뉴욕에서도 알려져 있었다.
그녀에게 네 손가락이 부족한 것은 의미가 없다.
네 손가락을 대신할 것도 필요 없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손가락으로 환상을 선사할 뿐이다.
written by 배런 포터
뉴욕타임스의 간판 평론가, 배런에게도 소개된 연아는 몇 차례 해외 공연도 다녀오곤 했다.
미국, 프랑스, 영국 등을 돌며 연주를 펼칠 때마다 클래식 팬들은 ‘대한민국의 기적’이라고 칭하곤 했다.
엄청난 호응을 받고, 열렬한 팬층까지 있는 연아였건만.
그녀에게도 고민이 하나 있었다.
무대를 마치고 내려왔을 때.
입구에는 초등학생 정도 되는 아이가 연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아에게는 둘도 없는 소중한 동생, 청아였다.
청아는 연아를 보자마자 손을 움직였다.
-언니! 오늘도 엄청 멋졌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수화를 건네는 청아.
그에 연아 또한 청아처럼 수화로 화답했다.
-고마워. 네가 봐줘서 기뻐.-
연아는 청아를 향해 미소를 지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동생이 매번 자신의 무대를 좋아해 주는 게 고마우면서도, 안타까운 감정이 함께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직접 들려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연주를 하면서도 항상 아쉬웠다.
수없이 ‘기적’이라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건만.
정작 가장 가까운 동생에게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명색이 언니가 피아니스트인데, 동생은 태어나서 한 번도 언니의 연주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매번 동생을 위해 연주한다는 생각으로 연주에 임하던 연아였건만.
정작 그 당사자는 피아노 소리는커녕, 소리를 모르고 있었다.
신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면.
하루, 아니 한 시간이라도 좋으니 동생을 위해 음악을 들려줄 수 있길 바랐다.
청아의 볼만 씁쓸하게 쓰다듬기를 반복하던 그 순간.
연아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그 사람이면 무언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한국이 낳은 젊은 거장’이라며 엄청난 지지를 얻고 있는 그 사람.
매번 기염을 토하게 만들 정도로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
그라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강렬한 확신이 떠올랐다.
***
“안녕하세요. 이안씨. 이연아라고 합니다.”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 손님이 나를 발견하곤 가지런하게 인사를 건넸다.
나 또한 연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여섯 손가락 피아니스트’라는 이름으로 한때 TV 방송은 물론, 해외 공연으로 신문에도 대서특필되곤 했던 사람이니까.
그런데 손님은 연아뿐만 아니라 한 명 더 있었다.
연아의 허리춤밖에 되지 않는 키를 가진 꼬마 아이.
연아는 멋쩍은 웃음을 머금은 채 양해를 구했다.
“죄송해요. 따로 오려고 했는데, 붙어있고 싶다고 보채서…”
연아의 옆에는 열 살 안팎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연아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뒤에 숨어 있었다.
한참 나서지 못하던 아이는 연아가 다독이자 그제야 얼굴을 내밀고 인사를 했다.
오른손으로 왼팔을 쓸어내리곤, 두 주먹을 쥔 채 살짝 내리는 모습.
뜻을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곧바로 나는 그것이 인사를 의미하는 수화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제 동생, 청아라고 해요. 귀가 들리지 않으니 혹시 당부하실 게 있다면 저한테 말씀해주세요.”
동생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 오냐오냐할 법도 한데.
필요한 이야기가 있으면 해 달라는 말은 물론, 똑바로 인사를 시키려는 연아의 태도에서 강인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저는 이번 덕수궁 연주회 연주가이자, 연출가를 맡았어요.”
덕수궁에서 펼쳐지는 음악회.
이번 테마는 ‘배리어 프리’인 만큼 연아가 연출가로 발탁되었다고 덧붙였다.
평소 문화생활을 잘하지 못하는 특정 계층에게도 문화생활을 제공하기 위해 펼치는 배리어 프리.
특히 장애인을 중점으로 이번 연주회를 기획하는 만큼, 그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나를 찾아왔다고 덧붙였다.
나는 여타 질문 대신 가장 먼저 한 질문을 건넸다.
“혹시 왜 저를 택하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음악을 들려주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의 경우 단순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선물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일.
이 방면에 대해서는 소리나 청각에 관련된 교수나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게 왔다는 것은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겠지.
나의 정중한 질문에 연아는 꽤 고민을 하다 입을 열었다.
“이안씨의 음악은 항상 들을 때마다 뭔가 다르더라고요.”
일전에 연주를 들었을 때.
연아는 내 연주를 들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도화지가 떠오르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각 악기가 물감이 되어 다채로운 색채를 뽐내듯.
그래서 가장 닮고 싶은 연주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제 연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음악이더라고요.”
이미 숱한 평론가들을 통해 실력을 입증받은 연아였다.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비롯하여 빼어난 작곡가들의 곡을 연습할 때마다 그녀는 묘하게 곡을 틀어 자신의 곡을 만드는 특기가 있었다.
하지만, 내 곡에서는 그게 안 됐다고.
연주를 하라면 할 수 있지만, 내 곡을 연주할 때면 다른 곡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빈자리가 느껴졌다고 답했다.
“그래서 이안씨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해서 찾아왔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그 한 마디에서 연아의 절실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동생, 청아에게 들려줄 수 있다면 국내는 물론, 세계 청각 장애인들 모두에게 연주를 느끼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니까.
단호한 연아의 눈빛에서 그 이상의 가치가 훤히 보였다.
나 또한 그녀의 의지에 고개를 끄덕였다.
‘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지.’
단순한 연민에서 나오는 생각이 아니었다.
본래 내가 원하는 것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니까.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았다.
한 사람으로서 음악을 즐길 수 있길 원할 뿐.
또한 장애인이 감상할 수 있는 음악이라면, 비장애인에게도 분명 매력적인 것이 될 것이다.
본래 엘리베이터도 장애인을 위한 것도 있지만, 무거운 짐을 옮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가.
새로운 방식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그것으로 기존에 음악을 듣지 못하던 사람이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기꺼이 할 마음이 있었다.
‘다만, 어떻게 하는 것이 관건이겠지.’
완벽하게 아는 것은 아니지만, 청각 장애에도 단계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큰 소리는 들을 수 있는 정도에서, 폭죽 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정도까지.
특히 소리 자체를 들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전달하려면 평소와 같은 방식을 고수할 순 없을 것이다.
악기를 연주하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 장애인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아는 연아가 잘라주는 케이크를 곧잘 받아먹었다.
젖살이 가득한 볼이 통통해질 때까지 먹은 탓에 되레 연아가 천천히 먹으라고 당부할 정도.
보통 초등학생 정도면 욕심대로 행동할 나이인데.
연아의 말에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꼭꼭 씹어먹는 청아의 모습에서 연아가 얼마나 관심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었다.
청아를 바라보고 있던 찰나, 케이크를 받아먹던 청아가 불안한 듯 몸을 이리저리 떨었다.
자꾸만 의자에서 일어나서 연아에게 다가가려 하는 모습.
연아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는 듯 당황스러우면서도 단호하게 청아를 저지했다.
그때, 나는 이내 청아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지진?’
아주 짧고, 그리 강하지도 않은 지진이었다.
카페가 높은 층에 위치한 탓에, 내가 예민한 탓에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연한 지진.
아마 청각 장애인인 청아는 다른 감각이 발달하면서 지진을 느낀 듯 보였다.
옅은 흔들림이 멈추고 나서야 청아는 칭얼거림을 멈추고 언제 그랬냐는 듯 연아가 건네는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이에서 다른 것을 느꼈다.
‘진동은 느낄 수 있지.’
귀를 막아도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느낄 수 있듯.
청아 또한 미세한 지진의 진동을 느꼈기에 불안감을 호소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진동은.
‘소리의 근원이지.’
소리를 나타내는 기준, 데시벨도, 헤르츠도 모두 진동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단위이지 않은가.
모든 악기들 또한 단시간에 진동을 많이 하느냐, 적게 하느냐에 따라 고음과 저음이 달라지듯.
우리가 느끼는 소리 또한 진동임을 떠올렸다.
방금도 지진에 따라 스피커가 떨렸던 것인지, 식당에 깔린 음악이 묘하게 틀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스피커가 흔들리면서 아주 옅은 소리의 틀어짐이 있었을 뿐이건만.
그 사이에서 앞으로 내가 할 일에 대한 힌트를 얻는 데는 충분했다.
‘진동을 잘 활용하면 될 것 같은데.’
청각 장애인도 귀의 청력 기관이 손상된 것이지, 촉각은 여전히 남아있으니까.
실제로 청각 장애인을 위한 제품들 중 진동을 활용하는 것은 많았다.
인공와우가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꾸어 뇌에 전달한다는 것은 교양 시간에 배워 익히 알고 있을 정도.
그렇다면 그 진동을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전달하는 것이 관건이겠지.
문득 내 머릿속에 한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누구에게도 이름을 대면 알 법한 유명한 사람.
음악을 하면서도, 귀가 들리지 않는 청각 장애를 앓았던 사람.
그럼에도 수많은 곡을 만들어낸 고전 음악의 거장.
‘루트비히 판 베토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