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차윤기라고 했나?’
소년이 올라가기 직전 나왔던 참가자 소개 방송.
나는 간단하게 언급했던 소년의 이름을 떠올렸다.
분명 한국 이름.
이전에 올라온 피에트와 비교해보면 현저히 어려 보였다.
하지만, 그의 연주는 피에트와 비견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Britten Cello Sonata in C major op 65.
전체적으로 암울한 첼로의 선율이 흘러간다.
사뭇 잔혹하게 나아가는 듯한 피아노의 선율에 따라 첼로의 현이 계속해서 낮고 강렬한 음을 내뱉는다.
첼로는 느리고 약하게 연주하면 중후하고 느긋한 음색을 만들 수 있지만, 빠르고 강렬하게 토해내면 공포스러울 정도로 묵직한 소리를 낼 수 있다.
윤기는 이미 그 부분을 잘 알고 있다는 듯.
화려한 기교를 표현하는 대신 기본에 충실한 채 소리를 내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한 부분이 가장 돋보인 것은 2악장.
2악장이 터져 나올 때는 옆에 있는 단원들을 비롯해 여러 청중들도 몸을 앞으로 빼서 윤기를 바라보았다.
끝까지 감탄사를 참던 서령조차 2악장에서는 탄성을 참아내지 못했다.
“피치카토를 저렇게…”
Pizzicato.
바이올린이나 첼로와 같은 찰현악기(擦絃樂器)를 활 대신 손으로 연주하는 기법이었다.
부드러움을 내려놓고 개별적인 음에 힘을 쏟으며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데.
윤기의 손길은 그 피치카토를 활용하는데 사뭇 반복적일 수 있는 첼로 선율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특히, 손으로 만들어내는 두 선율.
첼로와 피아노가 피치카토와 글리산도를 펼쳐내는 부분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마치 경쟁을 잊은 듯 나아가는 두 악기의 선율이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인 것이겠지.
윤기의 특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 곡에 수많은 감정을 고스란히 펼치듯.
암울과 환희, 들뜸과 고뇌까지.
첼로 소나타에 표현되어있는 선율에 감정을 깃들게 하는 것만으로도 단순히 ‘잘한다’라고 평가하기엔 어려웠다.
그리고 그 감정이 서로 섞이지 않게 1악장에서 5악장까지 이끌어가는 것까지.
선율을 만들어가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았을지 평가할 수 없었다.
윤기의 연주가 끝났을 때.
모든 객석에서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 기립 박수를 보냈다.
심지어 중도를 지켜야 하는 심사위원도 몇몇 일어나 있었다.
그러한 광경에 윤기는 다소 어색한 듯 연신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윤기의 연주까지 끝난 후, 이젠 우승자를 뽑아야 할 차례.
하지만, 심사위원석에서는 꽤나 고민이 많은 듯 한참 우승자를 뽑지 못했다.
얼핏 들리는 소리에서 ‘피에트’와 ‘윤기’가 거론되는 것으로 보아 두 사람 중 어느 사람을 우승자로 뽑을지 망설이는 것이겠지.
한참 이야기의 끝을 찾아가지 못하던 찰나.
퀴노른이 조심스레 내게 다가와 물었다.
“박이안 단장님. 한 번 의견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퀴노른의 질문과 함께 심사위원석에서 눈길이 느껴졌다.
무언가 이 상황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겠냐는 듯 의문을 가진 눈길들.
얼마나 이번 대회에서 음악을 진지하게 평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물론 나의 평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해줄 수 있다.
피에트는 물론, 윤기가 한 연주의 장단점은 이미 머릿속에 정리해둔 지 오래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나는 심사위원의 위치가 아닌, 참관자기에 말을 아꼈다.
처음부터 심사에 참여하지 않은 내가 심사에 관여하면 퀸 엘리자베스 콩쿨의 의미가 퇴색되리라.
어떠한 사람이 좋다고 말하지 않되, 심사위원들에게 힌트를 줄 수 있는 방법.
잠깐 생각을 하던 내 머릿속에 어떤 말 하나가 떠올랐다.
지금은 내 생각으로 자리 잡은 개념이자, 나의 행보를 인정했던 사람이 말했던 것이 하나 있었으니까.
“저는 음악이 누군가를 찌르는 검이 아닌, 방패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콩쿨에 나갔던 내게 김종수 선생님이 전한 뜻이었다.
누군가와 경쟁을 하기 위해 연주하는 것이 아닌, 음악 자체에 집중하는 것.
검이 아닌 방패와 같은 연주를 하라고 독려했던 말이었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어디까지나 음악은 음악이니까.
음악을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음악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위대한 음악가로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자, 심사위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퀴노른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심사위원들 또한 퀴노른과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심사위원들 또한 세계를 아우르는 거장들이니까.
내가 짤막하게 한 말이라도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잘 알 테지.
이내 그들은 잠깐 이야기를 더 나누다가 도장을 들었다.
재차 의견을 확인한 퀴노른이 한 사람의 프로필에 도장을 찍었다.
***
평소보다 오랜 심사 시간에 사람들이 조금씩 목소리를 높였다.
한창 무대가 시끄러워질 찰나.
마이크 소리와 함께 퀴노른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6명의 첼리스트들이 무대 위로 올라오자 퀴노른이 짧은 격려사를 더했다.
“시상을 하기 전, 그동안 음악을 위해 달려와준 여섯 참가자를 위해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퀴노른의 부탁에 사람들이 박수갈채와 환호성을 보냈다.
오늘 콩쿨을 통해 뛰어난 기량을 펼친 것은 물론, 좋은 음악을 들려준 것에 대한 감사.
참가자들 또한 청중의 반응에 허리숙여 인사를 하거나 손을 흔드는 등, 제스처를 취했다.
“자, 그럼 이번 첼로 부문의 수상자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퀴노른은 합격자의 이름이 적힌 붉은 카드를 꺼내들었다.
카드가 나타나자 참가자들은 물론, 청중들도 침을 삼키며 긴장한 눈빛을 했다.
세계 3대 콩쿨 중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콩쿨의 1위.
그 공개를 지금 눈앞에 두고 있었다.
반응을 살피던 퀴노른이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카드에 쓰인 이름을 크게 외쳤다.
“한국의 차윤기 첼리스트! 1등을 축하합니다!”
1위 공개와 동시에 사람들이 사방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일제히 일어난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보내자 윤기는 얼떨떨한 듯하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콩쿨에서의 1위, 그것도 퀸 엘리자베스 콩쿨의 1위니까.
되레 윤기보다 함께 있던 참가자들이 윤기를 안아주고, 악수를 하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수고했다, 축하한다 등 따뜻한 말이 오갔다.
경쟁자이면서도 그들은 2주간 샤펠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사이니까.
정이 많이 든 듯 윤기의 우승에 대신 눈물을 흘리는 참가자도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명.
한 참가자는 표정이 굳은 채 윤기를 노려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2위라니.
피에트는 지금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당연히 자신이 우승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자신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동양인 소년이 우승이랍시고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것이 못마땅했다.
게다가 이번 퀸 엘리자베스 콩쿨에서 우승만 한다면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할 수 있었는데.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생각에 부아가 치밀었다.
이어지는 행사는 트로피와 꽃다발을 증정하는 행사였다.
6위부터 차례대로 트로피를 받아들고 수상소감을 짤막하게 더했다.
어느덧 2위인 피에트에게 마이크가 돌아갔을 때.
그는 수상소감 대신 다른 것을 이야기했다.
“저는 이번 시상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갑작스런 피에트의 돌발 행동에 청중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오갔다.
수상 거부.
이전에도 수상 거부 사례는 간혹 있었지만, 이렇게 모든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었을 때 수상 거부 선언을 한 것은 피에트가 처음이었다.
심지어 피에트는 자신의 생각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퀸 엘리자베스는 그저 빨리 연주하면 상을 주나 봅니다? 그걸 알았으면 진즉에 때려치웠을 겁니다.”
격앙된 피에트는 다소 위험한 말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쿨의 권위를 무시하는가 하면, 심사위원들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까지.
비판을 넘어 비난에 가까운 말을 쏟아냈다.
급기야, 피에트는 건들지 말아야 할 대상까지 건드리고 말았다.
“그리고, 아까 다 봤습니다. 심사 도중에 박이안 단장을 부르지 않았습니까? 같은 한국인이라고 싸고돈 것 아닙니까?”
피에트의 말에 청중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피에트의 말에 긍정하기보단 피에트가 한 언사가 잘못되었다며, 피에트를 비난하는 여론이 더욱 많았다.
피에트가 한 말은 퀸 엘리자베스는 물론, 박이안까지 욕되게 하는 것이었으니까.
이미 세계에서 인지도가 높은 이안에게 통하지 않은 술수였다.
그때, 사람들의 시선이 이안에게로 향했다.
피에트의 언사에 표정 하나 안 바뀌던 이안이 무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이안의 등장에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지금껏 이안이 비난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은 적도 전무후무한데다, 과연 이안이 무엇을 위해 내려왔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안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윤기를 향해 한 마디를 건넬 뿐.
“윤기씨? 잠깐 첼로를 빌릴 수 있을까요?”
***
음악에 ‘절대’란 없다.
아무리 객관에 치중한다 하더라도 누가 듣느냐에 따라 주관이 섞이기 마련.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요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락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탓에 심사위원의 오류, 또는 참가자와의 친분을 근거로 수상 거부를 한 사례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선을 넘어버렸지.’
내게 한 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직접 언급하지도, 누가 더 좋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피에트가 한 행동은 자신이 참여한 퀸 엘리자베스를 욕하는 것이자, 함께 2주간 동고동락했던 참가자 모두의 노력을 헛되이 하는 발언이었다.
그러니 보여줄 수밖에.
피에트가 왜 2위가 되었는지.
“서령씨. 피에트씨가 연주한 곡을 해주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단장님.”
백문이 불여일견.
길게 말로 표현할 일이 뭐가 있을까.
서령 또한 이미 비장한 표정을 한 채 윤기의 첼로를 받아들었다.
상황이 비상하게 돌아가자 퀴노른 또한 피아노 반주자를 다시 불러왔다.
서령이 펼치는 Poulenc Cello Sonata FP143가 순식간에 센터를 물들였다.
깊은 무게감이 엿보이는 보잉과 끝없이 왼손을 움직이는 트레몰로.
손바닥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선율이 일렁이자 단상에 있던 참가자는 물론, 청중들도 숨죽이고 연주를 지켜보았다.
잠깐의 연주가 끝났을 때.
나는 서령을 향해 멈추라는 사인을 보냈다.
“무엇이 다른지 알겠습니까?”
“뭐가 다른 겁니까?”
피에트가 거들먹거리며 되물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 오히려 자신이 더 잘한 것 같다는 말을 내뱉을 정도.
그 말에 대답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피에트씨의 연주는 피아노와 자연스레 섞이지 않았어요.”
조심스레 입을 연 윤기였다.
윤기의 말에 깨달음을 얻은 듯,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에트가 한 실수는 단순했다.
감정이 담긴 연주를 할 때는 그 감정에 삼켜지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감정에 삼켜지는 순간, 그것은 표현이 아닌 과시가 되어버리니까.
결국 자신 밖에 즐기는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자만심이 부른 과한 선율.
그게 바로 피에트와 서령의 차이이자,
피에트와 윤기의 차이였다.
나는 일일이 설명하는 것 대신 피에트를 쳐다봤다.
마치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처럼.
하지만, 피에트는 대답하지 못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듯 그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 새빨개져 있었다.
이내 참을 수 없다는 듯, 피에트는 단상을 내려가 홀을 나가버렸다.
피에트가 자리를 떠나자 청중들 사이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상황 종료를 보았으니, 나는 다시 청중으로 돌아가야겠지.
나는 돌아가기 전, 퀴노른에게 귀띔했다.
“그럼 시상식 계속 진행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