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가넷 콘바리니.
그녀는 자신의 마을에서 영웅과도 같았다.
교육은커녕 하루 살기 바쁜 섬 생활.
하지만, 가넷은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끝내 놓치지 않았다.
비록 캐스터네츠 하나로 무얼 하겠냐며 주변인들의 눈총을 받았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그러한 억척같은 성격과 표현하려는 강렬한 의지.
그것이 가넷을 이안 콩쿨 3위에 오르게 만들었다.
음악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3기 단원이 됨과 동시에 숱한 나라를 돌아다니며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행복했다.
전 세계를 순방하며 음악을 펼치고, 단원들과 음악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불과 몇 달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리히트에 대한 감탄은 단순히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세계 최고라는 극찬을 받고 있으니까.
[유일한 음악가]에서 공개된 <재회>는 이미 오스카에서 음악상을 받은 것은 물론, 칸 영화제 초청을 받기 만든 중요한 요소라고 호평이 자자하니까.
게다가 가넷 스스로 느끼기에도 <재회>의 선율은 완벽, 그 이상이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선율이면서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몸 안에 감도는 소리.
음악을 들은 가넷은 경탄과 함께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2기 모집 때 도전이라도 해볼걸.’
영화 속 배경 음악, <재회>는 타악 위주의 선율로 가득했으니까.
음악이 사라진 미래인 만큼, <재회>는 비교적 어려운 현악, 관악 대신 타악기를 활용한 것이 특징이었다.
만약 가넷이 조금 더 일찍 들어왔으면 캐스터네츠를 활용한 선율을 넣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사실이 사뭇 아쉬웠다.
하지만, 앞으로 <재회>와 같은 곡을 맡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넷의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유일한 음악가]는 오스카상에 이어, 칸에서도 최고로 권위적인 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영화감독, 에드워드가 수상 소감이 스크린을 타고 전달되었다.
여러 사람들에 대한 감사가 이어지던 때, 에드워드는 이안의 이름을 잊지 않았다.
-끝으로 이 상의 영광을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박이안 단장님과 나누고 싶습니다.-
에드워드의 박수에 이어, 단원들도 이안을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이미 단원들에게도 이안이 만든 <재회>는 놀라움의 연속이었으니까.
누구나 익히기 쉬운 간단한 화음과 타악 위주의 선율.
음악성과 편리함을 동시에 잡은 선율에 모든 이들이 감탄 어린 시선을 보냈다.
모든 단원들이 자축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갑자기 화면 아래에 긴급 속보 헤드라인이 떠올랐다.
[긴급속보 : 인공섬 카라모 붕괴, 현재 구조가 진행중…]
난데없이 떠오른 헤드라인에 단원들은 안타까움과 함께 카라모섬이 어디인지 몰라 궁금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이윽고 방송이 칸 영화제 생중계가 끝나고 곧장 카라모섬 속보로 돌아갔을 때.
방송을 본 단원들은 안타까움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서양에 지어진 인공섬, 카라모.
자료화면에 나온 카라모는 수몰 위기로 대피한 섬 국가 사람들의 터전이었다.
하지만, 생중계로 보이는 카라모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비규환(阿鼻叫喚).
높은 파도에 집이 통째로 쓸려나가는가 하면, 인공섬 전체가 반파(半破)된 채 위태롭게 떠 있었다.
수많은 배와 헬기들이 카라모섬 주위를 구조를 서둘렀다.
기적적으로 구조된 사람들은 자신이 살았다는 안도 대신, 사라진 가족을 찾아달라며 구조대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허망한 눈길로 카라모섬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에 단원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어쩜 좋아요…”
“그러게요. 바다 한가운데서…’
모든 단원들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가슴 아픈 비극이라며, 안타깝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가넷은 다른 단원과 달리 이를 단순히 ‘안타깝다’라는 표현으로 정리할 수 없었다.
헤드라인을 본 순간부터 그녀의 심장이 마구 쿵쾅대며 진정할 수 없었으니까.
-괜찮아?-
가넷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스스로 진정해야 한다고 수십 번씩 되뇌었건만.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미친 듯이 휴대폰을 두들기고 있었다.
-왜 대답이 없어?-
-낚시 나가서 연락이 안 되는 거야?-
-아니지? 설마 그런 거 아니지?-
연이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가넷.
답장이 오지 않는데도 가넷은 메시지 보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어느덧 쌓인 메시지도 수십 개.
하지만, 상대에게선 그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심지어 읽지도 않는 것인지 메시지창 옆에 떠오른 1이 지워지지 않았다.
애써 부정하고 싶어도,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안 좋은 생각만 떠올랐다.
“왜 대답을 안 해.. 왜!”
비명에 가까운 외침과 함께 가넷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렸다.
갑작스러운 가넷의 태도에 순식간에 체임버홀이 조용해졌다.
“가넷?! 왜 그래요?”
갑작스런 가넷의 태도에 단원들의 이목이 쏠렸다.
하늘이 무너진 듯 울부짖는 가넷의 행동에 단원들이 괜찮다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한참 동안 진정하지 못하고 울부짖는 것을 수 시간 째.
가까스로 진정한 가넷이 입을 열었다.
“카라모섬. 저희 집이 있는 곳이에요.”
가넷의 말에 단원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
[기록성 폭우와 쓰나미, 카라모섬을 덮치다.]
[UN, 안전에 대한 미비를 인정하고 구조에 총력을 가할 것을 선언.]
[카라모섬 붕괴는 인재(人災)? 환경단체, 앞으로 더 많은 섬이 온난화로 수몰될 것….]
연일 카라모섬에 대한 소식이 인터넷과 TV 뉴스로 전해지고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도 카라모섬에 대한 관심이 크게 집중되었다.
국내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건들이 있었으니까.
내 주변에서도 소소한 기부를 하거나 봉사활동을 더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었다.
“가넷은 좀 어떻습니까?”
“가족과 연락이 닿아서 조금 진정이 되었습니다.”
소식을 전해들은 요한나가 내게 알려주었다.
인공섬이 붕괴된 그 날.
가넷의 부모는 고기잡이를 위해 바다로 나갔다가 가장 먼저 구조되었다고.
섬에 있지 않고 바다로 나온 것이 오히려 신의 한 수로 작용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단장님.”
가넷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무언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차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부모가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자신이 살던 곳이 통째로 사라졌다는 소식은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을 테니까.
수몰 뉴스에 가넷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었지.
단원의 멘탈 관리 또한 단장인 나의 몫이었다.
“가넷의 부모님이 한국으로 오실 수 있도록 준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단장님. 말씀하신 대로 가넷의 명의로 기부도 해두었습니다.-
가넷에게는 특별 휴가가 주어졌다.
일주일가량 쉬며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것.
가넷은 부모님이 안전하다는 것만으로 좋으니 휴가는 괜찮다고 했지만, 내 선택은 달라지지 않았다.
‘음악은 사람의 감정을 담습니다. 완전히 회복하고 와서 무대로 돌아오도록 해요.’
가넷은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했건만, 그녀의 연주에서는 불안감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스페인 무용을 펼치며 움직이는 발에는 옅은 떨림이 있었고, 그 때문에 자세가 흐트러지기 일쑤.
하체의 균형이 틀어지니 팔과 캐스터네츠에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프로라면 스스로 컨디션 조절을 해야 하지만, 범지구적인 재앙에, 가족들이 가까스로 생환했다는 소식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앞으로 음악을 위해서라도 가넷의 컨디션 조절은 필요했다.
-카라모 붕괴 이후 여러 곳에서도 연락이 왔습니다.-
일전에 UN 자선 콘서트의 여파일까.
수많은 환경단체에서 내게 러브콜을 보냈다.
후원과 기부금을 위한 무대를 준비해주겠다는 제안들이 수없이 도착한 것이다.
‘선행에는 돈이 필요한 법이니까.’
이번 사안은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재난이니까.
카라모섬의 붕괴로 급격히 늘어난 난민은 물론,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을 먹일 것이 필요할 터.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환경단체들 입장에서는 이를 타개할 상황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 또한 이 기회를 허투루 날릴 생각은 없었다.
가넷처럼 음악에 대한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리히트의 음악을 전할 수 있는 기회이자, 사람들이 말하길 ‘위로를 주는 음악’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니까.
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음악을 전파할 수 있는 무대를 찾던 찰나.
내게도 익숙한 곳에서 한 통의 연락이 왔다.
***
쉐리는 참담한 심정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카라모섬은 그린피스에서도 주시하는 곳이었으니까.
지구 온난화로 인해 급격하게 바다 수위(水位)가 올라가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섬들의 수몰 현상.
카라모섬은 그런 수몰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거처였다.
그러나 환경 파괴의 후폭풍은 인간들의 예측보다 한층 더 강력했다.
분명 파도의 흐름과 수위의 증가에도 끄떡없게 건설했는데.
이번 폭우로 인한 해일은 그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어버렸다.
“구조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반경 10km까지 수색을 진행하고 있지만, 해류가 워낙 빨라져서 수색 범위를 더욱 늘려야 할 것 같습니다.
행동적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움직임은 여타 단체 중에서도 가장 빨랐다.
본래 고래 포획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인 만큼, 자체 선박도 보유하고 있을 정도.
선박들을 활용하여 빠르게 구조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워낙 빨라진 해류 때문에 구조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각 지부의 난민 수용소는 포화상태라고 합니다.”
“시설 확충이 필요하다는 말이 많습니다.”
“프랑스 지부에서 식량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
선행에는 돈이 필요하다.
그린피스 활동을 위해 소요되는 금액은 물론, 카라모섬 붕괴로 인한 난민들을 돕기 위해 더 많은 지원금이 필요했다.
게다가 카라모섬 재건에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소요될 것을 생각하면, 단순한 기부로는 결코 필요한 금액을 모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그린피스 내에서도 회의가 한창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난민들로 인해 그린피스도 비상이었다.
자금이 빠르게 소진된 탓에 앞으로 난민을 얼마나 감당할지 확실치 않은 상황.
게다가 카라모섬 재건을 위한 기부도 진행하려면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여러 사람들이 한데 생각을 모았다.
“유명인과의 콜라보를 하는 건 어떻습니까? 저희 단체에 가입한 유명인도 꽤 되지 않습니까?”
한 회원의 의견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21세기에 셀럽을 활용한 홍보 효과는 상상 그 이상이었으니까.
게다가, 이미 환경에 관심이 많은 셀럽들은 저마다 환경 운동을 하고 있었다.
축구 선수이자, 기부천사로 유명한 셀럽은 홍보를 위해 수천만 팔로우를 거느린 자신의 SNS를 기부하기도 하고, 몇몇은 엄청난 금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비교적 젊은 사람에게도 카라모섬의 실상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콜라보 대상으로 누구를 할지 여러 사람들이 거론되던 찰나.
그린피스의 일원 중 하나였던 쉐리의 뇌리에 누군가 스쳐 지나갔다.
‘그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UN 자선 콘서트 공연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금액을 기부하게끔 만든 인물이자, 청각 장애인을 위한 느낄 수 있는 음악을 만든 그라면.
그 사람이라면 이미 수많은 셀럽들이 한 것, 그 이상을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생각이 끝난 쉐리는 곧바로 어딘가로 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박이안 단장님. 일전에 오스카에서 만났던 그린피스의 쉐리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