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일주일.
윤기에게 지난 7일은 꿈이자 환상 같은 시간이었다.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들에게 교습을 받는가 하면, 젊은 거장이라 불리는 이안이 직접 도와준다고 나섰으니.
심지어 이안이 피아노 반주를 해주겠다는 말에 얼마나 놀라웠는지.
연습을 하고 난 다음에는 들뜬 마음에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첼로를 잡은 지난 10년보다, 단 7일간 함께한 것이 더욱 풍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치 특별한 영양제를 맞은 기분이랄까.
아주 사소한 차이에 음악이 변화하는 것이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게다가 마치 한 사람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것 같았어.’
네 명의 첼리스트들에게 교습을 받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보통 서로 다른 선생님에게 교습을 받으면 특이점을 다르게 사사(師事)하기 마련이니까.
음악에는 주관이 들어가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으니까.
기본적인 이론은 같지만, 세부 디테일로 넘어가면 각자 다른 의견을 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리히트 단원들은 마치 같은 사람이 이야기하듯.
모두 같은 특이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생각이 연결된 듯.
리히트라는 거대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통일된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게다가 신기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콩쿨을 준비하면서 밤낮없이 연주를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현에 눌린 손가락이 짓무르고, 어깨와 손이 떨릴 정도로 관절이 아려온 것도 수십 번.
샤펠에서 연습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콩쿨장에서 연주할 곡을 수없이 반복하는 과정.
그 때문에 몇 번이고 밤을 새우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번 갈라쇼를 준비하면서도 당연히 그렇게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단원들과 이안은 그 반대를 원했다.
“컨디션 조절은 음악가의 덕목이자, 의무예요.”
단원들이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이 말했다.
마치 학교 수업처럼 이른 아침에 시작하여 저녁 전에 끝나는 연습.
처음에는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1시간만 더 연습하자고 하기도 하고, 단원들이 가고 난 후에도 혼자 연습을 이어가기도 했다.
더 배우고 싶다는 아쉬움과 함께.
한편으로는 걱정도 있었다.
연습량이 줄어들면 감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났을 즘 윤기는 이 시간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안정되어야 안정적인 선율이 나오는구나.’
이틀 정도가 지났을 때 윤기는 자신의 선율에 변화가 생겼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안이 도와주어서, 갈라쇼에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온전히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덕분에 자신도 모르게 빨라지던 박자는 제자리를 되찾고, 음표 하나하나를 표현한다는 생각에 선율이 묵직해진다.
그 변화를 보면서도 놀라웠는데.
문득 단원들을 보던 윤기는 궁금증을 지울 수 없었다.
‘리히트 오케스트라는 이런 와중에도 그런 선율을 만드는 거야?’
매번 세계를 놀라게 하는 엄청난 연주를 하는 리히트 오케스트라.
이안의 지도력뿐만 아니라 개개인도 뛰어난 실력자라고 평가받고 있었다.
분명 밤낮을 잊은 채 연습에 매진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라 생각했는데.
모두가 이러한 방식으로 연습한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오케스트라는 개인 연습뿐만 아니라 합주 연습도 해야 하지 않은가.
이 일련의 과정을 제한된 시간에 하면서도, 세계를 놀라게 만들 정도의 선율을 만들다니.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였다.
“그럼 그 빈 시간에는 뭘 해야 하나요?”
한 번은 윤기가 이안에게 질문한 적이 있었다.
공식 연습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쉬는 시간.
그 사이에는 이안과 단원들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다.
“쉬는 동안 연주할 곡에 대해 생각합니다. 연주를 위한 것이 아닌, 이론적으로 말입니다.”
이안의 말에 윤기는 과거를 떠올렸다.
윤기 또한 한 때 기계적으로 악보를 외우고, 선생들의 조언을 연주에 녹이는 데 급급한 적이 있었다.
작곡가가 아닌, 자신을 가르쳐주는 사람의 생각을 연주에 집어넣는 것.
그러나 그때마다 윤기는 아이러니에 갇히곤 했다.
과연 제삼자의 해석으로 연주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윤기는 그것이 답지를 보고 답을 베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이후론 혼자서 곡을 읽고, 해석하고, 연주를 했다.
당시의 작곡가들이 어떤 생각으로 곡을 만들었고, 그동안 연주한 사람들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연주했는지.
여태껏 이 방법이 맞는지 의문을 품었었는데.
세계적인 거장, 이안도 자신과 같은 방법으로 곡을 다뤘다는 생각에 윤기 또한 자신감이 붙었다.
‘보여주고 싶어.’
예선에도, 샤펠에서도, 결선 무대에 올라서도 했던 생각.
그동안 자신이 했던 방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렇게 보낸 일주일.
어느덧 윤기는 갈라쇼 무대 위에 서 있었다.
수많은 청중들의 시선이 윤기에게 꽂혔다.
우승자를 향한 지대한 관심이 몰리면서 윤기의 손이 옅게 떨렸다.
하지만, 윤기는 이내 손에 힘을 주어 떨림을 멈췄다.
어느덧 윤기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긴장 대신, 자신이 오늘 펼쳐야 할 곡에 대해 떠올랐다.
게다가 뒤에는 윤기의 든든한 우군, 이안이 있었다.
이안이 짧은 인사와 함께 피아노 앞에 앉았다.
심지어 이번 갈라쇼 소개 멘트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했던 이안이었기에.
윤기는 얼마나 이안이 자신을 챙겨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미 수없이 감사하다는 말을 했으니.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었다.
오히려 그쪽이 이안이 원하는 방식이라 확신했다.
‘음악으로 보여준다.’
윤기의 눈빛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해졌다.
그 눈빛을 읽은 듯, 이안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했다.
마치 윤기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해도 된다고 격려하듯.
그 격려에 감응한 윤기는 곧바로 첼로 활을 고쳐들었다.
이안과 윤기, 윤기와 이안.
두 젊은 음악가들의 무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첼로의 현이 화려한 보잉과 함께 스타카토 선율을 펼친다.
마치 어린아이가 뛰노는 모습을 형상화하듯.
변칙적인 선율의 흐름에 사람들의 반응이 제각기다.
밝고 명랑하게 흘러가는 음색에 미소를 짓는가 하면, 진득한 트레몰로에 눈을 감고 감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연주를 들은 퀴노른은 놀라움과 함께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 곡을 선정할 줄이야.’
Poulenc Cello Sonata FP143.
다름 아닌, 피에트가 결선에서 연주했던 곡이었다.
섬세한 선율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이를 여지없이 드러내는 오른손의 조화가 필요한 곡인데.
윤기는 자신이 퀸 엘리자베스 콩쿨의 우승자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듯 유려한 연주를 펼쳤다.
Allegro.
거침없는 보잉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형상화된다.
마치 피아노의 글리산도에 감응하듯, 윤기의 손길이 동시에 터져 나온다.
분명 일주일 전에 같은 곡을 들었는데.
윤기가 만들어낸 선율은 전혀 다른 곡을 듣는 것 같다.
특히 윤기의 특색은 3악장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춤을 추듯 이어지는 Ballabile의 선율.
끊임없이 왼손으로 음을 짚고, 오른손으로 현을 긋는다.
화려한 기교에 퀴노른의 머릿속엔 윤기의 결선 무대가 절로 떠올랐다.
기타처럼 현을 튕기며 빠르게 곡을 전개했던 윤기의 연주.
활을 잡고 연주를 하는 것임에도 그 피치카토의 선율이 재현되듯 명랑한 소리가 연주회장을 가득 메웠다.
‘완벽해.’
퀴노른은 더 이상 설명할 수 없었다.
기교를 여지없이 드러낸 1악장, 순식간에 감정을 잡은 2악장, 명랑한 선율의 3악장에 이어, 마지막 피날레 4악장까지.
더 이상의 평가는 무색하다고 생각들 정도의 선율들이 튀어나오지 않았던가.
‘그가 들었으면 좋겠군.’
퀴노른이 잠깐 주변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만약 피에트가 이 연주를 들었다면 자신의 과오를 후회하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이안과 윤기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정말로 그런 소리였으니까.
무언가 틀렸다고 강하게 일갈하는 것이 아닌, 조곤조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듯.
이제야 퀴노른은 이안이 왜 윤기를 도와주겠다고 발 벗고 나섰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퀴노른의 바람대로, 갈라쇼 현장에는 피에트가 있었다.
막말 논란과 수상 거부로 제명된 피에트.
그는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채 무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특히 윤기의 첫 소절.
단 한 마디의 연주에 피에트는 부아가 치밀었다.
‘내 결선곡을 갈라쇼에서 한다고?’
첫 소절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피에트가 결선을 위해 2주간 샤펠에 갇혀서 연습한 선율이었으니까.
그런 곡을 윤기가 갈라쇼에서 펼치자 피에트는 당장이라도 무대 위에 올라 난동을 피우고픈 욕망에 휩싸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욕망을 해소한 것도 윤기의 연주였다.
‘... 잘하네.’
피에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상하고 있었다.
연주를 듣는 내내 피에트는 자신의 머릿속에 순백의 도화지가 펼쳐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든 틀린 부분이나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려고 애썼건만.
머릿속에서는 선율이 그려주는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행진을 나아가고 있는 퍼레이드의 형상을 시작으로 서정적인 분위기에서 흘러나오는 달빛, 발레리나들의 뛰어가는 듯한 몸짓까지.
자신이 연주했을 때는 차마 떠오르지 않았던 환상들이었는데.
윤기의 첼로에서 무언가 튀어나오듯 입체적인 선율이 펼쳐지고 있었다.
게다가 특별한 것은 윤기뿐만이 아니었다.
‘저걸 알려주고 싶어서 직접 나선 건가?’
피에트의 눈길은 어느덧 이안에게 향해있었다.
이안 정도의 실력자라면 윤기의 첼로 선율을 뛰어넘을 정도로 화려한 연주를 펼칠 수 있을 텐데.
이안은 과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중도를 지키며 연주를 이어갔다.
첼로가 강조되어야 하는 부분에서는 선율을 약하게 나아가기도 하고, 첼로가 은은한 소리를 낼 때는 분위기가 처지지 않게 소리를 지키기도 한다.
윤기를 띄우기 위해서도 아니고, 자신을 띄우기 위해서도 아닌.
오직 유려한 협주를 위해 서로 다른 선율을 한데 섞는 모습이었다.
그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서 그럴까.
두 사람의 연주는 마치 기초를 튼튼히 쌓은 탑처럼 견고하게 펼쳐졌다.
‘이게 음악이구나.’
피에트의 눈에 가득했던 분노는 사그라든 지 오래였다.
이미 자신의 잘못된 점을 깨달았으니까.
협주에서 조화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 돋보이려고 했던 욕심.
그게 얼마나 치명적인 실수인지 알아버린 것이다.
어느새 피에트의 머릿속에는 부끄러움이 가득 차올랐다.
고작 그런 연주를 하면서 자신이 우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니.
지금이라도 이안에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겠지.’
수많은 대중들 앞에서 이안의 험담까지 했던 자신이었으니까.
피에트는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시상식을 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피에트는 두 사람의 선율을 조금이라도 더 듣기 위해 몸을 앞으로 당겨 귀를 기울였다.
***
갈라쇼 이후 반응은 뜨거웠다.
연이어 사람들의 리뷰가 올라오는 것은 물론, 기자들도 바쁘게 움직였다.
우승자인 신예 첼리스트가 얼마나 잘했는지.
칭송하는 글들로 가득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쿨 우승자, 차윤기. 다시금 실력을 보여주다.]
[박이안 단장, ‘오늘의 주인공은 차윤기’. 겸손한 태도에 많은 이들의 찬사가 이어져…]
[콩쿨 주최측, ‘두 젊은 천재의 연주는 환상적. 평가의 잣대를 들이밀 수 없다.’ 표현]
윤기에 대한 언급은 물론, 내 언급도 종종 보였다.
최대한 관심을 감추기 위해 갈라쇼 무대에서 내 소개도 빼달라고 했는데.
기자들은 그마저도 겸손한 자세라며 기삿거리로 만들었다.
게다가 갈라쇼 이후.
새롭게 올라온 영상이 또 다른 관심을 끌었다.
-저의 열등감 어린 행동으로 인해 상처받았을 차윤기 첼리스트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더욱 노력하는 피에트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이러한 깨달음을 얻게 해주신 박이안 단장님께도…-
피에트가 개인 SNS로 공개한 사과 영상.
영상 속 피에트는 결선 무대 때와는 달리 고개를 숙인 채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하고 있었다.
간혹 사과 영상이랍시고 올리는 것에 핑계만 잔뜩 늘어놓는 경우가 있기 마련인데.
피에트는 온전히 자신이 실수한 것을 고백하는 것은 물론, 윤기에게 직접적으로 사과한다는 말까지 덧붙이고 있었다.
그러한 말들을 털어놓는 표정에는 결연함마저 묻어났다.
마치 실제로 분골쇄신하겠다는 뜻을 고스란히 밝히듯.
그에게서도 음악가의 기질이 엿보였다.
“단장님. 이제 가시죠.”
근 2주 만에 돌아가는 한국.
나는 퀴노른이 특별히 준비해준 퍼스트 클래스 좌석에 앉아있었다.
단원들과 윤기의 자리까지 마련해준 퀴노른의 배려.
퀴노른은 결선 때 내가 해준 것을 생각하면 이것도 부족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20시간, 하루를 꼬박 날아가야 하는 비행.
눈을 붙인 채 시간을 보내려는데, 옆에서 자꾸 눈길이 느껴졌다.
항공기가 이륙한 지 1시간이 넘어가는 동안 계속.
무슨 일인가 싶어 눈길이 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면 상대방은 책자로 얼굴을 가렸다.
끊임없이 느껴지는 눈길에.
나는 결국 눕혔던 몸을 일으켰다.
“혹시 용건이 있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