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227화 (227/250)

227화

시상식이 끝나자 순식간에 로미오에게 관심이 쏠렸다.

오스카 어워드의 5관왕을 장식한 [유일한 음악가]의 주연이자, 남우주연상의 주인공이 되었으니까.

그에 대한 관심은 시상식 순서에서 이미 눈치챌 수 있었다.

‘오스카에서도 로미오를 많이 신경 썼네.”

오스카 어워드의 피날레는 올해의 작품상 시상이 일반적이다.

영화 전체를 총망라하는 것은 물론, 영화제 최고의 영화를 뽑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럼에도 남우주연상을 피날레로 선정한 것은 제대로 로미오를 비춰주기 위함일 것이다.

수없이 오스카에 문을 두드렸건만, 한 번도 로미오에게 상이 돌아가지 않았으니까.

오죽하면 주최 측과 로미오 사이에 불화설이 있는 것 아니냐는 루머까지 돌 정도였다.

오스카 측에서는 분명 이번 일로 그 루머를 깨뜨리고 싶었던 것 같았다.

‘뭐, 이제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이미 로미오의 징크스는 깨진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로미오가 오스카 트로피를 쥔 채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토록 얻고 싶어 했던 오스카 남우주연상.

언론에서도 축하와 함께 그동안 있었던 시도들을 아는 듯 소감을 묻는 인터뷰가 대부분이었다.

시상식장에서 흥분에 겨웠던 것이 조금은 진정된 것인지.

로미오는 무척 늠름한 모습을 한 채 인터뷰에 임했다.

“우선 축하해주신 분들과 응원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드디어 오스카와 악연이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네요.”

로미오는 위트 있는 이야기와 함께 인터뷰를 시작했다.

기자들도 그동안의 루머를 잘 알던 탓에 함께 웃어넘길 수 있었다.

시상식장 소감에서 함께한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을 표했다면, 기자들의 인터뷰에서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줄을 이었다.

미래로 간 주인공의 외로움과 음악에 대한 열정 등 영화를 관람할 때 주요 포인트라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차례로 나왔다.

한 발자국 뒤에서 이야기를 듣던 에드워드 감독은 로미오의 설명이 무척 명확하다고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 이어지고, 그는 내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추가로. 이 작품은 음악이 중요합니다. 음악 영화라서가 아니라, <재회>와 함께 펼쳐지는 장면은 그야말로 인간의 그리움과 슬픔을 관통하는 장면이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로미오는 여전히 감흥에 취한 듯 나에 대한 이야기를 멈추지 못했다.

음악에 대한 찬사는 물론, 곡을 구성하는 것부터 말이 되지 않았다며.

직접 녹음 촬영장에 갔던 사람으로서 생각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아마 단장님이 주신 음악이 없었다면 저는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로미오는 연신 <재회>가 놀라운 곡이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이 느껴지고, 뭉클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곡이었다고.

촬영장에서 내내 <재회>를 반복해서 들으며 주인공 역할에 적응한 것이 이번 수상의 키포인트라고 짚었다.

로미오의 말에 몇몇 기자들이 내게로 카메라를 돌렸다.

이어 로미오도 함께 인터뷰를 하겠냐고 묻는 듯 손을 내밀었다.

만약 올해의 주제가상을 받지 않았다면 로미오에게 그 기회를 온전히 넘겼으리라.

본래 오스카 시상식의 주인공은 [유일한 음악가]를 만든 삼인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재회>가 상을 받았다면, 내가 한마디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나와 로미오가 나란히 서자 플래시가 빗발쳤다.

로미오가 자연스레 어깨동무를 더하자 기자들이 더욱 열띤 기세로 셔터를 눌렀다.

“두 분의 관계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저에게 박이안 단장님은 거장이자, 스승, 감히 말하건대 친구와 같은 존재라고 말씀드릴 것 같습니다.”

로미오의 표정에서 뿌듯함과 동시에 꿈만 같다는 묘한 기색이 떠올랐다.

일전에 UN 기부 콘서트에서 내 무대를 보고 거금을 기부한 사람이 바로 로미오였으니까.

그만큼 내게 팬심을 보였던 자신이 나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앞으로도 이 인연이 끊기지 않고 어깨에 묻은 머리카락도 떼어줄 수 있는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습니다.”

로미오는 말과 함께 내 왼쪽 어깨를 툭툭 토닥이듯 쓰다듬었다.

나는 그 말이 어떤 의미를 하고 있는지 무척 잘 알고 있었다.

시상식장에 들어가면서 포브가 치고 들어간 어깨가 바로 왼쪽이었으니까.

나는 자세한 대답을 하기보단 고개를 끄덕였다.

거부할 이유도 없을 뿐더러, 가타부타 이야기할 것도 없었으니까.

좋은 작품으로서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고, 그가 원하면 나와 리히트의 연주회에 올 수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가능성을 알겠다는 듯.

로미오가 내 끄덕거림에 무척 기분이 좋은 듯 빙긋 웃어 보였다.

***

어느덧 시상식을 마친 후.

한참이 지나자 레드카펫에서도 사람들이 점차 조금씩 줄어들었다.

이제는 오직 [유일한 음악가] 팀과, 이들을 취재하려는 기자진들밖에 없었는데.

한 여인은 끝까지 이들을 기다렸다.

‘잠깐이라도 얘기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쉐리 애트우드.

그녀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자, 그린피스에 소속된 환경운동가였다.

환경보호에 큰 뜻을 품은 그녀는 숱한 그린피스 활동에 참여하면서도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때로는 같은 활동가들의 도움을 받고, 홀로 편집을 이어가던 끝에.

그녀가 만든 [돌고래의 비애]는 큰 인기를 비롯해 이번 오스카 어워드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플라스틱을 버리는 것 같은 인간의 작은 행동이 얼마나 해양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

특히, 그린피스에서 활동하며 돌고래의 생태를 밀착 취재한 덕에 사람들의 공감과 감동을 한몸에 받을 수 있었다.

이미 다큐멘터리계에서 이안은 무척 유명인사였다.

일전에 프라임플러스에서 방영했던 이안의 리히트 오케스트라 창단기와 교황 행진곡 제작기는 다큐멘터리 업계에도 큰 획을 그었으니까.

이안으로 인해 다큐멘터리 업계에 활기가 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소 따분할 수 있다는 다큐멘터리에도 흥미로운 사건과 과정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은 물론.

이안의 행보를 보곤 자신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 하는 셀럽들도 늘었다.

개중에는 이안과 비슷한 거장급 인물도 있었던 것.

심지어 미국 싱어송라이터의 콘서트 준비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큰 인기를 끌어 유명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초청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다큐멘터리 업계에 생기를 불어넣은 이안이 앞에 있는데.

쉐리는 결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조언을 구할 수 있을까?’

사실 세상 사람들에게 환경보호에 대한 인식은 그리 크지 않으니까.

있다 하더라도 아주 잠깐일 테지.

이번 다큐멘터리로 사람들의 반응이 증가할 순 있겠지만, 그것이 100%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안은 달랐다.

클래식 자체를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 지금은 리히트 오케스트라까지 이끌어가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선율은 지금껏 보인 클래식을 넘어선 ‘리히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있었다.

그런 이안의 정신을 조금이라도 배우고자.

쉐리는 끝까지 이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게 볼 일이 있으십니까?”

한참 기다리던 찰나.

쉐리보다 이안이 먼저 그녀에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쉐리 또한 자신 있게 이야기를 이어가려 했건만.

이안을 직접 마주하자 알 수 없는 아우라가 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거장의 아우라구나.

쉐리는 차근히 심호흡을 한 채 이안을 향해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십니까. 다큐멘터리 감독, 쉐리 애트우드라고 합니다.”

“박이안입니다. 이번에 상 받으신 분이시죠?”

이안 또한 쉐리에 대해 간략하게 알고 있었다.

올해의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쉐리가 말한 소감과 영화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가 소개되었으니까.

이안은 환경에 대한 고찰을 압축적이게 제시한 것 같다고 짧은 평을 덧붙였다.

“저도 이안씨의 <재회>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정말로 음악이 없어진 미래에는 그런 선율이 만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거든요.”

[유일한 음악가] 또한 한편으로는 환경과 인간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는 영화였으니까.

효율 우선 주의에 환경을 파괴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내용들.

영화 속 주인공이 음악을 전파하면서 그러한 사회 행태에 문제의식을 가지는 장면들이 묘하게 환경보호 의식을 담고 있었다.

일전에 환경보호에 대한 의식을 밝힌 에드워드 감독이 넣은 디테일이었다.

“혹 이안씨는 환경보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쉐리가 지금껏 기다리면서 가장 궁금한 것이었다.

이안이라는 거장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최근에는 빗소리마저 음악으로 승화시키며 자연 친화적인 행보를 이어갔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안이 어떤 말을 할지 무척 궁금했다.

“흠… 개인의 행동이 모여야 이뤄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희 오케스트라가 여럿의 소리로 음악을 표현하듯, 환경보호도 함께해야 더욱 좋은 것이지 않을까요?”

이안의 말에 쉐리는 무언가 멍함을 느꼈다.

사실, 이안의 말이 엄청난 깨달음을 주는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말.

하지만, 그것을 철학처럼, 그것도 음악에 빗대어 표현하는 이안의 언변에서 그 깊이감이 묻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짧은 욕심이 떠올랐다.

언젠가는 꼭 이안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다고.

이안이 만약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튀어갈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

오스카 시상식 5관왕.

[유일한 음악가]에 대한 소식은 계속해서 뻗어나가고 있었다.

본래 극장에 내려갈 시즌이 한참 지났는데.

재개봉 계약을 원한다는 연락을 비롯해 아직 내리지 않은 극장에서는 계약을 연장하자는 연락이 쇄도했다.

그뿐만이랴.

영화 [유일한 음악가]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음악감독, 플로 치머에게는 여타 영화 음악감독 제안이 들어오는가 하면, 에드워드에게도 벌써부터 다음 작품에 대한 제작사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심지어 로미오의 경우, 인터뷰를 통해 휴식기를 가질 것이라 밝혔음에도 하루에도 출연 제안이 수백 개씩 들어오고 있었다.

‘이게 바로 이안 효과인가?’

가장 큰 변화를 느끼고 있는 건 단연 에드워드 감독이었다.

보통 영화감독에게는 인터뷰를 비롯해, 토크쇼 초청이 들어오는 일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인데.

[유일한 음악가]가 오스카에 5관왕에 달성한 이후로 수많은 곳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심지어 파이널쇼와 모닝쇼와 같은 미국의 토크쇼 양대산맥에서도 러브콜이 들어올 정도.

언제라도 좋으니 연락을 달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

‘로미오도 엄청 바빠졌네.’

영화 출연 대신 인터뷰와 토크쇼 출연하는 로미오도 바쁜 건 마찬가지였다.

TV를 틀면 온갖 프로그램에서 로미오가 나올 지경.

이번 [유일한 음악가] 열풍에 맞춰 영화, 드라마 채널에서는 로미오가 나온 영화나 에드워드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를 연속해서 틀어주고 있었다.

주변에서도 축하 연락이 쇄도한 탓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이 몇 달 지났을 즘.

이제 좀 잠잠해질까 싶은 상황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저 멀리 프랑스에서 걸려온 전화.

이안 효과로 더 놀라울 것이 있겠나 했건만.

전화를 받은 에드워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칸에서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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