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240화 (240/250)

240화

‘단장님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서령이 처음 <우주>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든 생각이었다.

지금껏 수많은 음악가와 기업들과 콜라보를 했던 이안이었건만, 우주와 연결되는 NASA와 콜라보를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그 선율들을 모두 계산하고 오르가니스트를 초빙한 것까지.

언제, 어디서부터 계획된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안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 그럴까.

오르가니스트, 앨리스의 연주도 상상 이상이었다.

서글한 미소로 인사를 하던 것과 달리, 앨리스의 연주는 날카롭고 비범했다.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을 두 손과 발로 움직이는 면모.

수많은 건반들을 한꺼번에 다루면서도 앨리스는 여유롭게 연주를 이어갔다.

나지막하게 펼쳐지는 선율들의 향연.

서령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공상들이 떠올랐다.

‘칠흑 같은 밤하늘을 연상케 하는 선율이야.’

암울하다면 암울하고, 공포스럽다면 공포스러운 선율.

<우주>의 시작은 빛 한 점 없는 우주 공간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한 번도 우주에 나가본 경험이 없는 서령이건만, 실제로 그 기분을 느끼는 것처럼.

오묘한 기운에 서령은 몇 번씩이나 감탄사를 터뜨렸다.

몇차례 연습을 하고 주어진 쉬는 시간.

서령은 첼로도 내려놓은 채 앨리스에게로 향했다.

“마치 소리가 공중에 유영하는 것 같아요.”

앨리스에게 다가간 서령은 자신이 본 감상평을 고스란히 말했다.

관악기처럼 터져 나오는 울림이 마치 음을 싣고 가는 구름 같다고 표현했다.

때론 조각구름처럼 작고 연하지만, 또 다른 때에는 먹구름처럼 거대하고 묵직했다며.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만드는 앨리스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앨리스는 되레 서령을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나는 서령씨가 더 대단한걸요? 지금까지 그렇게 아름다운 말로 선율을 표현한 사람은 처음이거든요.”

무척 좋은 청음력이라고.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그것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라고 칭찬을 더했다.

빙긋 웃던 앨리스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칭찬을 들었으니, 저도 조그마한 답례를 할까요?”

잠깐의 쉬는 시간.

앨리스는 서령을 무대 뒤편으로 안내했다.

계단과 사다리, 파이프들이 서로 얽혀있는 무대의 뒤편.

오르간의 소리를 만드는 파이프들이 있는 곳이었다.

서령 또한 리히트에 들어와서 숱한 악기를 접했지만, 악기 본체의 안으로 들어오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신기한 듯 주변을 바라보고 있는 서령을 향해 앨리스는 몇 가지 설명을 더해주었다.

바람 저장통과 오천 개의 소리를 내는 크고 작은 파이프들, 스웰박스를 비롯하여 풀무 역할을 하는 송풍기까지.

몇 차례 설명을 끝내자 앨리스는 어느 한 지점에 서령을 세워두고 말했다.

“잠깐 여기서 기다려봐요.”

서령을 두고 혼자 나가는 앨리스.

앨리스의 행동에 서령은 의아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내 옅은 바람소리가 내부에서 울리자, 파이프의 진동음이 본체 안에서 울려 퍼졌다.

앨리스가 서령을 안에 둔 채 연주를 시작한 것이다.

내부에서 들어와서 듣는 소리는 가히 차원이 다르다고 표현할 수 있었다.

파이프 끝으로 나가는 소리뿐만 아니라, 파이프들의 진동 자체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으니까.

스웰박스가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며 선율의 강약을 더하고.

울리는 파이프에 따라 주변 공기가 진동하는 것이 느껴진다.

마치 거대한 기계 안에 들어간다면 이런 기분이리라.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파이프 오르간들의 향연에 서령은 눈을 뗄 수 없었다.

‘단장님이 왜 오르간을 선택했는지 알겠어.’

서령은 차근히 눈을 감은 채 선율에 몸을 맡겼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상상의 나래.

서령이 표현했던 대로, 그녀는 음들이 끝없이 유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음표가 흐르는 바다에 들어온 것처럼.

몽환적인 음색에 서령은 자신의 몸이 뜨는 것 같은 착각을 하며 선율을 감상했다.

***

곡 작업에 일주일가량이 지났을 때쯤.

NASA에서는 미리 알려줬던 대로 우주 여행자 프로젝트와 지구의 속삭임에 대한 보도를 이어갔다.

[NASA. STP(Space Traveler Project)가 2달 후 진행될 것이라고 밝혀…]

[보이저에 이어 새로운 디스크를 담을 예정, 과연 어떤 내용이 들어갈 것인가?]

[데일리 포스트, NASA에서 한국에 간 정황을 포착, ‘혹시 리히트가 이번 디스크에 함께할 것인가.’ 기대를 전해.]

아직 나와 리히트 오케스트라가 지구의 속삭임에 참여한다는 확정 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해당 부분에 대해서는 NASA의 엠바고 요청이 있었으니까.

다른 작품들과의 비교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나 또한 모든 음악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구설수를 차단하는 데 동의했다.

연습 중 쉬는 시간을 맞이했을 때.

언론에 이야기가 퍼진 것을 본 앨리스가 내게 다가와 너스레를 떨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들으니 또 감회가 새롭네요.”

처음에 앨리스도 소식을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다고.

단순히 연주회 정도의 스케일을 생각했건만.

무려 우주로 쏘아 올리는 탐사선에 자신의 연주가 수록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그런 소중한 기회를 자신에게 안겨주어서 감사하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혹시 어떤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앨리스는 무척 기대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를 향해, 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저 더 많은 존재가 음악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문서에 적혀 있던 대로, 탐사선이 외계 생명체를 마주하려면 최소 몇십만 년이 걸린다고 했으니까.

그동안 내가 생존해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지금껏 음악과 악기가 역사와 전통을 가진 채 이어져 오듯.

언젠가, 또는 미래에 이러한 곡이 우주로 쏘아졌다는 소식만으로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

누군가 듣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전에 우주라는 미지의 공간에 대한 곡을 만드는 것.

아무도 하지 않을 법한 행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했다.

***

서천 콘서트홀.

서천그룹이 소유한 콘서트홀이자, 국내 최대 규모의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된 곳.

점차 콘서트홀이 가까워지자 소이는 물론, 함께 온 직젝도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곡이 완성되었습니다.-

단 3주.

예상을 훨씬 웃도는 빠른 작곡에 두 사람이 혀를 내둘렀다.

심지어 이안이 전하길,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다른 악기를 들여와 곡을 완성하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분명 오케스트라와 합을 맞추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곡이 완성된데다 연습까지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제안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야말로 감사드립니다. 영상까지 촬영하게 해주셨지 않습니까.”

직젝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촬영팀을 바라보았다.

본래 음원 녹음만 진행하려고 했던 프로젝트인데.

선뜻 이안이 먼저 영상 촬영을 진행하자고 한 것이다.

-실제로 보아야 더욱 아름다울 겁니다.-

이안이 전화상으로 건넸던 한 마디가 전체 일정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본래 일정대로라면 소이가 음원을 받아오고, 그것을 디스크에 넣을 수 있도록 데이터화 시키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보는 것을 추천한 이안의 말에 되레 직젝이 먼저 한국행을 택하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NASA에서 기록과 영상 촬영을 담당하는 팀까지 모두 데려올 정도.

그만큼 직젝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젊은 거장이라고 불리는 이안이 빈말을 하진 않았을 테니까.

담담하게 건넨 말이었음에도 그 힘이 느껴졌기에.

이 모든 것을 하면서도 일말의 걱정 따윈 없었다.

게다가 이안의 신묘함은 단순히 음악에서만 드러나지 않았다.

“주신 자료 덕에 더욱 풍성한 음악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성단과 성운을 뚫고, 오르트 구름 너머의 세상을 찾아간다는 이야기.

개괄적인 우주 여행자 프로젝트의 내용들이 이안의 입에서 천천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더 나아가 지구의 속삭임까지.

자료들 덕에 음악에 대한 이미지를 구체화하기에 더욱 용이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야기를 차근히 듣던 소이는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이 내용은 기밀문서에만 있던 내용인데?’

이전 탐사선과 비교도 되지 않는 탐사 속도.

어느 시점에 어느 성운, 성단에 도달할지에 대한 내용은 오직 기밀 문서에만 기재된 내용이었다.

처음 소이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설득을 위해 문서를 보여줬지만, 이안이 서류를 본 시간은 고작 10분을 넘지 않을 터였다.

그것도 모두 영어 원어로 된데다, 어려운 천문학 용어들이 즐비한 문서였는데.

그 짧은 시간에 단어들을 모두 기억하고, 이해하고, 음악으로 바꿨단 말인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이안의 모습에 소이는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직젝과 소이가 이안의 거장스러움을 체감하는 사이.

촬영팀이 준비가 완료됐다는 사인을 보내왔다.

오케스트라도 모두 준비가 완료된 듯 보이자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해보도록 하죠.”

이안이 짧게 이야기하자 콘서트홀을 밝게 밝히던 조명들이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무드등 같은 연한 불빛 정도 되었을 때.

서천 콘서트홀에서 환상이 펼쳐졌다.

“이래서 실제로 ‘보아야’ 한다고 하셨군요.”

처음 이안에게서 연락을 받았을 때, 직젝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디스크에 영상을 삽입하기는 불가능했으니까.

이미지도 이진법으로 치환하여 겨우 표현하는 것이지, 영상 파일은 사실상 필요가 없었다.

이안도 그걸 모르지 않을 터.

그럼에도 ‘보아야’ 한다고 표현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서천 콘서트홀에 펼쳐진 광경을 보자마자 마지막 퍼즐을 맞춘 듯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형형색색의 조명들이 파이프에 닿자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반짝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색채를 만드는가 하면, 어떤 것은 반사되어 벽에 오로라를 만들어냈다.

심지어 원기둥 형태의 파이프에 반사된 빛무리는 반짝거리며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

직젝은 물론, 소이, NASA에서 온 촬영팀까지 자신도 모르게 육성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 상태로 연주를 한다고?’

물론 주변이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파이프에 반사된 무지갯빛을 펼치기 위해 최소한의 조명을 사용한 상황.

이대로라면 악보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뿐더러, 자신의 악기를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과연 이러한 밝기에서 연주를 진행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둘의 걱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흐릿한 어둠 속에서 <우주>가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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