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퀸 엘리자베스 콩쿨이 마무리되었을 때.
퀴노른은 곧바로 나를 찾았다.
그는 몇 차례씩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정말 어찌 이 상황을 말씀드려야 할지…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감사해야 할지, 죄송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내 덕에 상황이 단박에 마무리된 것은 물론, 피에트에게서 그런 망발을 듣게 만들어 죄송하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자신이 초대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고.
그런 퀴노른에게 나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괜찮습니다. 상황은 잘 끝나지 않았습니까.”
결론적으로 잘 마무리되었으니까.
피에트가 나가고 터져 나온 환호는 자연스레 윤기의 몫이 되었다.
다시금 진행된 시상식에 청중들은 이전보다 더욱 뜨거운 박수갈채와 환호성을 터뜨렸다.
마치 피에트의 행동은 잊어버리라는 듯.
윤기는 그들에게 감사함을 가득 담은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단장님.”
시상식을 마치고 나왔을 때.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윤기가 고개 숙여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든 윤기의 눈가는 약간 충혈되어 있었다.
18살 답지 않은 깊은 감정선을 연주에 쏟을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첼리스트이지만, 결국 18살 소년이니까.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공식 석상에서 윽박을 지른 것이 적잖은 충격을 줬을 것이다.
“수고했어.”
나는 여러 이야기를 덧붙이는 대신, 머리를 토닥이며 말했다.
때론 말보다 위로가 되는 것이 있으니까.
내 뜻을 알아챈 것인지 윤기의 눈가가 아까보다 더 붉게 변해 있었다.
나는 윤기를 잠깐 내버려 둔 채 퀴노른을 향해 물었다.
“갈라쇼는 언제입니까?”
“1주일 뒤입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쿨 갈라쇼.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12명을 다시금 축하하는 자리이자, 경쟁을 넘어 화합의 장을 여는 순간이었다.
오로지 음악으로 대화하고, 서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
내 머릿속에는 짧은 생각이 더해졌다.
생각을 마친 나는 단원들에게 물었다.
“일주일 정도 더 있다가 갈까 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희야 상관없죠!”
“단장님이 여기 계신데 저희가 어딜 갑니까?”
서령을 포함한 첼리스트들이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가겠다고 한다면 잡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내가 하려는 일은 첼리스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니까.
이미 머릿속에 확신은 주어졌으니.
나는 윤기를 향해 내가 생각한 것을 이야기했다.
“갈라쇼 준비. 내가 도와줘도 될까?”
내 말에 윤기는 물론, 옆에서 지켜보던 퀴노른도 입을 벌린 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Mr.차의 연주는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한없이 어리고 순수한 것 같으면서도, 공포에 떨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고.
욕심이 그득한 악마가 있으면서도, 누군가 지키려고 하는 천사가 있듯.
수많은 아름다움을 한 곡에 넣은 것이 이번 우승의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Mr.차의 유구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쿨 심사위원장, 퀴노른.
한국 첼리스트, 차윤기의 퀸 엘리자베스 콩쿨 우승 소식.
공식 발표와 함께 전 세계가 떠들썩해졌다.
[퀸 엘리자베스, 6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 기록.]
[전 세계 클래식 팬들의 선택을 받은 차윤기. 퀸 엘리자베스의 청중상, 차윤기에게 돌아가다!]
[차윤기, 청중상, 현대곡 연주상, 우승까지 3관왕 달성]
신예 첼리스트가 세계 3대 콩쿨에서 뚜렷한 성과를 낸 것은 드물었으니까.
게다가 윤기의 연주 영상이 공개된 후 사람들의 호평도 이어졌다.
앳된 외모에서 암울한 선율을 펼치니 더욱 마음이 아프다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기타처럼 현을 튕기는 윤기의 모습이 마치 천재 아티스트를 보는 것 같다는 반응도 있었다.
벌써부터 온라인에서는 윤기의 공연이 언제 이뤄지는지, 공식 음원은 언제 나오는지 등 여러 질문이 이어지고 있었다.
찬사와 환호를 한꺼번에 받는 윤기와 달리.
어느 누군가에게는 수많은 비판이 가해지고 있었다.
[피에트, 퀸 엘리자베스 콩쿨 2위 수상을 거부하다.]
[퀸 엘리자베스 콩쿨 진행 위원회, 피에트의 수상 거부 받아들이기로 결정.]
[피에트 막말 논란! 피드백이 아닌, 비난을 했다는 청중들의 증언이 이어져…]
퀴노른을 비롯해 퀸 엘리자베스 측에서는 피에트에 대한 어떠한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수상 거부를 받아들인다는 말만 했을 뿐.
이는 음악가의 마지막 예우를 지켜주는 최후의 예의였다.
되레 피에트가 공식석상에 나타나서 심사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피에트의 인터뷰는 묵살당하다시피 했다.
└ 어딜 비벼?
└ 여러분… 가만히 있으면 반을 간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겁니다.
└ 피에트 이 사람 잘해서 꽤 좋아했었는데. 정 한 방에 나가떨어진다.
└ 콩쿨장에서 험한 말이란 험한 말은 다 해놓고 억울한 척? 어림도 없지.
개인 카메라에 담긴 피에트의 언사가 만천하에 공개된 상태였다.
퀸 엘리자베스를 비롯해 여러 거장들에게 막말을 한 것과 격앙된 발언들이 모두 퍼진 상태.
심지어 이안에 대한 험담까지 한 것이 알려지며 대중은 차가운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상황을 차근히 바라보던 퀴노른은 그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실력은 좋았다만…’
피에트의 연주도 윤기와 비교했을 때 뒤처지지 않았다.
오히려 스킬 자체는 윤기보다 완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러나 이안이 표현했듯, 과함이 화를 부른 경우였다.
콩쿨에서 첼로 독주가 아닌, 첼로 소나타를 연주하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독주에는 볼륨이 부족하여 개인의 연주를 완전히 확인하기 힘든 것도 있었지만, 독주보다 협주에 사용되는 첼로의 특성을 고려한 것도 있었다.
다른 악기의 소리에 얼마나 귀 기울이는지.
그리고 어떻게 대처하는지까지 보는 폭넓은 심사.
피에트는 그 사실 자체를 간과한 것이다.
‘차라리 갈라쇼에서 보여주었으면 더 나았을 것을.’
음악가는 음악으로 말해야 하니까.
퀸 엘리자베스 콩쿨은 단순히 수상자를 가리고 끝나지 않는다.
우승자 뿐만 아니라,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12명도 함께 오르는 무대, 갈라쇼.
샤펠에서 동고동락한 음악가들이 경쟁을 떠나 온전히 화합에 다다른 무대를 펼칠 수 있는 뜻깊은 행사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피에트는 제 손으로 수상을 거부했으니.
스스로 갈라쇼 무대의 기회를 내던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거만함이 화를 부른 게지.’
퀴노른은 한편으로 안타까운 기색을 한 채.
피에트에게 보낼 예정이었던 갈라쇼 초정장을 한편에 밀어버렸다.
한편으로 퀴노른은 달력을 바라보았다.
다음 주에 예정되어 있는 갈라쇼.
이미 몇 차례나 갈라쇼를 지켜보았던 퀴노른이었건만, 이번 갈라쇼를 기다리는 퀴노른은 그 어떤 때보다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 무대에는 아주 특별한 손님이 올 예정이었으니까.
‘박이안 단장님이 먼저 손을 내밀 줄이야.’
퀴노른은 아직도 그 전율을 잊지 못했다.
갈라쇼를 도와주겠다는 이안의 선언.
젊은 거장과 천재 첼리스트가 만나면 과연 어떤 시너지를 낼까.
심사위원장이 아닌, 한 명의 음악가로서.
벌써부터 두 사람의 연주가 기대되는 탓에 노장의 심장이 자꾸만 뛰었다.
***
퀴노른이 제공해준 호텔의 연회장.
넓은 연회장에는 오직 나와 단원 넷, 그리고 윤기가 있었다.
윤기는 네 명의 첼리스트들에게 둘러싸인 채 몇 가지 강습을 받고 있었다.
“주눅들 필요 없어 보잉을 할 때도 거침없이!”
“이미 박자감은 충분한데, 마디의 시작을 살려주면 조금 더 리듬감이 나타날 거야.”
“템포를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곡의 볼륨이 올라갈 거야.”
어느덧 단원들의 코멘트는 나와 닮아있었다.
이미 윤기의 기본기가 충분한 만큼, 단원들은 곡의 입체감을 살릴 수 있는 전형적인 디테일들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전형적’이라고 해서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디테일이라고 부를 만큼 사소해서 연주에 집중하면 잊혀지기 마련이니까.
그럼에도 윤기는 자신이 퀸 엘리자베스 콩쿨 우승자임을 스스로 증명하듯, 단원들의 말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었다.
한 번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 특이점을 곧바로 에튀드에 녹아내는 스킬.
윤기의 적응력에 단원들도 사뭇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충분히 스킬들을 익혔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천천히 윤기에게 다가갔다.
“이 정도면 연습에 들어가도 되겠습니다.”
결선에서 보여줬던 연주에서 아쉬운 부분들을 모두 고쳤으니까.
단원들의 코멘트가 더해지면서도, 그 코멘트를 잊지 않고 연주하는 것으로 이미 윤기의 실력은 확인되었다.
이대로 본 곡을 들어가면서 추가적인 디테일을 살피면 될 것이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단장님.”
윤기는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내 피드백을 받으면서 연습을 하게 될 줄은 상상치도 못했다며.
맑은 미소를 보이는 윤기는 영락없는 소년이었다.
윤기를 돕겠다고 한 이유는 단순했다.
음악가는 음악으로 평가되어야 하니까.
윤기보다 먼저 음악가의 길을 걷고 있는 나로선 이번 일을 좌시할 수 없었다.
비록 잘 마무리되었지만, 윤기가 온전히 축하받아야 할 시상식이 얼룩지지 않았던가.
사람들의 가슴에 행복감을 심어준 음악이 훼손되었다.
나 또한 음악가로서 그러한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나에 대한 험담을 한 것을 떠나, 그건 앞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행복을 주겠다는 내 철학에 반하는 일이니까.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때론 앞으로 밀고 나가는 것도 필요하지.’
아직 18살.
외적으로 보면 어른이나 다름없지만, 속은 영락 없는 아이다.
시상식장에서도 의젓하게 있다가 눈시울을 붉혔으니까.
앞으로 더 많은 청중들, 더 많은 거장들 앞에서 연주를 할 것이라면 내실을 다질 필요성이 있었다.
음악은 주관적인 예술이니까.
취향에 따라 클래식을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다.
때론 클래식 특유의 고풍스러운 형식미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뉴에이지처럼 자유로운 선율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일일이 대응할 순 없는 노릇.
그러니 음악가는 자신의 주관을 갖춘 채 음악을 이어 나가야 한다.
자신의 음악을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밀고 나아가는 배짱이 필요했다.
그 기틀을 이번 갈라쇼에서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번 갈라쇼는 윤기의 데뷔전이자, 앞으로 기량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까.
“갈라쇼에서 할 곡은 정했어요?”
“이 곡은 어떨까요?”
나는 윤기가 건넨 악보를 받아들었다.
처음 악보의 제목을 보았을 때.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분명 첼로에 천재적인 어린 소년이라고 생각했는데, 윤기의 저력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배짱은 합격이네.’
윤기가 내민 곡은 무척 도전적이었으니까.
마치 자신이 퀸 엘리자베스 콩쿨의 우승자라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윤기의 눈에는 강한 의지가 섞여 있었다.
“그럼, 시작해보죠.”
긴 설명은 필요 없었다.
앞으로 일주일, 갈라쇼에서 완성된 곡을 펼쳐야 하니까.
내 손가락이 곧장 피아노로 향하자, 윤기도 동시에 활을 고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