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박이안. 자신의 이름을 내건 콩쿨 개최 의사를 밝혀 화제.]
[국제 콩쿨 연맹 측, ‘이안의 인식과 성과를 토대로 이안 콩쿨을 국제 콩쿨로 진행하고자…]
[리히트 재단, ‘정확한 일정이 나오는 대로 공지하겠다.’]
뉴스 인터뷰에서 밝혔던 폭탄 발언.
내 말 한마디에 밤사이 수천 개에 달하는 기사들이 쏟아져나왔다.
내 이름을 내세운 ‘이안 콩쿨’의 개최 소식에 매스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재단은 물론, 매니저인 큰아버지에게도 사실 확인을 위한 연락이 끊이지 않을 정도.
리히트 재단과 국제 콩쿨 연맹의 성명 발표가 이뤄지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국제 콩쿨을 마다할 이유는 없지.’
일전에 사무총장 베니가 와서 직접 제안한 국제 콩쿨 개최.
국제 콩쿨 자격은 콩쿨의 공정성과 우수함을 입증받는 증표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콩쿨을 주최한 적도 없는 내게 국제 콩쿨을 제안하는 것은 이미 그 이상의 수준을 보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겠지.
연맹의 믿음에 더불어 이번 기회를 활용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있었다.
나 또한 콩쿨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이 있었으니까.
“단장님! 콩쿨 개최 사실이 진짜예요?”
출근한 단원들이 나를 보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물었다.
연습 스케줄을 모두 마친 후 인터뷰를 진행했던 터라 단원에게는 이번 소식을 알릴 겨를이 없었던 것.
몇몇은 저녁을 먹다가 입 안에 있던 것을 모두 뱉을 정도로 놀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미 확정이 나서 기사까지 나온 상황인데.
단원들은 내게 직접 듣고 싶었던 것인지 눈빛을 반짝이며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맞습니다. 제 이름을 내건 국제 콩쿨을 진행할 겁니다.”
이안 국제 콩쿨.
나와 리히트의 명성에 걸맞은 화려하고 거대한 콩쿨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게다가 국제 콩쿨이라는 큰 기회를 얻은 만큼, 그에 맞먹는 수준의 콩쿨을 준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나의 말에 단원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2기 단원들은 1기 단원들의 심사를 받아 합격한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2기로 들어온 단원들 또한 이번에는 자신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 모른다는 묘한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게다가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새로운 인재를 찾아낼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르겠네요.”
에비게일이 넌지시 한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이 사실상 질문에 가깝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에비게일의 말에 다른 단원들도 대답을 원하는 듯 나를 쳐다봤으니까.
‘사실상 이들도 콩쿨에 비견한 경쟁을 통과한 사람이니까.’
이미 1차, 2차에도 모두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단원들이었으니까.
심사위원의 결정에 따라 합격과 탈락이 결정되는 콩쿨과 다를 바 없었다.
그 탓에 에비게일 또한 그렇게 생각한 것이겠지.
물론.
“원석과 보석이 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죠.”
나도 생각은 같았다.
***
리히트 재단의 회의실.
아직 회의 시작까지 조금 남은 시점이었기에.
사람들은 작은 사담을 나누며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이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 단장님이 9시 뉴스에 출연할 줄은 몰랐네요.”
“과열된 팬심을 잡기 위해 출연하셨을 겁니다. 원래 인터뷰에 잘 응하지 않으시는 분이잖아요.”
“그마저도 뜻이… 그나저나, 단장님 화면빨 너무 잘 받으시는 거 아니에요?”
직원들 사이에서 단연 화두는 이안의 9시 뉴스 출연이었다.
‘남자는 수트 핏.’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고.
이외에도 팬클럽 개설에 대한 이야기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깊은 생각이 있으실 줄은 몰랐어요.”
“저도요. 인터뷰를 보니 단장님이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시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
훈훈한 이야기가 오가던 무렵.
회의 시간을 정확히 맞춘 민호가 회의실로 들어섰다.
곧바로 자리에 착석한 민호가 회의 시작을 알렸다.
“자.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왁자지껄했던 회의실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안에 대한 감탄을 이어가고 있었건만.
사람들의 눈은 무척 냉철하게 변해 이번 사안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안이 국제 콩쿨 개최를 수락했으니, 이를 완성하는 것은 재단의 몫.
제대로 된 콩쿨을 열겠다는 일념하에 사람들이 열의를 불태웠다.
“개최 위치와 기간은 단장님과 협의한 후에 픽스하죠.”
“아마 기간은 최대한 빨리 잡지 않을까 싶네요. 당분간 단장님의 일정이 크게 없으니까요. 위치는… 참가 규모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도록 알아보겠습니다.”
“좋습니다. 홍보팀? 혹시 홍보 안이 있나요?”
“최대한 많은 매체를 활용하려고 합니다. SNS는 기본, TV, 인터넷 광고까지도요. 광고 협업 제안이 들어온 회사를 대상으로 우선 선별을 할 예정입니다.”
회의실의 열기는 전쟁터를 연상케 했다.
현철과 민호의 안목으로 뽑은 인재들만 가득했었기에.
그들이 내건 안건은 물론, 그 수준도 일반적인 회의와는 달랐다.
아직 어떠한 일정, 계획도 제대로 수립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단 한 번의 회의로 콩쿨의 골자가 잡혀가고 있었다.
“이번 콩쿨 응시에 특히 서버 관리를 제대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매번 티켓팅 때도 서버가 난리였잖아요.”
홈페이지 관리팀장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진행해왔던 모든 티켓들이 서버 증설을 했음에도 번번이 서버 폭발을 피하지 못했으니까.
홈페이지 관리팀을 비롯해 기술팀에서도 의지를 다지듯 눈을 부릅떴다.
“참고로 지금 내용은 단장님의 뜻에 따라 바뀔 수도 있습니다.”
모든 직장인이 들으면 한숨부터 나올 말이었다.
고객의 요청 사항 하나에 개발팀은 수십 가지를 고려해야 하듯.
준비를 하고 있는 재단 사람들도 이안의 뜻에 지금 고려하고 있는 내용을 통째로 엎어야 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재단 사람들은 되레 알겠다는 듯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무려 이안이지 않은가.
재단에 들어온 후 이안의 행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직원들이기에.
이미 직원들은 이안의 말을 곧바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
인터뷰를 진행하고 며칠이 지난 시점.
나는 오케스트라 연습을 끝내곤 곧바로 리히트 재단으로 향했다.
이안 국제 콩쿨을 준비하던 재단이 1차 공고안을 만들었다고.
거기에 콩쿨 진행 방식을 정리하기 위해 내 생각을 이야기할 차례였다.
이사장실에 방문하자 민호는 곧바로 서류 뭉치 하나를 내밀었다.
“회의 때 나온 안건들을 취합해서 만든 모집 공고안입니다.”
불과 며칠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공고 디자인은 물론, 글꼴, 자세한 설명들까지 대부분의 틀이 만들어져 있었다.
아직 정하지 않은 수상 혜택만 제외하면 완성형에 가까웠다.
나는 차근히 공고안을 읽어내려갔다.
눈에 띄면서도 과하지 않은 색감과 국제 콩쿨이라는 위상을 엿보이게 하는 우아한 디자인.
사소한 부분들에 신경을 쓴 티가 났다.
하지만.
“이 조건은 뭐죠?”
나는 민호가 건넨 모집 공고안 한편을 가리키며 물었다.
[신청 자격 : 국제콩쿨 입상자]
바로 신청 자격 문구.
이번 콩쿨을 이외에 국제 콩쿨에 입상한 사람만 참가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나는 분명 언급한 적이 없을 텐데.
내가 민호를 향해 눈길을 돌리자 그는 이미 상황을 예측했다는 듯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회의 중 나온 안건입니다. 이전 리히트 오케스트라 오디션 때도 사람들이 몰리지 않았습니까.”
리히트 단원을 뽑기 위한 두 번째 오디션.
무려 수십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예선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던가.
그 때문에 포트폴리오 점검만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었지.
민호는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내건 조건이라고 덧붙였다.
“검증된 인물을 평가하면 효율은 물론, 뛰어난 인재를 곧바로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민호의 의견 또한 일리가 있었다.
국제 콩쿨에 입상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뛰어난 실력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기존의 리히트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뛰어난 베테랑들이 있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 질 높은 콩쿨을 진행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없애주세요.”
나의 단호한 말에 민호는 곧바로 자신의 인쇄물에 삭선을 그었다.
설명을 덧붙이기 전에 곧바로 명령을 한 꼴임에도, 민호는 거침없이 내가 언급한 부분을 삭제했다.
민호 또한 이미 내 의중을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효율은 나쁘겠지만, 인재를 찾아낼 기회를 굳이 덜어낼 필요는 없지.’
분명 국제 콩쿨 입상자를 대상으로 하면 퀄리티는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선화의 가야금이나, 루이사의 테레민처럼.
일반적인 클래식에서 사용되지 않는 소리를 찾아낼 순 없겠지.
국악기를 비롯해 생소한 악기들은 국제 콩쿨의 무대도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사용하는 사람이 적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
그런 사람들도 활동할 수 있는 곳이 리히트 오케스트라였고, 그러한 소리 또한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이 나의 방식이었다.
그 덕에 리히트 오케스트라는 지금도 다른 오케스트라가 따라 할 수 없는 선율을 만들어내지 않는가.
국제 콩쿨 입상자로 제한을 두면 그런 악기들을 연주하는 음악가들을 모두 배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좋은 실력자가 있고, 그것을 오케스트라에 접목시킬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기회조차 주지 않을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제가 원한다 해도 국제 콩쿨 연맹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이미 연맹의 사무총장 베니를 본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베니의 제안에 곧바로 수락할 수 있었지만, 일부러 곧바로 대답하지 않은 이유는 그의 반응을 살피기 위함이었으니까.
국제 콩쿨 연맹에서 베니의 입지가 얼마나 넓은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한국대에 다닐 때도 수업 중 몇 차례 언급이 될 정도로 콩쿨의 공정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고 들었으니까.
내가 본 베니 또한 그랬다.
진지하게 제안을 건네면서 단순히 내 명성을 활용하는 것이 아닌, 콩쿨로서 온전히 역할을 다하길 바라는 것이 느껴졌다.
나 또한 그와 생각이 다르지 않았기에 국제 콩쿨 제안을 수락했다.
참가자 자격에 관련된 이야기를 제외하면 공고안은 완벽했다.
그렇다면 이제 콩쿨의 세부 계획으로 들어가야겠지.
수상 혜택을 비롯해 어떤 곳에서 진행할 것인지, 또 규모는 어느 정도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민호는 내가 말하는 것을 최대한 받아적으면서도 곧바로 적용 방식을 찾아 잘 조합된 안건을 내밀었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나누자 나와 민호는 어느덧 마지막 안건을 논의하고 있었다.
“심사위원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3인 체제로 가도록 하죠.”
나 혼자 심사를 보지 않는다는 말에 민호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
무언가 기대하는 눈치로 나를 바라보는 민호였건만.
나는 민호보다는 다른 것에 관심이 있었다.
이미 심사위원을 생각하면서 내 머릿속에서는 적절한 사람이 떠올랐으니까.
그것도 두 명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