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225화 (225/250)

225화

포브 해리스는 여느 때와 같이 유튜브 관리에 한창이었다.

연이어 세 개의 페스티벌에서 리히트 오케스트라에 대한 영상이 올라간 후.

포브의 영상들은 날이 갈수록 조회수를 늘려가고 있었다.

이제는 유튜브를 넘어 개인 SNS 페이지까지 운영하면서.

그야말로 셀럽에 가까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대단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네.’

리히트에 대한 영상을 올리고 난 이후부터 조휘수는 물론, 구독자도 폭발적으로 오르더니 어느덧 1백만이었던 구독자는 2백만에 다다르고 있었다.

5년간 모은 구독자가 1백만이었는데.

리히트에 대한 영상을 올린 지 단 몇 달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시기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정하는 것도 음악가다운 도리이리라.

세 번의 페스티벌 일정은 물론, 한국에서 펼쳐진 무대에 대해서도 관심이 폭발하고 있었다.

특히 두 명의 지휘자를 한 무대에 올렸다는 소식을 들은 포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오히려 지휘가 꼬이지 않나?’

인간이 기계가 아닌 이상, 두 사람이 지휘하는 것이 똑같을 수 없을 테니까.

오히려 그런 일은 오케스트라에 혼동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유튜브에 업로드 된 영상을 본 포브는 숨이 턱 막히면서도 영상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안이 돋보이진 않았지만, 두 지휘자의 지휘는 가히 마법과 같았으니까.

마치 메트로놈을 켜놓은 것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박자를 맞추고, 서로 양보하듯, 경쟁하듯 오케스트라에 지시를 넣지 않았던가.

분명 지휘가 꼬여 되레 혼란스러운 것이라 생각했거늘.

더욱 유려한 선율이 나오는 것에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포브는 그 영상도 자신의 커리어에 이용했다.

이보다 놀라운 것은 없다며.

특히 이안의 아이디어로 이러한 무대가 꾸려졌다는 것을 강조하는 영상을 찍었다.

포브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안이 주목받지 않아도, 이안의 아이디어라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

포브는 연이어 올라가는 조회수와 SNS 팔로워를 보며 쾌재를 불렀다.

‘이안 전문 유튜버’라는 이름으로 포브는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다.

단순히 연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무엇이 대단하고, 무엇이 엄청난지 과장된 억양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감탄한 것이다.

자신도 포브가 그랬듯 환호성을 질렀다고.

이안을 향한 팬심으로 단 댓글에 포브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결국 이러한 것들이 자신의 몫이 되는 것이니까.

게다가 이런 시간이 반복되니 새로운 제안도 들어왔다.

[포브 해리스씨, 당신을 오스카 인플루언서 그룹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오스카 어워드에서 만든 인플루언서 그룹.

오스카를 비롯하여 수많은 영화, 드라마 협회에서 SNS의 힘을 활용하고자 각자의 그룹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일정 수익을 주되, 큰 광고효과를 누릴 수 있을 테니까.

이전에 연주 영상만 올렸을 때는 이런 곳에서까지 연락이 온 적이 없었는데.

이안의 효과로 포브의 채널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번 오스카 시상식에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세요.]

미국인으로서 오스카 시상식을 모르면 간첩이리라.

영화계의 별들이 잔뜩 모이는 시상식.

그곳에서 유튜브 컨텐츠 하나를 찍으면 그에 대한 반응도 폭발적이리라.

포브는 욕망 가득한 눈빛을 번뜩이며 오스카 측에서 보낸 라인업을 살피기 시작했다.

***

2월.

한국이면 한창 겨울일 시기인데.

미국은 가을에 가까운 날씨를 하고 있었다.

수트를 차려입은 나는 거울을 보며 마지막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있었다.

막 마무리가 다 되어가던 찰나.

휴대폰에 전화가 울렸다.

[로미오]

전화를 받자마자 LA 억양이 돋보이는 영어가 흘러들어왔다.

-이안씨, 지금 호텔 로비 앞에 나와 있습니다.-

“내려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나는 곧바로 1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몸을 실었다.

최고층 VIP 층에서 단번에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투명한 엘리베이터로 LA의 전경이 훤히 보였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다시금 미국에 온 것을 떠올리니 감회가 새로웠다.

긴 페스티벌 일정을 끝마치고, 내실을 다지기 위해 리히트 정기 연주회에 힘쓰고 있던 때.

에드워드 감독 측에서 연락이 왔지 않은가.

-이안씨, 우리 작품이 오스카 후보에 올랐습니다.-

Oscars Award.

오스카 어워드는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영화 시상식이자,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영화 시상식이었다.

평론가와 영화 팬과 같은 제3자의 시선을 완전히 내려놓고 오로지 영화인들의 판단으로 결정되는 오스카상.

매년 수만개에 가까운 영화들이 나오지만, 그중 오스카 후보에 오를 수 있는 작품은 단 다섯 작품이었다.

1만 명에 가까운 회원들의 지지를 받아야만 가능한 일.

그 일을 이뤄냈다며 에드워드가 너스레를 떨었던 것이 선명했다.

-만약 이 영화가 상을 받는다면 이안씨 덕일 겁니다.-

에드워드 감독은 내가 만든 곡, <재회>에 대한 찬사를 멈추지 못했다.

스태프들이 모두 놀라워한 것은 물론이고, 촬영을 재개하자 배우들이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연기에 임했다고.

본래 SF영화나 현실에서 동떨어진 영화에서는 배우들이 몰입하기 쉽지 않은데, <재회>를 들은 후 배우들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표현했다.

에드워드 감독은 자신도 묘한 변화를 느꼈다고 덧붙였다.

<재회>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외로움이 배우들을 움직였다고 확신했다.

-혹 괜찮으시다면 저희와 함께 오스카 어워드에 참석해주시겠습니까?-

부디 와서 자리를 빛내달라고.

나 또한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나를 모티브로 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상태.

게다가 오스카상은 세계적으로 무척이나 알려진 시상식이었으니까.

이미 에드워드 감독을 비롯해 왓슨 스튜디오와도 친분을 쌓았지만, 더 많은 영화감독과 연결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기회일 것이다.

로비에 나오자 저만치 하얀 차량 하나가 보였다.

고급진 면모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리무진.

대리석 같은 하얀 색깔에, 금빛 장식으로 한층 더 멋스러움을 살리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누군가 기다렸다는 듯 안에서 문을 열었다.

“이안씨! 오래 기다리셨죠!”

미국 최고의 미남 배우이자, 이번 [유일한 음악가]의 주연.

로미오가 화색을 띤 채 나를 맞이했다.

***

지금껏 힘든 영화 촬영 일정들을 소화했건만.

에드워드 감독의 신작, [유일한 음악가]의 촬영도 만만치 않았다.

격한 촬영 장면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촬영 속도가 엄청났던 것이다.

“제 목표는 오스카입니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영화인의 축제, 오스카 어워드.

영화를 촬영하는 중간에 그 포부를 밝힌 것이다.

그런 에드워드 감독의 모습은 로미오에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감독님 저렇게 들뜬 모습은 처음이네.’

로미오가 그동안 본 에드워드 감독은 무척 신중한 사람이었다.

제대로 된 영화를 찍기 위해 그 영화 촬영 때만큼은 카리스마를 펼치고, 항상 스태프들의 세심한 주의를 요구하는 사람이었다.

결코 시상식에 갈 것이라는 설레발을 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영화 촬영 때부터 사뭇 달랐다.

엄격하기로 유명했던 에드워드 감독이 무언가에 홀린 듯 연이어 오케이 사인을 보낼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결코 대충하는 법은 없었다.

슛이 들어가는 사이에는 신중한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줬으니까.

그리고 바뀐 것은 로미오뿐만이 아니었다.

‘그때 이후로 기합이 들어간 기분이야.’

로미오는 지난 한국행을 떠올렸다.

촬영을 위해 수십 명에 달하는 촬영팀을 한국에 데려간 에드워드 감독.

로미오도 이안을 직접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따라가지 않았던가.

그때 들었던 <재회>가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했다.

기존 악기에 대한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은 연주.

눈을 감고 들으면 일반적인 오케스트라에서 날 법한 소리가 전혀 아니었다.

에드워드 감독의 각본처럼, 만약 악기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오케스트라를 꾸렸다면 나왔을 소리.

그 소리를 정확히 구연한 것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게다가 그 때문일까.

영화 촬영하는 내내 그 선율을 떠올리자 주인공 역할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자신밖에 모르는 음악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야 하는 비운의 인물.

그 외로운 감정이 <재회>에 무척 잘 녹아들어 있었다.

영화 촬영을 예정보다 앞당길 수 있던 것은 그 때문도 있었다.

이미 이안의 지대한 팬이었던 로미오였거늘.

그런 로미오에게 이안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안이 리무진에 탑승하자 로미오는 곧바로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건넸다.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안씨.”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편하게 쉬었습니다.”

로미오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올라갔다.

가슴이 두근대는 것을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이것을 ‘성공한 덕후’라고 불렀던가.

게다가 이안을 직접 마주하자 그동안 들었던 이안의 곡들이 여지없이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스위스 루체른에서의 연주였다.

‘즉흥 연주였다는 걸 믿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루체른 페스티벌 측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사안인데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즉흥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완성도가 높은 선율이었으니까.

심지어 영상에 녹음된 빗소리에 자연스레 섞여드는 것에 입을 떡 벌린 채 연주를 듣지 않았던가.

자칫 소음처럼 들릴 정도로 센 빗소리였는데.

그 소리마저 음악으로 승화시킨 이안을 보면 어떻게 그를 표현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았다.

음악에 대한 사담을 나누던 찰나.

리무진은 어느덧 돌비 극장 앞에 도달했다.

레드 카펫이 깔린 길을 따라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이안씨. 주인공으로서 마지막을 장식해주시겠습니까?”

로미오의 말에 에드워드 감독과 플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하나의 퍼포먼스를 위해 극비리에 이안을 LA로 모셔오지 않았던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젊은 거장의 등장.

로미오는 상상만 해도 짜릿했다.

“그럼 저는 처음 오는 오스카이니 잘 따라가도록 하죠.”

재치 있는 이안의 답에 로미오는 남몰래 탄성을 질렀다.

혹 마지막에 나오는 것을 비롯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만드는 것이 거북하진 않을까 했었는데.

되레 그것을 잘 따라가겠다는 말로 위트 있게 반응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게다가 말을 건네는 이안의 얼굴에 로미오에 대한 믿음이 보였기에.

로미오는 이안을 보좌하겠다는 생각으로 더욱 책임감에 불탔다.

자신있게 리무진에서 내린 로미오가 익숙한 듯 레드카펫 위를 걸었다.

로미오의 출연에 수많은 플래시가 그에게 쏟아졌다.

전형적인 미남상에, 뛰어난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로미오였기에.

레드카펫에 모인 팬들이 저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이어서 에드워드 감독과 플로까지, 차례대로 감독들이 나오자 사람들이 연이어 환영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대망의 클라이맥스.

“Oh, God!”

리무진에서 이안이 내린 순간.

스태프의 탄성에 모든 시선이 이안에게로 집중되었다.

몇몇은 색다른 이안의 모습에 환호성을 질렀다.

매번 연미복에, 지휘자로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메이크업을 하지 않던 이안이었는데.

지금은 깊은 눈매를 부각하는 메이크업과 생기를 더한 붉은 입술이 그의 남성미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었다.

숱한 배우들 사이에서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 외모.

로미오가 리무진에서 내렸을 때보다 더욱 강렬한 플래시 세례와 환호성이 레드 카펫 위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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