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250화 (완결) (250/250)

250화

Allegro ma non troppo.

빠르고 경쾌하지만 너무 지나치지 않게 하라는 지시어에 맞게 절제력 갖춘 손가락이 움직인다.

마치 <환생>의 도입처럼 어린아이의 뉘앙스를 풍기는 시작.

하지만, 과하게 어려 보이지 않게 절제력이 깃든 선율이 서울 아레나에 번져간다.

제1악장.

신비로움이 깃들 듯, 돋보이는 음들이 터져 나오며 박자감을 더한다.

군데군데 섞여 있는 불협화음은 실수 같으면서도 매끄럽게 선율에 포함된다.

크게 번져있던 소리는 점차 하나로 통일되고, 화음을 이뤄가며 비로소 완전해진다.

마치 내가 처음 전생을 기억해내고 손가락을 적응시키지 못했던 것처럼.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선율이 고스란히 흘러나온다.

‘그땐 이 자리에 오를 줄은 몰랐는데.’

어디 상상이나 했을까.

바이올린에 대한 열의를 잃고, 피아노를 잡았던 내가.

이제는 수만 명의 관중 앞에서 지휘를 하고, 피아노를 치게 될 줄을.

큰아버지가 말했듯, 전공생이 악기를 바꾸고 성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해, 나 또한 굳은 오른손을 보다 유려하게 움직이기 위해 수없이 연습에 연습을 더했다.

그때를 그대로 표현하듯.

왼손의 반주를 주력한 선율이 1악장을 가득 메운다.

2악장에 들어서면 오른손이 개화(開花)한듯 더욱 화려한 연주들이 이어진다.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자작곡들이 떠오른다.

때로는 극도로 클래식스러운 곡을 만드는가 하면, 때로는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던 곡들.

큰아버지의 은퇴식을 위해 만든 <염라>를 비롯.

카타리네 스튜디오와 협업한 <환상>과 <추격>,

차량 배기음을 활용한 <질주>,

전생의 이안 로크실트가 미완성한 <죽음>,

베토벤의 미완성곡, <조우>,

북한에서 연주한 <평안>,

바티칸에서 울려 퍼진 교황의 행진곡, <동행>까지.

내가 피아니스트로서 이름을 알렸을 때의 곡들이 오묘하게 섞여들어 가듯 나열된다.

각자의 색채를 가진 곡들이 하나로 섞여들어 가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상의 악보는 마치 은하수처럼 반짝였다.

‘나 혼자만 이야기하던 음악을 이젠 여럿과 함께하고 있지.’

오케스트라의 소리들을 한꺼번에 표현하기 위한 10개의 손가락이 한꺼번에 건반 위로 떨어진다.

3악장의 이야기는 리히트를 창설하고 난 이후를 담고 있었다.

2악장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만들었던 오케스트라 곡들의 미묘한 매쉬업(Mash up)들.

언뜻 들으면 <항해> 같다가도, <개화> 같다가도, <갈등>, <재회>, <우주> 같은 선율들이 마치 원래 하나의 곡이었던 것처럼 펼쳐진다.

Allegro con brio.

의지를 가득 담아 힘있게 뻗어나가는 선율이 아레나를 가득 메운다.

나뿐만 아니라, 매번 나를 따라준 단원들의 활기참을 더하기 위한 선율이 더해진다.

오케스트라와 함께하여 더욱 구체화하고, 널리 만들어낸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사조.

당장이라도 이미지가 떠오를 듯 세세하고 뚜렷한 감정 표현이 건반을 통해 방출된다.

그 선율에 감응이라도 한 듯.

백스테이지에서 보고 있는 단원과, 가장 앞자리에서 내 연주를 바라보는 내 지인들, 그리고 청중들까지 일제히 크게 숨을 들이켠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오르막세를 형상화하듯 뻗어나가는 글리산도.

저음에서 고음까지 말이 질주하듯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인다.

이제 대망의 하이라이트.

‘나의 결심을 보여줄 차례.’

이번 곡의 진정한 클라이맥스가 나타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보통 클래식의 클라이맥스는 3악장에 있기 마련이다.

모든 이야기가 발단과 전개를 거쳐 절정에 흐르듯, 클래식 또한 그러니까.

하지만 내 음악의 클라이맥스는 그다음, 4악장에 있었다.

손가락이 4악장으로 내디뎠을 때.

<위대>를 만들며 떠올랐던 생각이 다시금 주마등처럼 흘러들어왔다.

[위대한 음악가, 박이안. 이번에도 새로운 클래식 계보를 써 내려가다.]

[세계 각국 음악 평론가들. ‘이안은 가히 위대하다 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표현.]

[위대한 피아니스트에서 위대한 지휘자로. 박이안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

.

.

위대하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표현했다.

사실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내게 오랜 숙원이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음악을 잡으면서 내 머릿속을 떠나가지 않던 생각이었으니까.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

위대한 음악가가 되고 싶다.

전생의 기억을 넘어.

그저 내가 연주하고 싶은 곡을 연주하고,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음악으로써 승화시킨다.

보이지 않는 예술을 사람들에게 보이게끔 하고, 누가, 언제 들어도 내가 만든 곡임을 알도록 만드는 것이 내 목표였다.

그 또한 사람들이 이뤘다고 말하곤 했지.

내가 만든 곡, 내가 하는 연주, 내가 이끄는 오케스트라를 향해 ‘보이는 음악’을 한다고 하는가 하면.

나의 곡들에는 누구도 닿을 수 없는 묘미가 들어가 있다고 했으니까.

이미 내게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것이 이뤄진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고, 목표를 달성했다고 해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베토벤의 곡이 그렇듯, 슈베르트의 곡이 그렇듯, 리스트의 곡이 그렇듯.

그들의 곡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멈추지 않으니까.

그런 의미를 모두 담은 곳이 바로 <위대>였다.

제목을 <위대>라고 지은 것은 사람들이 내게 위대하다고 말하는 만큼, 그 칭호를 잊지 않겠다는 나의 굳은 다짐.

결코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말이 아닌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

내 손가락이 그 어떤 때보다 빠르게 곡을 펼쳐낸다.

Adagio religioso.

침착하고, 경건하게.

선언문을 읽듯 음표들이 천천히 전진한다.

마치 굳건한 발걸음을 한 발자국씩 나아가듯.

다소 느리지만, 엄숙한 기세가 피아노에서 퍼져 나온다.

‘앞으로 내가 이럴 거니까.’

억지로 인기를 위해 곡을 뽑아낼 생각도.

단원들을 혹사시켜 가며 급진적으로 나아갈 생각도 없다.

지금 내가 하는 것처럼, 영감을 얻으면 그에 맞는 곡을 만들고.

오케스트라와 함께 그 음악을 세상에 펼친다.

평가는 평론가와 대중들의 몫으로 남겨둔 채 나의 길을 가는 것.

그것이 음악가로서 내 소명을 다하는 방법이다.

그 뜻을 모두 담은 4악장의 <위대>가 끝났을 때쯤.

내 이마에는 격렬했던 연주를 증명하듯 땀방울이 가득 맺혔다.

나는 빈 악보대를 바라보면서 후련하게 숨 한 모금을 내뱉었다.

그 숨소리를 기폭제 삼아.

환호성이 당장이라도 서울 아레나의 천장을 뚫을 듯 치솟아 올랐다.

월드투어의 마지막 공연.

6개월간의 대장정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

***

폴란드 바르샤바.

국립 필하모닉 콘서트홀에서는 화려한 연주가 한창이다.

선두에 있는 피아노를 비롯해 그 옆을 감싸듯 전개되어 있는 오케스트라의 향연.

피아노 분야에서는 최고로 높은 권위를 가진 대회, 쇼팽 콩쿨의 결선이 진행되고 있었다.

TV 중계 화면으로 결선을 바라보던 중.

내게 익숙한 사람이 등장했다.

-다음 참가자. 북한의 장.만.복.-

북한의 천재 피아니스트, 장만복.

내가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옹알이에 가까운 말을 하던 6살 꼬마였는데.

녀석 또한 어느덧 어엿한 18살 소년으로 성장해 쇼팽 콩쿨의 문을 두드렸다.

짜리몽땅했던 손가락은 몰라볼 정도로 길어져 만복의 장기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만복이 선택한 쇼팽의 곡은 .

과격하지 않은 음들의 전개.

빠르면서도 간결하고, 협주에 어울리게끔 절제된 선율들이 콘서트홀을 울린다.

화려하게 터져 나가는 선율에 따라 사람들이 헉 소리를 낼 듯 숨을 크게 들이쉰 채 내쉬지 못했다.

마치 만복이 던진 올가미에 걸린 것처럼.

몸을 앞으로 내민 관객들은 만복의 연주가 끝나고 나서야 등을 등받이에 붙였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만복의 연주를 생각하면 큰 발전 있었다.

어린 피아니스트의 연주에 튀는 것이 많았던 것이 잡힌 것을 비롯해 절제된 선율이 클래식 특유의 정형미를 살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기다리는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다음 참가자. 대한민국의 윤.현.민.-

만복에 이어 현민의 출연.

올해 쇼팽 콩쿨에서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현민이었다.

10년 전, 18살에 퀸 엘리자베스에서 우승한 윤기에 이어, 이번 쇼팽 콩쿨에도 새로운 괴물 신예가 등장했다며 세상 사람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일명, ‘괴물 신인’이라고 불리는 주인공.

8살에 불과했던 현민이 어느덧 18살이 되어 콩쿨장에 서 있었다.

유리구슬처럼 은은하게 건반을 타건하는 것이 특징인 곡.

앞서 만복의 기교의 대명사였다면, 현민의 곡은 부드러움의 대명사였다.

‘부드러운 강함’이라는 아이러니한 단어를 아이러니하지 않게 만드는 연주.

연한 피아노 선율들이 관현악의 음색을 감싸더니 무척 온화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미 황홀경에 빠진 사람들.

현민의 선율에 매혹된 사람들의 표정들이 카메라에 잡힌다.

‘많이 늘었네.’

내가 처음 보육원에서 현민을 만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현민을 후원한 지 10년이 흘러 있었다.

남다른 음감에 힘입어, 현민은 다른 사람보다 빠른 속도로 피아노를 습득했다.

새하얀 건반 위에 계이름이 쓰여 있다고 했던가.

그걸 고스란히 치는 식이라고 얘기했었지.

현민의 장기는 모두에게 편안한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마치 과거에 일상적인 소리를 음악으로 바꿔 표현했듯.

현민은 사람들이 가장 편안해할 연주 스타일을 알고, 이를 고스란히 현실로 이끌어왔다.

몇차례 과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조언을 듣자마자 실행에 옮기는 현민의 모습에, 요한나 또한 놀라운 기색을 보였었지.

“단장님이 어렸다면 이랬을 것 같아요.”

곡을 습득하고, 선율을 창조하는 실력이 보통내기가 아니라며.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나와 같이 젊은 거장으로 이름을 날릴 것이라고 표현했다.

현민은 요한나의 말을 스스로 증명이라도 하듯.

어린 나이에 빠른 속도로 콩쿨을 제패해나갔고, 어느덧 쇼팽 콩쿨 결선 무대에 올라 있었다.

어느덧 두 사람의 연주가 끝나고, 이제 수상 발표만 남기고 있었다.

두 사람의 연주 모두 좋았다.

각자의 개성을 살린 것은 물론, 10년 넘는 세월 동안 갈고 닦은 것이 보이는 연주들.

무엇보다 실제로 감정을 담은 듯, 연주를 하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졌으니까.

듬직한 면모가 보이는 현민의 선율에서는 마치 담담하게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장남의 모습이,

반대로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채 연주를 이어가던 만복은 화려한 곡예를 펼치는 서커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두 사람 중 누가 상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수상 발표에 앞서 두 후보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데요.-

잔망스런 사회자의 진행에 사람들은 감탄하는 박수를 쳤다.

마침 수상 후보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는 듯.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을 향했다.

처음 입을 연 것은 현민이었다.

-아마 상을 받게 된다면, 저에게 처음 멜로디언을 선물해주셨던 스승님께 가장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스승님, 잘 계시죠? 저 여기까지 올라왔습니다!-

연주할 때는 근엄함마저 느껴지는 표정이었는데.

마이크를 잡은 현민은 영락없이 18살 소년이었다.

특유의 재치 있고 밝은 성격이 그의 말에서 고스란히 흘러나왔다.

현민의 말에 청중들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을 정도.

나 또한 현민의 밝은 미소에 화답하듯 작게 웃었다.

다음 마이크를 잡은 것은 만복이었다.

당찬 목소리와 함께 그는 자신의 스승인 모란봉악단의 단장, 향란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거기에 북한 특유의 당에 대한 찬사까지.

이야기가 끝났으리라 생각하던 찰나, 만복이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한 분 더. 내래 꼬맹이일 때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께도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선생님.-

아마 직접 내 이름을 거론할 순 없었을 테니.

하지만, 뭉클해 보이는 만복의 눈망울을 보니, 그의 뜻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수상자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카메라 너머로 긴장한 사람들의 시선이 가득 보였다.

현민과 만복, 만복과 현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각자 응원하는 피아니스트를 향해 소리 없이 응원하고 있었다.

사회자가 준비된 카드를 열고.

막 쇼팽 콩쿨의 우승자를 공개하려는데.

징징징–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TV를 음소거한 채 전화를 받았다.

큰아버지의 목소리가 천천히 흘러들어왔다.

어느덧 환갑을 넘긴 큰아버지는 이제 현장 업무 대신, 재단 내에서 매니저들의 교육과 총괄에 힘쓰고 있었다.

고령에 힘에 부칠 만도 하건만.

자신이 즐겁다며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고 아버지가 말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염라라고 불리는 그 성격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이안아. 나이아가라 폭포 측에서 공연 인가가 났다는데.-

세계 3대 폭포로 손꼽히는 곳이자,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걸친 나이아가라 폭포.

물기운을 가득 담은 신곡을 발표하기 위한 장소로 생각한 곳이었다.

여러 안전 문제로 재단 측에서 오랫동안 조정을 하다가 드디어 해답을 찾았다고.

공연 가능 소식에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준비하도록 하죠.”

이미 곡은 준비되었다.

단원들 또한 새로운 곡에 대한 대비를 마친 상태.

재단을 통해 미국행 계획까지 짜뒀으니 이제 단원과 출발할 일만 남았다.

전화를 끊고 TV를 봤을 땐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수상자 발표가 끝난 것이겠지.

하지만, 내게 누가 쇼팽 콩쿨에서 우승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쇼팽 콩쿨 우승을 떠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릴 게 뻔했으니까.

나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그들이 펼치는 음악을 보면 그만이다.

며칠 뒤.

나를 비롯해서 모든 단원들이 공항으로 모였다.

음악을 위해 모인 80여 명의 단원들.

요한나와 선화, 서령, 루이사, 아람, 에비게일까지.

10년이라는 긴 시간에도 단원들은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리히트라는 이름으로 함께 해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이들은 나와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연주를 할 예정이었다.

“그럼 가보죠.”

내 말에 단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출국 게이트로 향했다.

지금도, 앞으로도 내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위대한 음악가로서 음악을 보여준다.

변치 않는 그 마음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시작부터 천재 피아니스트>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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