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연기백.
그는 전 세계 최고 축구선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이자, 아시아인 최초로 최고 득점왕에 등극한 사람이었다.
한국 국가대표이자, 월드컵에서 수많은 골을 달성하고, 지금은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동하는 기백.
성격이 거칠 것 같은 외모와 축구선수라는 특성상 잔근육이 자리 잡은 기백이건만.
그의 취미는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이번 벨기에행도 중요 일정을 앞두고 겨우 시간을 맞춰 다녀온 것이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쿨을 참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물론, 갈라쇼까지 감상하기 위해 간 것인데.
기백도 그곳에서 이안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는 경기 직전에 이안의 곡, <추격>과 <질주>를 애청(愛聽)할 정도로 이안의 팬이었다.
긴박한 선율을 들으면 심장이 벌써부터 뛰고, 경기 성적이 잘 나왔으니까.
콩쿨 결선에서 이안이 피에트에게 가르침을 주는 모습은 물론, 갈라쇼에서 이안의 피아노 반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 생각했는데…
‘박이안 단장님과 같은 비행기를 탈 줄이야!’
그것도 퍼스트 클래스 옆자리.
얇은 벽 너머에 바로 이안이 있다는 생각에 기백의 심장이 아이돌을 앞둔 소녀처럼 뛰었다.
세계적인 축구선수의 위치에서 수많은 사람의 선망을 받는 기백이었건만.
그런 기백에게도 이안은 우상이었다.
하지만, 차마 말을 먼저 걸 순 없었다.
갈라쇼 직후에 비행기에 오른 것 아닌가.
자신도 경기를 뛰고 난 직후에는 기진맥진한데, 이안 또한 피곤할 것이란 생각에 차마 먼저 다가갈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그것을 알고 있었는데.
몸은 우상을 마주한 직후 무의식적으로 이안을 바라보았다.
몇 차례 그것이 반복되었을 때쯤.
똑똑.
“혹시 용건이 있으십니까?”
노크와 함께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박이안 단장이었다.
우상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었다는 사실에 놀랍고 감격스러우면서도, 그보다 먼저 죄송스러운 마음이 먼저 떠올랐다.
기백도 비행기나 야외에서 과한 관심을 받는 게 힘들곤 했는데.
자신이 싫어하던 일을 자신이 한 꼴이었다.
“쉬시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선생님의 큰 팬이라…”
경솔한 행동에 폐를 끼쳐서 죄송하다고.
기백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기백의 사과에 이안은 괜찮다는 듯 반응을 보였다.
이안의 모토 자체가 모든 이들에게 음악을 펼치는 것이었으니까.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리 크게 기분 나쁜 일이 아니었다.
“염치없지만, 사인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조심스레 내민 종이와 펜이었는데도, 이안은 흔쾌히 기백의 사인 요청을 받아주었다.
게다가.
“저도 사진 하나 찍을 수 있을까요? 연기백 선수님.”
기백은 순간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다.
이안이 자신을 알고 있을 줄이야.
팬클럽까지 지니고, 전 세계 경기장에서 뛸 때마다 ‘GO! YEON!’이라는 함성을 듣던 기백이었건만.
이안이 자신을 알아봤다는 사실에 미소가 떨어지지 않았다.
***
20시간이 넘는 비행의 끝.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입국 수속과 함께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이미 공항에는 큰아버지가 에스코트를 위해 와 있는 상태.
입국 게이트를 나가려는데.
“헐! 박이안이다!”
한 사람의 외침과 동시에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수십에 가까운 카메라에서 촬영음이 쏟아짐과 동시에 사람들의 환호가 울렸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했듯.
환영 인사는 좋았으나, 단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죠?”
그야말로 인산인해(人山人海).
가득한 사람들 때문에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매번 출국 일정이 알려지면 사람들이 몰리는 탓에 이번에는 큰아버지 이외에 입국 소식을 전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 시도가 무색하게 사람들이 입국 게이트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인파를 차근히 살피자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카드들에 ‘연기백’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으니까.
‘연기백 선수 때문이구나.’
내 옆자리에서 한국으로 왔던 연기백 선수.
축구에 관심이 없는 나도 기백을 알 정도로 기백의 인기는 대단했다.
축구로 국위선양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단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축구 팬들을 비롯해 기자들까지 몰려들었으니 사람이 많을 수밖에.
잠깐 생각을 하고 있을 찰나.
입국 수속을 마친 기백이 게이트를 통해 밖으로 나왔다.
숱한 플래시 세례를 비롯해 기백의 이름을 부르짖는 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기백 또한 여유롭게 손을 흔들면서 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간단한 인사를 마친 기백은 곧바로 내게 다가왔다.
“단장님. 괜찮으시다면 저희와 같이 가시겠습니까?”
이미 한편에서는 경호 인력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기백이 움직일 수 있도록 길을 트는 경호원들.
홍해가 갈라지듯, 사람들이 양옆으로 움직였다.
수백에 가까운 사람들을 큰아버지 홀로 뚫기엔 역부족.
나는 짧게 감사를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입니다.”
감사하다는 말에도 기백은 그저 괜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되레 비행기에서 사인을 하고, 사진을 함께 찍은 것이 더욱 감사하다며.
자신을 거리낌 없이 대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덧붙였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뵙죠.”
“저야 영광이죠.”
은혜를 갚겠다는 말에 기백은 손사래를 치면서도 기대 어린 표정을 지었다.
언제든지, 나의 요청이라면 가능하다며.
원한다면 축구 티켓도 주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기백과 경호원들 덕에 편안하게 도착한 주차장.
나와 기백은 짧은 인사를 건네곤 서로의 차량으로 이동했다.
인파를 뚫고 도착한 차량.
단원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린다는 듯 호흡을 내뱉었다.
“아마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에 들어온 모양이다.”
큰아버지가 내게 태블릿을 건네며 말했다.
큰아버지의 말대로, 태블릿에는 올해 열리는 월드컵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한가득이었다.
세계 축구인들의 축제, FIFA 월드컵.
2002년에 이어 올해 월드컵은 바로 이곳, 한국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특히, 2002년에는 한국과 일본이 함께 월드컵을 열었지만, 이번 월드컵은 오로지 한국 단독 개최.
과거에 비해 위상이 올라갔다며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많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기백은 10년이란 시간 동안 국가대표팀 막내에서 주장이 된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그만큼 오랜 경력을 자랑함과 동시에, 팀 분위기를 이끌어간다며.
국내에서도 이번 월드컵에 대해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기백이 캡틴으로 있음과 동시에, 그사이에 수많은 축구 스타들이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었으니까.
이번에는 정말로 월드컵 트로피를 거머쥘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사람들의 기대 어린 게시글들이 태블릿에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
‘연기백 선수가 이렇게 녀석을 좋아할 줄이야.’
현철에게도 기백은 익숙한 사람이었다.
연이어 축구계를 휩쓸며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기백을 모르는 사람이 몇 없을 정도.
그런 기백은 이안에 대한 팬심을 감추지 않았다.
[연기백, ‘박이안 단장님의 음악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영양제’라고 각별한 팬심을 밝혀.]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 캡틴의 최애 플레이리스트는? 이안의 <추격>을 적극 추천!]
국가대표 주장의 발언과 함께 자연스레 이야기는 월드컵으로 흘러갔다.
20년이 지나 개최되는 대한민국 올림픽.
거기에 이안과 리히트 이야기가 더해지자 자연스레 사람들의 생각은 응원곡으로 넘어갔다.
└ 박이안 정도면 명곡 뽑지.
└ 리히트 곡이 뭐가 있긴 한가 봄. 운동선수 플레이리스트에 리히트 오케스트라 곡 하나씩은 있다더라.
└ 축구협회 뭐하냐. 빨리 초빙하자.
└ 올림픽 응원곡 그냥 리히트 오케스트라에 맡기면 안 되나? 그게 훨씬 나을 듯.
└ ㅇㅇ 협회장이 딱! 가서 함께 해달라고 요청해야지.
어느덧 온라인상에서는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월드컵 응원곡 참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안이라면 2002년 붉은 악마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라며.
그보다 더한 역사를 쓸 것이라는 확신에 찬 의견들도 많았다.
현철 또한 이 기회가 나쁘지 않았다.
월드컵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전역에 인기를 끄는 대회니까.
특히 응원곡은 단순히 이번 월드컵뿐만 아니라 다른 응원으로도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2002년에 만들어진 응원곡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명곡으로 불리며 올림픽, 아시안 게임 같은 국가 대항 대회에서 계속 나오곤 했으니까.
음악가로서 계속해서 회자되는 곡을 만들 기회를 얻는 것.
그것만으로도 좋은 기회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열렬한 반응에, 대한축구협회가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대한축구협회가 선택한 방법은 현철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진짜 오실 줄이야.’
이안과 현철, 민호, 그리고 손님.
네 사람이 있는 재단 사무실 분위기가 사뭇 묵직했다.
평소 현철은 물론, 민호도 다른 사람 앞에서 주눅 드는 법이 없었는데.
이번에 들어온 손님에게선 몸이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편안히 있으세요. 불편하면 다음에 다시 올까요?”
칼각이 잡힌 검은 양복 차림의 중년 남성.
너스레를 떠는 남성의 모습에서 묘한 아우라가 흘러나왔다.
그는 대한민국의 3대 그룹 중 하나인 제온 그룹의 대표이자, 현 대한축구협회의 회장인 태진이었다.
기업을 이끌어가면서도 운동에 관해 특별한 애정을 가졌던 그이기에.
태진은 국내 유수의 구단을 지닌 구단주이자, 대한 체육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우리 박이안 단장님의 명성에 사람들이 아주 아우성입니다.”
태진이 장난스레 토로하듯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대한축구협회 게시판과 전화를 통해 이안과 콜라보를 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한다고.
협회장이 움직이라는 댓글을 수도 없이 보았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친구가 그러더군요. 박이안 단장님은 결코 아랫사람을 움직여서 모실 분이 아니라고요.”
현철은 태진이 말하는 ‘친구’가 누구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태진이 친구라고 칭할 정도에, 이안에 대해 이리도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
국내 1위 기업, 서천 그룹의 대표인 필무밖에 없었다.
“그래서 직접 의견을 여쭤보러 왔습니다. 박이안 단장님. 월드컵 응원곡을 만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태진은 원한다면 억만금을 제시하면서 협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재계에서도 손꼽히는 제온 그룹의 수장이었으니까.
하지만, 태진은 돈 대신, 이안의 의견을 묻는 것으로 협상을 시작했다.
필무가 이안을 진지하게 생각하듯, 태진도 음악가로서 이안을 무척 존중했으니까.
게다가.
‘어떤 선택을 할지 무척 궁금하단 말이지.’
재계에서 세 손가락에 드는 제온 그룹의 대표이기에.
태진의 제안에 반응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였다.
무조건적으로 충성하듯 수락하는 사람과, 제온 그룹의 무게에 눌려 수락하는 사람.
그러나 태진이 보기에, 이안은 그 두 부류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태진의 말이 끝났음에도 이안은 한참 심사숙고하고 있었으니까.
젊은 거장이라는 타이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모습에.
태진은 처음으로 자신이 한 제안이 반려될 수 있을 것이란 긴장감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