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249화 (249/250)

249화

월드컵 공연을 끝낸 지 2주가 지났을 무렵.

휴가를 끝내고 온 단원들을 향해 나는 짧게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월드투어. 이번에 저희가 진행할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내 선언에 단원들이 놀라운 기색으로 술렁였다.

월드투어.

세계 각국을 돌며 음악을 펼치는 일이었다.

전 세계에 있는 팬들을 직접 만나며 소통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팬층을 만드는 일이기도 한 월드투어.

여타 굵직한 오케스트라들이 10주년, 30주년을 기념하여 움직이는 것을 고려하면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나 또한 이번 일정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장소 대관부터 모든 것을 꾸린 것이 나였으니까.

‘소리를 펼치기에 최적의 공간들.’

이미 내게 연주회를 열어달라는 요청은 수백도 넘었다.

일전에 연주를 가졌던 카네기홀에서도 재차 러브콜을 보낸 것을 비롯해 해외 유수의 극장에서 막대한 혜택을 준다고 했지.

그중에서도 소리를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곳을 선정하는데 2주, 대관 절차를 밟는데 2주, 일정을 조율하고 관련 준비를 모두 마치는데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예상 일정만 6개월이 넘는 초장기, 대규모 프로젝트.

리히트 오케스트라를 만들 때부터 염두에 뒀던 것을 이젠 펼칠 시간이었다.

‘이제 완전히 녹아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단원들의 개인 기량은 이미 출중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은 것은 물론, 오디션에서도 자신의 특색을 여지없이 보여준 연주들이었으니까.

내가 한 것은 그저 그들의 디테일을 잡아내고, 끌어올리지 못한 미세한 차이를 끌어올리게 한 것뿐.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내가 몇 마디 건네지 않아도 스스로 소리의 특이점을 찾아내고 선율을 만들어가곤 했다.

‘어느덧 완전히 정립되었지.’

개인의 기량은 물론, 사조에 녹아드는 것까지.

지금의 리히트는 현재 그대로 완성에 가까워져 있었다.

현악과 관악, 타악들의 구성을 비롯해 양악과 국악의 신묘한 조화까지.

어느 하나가 튀어 나가고, 약화되는 걱정은 없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

악기의 구성과 숫자까지 모든 것이 구성에 알맞다는 판단이었다.

뽑을 때부터 이를 염두에 둔 것도 있지만, 그만큼 단원들이 하나의 악기처럼 완벽한 호흡을 자랑한다는 것이겠지.

‘이제 단원들은 준비가 되었다.’

월드투어는 내 오랜 계획 중 하나였다.

사조를 펼치고, 보다 많은 이들에게 직접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서는 월드투어만 한 것이 없었으니까.

모두가 완벽하다고 칭송하던 리히트를 3기까지 채워가며 소리를 완성한 까닭은 바로 여기 있었으니까.

보다 제대로 된 소리를 내고, 사조를 널리 퍼뜨릴 수 있는 악기들의 구성.

그리고 내 생각을 온전히 녹여낼 수 있는 연주 실력까지.

삼위일체(三位一體)가 완성된 지금이 월드투어를 진행하는데 절호의 타이밍이라고 확신했다.

이미 대관할 곳들과의 협의는 끝났다.

일정들 또한 단원들의 연습을 비롯해 컨디션까지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도록 편성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였다.

“혹 일정이 힘들 것 같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무려 6개월이다.

반년에 달하는 시간이니 분명 단원들에게도 선택의 기회를 주어야 할 터.

억지로 연주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되레 억지로 월드투어를 이끈다면 그 소리는 분명 어느 한편에 틀어짐이 발생할 테니까.

그렇게 될 바에, 미리 불참 인원을 확인하고 선율을 바꿔 균형을 맞추는 게 더 나았다.

그것을 미리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었는데.

한참이 지나도 단원들은 손 하나 들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았다.

끝내 손을 든 한 사람, 바로 요한나였다.

“아무도 빠질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요?”

요한나가 빙긋 웃으며 말하자 단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단원들의 표정이 묘하게 낯이 익었다.

월드투어를 고민하고, 회의하고, 준비할 때 내 모습이 저랬던 것 같은데.

사조에 물든 단원들의 모습은 어딘가 나를 닮아있었다.

“그럼. 연습을 시작해보도록 하죠.”

더 이상 설명할 게 뭐가 있을까.

준비된 단원들과, 곡이 있고, 연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손을 들자 단원들이 자연스레 악기를 고쳐 쥔다.

Allegro Vivace.

단원들의 생기를 가득 담은 빠르고 유려한 선율이 체임버홀을 가득 메운다.

***

서울을 시작으로 펼쳐진 리히트 오케스트라 월드투어.

투어 소식이 전해지는 것만으로도 전 세계의 관심이 뜨겁게 몰아쳤다.

[리히트 오케스트라. 월드투어 계획을 공개.]

└ 월드투어? 어디야. 당장 간다.

└ 흐엉엉 이안 센세. 믿고 있었다구요.

└ 2년 된 오케스트라가 월드투어? 이건 리히트라 가능한 거다.

└ 예매 오픈 언제부터인가요?

시작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았던 월드투어이기에.

첫 시작을 끊는 공연에만 수만 명의 관객이 몰려들었다.

심지어 이안의 뜻으로 온라인 중계까지 진행되었는데.

첫 공연부터 매진 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10개 국가, 16개 도시에서 이뤄진 월드투어.

이안이 직접 고른 만큼, 그 공연장도 이루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세계 최고의 음악 공연장이자,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홈그라운드인 무지크페라인을 비롯.

1893년부터 명맥을 이어온 런던의 로얄 앨버트홀.

고대 로마 때 만들어진 원형극장에서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탈리아 베로나 아레나까지.

매번 연주회가 진행되는 곳마다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미국 언론, ‘리히트의 음악은 장르를 뛰어넘는 새로운 음악이다.’]

[온라인 중계를 했음에도 모든 공연 매진! 이것이 바로 리히트의 품격이다.]

[리히트 오케스트라. 실시간 온라인 시청자 100만 명으로 기네스 세계 신기록 돌파.]

모든 공연장이 매진 행렬.

도시를 지날 때마다, 공연 하나를 끝낼 때마다 수백, 수천 개에 달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어떤 평론가는 ‘리히트의 투어는 하나의 세계가 움직이는 것과 같다.’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심지어 음악에 대한 칭송을 비롯해 리히트가 다녀간 호텔, 단원들이 착용한 옷과 액세서리까지 매번 메스컴을 통해 퍼져나갈 정도.

리히트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넘어 세계 유행을 선도한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어느덧 6개월이 흘렀을 때.

한국은 추운 겨울의 끝자락에 닿아있었다.

‘참 오래도 돌아왔네.’

현철은 입에서 나오는 하얀 입김을 보며 생각했다.

반년에 달하는 일정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처음 출국할 때 반팔을 입었지만, 지금은 패딩을 입어야 할 정도였으니까.

“이제 드디어 마지막이네.”

리히트 재단의 이사장이자, 현철의 줄리아드 스쿨 동기.

민호가 오랜만에 높임말을 하지 않은 채 현철에게 다가갔다.

“마지막 콘서트도 역시 매진이더라.”

16개 도시에서 진행한 월드투어의 마지막.

돌고돌아 서울로 돌아온 마지막 콘서트였다.

공연장 또한 여타 국가에서 한 곳과 절대 뒤처지지 않았다.

최근 완공된 서울 아레나.

국내 최초, 유일 음악 특화 전문 공연장이자, 좌석이 무려 2만 석이 넘는 거대 공연장이었다.

평소에는 재단에서 업무에 집중하던 민호였건만.

마지막 콘서트만큼은 직접 보기 위해 온 것이었다.

무대 위에선 리히트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한창 만개(滿開)하고 있었다.

첫 오케스트라곡 <항해>를 시작으로 최근 월드컵 무대를 위해 만들었던 <결심>까지.

이안의 단독 피아노곡이었던 다른 곡들도 이안의 손에 의해 오케스트라로 재탄생되어 퍼져나가고 있었다.

곡이 끝날 때마다 터져 나오는 함성과 기립 박수는 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마치 이안과 리히트 오케스트라가 수만에 달하는 사람들을 조종하는 것 같았으니까.

“너도 고생 많았다.”

현철이 무대를 물끄러미 보고 있던 민호에게 말했다.

직장 동료가 아닌, 친구로서 한 말이었다.

민호가 리히트 재단에 들어와서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현철이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안이 연습과 곡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이 바로 민호였다.

보다 편하게 확인하고, 무대를 선택할 수 있게끔 자료 조사를 하고, 보고서 형식으로 말끔하게 바꾼 것이 모두 민호의 작품이었다.

이사장의 위치에서는 좀처럼 하지 않는 일이었건만.

하지만, 민호의 생각은 달랐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는걸.”

오히려 민호는 이안과 현철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사업을 하면서도 가슴 한편에는 음악에 대한 열망이 계속해서 남아있었으니까.

그런 상태에서 리히트를 만난 것은 천운(天運)이나 다름없었다.

그동안 굵직한 사업체에서 일했음에도 리히트에서 마주하는 거장과 거물들은 본 적이 없었으니까.

매번 새로움을 주는 리히트 오케스트라와 이안에, 되레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이사장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좋은 자리에서 볼 수 있었겠어?”

민호가 장난스레 말하며 분위기를 바꿨다.

티켓 오픈 5분 만에 2만 석이 넘는 자리가 모두 매진되었으니까.

스태프로 무대 앞에서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민호의 뜻에 현철이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철혈의 마에스트로인 염라조차 녹여버린 것이 바로 이안이었으니까.

현철과 민호.

음악가로서 이안을 바라보는 두 눈이 무대 위에서 지휘를 하는 이안에게로 향해 있었다.

***

“모두 긴 시간 음악을 들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 말과 함께 사람들이 아니라는 듯 함성소리를 보냈다.

여전히 사람들의 목소리에서는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열의가 느껴졌다.

“이제는 모든 일정을 마치고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내 담담한 말에 청중에서는 아쉬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

세계 10개국, 16개 도시에서 모두 매진 행렬을 기록한 콘서트, 장장 6개월에 달하는 월드투어.

방금 연주한 <결심>을 끝으로 그 긴 일정의 마무리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여타 공연에서는 모두 거침없이 작별 인사를 전했건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여러분들께서 아쉬워하는 것을 아주 잘 압니다. 그래서. 마지막인 만큼, 그동안 리히트를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을 위해 선물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선물’이라는 말에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다시금 터져 나왔다.

무엇이든 좋다는 듯 환호를 보내는 사람들.

나는 긴말을 덧붙이는 대신, 곧바로 계획을 행동으로 옮겼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악기들로 가득했던 무대.

지금은 온데간데없이 오직 피아노 한 대만 무대를 채우고 있었다.

음악가는 음악으로 말해야 하니까.

내가 준비한 선물 또한 음악이었다.

피아노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자 사람들의 기대 어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사이, 나는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생각이 떠오른다.

한 걸음.

처음 전생이 떠올랐을 때가 생각났다.

연주에 대한 의미를 잃어버린 나와, 그 순간에 마법 같이 찾아온 전생의 기억과 악보가 떠오르는 신묘한 힘.

주변의 걱정에도 피아노를 잡았던 것이 떠올랐다.

두 걸음.

<환생>을 비롯해 내가 만든 곡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마치 금빛 실을 이어 오선지를 만들고, 그 위에 점을 찍어 만든 듯한 가상의 악보들.

그동안 만든 22개의 곡과 더불어, 이번에 연주할 23번째 곡이 떠올랐다.

세 걸음.

내 시야에 백스테이지에 있던 단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내 쪽을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분명 모든 이들에게 음악을 전파하려는 음악가의 눈빛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객석에 앉은 청중들과 같은 표정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걸음.

자리에 착석한 나는 객석을 훑었다.

‘어느덧 여기까지 왔구나.’

분명 처음 피아노 콩쿨에 참여했을 때는 100여 개 좌석이 채 다 채워지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2만에 달하는 좌석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3년.

그사이 분명 많은 것이 바뀌었고, 나 또한 많이 바뀌었다.

이번에 내가 연주할 곡 또한 그런 것이었다.

그 모든 시간을 갈무리하고.

가족들에게, 단원들에게, 청중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

그걸 위해 만든 곡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건반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건반 위에 손가락을 올리자 처음 건반에 손을 올렸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내려놓기 위해 연주를 했었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모두에게 선언하기 위해 만든 곡이자.

이번 월드투어의 종지부를 찍을 23번째 자작곡.

<위대(偉大)>가 처음 청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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