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247화 (247/250)

247화

[리히트 오케스트라, 런던 올림픽에 이어 대한민국 월드컵 무대에 오르다!]

[대한축구협회장, ‘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리히트와의 콜라보 결정’.]

[국가대표주장 연기백. ‘이안 효과로 트로피 거머쥐겠다.’ 강한 의지를 밝혀 화제.]

소식은 빠르게 전해졌다.

이번에 열리는 대한민국 월드컵.

그 개막식 무대를 나와 리히트가 맡게 된 것이다.

개막식까지 남은 시일은 약 한 달.

그사이에 내가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새로운 곡이 필요하겠네.’

응원곡.

수차례 월드컵이 이어지면서 여러 월드컵 응원곡이 존재했다.

개중에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는가 하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곡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곡은 워낙 중독성이 좋은 덕에 이후에 나온 곡들이 전 세대의 곡을 오마주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곡이 그런 곡이었다.

과거 <영감>의 선율이 사람들의 얼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듯, 내가 만든 곡에서 영감을 받아 다른 곡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위대한 음악가가 할 수 있는 역량이었다.

다짐을 마친 나는 곧바로 곡의 로드맵을 짜기 시작했다.

처음 떠올린 생각은 어떤 곡의 형태를 띠게 할 것인가였다.

‘기본적인 형태는 후크송을 차용해야겠지.’

중독성 있는 리듬을 반복시키며 만드는 후크송.

응원곡뿐만 아니라 대중들을 매료시키는 광고 음악에서 많이 차용하는 것이었다.

중독성이 높아 사람들에게는 ‘수능금지곡’으로 알려진 경우가 많았지.

하지만, 단순히 리듬을 반복한다고 해서 후크송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람들을 매혹시킬 세련된 리듬이어야 하니까.

사람들이 처음 듣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악기의 개수가 다양한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특색을 생각하면 지금껏 한 작곡들 중 가장 난이도가 높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과하게 풍부해진 선율은 도리어 듣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야기하니까.

‘하지만 어려운 것이지,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

나는 차근히 눈을 감은 채 이미지를 떠올렸다.

시작은 응원곡에 주체가 될 축구선수들이었다.

내가 현재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듯.

축구선수도 지금의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시간과 노력을 사용했을 것이다.

단적으로 기백만 해도 국가대표 막내에서 10년이 지난 지금, 캡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으니까.

숱한 땀방울과 노력들, 부상을 딛고 필드를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어디까지나 이건 응원곡이니까.’

사람들이 즐겨 부르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곡은 응원곡이다.

응원곡을 통해 선수들에게 응원을 건넬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곡의 목표이자 존재 이유.

연주를 듣는 것만으로도 선수들의 가슴을 뜨겁게 불태울 무언가가 필요하다.

선수들의 가슴에 불을 지필 수 있다면, 대중들의 가슴은 말도 할 필요 없겠지.

‘거기에 이번 단독 월드컵에 대한 의미까지.’

이번 월드컵은 2002년과 달리 오직 한국 독자적으로 여는 월드컵이니까.

거기에 리히트 오케스트라만이 가진 특색.

국악의 선율을 넣는다면 더욱 한국적인 멋을 더함과 동시에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올 수 있으리라.

후크송적인 면모와 응원곡, 거기에 국악의 특색을 살리는 것까지.

쉽사리 섞이기 힘들 것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이미 내 머릿속에 감도는 가상의 악보에는 음표들이 차례로 맺히고 있었다.

마치 선수들의 땀방울이 떨어져 음표의 머리를 이루고, 선수들의 슛이 그리는 포물선이 줄기와 꼬리를 그리듯.

차례대로 음표들이 악보에 깃든다.

내가 지금 할 것은 그 악보를 손으로 옮기는 것.

나는 초안으로 만들어진 악보를 종이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 첫번째는 가장 상단에 제목을 적는 것.

처음부터 지어둔 이름 하나가 악보 상단에 새겨진다.

<결심>

이번 올림픽 응원곡이자, 22번째 자작곡이었다.

***

서울 올림픽 경기장.

6만에 달하는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에 붉은 물결로 가득 찼다.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붉은 옷을 입고 나타난 사람들에.

먼발치서 지켜보고 있던 기백은 감회가 새로웠다.

‘이 광경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2002년, 기백이 겨우 열 살 남짓이었을 때다.

한창 올림픽으로 한국 전체가 뜨거웠을 시기.

TV를 돌릴 때마다 붉은 물결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 또한 초등학교 시절 붉은 티를 입고 학교에 가지 않았던가.

안타깝게도 2002년 이후로는 큰 성과를 주지 못해 사람들의 관심이 식어가는 중이었는데.

자신이 주장으로 있는 상황에서 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다.

“그럼 지금부터! 대한민국 월드컵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진행과 함께 하늘 높이 폭죽이 쏘아졌다.

월드컵 개막식 또한 올림픽 못지 않았다.

상모를 쓴 사물놀이패에 이어, 여러 한국적인 면모를 보이는 무대들의 연속.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크게 원을 그린 채 강강술래를 보였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얼마나 발전했는지 보여주는 축제의 장.

그 클라이맥스를 장식할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거대한 무대 위에 올라온 채 등장하는 리히트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의 등장에 청중에서는 더욱 큰 함성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치 개막식의 끝이자, 클라이맥스를 기다렸다는 듯.

기백 옆에 있던 선수들도 몇몇 환호를 보냈다.

커다란 전광판에 이안의 모습이 비치고, 인사를 건네자 사람들의 박수가 월드컵 경기장 가득 메웠다.

‘드디어…!’

리히트 오케스트라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기백은 터져 나오려던 탄성을 겨우 참았다.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두 번째 월드컵이자, 자신이 국가대표 주장으로 나서는 월드컵.

자신이 참여하는 경기에 우상이나 다름없는 이안이 응원곡을 해준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심장이 꿈틀댔다.

이안은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오케스트라를 향해 몸을 돌리고 연주를 준비할 뿐. 이윽고 이안은 설명 대신,

단지 이안이 움직였을 뿐인데 사람들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적막마저 흐르는 경기장.

이안의 손이 움직이자 오케스트라의 <결심>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작은 북이었다.

마치 월드컵의 포문을 열듯 엄숙하게 울려 퍼지는 북소리.

그다음 팡파르를 연상케 하는 금관악기들이 차례대로 소리의 볼륨을 더한다.

차례대로 음색을 더해가는 악기들의 향연에.

점차 기백의 고개가 움직였다.

‘벌써부터 신나는데?’

이제 겨우 10초가량이 지났을 뿐이다.

그럼에도 기백은 물론, 관객석에서도 붉은 물결이 일듯 출렁이는 것이 보였다.

모든 사람들이 점차 리듬에 빠져들려던 그때.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진가가 고스란히 펼쳐졌다.

‘역시 리히트 오케스트라하면 국악이지.’

리히트 오케스트라만이 펼칠 수 있는 국악과 양악의 조화.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두 선율이 완벽한 하나가 되어 나아간다.

게다가 그 흐름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국악만으로 흥이 날까 생각했건만, 리히트는 그러한 편견을 보기 좋게 깨뜨렸다.

국악 고유의 흥을 살림과 동시에, 양악의 팀파니와 금관악기들이 더해지며 더욱 큰 시너지를 일으킨다.

지금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하려던 찰나.

연주를 듣던 기백의 가슴 한편에 묘한 기운이 일렁였다.

‘이건 무슨 감정이지?’

그동안 이안의 곡을 들으면서 수많은 생각을 했던 기백이었다.

예전부터 이안과 리히트의 음악은 ‘보이는 음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추격>을 들으면서도 끝없이 뛰는 자신이 떠올랐는데.

이번 <결심>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을 선사하고 있었다.

곡의 제목처럼, 기백의 머릿속에서는 그동안 자신이 했던 결심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처음 축구선수가 되기로 다짐했던 결심.

막내에 불과했던 자신이 주장의 위치에 오를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했던 결심.

한국을 넘어 세계 무대를 제패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한 결심까지.

리히트의 선율은 그 결심들을 알아보는 듯 심장을 울림과 동시에, 묘한 위로를 전하고 있었다.

마치 리히트 모두가 기백의 수고를 알아주기라도 하는 듯.

그러니 멋진 모습을 보여주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이게 리히트가 만든 응원곡…’

그동안 국내, 국외를 막론하고 숱한 응원곡을 들었던 기백이었건만.

리히트가 만든 응원곡은 여태 들었던 곡들의 장점을 모두 합친 것만 같았다.

따라부르기 쉬울 뿐더러, 벌써부터 멜로디가 머릿속에 남을 정도로 중독성이 있을 정도.

처음 클래식을 생각했을 때 이토록 가슴이 뛸 줄은 몰랐는데.

어느덧 경기장을 뛰고 온 것처럼 뛰는 심장에 기백의 입가에 미소 지어졌다.

‘가사만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반복적인 선율에 가사라도 붙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던 찰나.

기백의 생각이 꿰뚫리기라도 한 듯, 누군가 무대 위에 등장했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박수로 일관하던 청중들이 일제히 함성을 터뜨렸다.

평정을 유지하던 기백도 어느덧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기백을 비롯해 대한민국에서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행사의 신이 깜짝 등장했으니까.

***

태진은 경기장 스카이박스에서 이 모든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열광의 도가니.

지금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리 표현하리라.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선율, 사람들의 박수 소리와 함성.

그리고 깜짝 등장한 사람이 더해지자 경기장은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 되어 있었다.

‘행사의 신까지 초대하다니.’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앞에서 끝없이 외치는 붉은 옷의 사나이.

해외를 <서울패션>으로 물들이며 K-pop을 전파한 사람이자, 국내에서 행사의 신이라고 불리는 재익이 춤사위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재익이 부르는 가사는 단 하나였다.

‘대한민국.’

분명 4분에 걸친 음악에 재익이 내뱉는 단어는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리히트의 연주가 2분가량 흘러나온 후 등장하는 재익의 가사였다.

그 짧은 시간 보여준 것이 다인데, 어느덧 태진은 자신도 모르게 입밖으로 ‘대한민국’이란 단어를 반복해서 내뱉고 있었다.

‘이래서 필무가 그렇게까지 말했군.’

서천그룹의 수장, 필무가 그러지 않았던가.

이안은 세상에 없는 곡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차마 건드릴 수 없는 것이라고.

그 말을 들은 태진은 곡 구성에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

흔히 외주를 맡기면 검토를 하고, 피드백을 전달하기 마련인데.

깐깐하기로 소문난 태진은 이번만큼은 그 어떠한 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지 못했다.

이미 처음 들은 <결심>은 최고라는 말로도 표현하기에 부족했으니까.

‘대체 이런 곡은 어떻게 만든 거야?!’

후크송이 가지는 반복적인 선율.

클래식에도 일정한 화음을 반복하는 형식미가 있었지만, 후크송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반복이었다.

태진도 클래식에 조예가 많았던 터라 그 법칙을 모르지 않았다.

그 법칙을 클래식 선율에서 찾는 것이 클래식 감상의 묘미거늘.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들을 때는 그조차 할 수 없었다.

분석하고, 선율을 찾기엔 이미 리히트의 선율에 매료되어 있었으니까.

근엄하게 서 있던 태진도 어느덧 <결심>에 빠져 리듬을 타고 있었다.

‘이 광경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아무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느덧 관객석의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난 채 뛰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타오르는 불길처럼 보였다.

2002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4강 신화를 이룩했던 그때.

태진은 그때로 시간 이동을 한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태진의 머릿속에서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응원곡은 모두 이것이겠군.’

그동안 만들었던 응원곡들 중 비견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다음 월드컵에도, 그다음에도, 어쩌면 다음 한국 월드컵이 돌아올 때까지.

리히트의 <결심>은 절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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