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예선 이후 진행되는 3차례의 본선.
그 첫번째, 1차 본선 준비가 한창이었다.
2시간 후면 참가자들이 들어올 예정.
이안과 다니엘은 무대를 확인하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사실 예선 때 조금 무서웠습니다. 단원들의 눈빛이 얼마나 날카로워 보였는지…”
다니엘이 그때를 회상하는 듯 약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다.
처음 15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를 봤을 때 1차 본선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고.
절반이 탈락한다고 해도 70만 명이 넘지 않은가.
하지만, 다니엘보다 단원들의 평가가 더욱 거침없었다.
“조율이 안 된 악기 맞죠? 안타깝네요. 연주는 듣기 좋았는데.”
“실수는 없는데 경직되어 있어요. 이 곡은 부드러운 매력이 좋은 곡인데.”
“자신의 성향에 맞춰 편곡한 것 같은데, 그 특징도 살리지 못했네요.”
단원들의 평가는 날카롭다 못해 냉혹했다.
겉보기엔 충분한 실력자였건만.
단원들은 티끌 하나 놓치지 않을 기세로 참가자들의 연주를 평가했다.
하지만, 단원들의 평가는 다니엘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
다만, 그 수준이 무척 높고 예상치 못한 오류마저 잡아내는 단원들의 모습에 옅은 탄성이 나올 정도였다.
그 기세에 단 100명만 예선전을 통과하지 않았던가.
“덕분에 새로운 배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안씨.”
“아닙니다. 다니엘씨도 그걸 눈치채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안의 말에 다니엘은 다시금 주먹을 쥐었다.
예선 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심사에 임하겠다고.
더 나아가 이안이 바라보는 음악과 그림을 보겠다고 생각했다.
더는 놀랄 것이 없다 생각하고 굳게 다짐하고 올랐는데.
경연 무대를 바라본 다니엘은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이곳에서 콩쿨을 보신다고요?”
이안이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자
당연히 그럴 수밖에.
보통의 콩쿨… 아니, 클래식 연주회도 좀처럼 펼친 적이 없던 곳이니까.
잠실 종합 운동장.
무려 2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다.
넓은 축구장에는 축구장 넓이의 반 정도 되는 무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심사위원석을 비롯해 콩쿨 참여자가 연주를 펼치는 곳.
다니엘 또한 수많은 콩쿨을 경험해보고, 보아왔지만 이렇게 개방된 곳에서 펼쳐지는 콩쿨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다니엘이 놀란 부분은 하나 더 있었다.
‘벌써 사람들이…’
객석에는 예상 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20만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좌석 중 반절에 가까운 좌석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참가자들은 별도의 루트를 통해 대기실을 마련해둔 상태였기에 참가자는 아닐 테고.
세계 각지에서 온 기자들에게도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줬기에 좌석에 있을 리는 없었다.
결국 답은 단 하나.
이안 국제 콩쿨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참관하러 온 것이다.
공식적으로 참관 공지를 올린 적도 없는데 이 정도의 사람이 모였다니.
이안의 명성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콩쿨이 어수선해지지 않겠습니까?”
다니엘은 걱정 어린 목소리로 이안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떠들면 콩쿨이 어수선해질 게 뻔하니까.
잡음이 들려오면 참가자들의 소리를 듣는 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개의치 않은 듯 보였다.
되레 이 상황을 콩쿨의 일환으로 사용하려는 듯.
객석을 바라보는 이안의 눈이 사뭇 진지했다.
“이 또한 개인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겁니다.”
“위기 대처 실력 말씀이십니까?”
다니엘의 말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주가는 객석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연주에 임한다.
하지만, 관객이 많다고 해서 주눅 들어서도, 적다고 해서 느슨해져도 안 된다.
오직 음악가는 단 하나의 음악을 보여줄 뿐이라고.
이안의 설명에 다니엘이 맞장구쳤다.
그리고, 이안이 보는 것은 하나 더 있었다.
“관객의 반응을 보면 연주가의 연주 수준 또한 알 수 있을 테니까요.”
***
참가자들이 복부에 번호가 적힌 스티커를 붙인 채 무대에 올랐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단원과 나의 눈에 든 100명의 사람들.
그만큼 실력도 남달랐다.
“이리 어려운 심사는 처음입니다.”
다니엘은 물론, 레오마저도 혀를 찰 정도의 실력자들이 대거 나왔다.
제 몸만 한 기타를 들고 온 소녀가 과격할 정도로 강렬한 <추격>을 기타로 펼쳐내는가 하면.
리히트를 통해 국악의 매력을 느꼈다는 백인 해금 연주자도 있었다.
게다가 무척 유명한 사람도 콩쿨의 문을 두드렸다.
“저 사람 유튜버 포브 아닙니까?”
포브 해리스.
백만에 달하는 구독자를 거느린 영국 클래식 기타리스트였다.
영국 각지의 유명 명소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기타 선율을 선보여 큰 인기를 끈 사람.
그의 연주는 익히 들었던 대로 인상 깊었다.
‘자연이 떠오르는 정도의 실력이라.’
포브의 손에서 재탄생된 <항해>가 잔잔하게 흘렀다.
스트로크 주법으로 화음을 펼치는 호크 기타와 달리, 클래식 기타는 한 음 한 음을 살리는 아르페지오가 일품인 악기였다.
그 특색을 최대로 끌어올리듯, 기타의 현을 튕기는 묘한 소리가 마치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파도를 형상화한 <항해>의 일부를 제대로 편곡한 실력자였기에.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음 참가자를 맞이하려던 때.
다니엘이 혀를 찼다.
“이분은 순서가 조금 아쉽네요.”
다니엘의 말에 레오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기타 연주가인데, 앞선 사람이 포브였지 않은가.
이미 포브의 연주에 기타에 대한 기대도가 높아진 상태.
심지어 대기를 하면서 포브의 연주를 들었던 것인지 다음 참가자는 한층 더 움츠러든 채 무대 위로 올라왔다.
“아… 안녕하십니까. 최준모라고 합니다.”
이름을 밝힌 참가자가 천천히 기타 케이스를 열었다.
하지만, 무언가 문제가 있는 듯 잠깐 망설이더니 한숨을 푹 쉬고 기타를 꺼내 들었다.
그가 꺼낸 클래식 기타에 레오는 물론, 다니엘도 인상을 찌푸렸다.
“악기 관리를 안 하신 건가요?”
“그게… 죄송합니다. 오는 길에 망가져서 수리할 시간이…”
차마 길게 사연을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상황은 얼핏 알 것 같았다.
오는 길에 갑자기 사고가 생겨 기타가 손상된 것이겠지.
하지만, 하필이면 깨진 곳이 울림통.
깨진 울림통을 애써 무마해보려고 한 듯, 테이프가 얼기설기 붙어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모양만 그럴싸한 것이다.
소리를 울려야 하는 울림통이 일부 깨졌으니 소리가 새거나 모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할 수 있으시면 연주해주세요.”
내 말에 준모는 한참 망설이다가 자세를 고쳐잡았다.
처음 의아해하던 다니엘도 우선 지켜보려고 하는 듯 준모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도 북한에서 망가진 피아노로 연주를 한 적이 있지 않은가.
만약 그가 내가 했듯 문제를 체크하고 연주한다면 재능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 터.
그리고, 그것을 알아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놀랍네요.”
연주를 들은 다니엘이 짧게 평가했다.
울림통이 완전히 박살 난 것은 아니지만, 분명 소리의 차이가 느껴질 정도.
심지어 테스트를 위해 잠깐 연주할 때는 조율마저 일부 틀어져 있었다.
그러나 준모는 준비 시간으로 주어진 짧은 찰나에 조율을 하는 것은 물론, 음의 특이점을 파악한 듯 유려한 연주를 선보였다.
울림통이 공진하며 깨진 티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연한 선율을 표현하는 것도 느껴질 정도.
그 모든 것을 즉석에서 펼쳐내는 것에, 다니엘과 레오는 나와 뜻을 맞췄다.
“합격입니다.”
합격 소식에 준모의 표정이 삽시간에 밝아졌다.
그는 몇 번이고 심사위원석을 향해 허리를 숙이곤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듯 발걸음을 재촉하며 밖으로 나갔다.
준모처럼 자신감을 되찾아가는 참가자가 있는가 하면, 시작부터 자신감이 넘치는 참가자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히로토라고 합니다!”
히로토 모리시타.
일본에서도 꽤나 명망 높은 밴드의 드러머인 사람이었다.
이번 콩쿨에 나온다는 소식에 일본 팬들이 상당한 아쉬움을 드러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이미 예선에서 한차례 주목을 받은 만큼, 그의 연주 실력도 나쁘지 않았다.
빠른 기교로 터져 나오는 비트음은 단조롭지 않고 화려했다.
몇몇 단원들도 자연스레 히로토가 만드는 박자에 맞춰 고개를 까딱였다.
히로토가 연주를 끝내자 관객석에서도 강렬한 비트에 매료된 듯 박수를 보내왔다.
그러한 반응에 히로토 또한 자신 있는 듯 미소를 내보였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심사위원의 선택은 관객들의 반응과 사뭇 달랐다.
“탈락입니다.”
‘탈락’이라는 단어가 운동장에 퍼지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충분히 좋은 솜씨인데 왜 탈락했는지 모르겠다는 듯.
하지만, 탈락 소식에 누구보다 어안이 벙벙한 것은 히로토였다.
“제가 왜 탈락입니까?!”
탈락 소식에 히로토가 심사위원석 쪽으로 다가왔다.
다소 격분한 듯 심사위원석으로 다가오던 남성은 스태프들의 저지에도 계속해서 몸부림을 치고 고함을 질렀다.
자신의 탈락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 같은데.
나는 담담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연주하실 때. 객석을 보셨습니까?”
“예? 객석이요…?”
히로토를 비롯해 몇몇 단원들도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객석을 쳐다봤다.
레오는 이미 눈치챈 듯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팔짱을 꼈다.
다니엘은 내 말의 뜻을 유추하려는 듯 나와 관객석을 번갈아 봤다.
한참 감을 잡지 못하던 다니엘은 객석의 웅성거림이 점차 커지자 무언가 알아챈 듯 입을 열었다.
“관객들의 반응…”
다니엘이 자신도 모르게 육성으로 정답을 내뱉었다.
“히로토씨가 연주를 하는 동안 귀 기울인 사람은 관객 중 절반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럴 리가요.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걸 어떻게…”
히로토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태도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나는 심사하는 내내 히로토의 연주를 지켜볼 뿐, 내 뒤에 있는 객석을 바라본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볼 수 없다고 해서 들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니까.
“웅성거리는 소리는 뒤돌아보지 않아도 들을 수 있죠.”
연주가 끝난 후, 호응을 보낸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집중한 것은 히로토가 연주를 하는 그 시간.
정작 관객들이 연주에 집중해야 할 시간에 관객의 상당수가 잡담을 하는 듯 웅성거림이 커졌다.
단원들은 음악을 집중하기 위해 말을 아끼지만, 참관하러 온 사람들은 아니니까.
지루하면 지루하다, 못한다면 못한다며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
그러한 잡음이 들린다는 것은 연주자가 온전히 관객들을 매료시키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완벽한 연주라면 관객들은 말할 겨를도 없이 연주에 빠져있을 테니까.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청중에게 선보일지 고민하는 것 또한 음악가의 도리입니다.”
레오와 다니엘, 단원들도 내 말에 동의하는 듯 웅성거렸다.
물론, 연주자가 관객의 눈치를 보며 연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악보를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면 음악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은 있어야 할 터.
적어도 연주가는 자신의 연주가 소음에 가까운 소리인지, 부족한 소리는 없는지 끊임없이 체크해야 한다.
하지만, 히로토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연주에 심취해 관객의 반응은 일절 관심이 없어 보였다.
마치 혼자만 즐거운 음악을 하는 듯.
많은 이들의 선망을 받는 밴드 멤버로서 자신의 실력을 과신(過信)한 탓일 것이다.
제아무리 화려한 기교와 스킬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걸 고치지 않으면 무대에 오를 수 없다.
나의 말에 히로토는 무언가 얻어맞은 듯 멍한 표정을 짓다 힘없이 밖으로 나갔다.
이후에도 희비가 갈린 참가자들이 무대를 오갔다.
몇몇은 포트폴리오에서 보여줬던 것보다 월등한 연주를 보이는가 하면, 몇몇은 그보다 못한 곡을 연주하여 탈락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덧 마지막 순간.
“마지막 참가자입니다!”
‘이제 나오겠네.’
대망의 마지막.
스태프의 인솔에 100번째 참가자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합격자 중 내가 가장 눈여겨보는 사람.
그녀가 무대에 올라와서 나를 보자마자 활짝 웃었다.
나 또한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마이크를 들고 짧은 한마디를 건넸다.
“오랜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