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로지 에렌스트.
그녀는 오스트리아 유학시절 브룩과 친분을 쌓은 사람이었다.
당시 음악감독이나 연출에 대한 뜻이 있는 사람은 많이 없었기에.
두 사람은 금세 친근한 사이로 발전할 수 있었다.
다정다감한 친구보다는 서로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동료에 가까웠지만.
브룩과 패트리카의 결혼식 때, 로지가 스위스에서 곧바로 올 정도로 브룩과의 친분은 무척 두터웠다.
“잘 지냈어 친구?”
-잘 지내는 걸 넘어서 아주 호화롭게 지내고 있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브룩의 목소리는 밝다 못해 경쾌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안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오고 나서 아주 살맛이 난다며.
젊은 거장이 만들어낸 소리를 직접 들어본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로 인해 사람들의 반응이 들끓어서 무척 좋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로지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주최사의 유튜브 채널을 비롯해 전 세계 뉴스에서도 이안이 만들어낸 음악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으니까.
도나우인젤페스트의 <월광>에 이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의 <마술피리 메들리>까지.
이안의 명성은 하루가 멀다고 높아지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전화를 건 이유였다.
“리히트 오케스트라를 우리 루체른 페스티벌에 초청하고 싶어.”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
매년 8~9월. 스위스 중부의 중심도시, 루체른에서 펼쳐지는 거대 행사였다.
1938년, 이탈리아 지휘자 아루투로 토스카니니가 개최한 개인 갈라 콘서트가 거대 종합 예술 축제로 성장한 축제였다.
2003년, 이탈리아의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구성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출범한 이후, 축제는 교향곡, 협주곡 등 유수의 연주회를 펼치는 것으로 유명해졌다.
지금은 백여 가지가 넘는 행사로 구성되는 것은 물론, 예술가들의 강연, 마스터 클래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인재를 발굴하는 페스티벌이기도 했다.
그런 페스티벌을 오랫동안 담당한 사람이 바로 로지 에렌스트였다.
“올해가 내 마지막 임기야.”
어느덧 그녀가 루체른 페스티벌을 맡은 지도 5년째.
이제는 공식 위원회 대표 자리를 내려놓아야 할 차례였다.
그녀가 마무리를 짓는 만큼 이번 페스티벌은 기존을 벗어난 그 이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러기 위해선 이안의 출연이 절실하다고.
이안과 리히트뿐만이 그 이상을 펼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긴, 나도 욕심나는 사람이었으니까.-
브룩은 로지의 마음이 이해된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처음 자신이 연주를 들었을 때도 걱정들이 단숨에 사라질 정도였다고.
그저 엄청나다는 표현밖에 떠오르는 단어가 없을 정도로 놀라웠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무대 구성을 비롯해 주미를 섭외하고 등장 타이밍을 계산하기까지.
브룩은 이안이 왜 젊은 거장이라고 불리는지 다시금 알 수 있었다고 표현했다.
차근히 브룩의 말을 듣던 로지는 문득 이상한 것을 느꼈다.
무대 구성과 등장 타이밍, 그건 연출의 영역이지 않은가.
“연출들이 네 작품이 아니었다고?”
로지는 당연히 브룩이 모든 연출을 맡았다고 생각했다.
브룩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총감독’을 맡고 있으니까.
그러나 브룩은 로지의 물음에 아니라고 대답했다.
-모두 단장님의 아이디어야. 내가 한 건 단장님의 요청에 따라 만들어준 게 전부야.-
로지의 머릿속에 무수한 물음표가 떠올랐다.
연이어 브룩에게 질문해봤지만, 브룩은 그 모든 아이디어가 이안의 아이디어였다고 알려줄 뿐이었다.
단원들의 위치 정도는 오케스트라의 권한에 맡겨두는 편이었다.
하지만 조명이 꺼지는 연출, 곡의 시작이 아닌 중간부터 진주미가 등장하는 것, 심지어 음악이 잘 퍼져나갈 수 있도록 무대의 형태까지 주문하는 것까지.
이러한 영역은 연출과 감독의 영역이지 지휘자의 머릿속에서는 쉽사리 나오기 힘든 것들이었다.
그 모든 것을 이안이 창조해냈다는 말에 로지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더욱 섭외하고 싶다.’
로지의 눈빛에 더욱 큰 열망이 담겼다.
이안이라면 가능하다는 생각.
지금껏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 일들을 모두 가능으로 바꾼 이안이기에.
이번 루체른 페스티벌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확신했다.
***
2개월 반.
상당한 시간 동안 오스트리아에서 진행했던 일정이 모두 끝났다.
아마 지금껏 리히트에 있으면서 진행한 일정 중 가장 긴 시간이리라.
지금은 단원들에게 일주일가량의 휴가를 준 상태였다.
몇몇 유럽계 단원들은 근처 집을 방문하는 경우도 있었고, 일부 단원들은 호텔에 묵고 있는 다른 오케스트라 단원과 친해져 음악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경우도 있었다.
나 또한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고 있던 찰나.
손님이 찾아왔다.
“쉬는 중이실 텐데 죄송합니다.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아닙니다. 들어오세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대표 이사, 패트리카의 방문이었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내 덕분에 축제의 분위기가 한 층 더 올랐다고.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잘츠부르크에 몰려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증명하듯, 창밖에는 처음 내가 잘츠부르크에 도착했을 때보다 몇 배나 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미 나 또한 뉴스를 비롯해 여러 소식을 접한 상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물론, 이전에 참여했던 도나우인젤페스트에 대한 기사도 계속해서 퍼지고 있었다.
리히트의 무대는 벌써 유튜브에서 조회수 천만을 넘겼다던가.
내가 직접 보는 것뿐만 아니라, 큰아버지를 통해 그러한 정보들은 계속해서 듣고 있었다.
“원하신다면 조금 더 계셔도 됩니다. 남은 축제를 즐기셔도 되고요.”
그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감사의 표시를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며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감사 표시가 결코 작은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혼자 쓰고 있는 이 방 만해도 하루에 수백 달러에 이르는 숙박료가 나가는 방이니까.
그 모든 부대 비용을 패트리카 측에서 대고 있었다.
오히려 차후의 일정을 생각하면 단원들의 휴가가 끝난 일주일, 서울로 돌아가서 일정을 체크하는 것이 나으리라.
하지만, 이야기를 하던 내내 내 눈길은 패트리카가 아닌 그 옆사람에 향해 있었다.
“브룩씨? 무슨 할 말 있으십니까?”
브룩 쉐퍼.
이번 페스티벌의 총감독이자, 패트리카의 남편.
그가 패트리카와 함께 온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표정에서 묘한 긴장감이 느껴질 뿐.
무언가 내게 말하고 싶지만, 무척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 질문에 브룩은 사뭇 놀란 듯 잠깐 망설이다가 패트리카를 쳐다봤다.
패트리카 또한 브룩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눈 듯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망설이던 브룩은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단장님, 혹시 차후 일정이 있으십니까?”
“아직은 없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일정이 없다는 말에 브룩은 한숨 돌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혹시 루체른 페스티벌을 아십니까.”
알다마다.
달빛의 도시, 루체른에서 펼쳐지는 루체른 페스티벌.
축제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도시 곳곳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펼치는 것은 물론, 1938년부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유명한 클래식 음악 축제였다.
한국대에 재학할 당시, 루체른 페스티벌 기간 중에 스위스로 워크샵을 온 경험도 있었다.
내가 안다고 이야기하자 브룩은 다행이라는 듯 소식을 전했다.
“사실 제 친구가 그곳의 위원회 대표 자리에 있습니다.”
올해 펼쳐지는 루체른 페스티벌을 그 어떤 축제보다 화려하게 꾸미고 싶다고.
이에 대해 고민을 해보았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덧붙였다.
이미 명성을 비롯하여, 그동안의 행보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고.
무대를 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내 무대가 처음이었다며 칭찬 섞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특히 <월광>을 보고 확신에 들었답니다. 이안씨라면 그 어떤 루체른 페스티벌 무대보다 빛나는 무대를 보여주실 수 있을 거라고요.”
결론적으로 나와 리히트를 루체른 페스티벌에 초청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분명 좋은 기회인 것은 사실이었다.
루체른 페스티벌의 명성은 나 또한 잘 아는데다, 오스트리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으니까.
다른 때라면 곧바로 수락하리라.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
브룩과 패트리카가 방문한 그 날 저녁.
나는 브룩이 만약을 위해 건넨 명함을 살펴보고 있었다.
[로지 에렌스트 -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 공식 위원회 대표]
검은 바탕에 금색 줄로 장식된 명함.
귀족스러운 디자인은 명함만으로도 루체른 페스티벌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달빛의 도시, 스위스 루체른에서 펼쳐지는 페스티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음악가와 관현악단이 수준 높은 연주를 펼치는 축제였다.
앞서 참여한 두 페스티벌이 축제와 컨퍼런스의 경향이 강했다면, 루체른은 새로운 신인 연주가들의 발판이 되는 도약의 장이었다.
여러 신선한 연주들이 펼쳐지는 것은 물론, 도전적인 무대가 다수 벌어지기에.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리히트에게는 새로운 깨달음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악기도 자주, 관리 없이 사용하면 망가지지.’
오케스트라를 두고 거대한 악기라고 표현하지 않은가.
단원들의 컨디션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하나의 틀어짐이 전체의 틀어짐으로 변모할 수 있기에.
단장은 그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해야 한다.
이미 단원들은 2개월이라는 강행군을 걸어온 상태.
지금을 비롯해 도나우인젤페스트 때도 일주일간 휴식을 주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연이어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평소 연습량도 늘렸으니.
특히, 비교적 최근에 들어온 3기 단원들은 이러한 스케줄을 감당해내기 힘드리라.
루체른 페스티벌을 보류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무대는 오르지 않는 것이 맞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위대한 음악가는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닌, 기회를 잡는 사람이었다.
이에 대한 생각을 확립하기 위해.
나는 한 사람을 불렀다.
“부르셨나요 단장님?”
1대 리히트 단원이자, 사실상 부단장의 역할을 역임하고 있는 요한나.
그리고, 빈 필 오케스트라의 경력으로 누구보다 단원들을 잘 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3기 단원들은 어때 보입니까.”
“금방 적응해서 단원들과 잘 섞여 나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요한나는 빙긋 웃으면서 3기 단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특히 자신과 같은 피아노를 다루는 지현의 성장세가 무서울 지경이라고.
<월광>의 선율은 자신보다 지현이 먼저 익힐 정도였다고 평가했다.
“컨디션은 어때 보였습니까.”
“괜찮아 보였습니다.”
“만약 다음 해외 일정을 소화해도 무리 없이 받아들일 것 같습니까?”
마지막 질문에 요한나는 곧바로 내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아챈 듯 보였다.
그녀는 내 질문에 곧바로 답하는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빈 필에서 스케줄을 소화했다면 불가능하다고 말씀드렸을 겁니다.”
요한나는 자신이 빈 필에 몸담았을 때 이야기를 몇몇 해주었다.
중요한 연주를 앞두면 밤을 새우는가 하면, 몇 시간 채 잠들지 못하고 빈무지크페라인에 출근하기 일쑤.
심지어 어떤 때는 좌석 한편에서 쪽잠을 잔 적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리히트 오케스트라는 아니잖아요.”
음악에는 본디 정답이 없는 법.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 매번 그 정답에 근접하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그 때문에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연주를 할 필요가 없다고.
밤새 무의미한 연습과 고뇌를 할 바에야, 일찍 자고 일어나 연습 시간에 내 조언 한마디를 듣는 게 낫다고 설명했다.
나의 조언을 듣고 단박에 연주를 완성하고, 협주를 통해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한다.
컨디션을 완벽하게 조절하게 하면서도, 곡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요한나가 생각하는 리히트의 연주 방식이라고 말했다.
“제가 3기 단원이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을 겁니다.”
자신의 생각을 차근히 말한 요한나가 마지막 마디를 내뱉었다.
그녀의 말에서는 힘이 느껴졌다.
충분히 가능하다는 강한 의지와 함께, 단장인 나뿐만 아니라 단원들도 어느덧 음악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다고.
내가 그랬듯 이제는 리히트에 감화된 모두가 음악을 퍼뜨리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미 요한나의 마지막 대답에서 나는 결정을 마친 상태였다.
단원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제대로 된 연주를 할 수 없고, 제대로 된 연주를 할 수 없다면 리히트의 사조를 퍼뜨리는 것은 무리다.
그 때문에 컨디션을 항시 중요하게 여겼던 것인데.
이미 요한나를 통해 단원들의 컨디션을 확인했으니, 내가 고려하던 문제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단원들이 준비되었다면, 노선을 잡아 끝없이 내달릴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단장으로서 내가 할 일일 것이다.
더 많은 이들을 만나고, 음악을 펼칠 수 있는 기회에 굳이 멈춰 설 이유가 없다.
나는 곧바로 전화를 들어 명함 속 번호를 입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