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1차 본선을 치른 것만으로도 세간의 관심이 뜨거웠다.
음악 전문 잡지사를 비롯해 전 세계 언론에서 이안 국제 콩쿨의 이야기가 거론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각국에서 나온 참가자들에 대한 평을 늘어놓는가 하면, 내 평가에 대해 대단하다는 글을 쓴 기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중 가장 화두에 올랐던 글이 하나 있었다.
“쇼팽 콩쿨 심사위원장이 참관을 했나 보더라.”
한 인터뷰를 기점으로 이안 국제 콩쿨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전 세계 피아니스트가 선망하는 대회, 쇼팽 콩쿨.
3대 국제 콩쿨 중 하나인 쇼팽 콩쿨의 심사위원장이 객석에 앉아있었던 것이다.
[이안 국제 콩쿨의 무대는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참가자의 수준은 쇼팽 콩쿨 입상자에 버금가는 실력자였으니까요. 게다가 이를 판단하는 리히트의 단장, 박이안 피아니스트의 저력은 눈앞에 보는 것만으로도 놀라웠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 쇼팽 콩쿨에서 마주하기를 바랐던 것은 저의 어리석음이라고 느낄 정도로. 심사위원석에 앉은 젊은 거장을 보고 제가 할 일은 그저 객석에서 응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터뷰가 뜬 지 1시간이 채 되지 않아서 콩쿨 연맹에서도 놀랍다며 내게 연락을 보내왔다.
쇼팽 콩쿨 심사위원장은 깐깐하기로 유명하다고.
그런 심사위원장이 만나길 고대한다는 것만으로도 내 저력을 알 수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심지어 기자들과 방송사를 통해 콩쿨 무대를 확인한 연맹 사무총장, 베니는 연신 감탄을 더했다.
-다시 한번 이안씨께 감사드립니다. 이안씨가 없었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 분들이 빛을 보게 되었군요.-
클래식 기타와 드럼, 캐스터네츠 등.
국제 콩쿨로서 자리가 부족한 악기들이 대거 출연한 것만으로도 뜻깊은 일이라며 내게 고마움을 표했다.
젊은 음악가들이 자신의 전공 악기로 기량을 뽐내는 것만큼이나 아름다운 광경은 없었다고.
그 장을 열어준 내게 평생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저 뛰어난 연주가를 뽑을 뿐입니다.”
내게 악기는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자신만의 색채를 가지고 연주에 임하는 것은 기본, 그 색채를 다른 이에게도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흡입력과 호소력을 지닌 연주가.
이안 국제 콩쿨에서 뽑으려는 사람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이제 내일이면 2차 본선이 열린다.
나와 큰아버지는 무대 구성을 비롯해 2차 본선이 준비되었다는 말에 확인차 종합운동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최근 연속된 일 처리에 큰아버지와 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오랜만이었기에.
나는 이전에 다니엘에게 부탁받은 이야기 하나를 내려놓았다.
“다니엘이 큰아버지께 무대를 부탁드리고 싶대요.”
다니엘의 요청은 무척 간단했다.
대한 오케스트라 25주년 무대에 현철과 함께 서고 싶다고.
뜻 깊은 자리인 것은 물론, 그 무대를 만들어온 것은 사실상 자신이 아닌 전대 단장인 큰아버지라고.
그렇기에 그 영광을 고스란히 건네고 싶다며 의견을 보내온 상태였다.
하지만, 큰아버지는 내 질문에 거의 즉답에 가까운 속도로 대답했다.
“됐다. 은퇴한 지 1년이 넘었는데 무슨.”
마치 미련은 없다는 듯 내려놓는 어투.
나 또한 예상한 바였다.
큰아버지가 단순한 마음가짐으로 평생 동안 쥔 지휘봉을 내려놓지 않았을 테니까.
<염라>를 작곡하면서, 그 이야기들을 차근히 들은 나였기에.
큰아버지의 결심을 흔들고 싶지 않았다.
만약, 큰아버지가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면 말이다.
“단순히 제 매니저를 하려고 제 옆에 계신 건 아니잖아요.”
리히트 재단도 생겼겠다, 새로운 매니저를 구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만약 매니저 공고를 낸다면 수백 명은 거뜬하게 응시하리라.
그럼에도 큰아버지는 오로지 혼자의 몸으로 매니저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비롯해 리히트가 무대에 오를 때.
큰아버지는 매번 나와 단원들을 빤히 쳐다봤다.
그 눈빛에 냉철함 이외에 다른 감정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나는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 말에 큰아버지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큰아버지의 손에 힘이 들어간 것이 보였다.
대답 대신 그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나는 알고 있었다.
“힘드셨겠죠.”
설명을 길게 곁들이지 않은 짧은 말.
하지만, 그 한마디에 큰아버지의 손이 잘게 움직였다.
“저도 단장이, 지휘자가 되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자식은 부모의 나이가 되고 나서야 부모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하지 않는가.
오케스트라의 단장으로서 몇 차례 무대에 올랐을 즘.
<염라>를 만들었을 때보다 더욱 깊이, 큰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지휘자라는 위치는 그저 단원들 앞에서 팔을 허우적거리는 단순한 자리가 아니다.
때로는 선장처럼 모두를 통솔하는 카리스마를 가지는가 하면.
때론 힘들어하는 단원들을 친구처럼, 부모처럼 다독여야 한다.
단원 관리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전념해야 하지 않던가.
나 또한 곡을 만드는 데 수일을 소비하고, 이를 어떻게 지휘할 것인지, 또 어떤 악기를 얼마나 펼칠지 고민했다.
이제 나는 1년을 넘긴 일을.
큰아버지는 무려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했다.
큰아버지 성격에 이를 누구에게 말하거나 털어놓았을 리도 없을 테니.
그 무게를, 긴 시간 동안, 단신으로 버틴 것을 고려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기에 더욱 큰아버지의 의견을 존중하고 싶었다.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큰아버지의 선택이니까.”
진심이었다.
은퇴부터 큰아버지의 선택이니까.
내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만약 큰아버지가 완전히 음악을 놓았다면 나도 다니엘의 부탁을 진작 거절하고 아무 말 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동안 내가 본 큰아버지는 아니었다.
한 발자국 뒤에서이지만, 무대의 곁에 있었고.
무대를 바라보는 큰아버지의 눈길에서는 묘한 공허감이 느껴졌다.
완전한 만족감에 도달하지 못하게 만드는 아주 작은 빈자리.
음악가로서 평생을 살아온 큰아버지에게 당연한 공간이리라.
어느덧 차량은 종합 운동장에 다다랐다.
그때까지 큰아버지는 무대에 대한 이야기를 일절 담지 않았다.
아마 시간이 필요한 일일 테지.
내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내가 단원들에게 사조를 전할 때, 그들에게 주입하지 않았듯.
나도 큰아버지의 가슴 한편에 씨앗을 심어주었을 뿐.
그것을 발아시킬지, 썩게 놔둘지는 큰아버지의 몫이었다.
***
2차 본선 무대를 확인하고 온 현철이 침대에 무너지듯 몸을 뉘었다.
청춘 때는 며칠 밤낮을 새 가며 음악에 열중했었는데.
오십이 넘은 뭄뚱아리는 하루 바쁘게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쉬이 지쳐버렸다.
재단이 만들어지고 나서 일정을 확정하면 대부분의 일을 재단에서 해서 편해지긴 했건만.
그 이외의 연락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이안 국제 콩쿨의 2차 본선에 대한 지인들의 질문이 쇄도했다.
눈여겨보고 있는 음악가가 있냐는 교수 친구들의 질문부터.
직접 자리에서 보고 싶다는 재벌가 인사까지.
하나같이 이안 콩쿨을 실제로 보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중에는 현철의 대학 동기이자, 한국대 음대 학장인 호창도 있었다.
안부에 이어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과 비슷했다.
-현철아. 친구 좋은 게 뭐냐. 자리 마련해줄 수 없겠냐?-
“끊는다.”
평소라면 덤덤하게 넘겼을 호창의 전화였거늘.
지금은 유쾌한 호창의 반응도 신경 쓰였다.
이미 현철의 가슴 한편에는 내려가지 않는 무언가가 막혀 있었다.
‘잊혀지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
이안이 지휘석에 올라 지휘를 하는 것을 볼 때마다.
현철의 뇌리에는 <염라>에 대한 기억이 자꾸만 스쳐 지나갔다.
처음으로 연주를 듣고 위로받는 기분에 울음을 터뜨린 것과, 조카인 이안에게 1인 지휘를 펼쳤던 무대까지.
무덤덤했던 현철의 가슴에 감동을 넘어 환희에 가까운 감정이 일렁이지 않았던가.
그 환희를 느껴서, 아주 보람차게 무대를 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환희는 흐려지는 대신 선명해졌다.
무대에 오르려면 충분히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되레 그 순간 자신에게 몰려올 생각들이 감당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무대를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면 늙어서 그렇다고 치부하리라.
그러나 자신 성격에 완벽한 무대를 만들지 않을 리 없었다.
그렇게 되면 현철의 은퇴는 그저 무대가 무서워서, 그동안의 세월이 힘들어서 도망친 도망자 수준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 생각이 현철의 머리에서 도무지 떠나가지 않았다.
잡념을 떨치기 위해 눈을 감았건만.
몸을 뉘고 난 지 꽤 지났는데도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참을 뒤척이던 찰나.
현철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김종수]
현철의 영원한 스승, 종수의 전화였다.
누운 채로 받을 만도 하건만.
종수의 전화만큼은 현철도 자세를 갖추고 전화를 받았다.
“스승님. 그동안 연락이 뜸해서 죄송합니다.”
-아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지 않느냐.-
여유로운 종수의 목소리가 현철의 귓가로 흘러갔다.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스승의 목소리에.
현철은 하마터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쉴 뻔했다.
가까스로 한숨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내쉬던 찰나.
종수가 이안 국제 콩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2차 본선이 내일이지?-
“예, 맞습니다.”
-거기 참관하려면 티켓 같은 게 있어야 하나?-
“아닙니다. 그냥 오시면 됩니다. 가까이서 보고 싶으시다면 제가 데리러 나가겠습니다.”
다른 인물에게는 단호했겠지만, 종수에게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안 국제 콩쿨 심사위원인 레오는 종수와 인연도 있지 않은가.
레오 또한 종수의 방문을 무척이나 반길 것이라 생각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던 찰나.
앞선 종수의 목소리와 다른 묵직한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려왔다.
-고민이 있는 목소리구나.-
아차.
순간 현철은 종수가 어떤 사람인지 깨달았다.
표정만 봐도, 목소리만 들어도 상대를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진 사람.
생각이 복잡해 목소리를 숨기지 못한 자신의 불찰이었다.
현철은 한참 동안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그의 일생에서 다섯 손가락이 채 되지 않는 경험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조언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현철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무대를 제안받았습니다.”
-... 잘된 일이구나.-
현철의 대답에 종수는 잠깐이나마 말을 망설였다.
현철이 어떤 생각으로 무대를 떠났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종수였으니까.
이미 종수의 머릿속에서는 현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
-너는 염라이지 않느냐.-
대뜸 염라 이야기를 꺼낸 종수는 역사 시간처럼 이야기를 이어갔다.
불교에서 악인들을 처단하는 염라대왕의 이미지부터, 한국 무속 신앙에서 죄를 심판하는 이미지로 그려진 염라대왕까지.
때로는 폭군처럼, 때론 성군처럼 그려지는 염라에 대한 언급이 줄을 이었다.
-염라는 하나인데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여럿 아니더냐.-
악인을 거침없이 처단하는 공포스러운 염라도 염라이고.
인세(人世)의 불쌍한 인간들을 가엽게 여기는 염라도 염라라고.
어떤 염라는 옹졸하고, 어떤 염라는 과격하다는 평가를 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라는 표현을 건넸다.
무척 추상적인 표현임에도 현철은 스승의 의도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결국 염라가 하는 행동에 따라가 아닌, 사람들의 의도에 따라 해석은 바뀌는 것이라고.
그러니 그저 자신은 선택할 뿐이라는 의미였다.
마지막으로, 종수는 질문 하나를 건넸다.
-그래서. 너는 어떤 염라로 기억되고 싶으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