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서양 클래식사에서 모차르트는 빼놓을 수 없는 거장이었다.
5살에 작곡을 시작한 것은 물론, 하나의 곡을 만드는데 몇 주밖에 소요되지 않았다는 작곡의 천재.
이를 증명하듯, 35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음에도 모차르트는 수없이 많은 곡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잘츠부르크는 그런 모차르트가 태어난 곳이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또한 모차르트를 기리고,
오죽하면 모차르트의, 모차르트에 의한, 모차르트를 위한 축제라는 말까지 있겠는가.
그렇기에 모차르트의 곡을 선택하면 보다 사람들의 감흥을 이끌어내기에 쉬울 것이다.
“왜 이 곡이냐?”
물음을 던지는 큰아버지는 크게 두 가지 의문점을 제시했다.
하나는 곡이 오페라 곡이라는 것.
한 때 대한의 마에스트로로서 활동했던 큰아버지에게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마술피리]는 오페라곡이니까.
교향악단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닌, 오페라 가수가 돋보이도록 만드는 곡.
그런 곡을 내가 하겠다는 말에 사뭇 의아한 기색으로 본 것이겠지.
다른 하나는 숱한 오페라 곡들 중에서 왜 [마술피리]냐는 점이었다.
음악학자들이 꼽는 모차르트의 3대 오페라 걸작은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바니], [코지 판 투테].
모두 정통 오페라를 계승하는 이탈리아어 희극 오페라였다.
[마술피리] 또한 이들과 비견할 정도로 유명하지만, 전략적인 오페라곡 선택을 위해서라면 앞서 언급한 3대 오페라가 낫지 않겠냐는 의견이었다.
그 또한 맞는 말이지만, 내게는 보다 다른 생각이 있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는 [마술피리]의 진가를 더욱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마술피리]는 본래 서민을 위한 오페라였지.’
지금도 그렇지만, 전생이 살았던 때도 오페라는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특히 세련된 희극 오페라는 이탈리아의 방식을 따른 탓에 대부분 이탈리어로 만들어졌던 것.
하지만, 오스트리아 입장에서 이탈리아는 외국이지 않은가.
이탈리아어를 접할 수 있는 귀족들에게는 오페라가 친숙했지만, 그렇지 못한 서민들에게는 외계어나 다름없었으리라.
그런 실정에서 [마술피리]는 소박한 징슈필을 바탕으로, 오페라임에도 연극처럼 대사가 들어있어 훨씬 이해가 쉬웠다.
게다가 독일어로 된 곡이기에.
귀족은 물론, 대중 모두를 아우르는 오페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전생의 나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전생의 나는 음악 천재이긴 했지만, 언어 천재는 아니었다.
전생 덕에 독일어는 모국어처럼 구사할 수 있지만, 이탈리어는 아니었다.
되레 한국대에서 배웠던 가곡들 때문에 이탈리아어 실력은 전생보다 내가 한 수 더 위.
그런 전생이 기억하기에도 [마술피리]에 대한 기억과 정보는 선명했다.
음악 명가의 자식이었던 주인, 로만을 따라 본 [마술피리].
여타 귀족적인 극장에서 상영되었던 오페라와 달리, [마술피리]는 저잣거리에서 가까운 서민적인 극장에서 펼쳐지곤 했다.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면서도 시장의 소시지 굽는 냄새가 고스란히 꽂힐 정도.
음악에 사용되는 언어와, 극이 펼쳐지는 장소까지.
그동안 귀족 위주로 진행되었던 음악과는 상반되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선보이려는 음악과 가장 맞닿아 있었다.
누구나, 어떤 요소에 상관없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것.
그 모토를 더욱 크게 만들기 위해 이 곡을 선택한 것이다.
‘이제 편곡이 관건이겠지.’
본래 오페라 무대를 위한 곡이기에.
대부분의 선율은 가수의 노래에 맞춰져 있었다.
리히트가 더욱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그 부분은 필수적으로 고쳐야겠지.
이미 머릿속에서는 가상의 악보가 움직이고 있었다.
어떤 부분을, 어떻게 발달시킬지에 대한 상세한 생각들이 악보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하나 더.
내 머릿속에서 그리는 그림이 있었다.
정통 클래식을 비롯해 연극, 오페라 등을 자유롭게 교환하는 고전 음악의 장.
할 수 있다면 그 다양한 음악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것이 좋을 테니까.
그리고 그 다양함을 채워줄 사람을 하나 알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휴대폰을 들어 어디론가 메시지를 보냈다.
전화 대신 메시지를 보낸 건 그 사람이 있는 곳이 아직 새벽일 것이라서였다.
그런데 메시지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되레 내 쪽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자연스레 전화를 받아들었다.
“오랜만에 연락드립니다. 리히트의 박이안입니다.”
***
Salzburg Hauptbahnhof.
잘츠부르크 중앙역에는 리무진 버스 세 대와 검은 승용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이를 보필하는 가드만 열 명.
기차를 타러 가던 사람들은 그들을 신기한 눈길로 바라보며 지나갔다.
저들의 보호를 받을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사람들의 궁금증이 더해지던 가운데, 역에서 한 무리의 사람이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나왔다.
그들을 보자마자 승용차에서 세미 정장 차림의 여성이 나왔다.
그녀는 다름 아닌 패트리카 쉐퍼.
잘츠부르크 축제를 총괄하는 재단 이사였다.
이안을 발견한 패트리카는 곧바로 인사와 함께 악수를 건넸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패트리카 쉐퍼입니다.”
“리히트의 단장, 박이안이라고 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 악수를 나누며 간단한 소개를 이었다.
처음 이안을 실제로 보는 패트리카는 이안의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강렬한 기운을 느꼈다.
‘이게 아우라라고 하는 건가?’
그저 악수를 하고,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움찔거린다.
마치 맹수를 앞에 둔 초식동물이 된 것처럼.
자꾸만 이안의 대단한 경력들이 패트리카의 머리에서 스쳐 지나갔다.
22살의 나이에 ‘젊은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청년.
그 이명(異名)을 증명하듯, 이안의 기세는 무척 강렬했다.
‘사실 처음에는 오지 않을지 걱정도 많이 했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초청하기 위해.
패트리카는 섭외 연락을 돌릴 때 이안과 리히트에게 가장 먼저 연락을 했다.
평소라면 섭외 담당자들에게 리스트를 확정하고, 순서를 지시했을 텐데.
이번 경우엔 직접 연락을 할 정도로 열의가 대단했다.
그런데 이어서 들려오는 소식은 이안이 도나우인젤페스트에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완전히 놓쳤다고 생각했는데.’
불과 한 달을 간격으로 둔 축제이지 않은가.
한 달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오케스트라 연습 기간을 생각하면 결코 긴 시간이라고 둘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에 이미 다른 축제에서 참가 의사를 밝혔기에.
패트리카는 반쯤 기대를 내려놓고 있었다.
하지만, 이안의 연락을 받고 솟구치는 놀라움과 기쁨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았다.
“앞선 일정에 피곤하실 텐데. 이렇게 일찍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직 축제까지는 한 달이 조금 더 남은 상황.
몇몇 참가자들은 참가 의사를 밝힌 채 오스트리아에 당도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대부분이 자신들의 홈그라운드에서 연습을 하고, 본 무대에서는 적응을 위해 1~2주가량만 머무르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이에 이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모차르트의 고향에서 모차르트의 곡을 연습해야 더욱 좋지 않겠습니까.”
이안의 말에 패트리카는 숨이 턱 막혔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이안의 말이었지만, 그 말에는 이번 무대에 대한 거대한 힌트가 숨겨져 있었으니까.
‘리히트가 모차르트의 곡을 한다고?!’
아직 한 달이나 남은 시점이니까.
패트리카는 아직 리히트가 어떤 곡을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특히 이번 경우에 더욱 이안이 어떤 곡을 할지 관심이 모이지 않은가.
마치 오스트리아 순방이라도 할 기세로 도나우인젤페스트에 참여하고, 연이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참여하는 것.
게다가 도나우인젤페스트에서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에 이어, 베토벤의 명곡 <월광>을 편곡하여 펼치지 않았던가.
오스트리아 빈의 성인(聖人)이나 다름없는 베토벤.
벌써부터 이안이, 리히트가 어떤 모차르트를 보여줄지 기대감이 떠올랐다.
“벌써 기대가 되네요.”
마음으로는 당장이라도 어떤 곡을 하는지 캐묻고 싶었다.
하지만, 패트리카는 그러한 행동이 무척 실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할 것은 단 하나.
이름 모를 명곡이 잘 펼쳐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축제를 이끄는 재단 이사이자, 이안을 초청한 패트리카가 할 일이었다.
***
호텔에 존재하는 거대한 강당.
리히트의 선율이 그 공간을 가득 메웠다.
잘츠부르크에 넘어와 연습을 진행한 지 얼핏 2주가량이 흘렀을 즈음이라 곡은 얼핏 완성되어 있는 상태였다.
지현은 여전히 그러한 면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2주 만에 이 경지에 오를 수 있지?’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듯, 이안이 단원들을 연습벌레로 만든 것도 아니었다.
리히트에 들어온 지 벌써 두 달이 흘렀음에도 밤샘 연습이나 강제 소집 같은 것은 조금도 없지 않았던가.
되레 출근과 퇴근이 확실하고, 본 공연에 오르기 직전에 1~2시간 연습을 더 하는 게 다였다.
여타 오케스트라와 비슷한 연습 시간.
하지만, 이안의 코멘트는 다른 단장이 수일에 걸쳐 깨달을 수 있는 것을 단 몇 분 만에 파악하여 단원들에게 전달했다.
그것이 리히트가 가진 놀라움이자, 빠른 성장세의 비결이었다.
‘게다가 이 곡을 이렇게 바꿀 줄이야.’
[마술피리].
지현에게도 이 곡은 무척 익숙한 곡이었다.
한국 정규 교육만 받아도 이 곡을 알 정도로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곡이니까.
특히 오페라의 하이라이트는 지현 뿐만 아니라 모든 단원, 더 나아가 음악에 관심 없는 사람도 알 정도로 유명했다.
그리고 그 하이라이트가 가장 놀라운 부분이었다.
‘악기로만 이걸 채울 수 있을 줄은 몰랐어.’
[마술피리]의 하이라이트.
악기의 소리에 버금가는 초고음, <밤의 여왕> 아리아가 펼쳐지는 부분이었다.
세계에서도 정확히 음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가 불리는 아리아.
이안은 그 선율을 플루트와 세찬 바이올린의 선율로 재탄생시켰다.
가사를 모르는 사람도 그 기세만으로도 밤의 여왕의 분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현은 몰랐다.
이번 연주에는 놀라운 점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여러분께 전달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이안의 말에 모든 단원들이 귀를 기울였다.
몇몇은 벌써부터 기대 어린 시선으로 쳐다봤다.
이안이 이렇게 중대하게 전달하는 것은 분명 무언가 새로운 것을 준비했다는 뜻이니까.
“남은 한 달. 리히트와 함께 연습을 할 분을 모셔왔습니다.”
이안의 말에 지현을 포함하여 모든 단원들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갑자기 인원이 추가되다니.
그것도 곡이 일부 완성된 상황에서 새로운 사람이 들어온다면 기존의 선율을 조금씩 바꿔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지현은 묘한 흥미가 돌았다.
자신이 생각한 부분이라면 이안이 생각하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까.
그런 부분을 모두 수용하고 영입할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마침 이안이 말한 사람이 온 듯, 강당 문이 열렸다.
커다란 경첩음에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이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들어온 사람의 얼굴을 본 단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헐. 저분이랑 같이 무대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