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카라모섬 참사가 일어난 지도 벌써 일주일가량이 흘렀다.
여러 환경단체의 활약으로 상당수 사람들이 구조되었지만, 하루가 멀다고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환경에 대한 경각심은 더욱 커졌고, 수몰 위기 섬의 난민에 대한 이슈도 크게 대두되었다.
이로 인해 내게 전달된 수많은 자선 콘서트 제안들.
나는 그중에서 쉐리의 손을 잡아주었다.
‘다큐멘터리 감독에, 그린피스의 일원이니까.’
이미 오스카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촬영 스킬을 가지고 있는 쉐리.
영상으로 공개될 무대라는 것을 고려하면 충분히 메리트가 있었다.
게다가 그녀가 몸담은 그린피스 또한 전 세계 환경단체 중 이름을 크게 알린 곳이었으니까.
고래잡이를 비롯해 반핵(反核) 운동, 북극곰 지키기 운동까지.
대한민국에도 그린피스에 대한 이름이 알려진 것을 생각하면 그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참사의 주범인 바다 수위 증가에 대한 것도 오랫동안 관심을 가진 단체이기에.
나는 쉐리의 제안을 수락했다.
게다가 이번 일은 단순히 환경 문제를 넘어, 단원이 직접 피해를 입은 일이니까.
단장으로서 단원의 일은 내 일이기도 했다.
무대를 준비해줄 사람이 만들어졌으니, 나는 음악가로서 음악을 펼칠 준비를 해야겠지.
이에 대한 생각이 곡을 만드는 첫 단계였다.
‘이번 사안이 인재(人災)라고 불린다고 했지.’
빙산이 녹지 않았다면 바다의 수위가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바다의 수위가 올라가지 않았다면 카라모섬이 생길 이유 따윈 없었을 것이라고.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아니었다면 급격한 해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수많은 환경단체에서 이 사안이 지구 온난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었다.
나 또한 그런 생각들에서 생각을 차용해왔다.
‘환경 문제와 연관이 없다곤 할 수 없으니까.’
물론 모든 이유가 지구온난화와 관계있다고 하진 못하리라.
하지만, 적어도 이번 사안이 바다의 수위가 올라간 탓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애초에 바다 수위가 올라가지 않았다면 수몰 위기에 처한 섬은 없었을 테니까.
수몰 위험이 없었다면 자연스레 카라모섬이 생길 이유는 없었겠지.
그 생각을 토대로 이번 곡이 만들어졌다.
malinconico.
이름과 같이 우울한 선율이 점차 음악실을 적셔간다.
아무도 없는 북극의 한편을 보여주듯.
고요한 가운데 옅은 바람을 표현하듯 연한 선율이 흘러간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짙고 낮은 음색의 폭풍이 내리친다.
‘마치 빙산이 쪼개지듯.’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를 형상화한 소리가 거칠게 울린다.
단순히 부서지는 것에 끝나지 않고 여러 갈래로 문제가 파생되듯, 여타 선율들이 연이어 펼쳐진다.
웅장하기에 더욱 비극적인 선율.
빙산이 녹아내리는 것을 형상화한 것과 별개로 다른 이야기를 집어넣었다.
‘차가워진 건 사람들의 마음이겠지.’
귀찮아, 다들 그러는데 뭐, 나 하나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사람의 이기심을 나타내듯, 웅장하면서도 암울한 선율이 피아노에서 뻗어나간다.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는 여타 악기들이 더해진 가상의 악보가 채워진다.
피아노를 선두로 펼쳐지는 관악과 현악들이 일제히 암울한 소리를 내면 묘한 공포심이 떠오르는 선율이 완성된다.
이미 새벽녘을 지난 시간.
완성을 앞둔 악보를 보면서 나는 한 차례 생각을 했다.
‘다른 게 더 필요해.’
이번 무대는 단순히 무대로 끝나지 않는다.
환경에 대해 엄청난 관심이 집중된 상태에서 만들어진 무대이자, 쉐리의 요청으로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진행될 예정이니까.
기록물로써 남겨지는 것은 물론,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될 무대였다.
그러니 무언가 다른 것이 필요했다.
UN 자선 콘서트에서는 더욱 선율을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남사당패를 섭외했고,
덕수궁 연주회에서는 청각 장애인도 음악을 느낄 수 있도록 금속판을 설치했으니까.
이번에도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물론, 이번 사안을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는 곡을 만들 때부터 하나의 장면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방법에 대해 얘기했을 때 쉐리도 만만치 않게 놀란 표정을 지었지.
곡에 대한 마무리가 되어가던 찰나.
내 휴대폰에 메일이 왔다는 알림이 떠올랐다.
[단장님. 무대 준비는 완료되었습니다.]
무대가 준비되었다는 연락.
메일을 확인한 나는 다시금 피아노에 손을 올렸다.
자리가 마련되었으니, 나는 음악가로서 내 할 일을 마무리해야 할 테니까.
10번째 리히트 오케스트라 곡이자, 20번째 자작곡.
<얼음>이 완성 단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
쉐리는 일생 최대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린피스의 일원으로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를 맡은 중책임자로서.
한꺼번에 많은 일들을 처리하면서도 쉐리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단장님이 우리와 함께해주실 줄이야.’
처음에는 이안이 제안을 수락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웠다.
그린피스를 비롯해 수많은 환경단체에서 이안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여태껏 응했다는 단체를 한 번도 듣지 못했으니까.
메일을 보내고도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안에게서 회신이 왔을 때 놀란 감정을 이루 표현할 수 없었다.
게다가.
-보다 특별한 무대에서 연주를 하고 싶습니다.-
이안의 첫 마디에 쉐리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리히트 오케스트라 무대를 다큐멘터리로 촬영할 수 있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데.
이안이 먼저 무대에 대한 생각을 덧붙일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이미 이안의 무대 연출력은 쉐리도 잘 알고 있었다.
일전에 자선 콘서트들을 비롯해 축제에서 보여준 무대는 쉐리의 입을 다물게 할 정도였으니까.
특히, 빗소리와 융화되어 연주를 펼쳤던 루체른 페스티벌 무대는 경이롭다는 표현 말고는 내뱉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자연과 하나가 된 음악.
그 탓에 이안의 선택이 더욱더 궁금했다.
이안의 말을 들었을 때.
쉐리가 가진 궁금증은 놀라움을 넘어 경탄에 경지에 올랐다.
“북극에서 연주를요?!”
이안의 요청에 쉐리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 지르듯 물었다.
북극.
지구의 최북단이자, 오로지 얼음으로만 이뤄진 곳.
그 추운 곳에서 연주를 하고 싶다는 말에 쉐리는 가능한가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저 ‘하고 싶다’는 생각뿐.
강한 자신감과 함께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맡겨만 주십시오.”
이안과 대화를 마쳤을 때.
쉐리는 이토록 가슴이 뛰었던 적이 있었던가 떠올렸다.
그녀의 다큐가 오스카상을 받았을 때도, 그녀가 만든 다큐멘터리에 호평이 들어왔을 때도 심장이 뛰었건만.
지금 쉐리가 느끼는 두근거림은 그 모든 것을 합쳐도 이루 표현할 수 없었다.
반드시 어울리는 무대를 만들겠노라고.
쉐리의 머리가 무척이나 비상하게 돌아갔다.
북극에서 진행하는 연주회.
쉐리는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물론, 그린피스 사람들까지 총동원하여 무대를 준비했다.
8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모두 올릴 무대와 악기에 손상을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것까지.
주변에서는 가능하겠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쉐리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환경보호 인식을 심어준다는 생각과 함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이안의 연주를 보다 제대로 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으니까.
철저한 조사는 물론, 시뮬레이션까지 끝냈을 때.
그제야 쉐리는 계획서를 보낼 수 있었다.
과연 이안은 어떻게 생각할지 의문이 샘솟던 가운데.
쉐리가 메일을 보내고 바로 다음 날, 이안에게서 연락이 왔다.
[계획서 잘 받았습니다. 말씀하신 날짜로 바로 진행하죠.]
***
“으으… 추워.”
“야, 떨어져.”
아람이 두터운 옷을 여미면서 루이사를 껴안았다.
인상을 찌푸린 채 답을 하던 루이사도 이내 아람을 안은 채 온기를 나누었다.
두터운 옷을 몇 겹이나 껴입었음에도 추운 이곳.
리히트 단원들이 온 곳은 북극이었다.
‘내가 북극에 오게 될 줄이야.’
가넷은 추위도 잊은 채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훑었다.
섬에서 살면서 수없이 바다를 봐왔던 그녀였건만.
북극의 바다는 그녀에게도 처음 보는 바다의 매력을 보여주었다.
에메랄드빛과 백사장이 섞인 인도양 바다와 달리, 북극의 바다는 옅은 검은색이 섞여 묘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쇄빙선이 얼음을 가를 때마다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바다가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
‘대체 여기를 생각한 단장님은…’
이안이 처음 리히트 오케스트라에게 연주회 장소를 알려줬을 때.
가넷은 물론, 모든 단원들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놀라워했다.
북극이라니.
살면서 북극에 가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거기에 연주를 하기 위해서 간 사람은? 분명 손에 꼽을 것이다.
북극에 가는 것부터가 놀라운데, 그곳에서 무대를 진행한다는 사실에 고개가 절로 움직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걱정도 되었다.
연주라는 것은 손을 움직여 음계를 만들고, 박자를 맞추는 일이니까.
게다가 무척 낮은 온도에 연주를 할 수 있을까 했건만.
실제로 북극에 오자 그 생각은 확신으로 가득 찼다.
‘박자도 예측하신 건가?’
처음 <얼음>의 악보를 받아들었을 때, 가넷은 단번에 연주의 특이점을 알 수 있었다.
지금껏 리히트가 연주한 곡들은 대부분 빠르기가 빠른 편이었는데.
이번에 만든 곡은 여유롭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느린 속도를 보여주는 곡이었다.
그러나 직접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들었을 때 여유로움은 어디 가고, 묘한 공포감과 경각심이 떠올랐다.
낮은 온도에 사뭇 손이 굳을 법하건만.
이안의 <얼음>은 그마저도 계산한 듯 천천히 선율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항상 예상을 뛰어넘으신다니까.’
이미 무대와 곡을 넘어 가넷에게 이안은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다.
재단 차원에서 자신의 부모를 한국으로 데려온 것은 물론, 자신의 이름으로 기부까지 했다는 소식에 가넷은 깜작 놀랐다.
기부 소식을 접한 몇몇 지인들이 가넷에게 연락이 올 정도.
이미 입은 은혜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인데, 그 이상을 보여주는 이안의 모습에 가넷은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런 그녀가 다짐한 것은 단 하나.
음악으로써 보답하는 것뿐이었다.
거대한 쇄빙선을 타고 한참 북극을 향해 나아갈 때쯤.
이안이 단원들을 모은 채 누군가를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이번 무대를 기획한 쉐리라고 합니다.”
간단한 소개에 단원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있던 몇몇 단원들은 쉐리를 알아보고 악수를 청했다.
그린피스 소속 환경운동가이자, 자연 다큐멘터리 PD였으니.
몇몇은 쉐리의 작품을 보았다며 칭찬 섞인 이야기를 건넸다.
“여러분께서 오르실 무대입니다.”
한차례 환영식이 끝난 후, 쉐리가 가장 먼저 소개한 것은 무대였다.
먼저 온 쇄빙선에서 사람들이 나와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치 빙판의 일부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하얀색 판.
100명이 올라가도 거뜬할 것 같은 규모인데다, 색깔 또한 교묘하게 주변 얼음덩어리랑 비슷했다.
이 무대에 올라 연주를 한다면 빙산을 타고 연주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대를 직접 확인한 이안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자 쉐리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여기가 바로 저희가 생각한 지점입니다.”
맹렬한 기세로 가던 쇄빙선이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춰 섰다.
쉐리가 말한 지점은 가히 장관이 따로 없었다.
커다란 빙산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땅처럼 넓은 빙판이 뻗어나가고, 반대편에는 그와 반대로 조각난 빙산 조각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마치 북극의 실상을 모두 안고 있는 모습을 담은 듯.
가만히 보는 것만으로도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가넷 또한 빙산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조각난 빙산들이 녹아 바다의 수위를 올렸을 테고, 이렇게 만들어진 물이 가넷의 고향을 집어삼켰을 터.
묘하게 분노가 들끓으면서도 처량하게 떠내려가는 빙산을 보니 침울한 마음이 일렁였다.
분명 자신의 삶을 터전을 망가뜨린 존재인데.
힘없이 무너지는 빙산을 보니 괴리감이 들었다.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빙산을 보고 있던 찰나.
굉음과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빙산이 부서지는 소리입니다.”
쉐리는 여유롭게 말하며 한쪽을 가리켰다.
쉐리가 가리킨 곳 끝에는 거대한 빙산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거대한 빙산이, 어느 이유에서인지 둘로 조각나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처음 들으면 놀라기 마련이지.’
갑자기 들으면 충분히 놀랄 법한 굉음.
쉐리 또한 처음 빙산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공포심에 떨지 않았던가.
처음 빙산의 붕괴를 목도한 단원들도 사뭇 놀란 듯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이안은 다른 사람과 달리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빙하가 무너지는 소리를 감상하듯, 눈을 감고 있었으니까.
무언가 영감을 받는 듯, 감은 눈이 옅게 떨렸다.
빙하가 모두 무너지고, 소리마저 멎었을 때.
이안이 눈을 떴다.
“자, 무대를 준비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