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에드워드 감독은 무척 만족스러운 촬영이었다며 내게 감사 인사를 덧붙였다.
그 어떤 때보다 명작이 탄생할 것이라며.
그동안 단 한 번도 영화에 기대를 걸어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 기대를 걸어본다고 답했다.
“잠깐이지만, 만나 봬서 영광이었습니다.”
스태프와 함께 방문한 로미오도 나를 보며 감명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껏 수없이 카메라 앞에서 서서 영화를 찍었지만, 그런 영화보다 영화 같은 장면을 목도했다고.
첫 한국행이 무척 뜻깊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영화가 완성되면 가장 먼저 초대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은 촬영과 CG 기간까지 합치면 내년은 되어야 영화가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에드워드는 이미 완성된 영화가 얼마나 인기를 끌지, 얼마나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킬지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출연하니 단연 인기가 많을 것이라는 말을 남긴 채.
그들은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큰아버지는 영화 팀이 떠나자마자 아껴왔던 이야기들을 꺼내놓았다.
들어온 제안들에 대한 이야기는 비롯해 재단에서도 연락이 왔다는 소식까지.
특히, 리히트 재단에서는 이사장이 직접 연락을 보내왔다고 덧붙였다.
“아주 난리법석이더라.”
큰아버지가 차에 오른 상태로 내게 간결한 설명을 했다.
이사장인 민호가 며칠 전 한 통의 전화를 받고는 흥분한 기색으로 큰아버지에게 연락을 했다고.
서프라이즈라며 누구인지 제대로 밝히진 않았지만, 분명 이안도 기뻐할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분이 그렇게 나올 정도면 무언가 있긴 한가 보네요.”
큰아버지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본 민호는 제안을 받고 호들갑 떨 사람이 아니었다.
한때 뉴스에서 줄리아드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경영 대학원에 합격한 천재 중의 천재가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주인공이 바로 민호였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커리어에 많은 사람들이 감탄한 기억이 있었다.
게다가 처음 큰아버지를 통해 민호를 마주했을 때.
민호의 신중함을 얼핏 짐작할 수 있었다.
“재단 운영에 대한 희망 사항이 있습니까?”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큰아버지와 사담을 나누던 민호였는데.
나와 재단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순간 얼굴이 완전히 바뀌었던 기억이 선명했다.
게다가 무분별하게 제안을 건네거나, 하겠다고 포부를 밝히는 거나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과 뜻이 맞는다면 함께하겠다는 표정.
나 또한 민호가 그랬듯, 내 생각을 고스란히 밝혔다.
“저는 모든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습니다.”
나의 짤막한 말에 민호는 동의했다.
자세히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민호는 자금 융통은 걱정하지 말라며 자신감을 드러냈지.
그 자신감은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민호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큰아버지를 통해 듣기로, 민호가 융통한 자금이 벌써 2배가 넘어간다고 했으니까.
얼마나 향했을까.
큰아버지는 7층 높이의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상아색처럼 옅은 벽면에 창문들이 즐비한 곳.
이 또한 민호가 자금을 융통한 지 한 달 만에 구매한 곳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단장님.”
민호는 내가 들어가자마자 무척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그는 짧게 이번 에드워드 감독의 영화에 투자를 할 예정이라는 것과 몇 가지 사항을 추가로 알려주었다.
이미 나에게 보고할 정도라면 사전 정보는 물론,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일 터.
나는 민호가 생각하는 대로 실행하라고 언질을 넣었다.
짧은 언급이 끝나자 민호는 그제야 소파에 앉아있던 손님을 소개했다.
“여기, 제가 말씀드린 손님입니다.”
민호가 가리킨 곳에는 한 남자가 소파에 앉아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있었다.
큰아버지와 비슷한 연배 정도 되어 보이는 백인 남성.
옅은 녹빛 머리칼에 푸른 눈을 가진 그는 나를 보자마자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남자의 입에서는 익숙한 독일어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십니까. 국제 콩쿨 연맹의 사무총장, 베니라고 합니다.”
***
국제 콩쿨 연맹.
1957년 처음 출범한 연맹은 이후 그동안 진행한 콩쿨들을 규합하는가 하면, 현재까지도 클래식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곳이었다.
전문적인 평가 기준을 제시하여 공정함을 더하는가 하면, 콩쿨이 단순한 국가적 대회가 아닌, 문화의 장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곳.
학계에서는 연맹이 없었다면 지금의 쇼팽 콩쿨, 퀸 엘리자베스 콩쿨, 차이코프스키 콩쿨은 없었을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중 이번 사무총장인 베니 라이노프는 클래식 인사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사람이었다.
베니 라이노프.
독일 뮌헨 출신의 그는 연맹이 가진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신생 콩쿨을 더욱 활성화하는데 이바지한 인물이었다.
국제 콩쿨을 위한 까다로운 과정을 개편하면서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전문성과 접근성을 모두 잡았다는 면에서 연맹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런 인물이 바로 눈여겨 본 사람이 바로 이안이었다.
베니가 찾아온 이유는 단순했다.
올해 개최되는 국제 콩쿨들에 모두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
러시아 콩쿨에서는 인종 차별로 의심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중국에서는 전염병이 창궐하여 국제 콩쿨이 취소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여러 사건으로 봄과 여름을 책임지는 국제 콩쿨이 연이어 취소되거나 퇴출되었다.
‘콩쿨의 부재는 곧 인재의 부재로 연결된다.’
베니는 젊은 음악가들에 대해 큰 관심을 집중하곤 했다.
젊고 재능 있는 음악가들이 성장해야 클래식 음악계가 계속해서 이어질 테니까.
그는 팝과 힙합 등 클래식의 위치를 위협하는 음악 장르가 많음에도, 클래식이 지금껏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젊은 음악가들이 계속해서 배출되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 음악가들이 데뷔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콩쿨이 비어버렸다.
이는 마치 올림픽 선수들이 해를 놓쳐 올림픽을 치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문제였다.
“그렇기에 제안드립니다. 박이안 단장님만 원하신다면, 지원은 저희 연맹에서 부담할 테니, 부디 콩쿨을 열어주십시오.”
음악가의 이름이 붙은 콩쿨은 일반적으로 작고(作故)한 음악가를 기리는 의미를 담곤 했다.
쇼팽과 하이든, 리스트 등 타인이 기릴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음악가들.
베니의 발언은 이안이 그들과 동급이라고 생각이 될 정도라는 것을 의미했다.
이미 그러고 있다는 판단이었다.
전 세계 사람 중에 이안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거의 없고, 이안 덕에 클래식에 대한 기대가 무척 높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옆에 있던 대한의 마에스트로도 베니의 제안에 놀라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중인데.
이안은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담담하게 베니를 쳐다봤다.
‘보통이면 당장 수락할 텐데.’
베니는 애써 당황스러운 감정을 감췄다.
지금까지 국제 콩쿨 연맹이 직접 콩쿨을 제안한 경우는 없었으니까.
국제 콩쿨의 위치에 오르려면 콩쿨 주최사가 연맹에 신청을 하고, 연맹은 이를 심사하여 국제 콩쿨로 승급시킬지 결정한다.
그런 콩쿨을 주최하는 것을 넘어, 연맹에서 지원해주겠다는 의사까지 밝혔는데도 이안의 표정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남들이라면 앞뒤를 재지 않고 달려들었을 일인데.
이안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신중함이다.’
베니는 이안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검은 동공이 마치 끝없는 심해를 연상케 했다.
어떤 선택을 내릴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기에.
베니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옅게 떨었다.
그 누구도 거부할 수도, 거부할 리 없다는 생각을 했건만.
설마 이안이 거부할까 하는 걱정이 베니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
평소 양복이라면 연미복이 대부분이었는데.
오늘은 캐주얼 양복을 입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박이안님. 준비하실게요.”
스태프의 인솔에 따라 나는 스튜디오로 향했다.
아침과 저녁마다 TV에 익히 볼 수 있는 곳.
하루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데스크였다.
국내 3대 공중파 방송사 중 하나인 CBD 뉴스데스크.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유는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평소라면 안 했을 자리이지.’
그동안 숱한 제안 중 반 이상이 인터뷰 요청이었다.
국내를 비롯해 해외의 유명 방송사를 시작으로, 각지에 뻗어있는 중소 규모의 언론사까지.
내가 큰 무대를 마칠 때마다 인터뷰 요청이 배로 늘었다.
그동안 인터뷰 요청을 보내온 것은 CBD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음악을 보여줄 수 없는 자리였기에, 나는 겸허하게 자리를 내려놓았다.
오늘 올라온 이유는 음악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자, 슛 들어가실게요.”
광고 시간이 끝나고 이제 다시금 생방송이 진행될 차례.
PD의 손짓과 함께 뉴스 앵커가 준비된 멘트를 이어갔다.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은 저희 뉴스데스크에 특별한 손님이 오셨는데요.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박이안 단장님 모셔봤습니다.”
간단한 인사에 이어 몇 가지 질문이 이어졌다.
그동안 인터뷰 요청을 지금 풀어낸다는 듯.
나의 음악 세계를 묻는 질문부터 오케스트라 창단 계기 등 숱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내가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에 대한 질문은 마지막에 나왔다.
“단장님, 혹시 국민 청원에 올라온 글을 보셨나요?”
알다마다.
단원들이 몇 번이고 보여준 덕에 잘 알고 있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국민 청원.
국민 청원으로 몰랐던 사실이 주목을 받아 큰 지지를 얻는가 하면, 필요한 법률이 만들어지는 등 긍정적인 영향이 컸다.
하지만 개중에는 이런 청원도 있었다.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공식 팬클럽을 만들어주세요.]
온라인으로 작성하는 것이다 보니 큰 제한을 두지 않았다.
대신, 청원 인원이 20만 명이 넘어가면 해당 국가 기관에서 대답을 해야 하는 식으로 운영하여 남용을 막고 있었다.
그런데 리히트 오케스트라 팬클럽 개설 청원은 무려 100만 청원 인원을 달성하며 큰 화두에 올랐다.
이렇게 과열된 인식을 진정시키는 것이 오늘 뉴스 인터뷰에 응한 이유였다.
“이 정도로 많은 분들이 원하시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몇 차례 단원들은 물론, 큰아버지에게도 제안을 들은 적이 있었다.
연예인 팬클럽 또한 일정 금액을 받고 공식 팬클럽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가입비를 명목으로 받는 대신, 콘서트나 사인회와 같은 공식 일정에 참가할 수 있는 혜택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청원글에 동의한 청원인 숫자는 물론, 비공식 팬클럽에 가입한 사람들의 숫자를 계산하면 이 또한 경제적으로 큰 이득이 들어올 테지.
하지만, 경제적인 이득보다 내게는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먼저 저와 단원들에게 큰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공식 팬클럽을 만들지 않는 이유는 저희 오케스트라의 모토는 ‘모두를 위한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나 나의 음악과 리히트 오케스트라는 음악을 나누고, 사조를 펼치기 위해 존재하니까.
그 본질을 깨뜨리지 않기 위함이 가장 컸다.
또한, 만약 공식 팬클럽을 만들게 된다면 결국 공식 팬과 비공식 팬으로 나뉠 터.
그 격차가 발생하는 것에서부터 ‘모두를 위한 음악’이란 모토는 깨지는 것이다.
“음악가는 음악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국민분들께서 음악을 넘어 소통을 원하신다면 창구를 마련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음악가로서 기조를 벗어나지 않되, 사람들의 반응에도 일부 동의하는 말.
여러 사람들이 보는 뉴스에서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한 답변이었다.
앵커 또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인터뷰만 1시간째.
앵커는 마무리 멘트를 이어갔다.
“오랜 시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시청자분께 해주실 말이 있으신가요?”
앵커는 물론, 스태프들도 사뭇 궁금한 기색을 보였다.
앞으로의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행보나, 나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묻는 것이겠지.
나는 잠깐 생각을 하곤, 오늘 있었던 일을 짤막하게 이야기했다.
“조만간 제 이름을 내건 콩쿨이 열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