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3화 (3/230)

〈 3화 〉 1. 애쉬 론모어(2)

* * *

“컥!”

“미, 미친 칼잡이…!”

“어떤 새끼가 미친 칼잡이래.”

은근한 잿빛 머리칼에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진청색의 눈동자. 그것은 이미 슬럼가에서 전설이 된 한 해결사의 것이었고, 간 크게도 그 스타일을 따라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까 그 눈에 띄는 색깔이 보인다면 ‘애쉬 론모어’ 본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둘러싼 63구역 유흥가의 어느 영업장 앞, 애쉬는 정신을 잃은 채 바닥을 구르는 몇몇 쓰레기들을 툭툭 발로 치우곤 아직 서있는 놈들에게 고갯짓했다.

“뭐해? 빨리 안 데려가고.”

“고, 고맙다.”

남자와 그 동료들은 흔해빠진 ‘두고 보자’라는 말 대신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동료를 끌고 갔다.

애쉬 론모어라는 해결사의 위치는 일개 양아치 따위가 복수를 떠들 수 있을 정도로 낮은 곳에 있지 않았다.

인파 사이로 사라지는 놈들을 한 번 흘긴 애쉬가 영업장의 주변을 둘러싼 행객들에게 말했다.

“뭐하쇼, 갈 길들 안가고. 영업 방해니까 길 좀 터봐.”

“오오….”

그와 영업장을 둘러싸고 감탄하며 싸움을 구경하던 이들의 인파가 서서히 흩어졌다.

애쉬는 버릇처럼 들고 다니는 검을 칼집 채 어깨에 대충 걸치곤 자신에게 다가오는 고용주에게 물었다.

“저런 양아치들이 자주 오나?”

“…가끔 멋모르는 놈들이 기어 나오긴 합니다.”

갱이라고 부르기에도 모자란, 딱 양아치란 말이 어울리는 쓰레기들. 애쉬는 의뢰인의 대답에 고개를 저었다.

63구역의 유흥가와 71구역 슬럼을 지배하던 ‘오마르의 망치’가 그의 손에 사라진 지 약 2 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애쉬가 ‘오마르의 망치’를 완전히 끝장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관리하던 구역까지 손에 넣고 굴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번거로운 걸 무척이나 싫어했고, 두 개의 구역을 관리하는 일은 그가 여태껏 겪어왔던 어떤 일보다도 번거로운 일이 될 테니 그냥 내버려 둔 것이다.

덕분에 일반 주민들에게는 애쉬가 공포의 대상일지 몰라도 63구역 유흥가에서 사업을 하는 이들은 애쉬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기존에 ‘오마르의 망치’에 상납하던 돈이 사라졌는데도 여느 갱단들이 날뛰질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옛 이야기가 되려하고 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며 2년 반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더 긴 시간이었다. 애쉬가 한창 날뛸 때만 해도 바짝 엎드려있던 자들이 슬금슬금 공포를 잊기 시작할 정도로.

애쉬는 자신이 ‘오마르의 망치’를 정리한 구역에서 누가 상납금을 걷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지만, 갱단의 영역다툼으로 주변이 시끄러워질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진해서 움직이고 싶지는 않고…….

“‘뱀파이어’녀석들이 온다더니, 웬 양아치들만 이렇게 들끓어?”

“…그러게 말입니다.”

애쉬는 낮의 양아치들 이후로도 두어 번 영업을 방해하는 놈들을 쫓아냈다. 일단 돈이야 받았으니 최소한의 값어치는 해주는 게 당연한데, 그런 와중 애쉬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사태가 많이 진행됐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 바짝 엎드려 있던 놈들이 슬슬 고개를 들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양아치들이 날뛰는 걸 보면 진짜 갱들은 이미 외곽부터 차근차근 먹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대로 두면 조만간 이곳 유흥가의 중심부까지 진출하겠지.

유흥가의 사업주들 입장에서는 외부의 거대 갱단뿐 아니라 그들 또한 크나큰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적당한 술 하나를 까마시던 애쉬가 맞은편에 앉은 고용주에게 대뜸 물었다.

“요새 다른 갱단들이랑은 별 일 없어?”

“예? 아, 예. 양아치들이 기승을 부리는 걸 제외하면 딱히 없습니다.”

이곳 유흥가에서도 충돌이 많이 발생하고, 상납금을 바치는 갱단에만 안위를 맡기기엔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았다. 특히나 지금처럼 그들 모두를 아우르는 거대 갱단이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런 만큼 유흥가의 사업주들 모두 나름의 무기는 갖고 있었기에 오늘 애쉬가 없었더라도 양아치들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흐음….”

고용주의 대답에 애쉬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비정상적으로 양아치들이 많아진 걸 보면 기존의 갱단들이 살짝살짝 간을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애쉬 자신이 움직이는지, 움직이지 않는지.

혹은 사업주들이 ‘오마르의 망치’에 바쳐야 했을 상납금으로 모은 힘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만한 수준인지 아닌지.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조만간 뭔 일이 생기겠는데.”

고용주의 물음에 애쉬가 대답했다. 애쉬 자신은 63구역의 유흥가와 71구역 슬럼 대부분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냥 자신에게 피해만 오지 않는다면 말이다.

고용주의 말을 들어보면 이렇게 간을 보는 건 아마 오늘 뿐 아니라 한참 전부터 계속됐을 것이다. 그리고 슬슬 확신했겠지.

그들이 어떻게 움직여도 애쉬 론모어는 간섭하지 않는다고.

그럼 또 한동안은 혼란이 일 것이었다. 주인 없는 땅, 63구역과 71구역의 뒷골목은 전쟁터가 되고, 어쩌면 외부의 갱단들까지도 개입할지 몰랐다.

지금 애쉬를 고용한 고용주의 사업장에 닿은 ‘뱀파이어’의 손길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은연중에 빈 땅에 대한 탐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갱단들이야 애쉬의 눈치를 보며 이곳 유흥가의 중심부까지는 손을 뻗지 않았지만, 나름의 확신을 가진 거대 갱단 ‘뱀파이어’는 달랐다.

아주 과감한 선택이다.

“예? 그 말씀은….”

“그쪽은 준비 잘 해야겠네.”

“저, 정말입니까…?”

“거의 100%지.”

애쉬의 짧은 대답을 잘도 알아들은 고용주에게 애쉬가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용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에 애쉬가 픽 웃으며 그를 안심시켰다.

“너무 걱정하진 마. 잔금 보내는 동안은 A/S해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감사는 됐고, 돈이나 잘 보내.”

“예!”

애쉬의 장담에 고용주의 얼굴이 활짝 폈다. 엄청나게 넓은 구역 전체라면 모르겠지만, 이런 사업장 하나를 보호받는다면 걱정할 게 없다. 아마 갱단에서 나온 놈들도 애쉬 론모어가 비호하는 곳이라는 말에 꼬리를 말고 물러날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애쉬 론모어와 척지면서까지 영업장 하나에 집착할 필요가 없을 테니.

300만 크레딧이라는 거금은 뼈아프지만 그 ‘애쉬 론모어’에게 5년 동안 보호받는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비싼 값도 아닐지 몰랐다.

그렇게 기분이 좋아진 고용주가 비싼 술을 하나 가져와 열고 있을 때였다.

타다닥!

애쉬의 귀에 그와 고용주가 위치한 룸을 향해 달려오는 발소리가 포착됐다.

“왔나.”

“예?”

애쉬의 혼잣말에 고용주가 의문을 표하기도 잠시.

덜컥! 문이 거칠게 열리고 숨을 헐떡이는 남성이 외쳤다.

“사장님! ‘뱀파이어’ 놈들이 왔습니다!”

“그렇다네?”

“어떻게….”

애쉬가 태연히 반응했고, 고용주가 그런 애쉬를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이런 영업장의 기본은 철저한 방음인데, 고용주의 심복이 이곳까지 오기도 전에 알아챈 것이다.

애쉬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하러 갈 시간이네. 나머진 갔다 와서 마시자고.”

*

“사장은?”

“지금 오고 계십니다.”

“호, 오고 계신다? 아주 느긋하신 모양이군. 부디 우리가 원하는 대답이길 바란다.”

아니면 절대로 좋은 꼴은 보지 못할 테니까.

해진 옷자락과 거친 인상. 누가 봐도 슬럼의 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남자가 부하들을 거느리곤 종업원들을 위협했다. 다만 직접적으로 행동하진 않았는데, 이곳이 그들의 영업장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사용할 곳인데 망쳐서 좋을 건 없지 않은가.

자신만만한 태도의 갱들. 하지만 그들과 대치한 종업원들은 불안에 떨면서도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사장이 좋은 고용주였던 것도 있지만, 그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같은 건물에 ‘애쉬 론모어’라는 해결사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엄청난 돈을 들여 고용한 해결사는 그 돈에 모자라지 않는 활약을 해줄 것이다.

터벅, 터벅. 종업원들과 그들을 노려보는 갱단의 일원들의 사이로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작게 울렸다.

로비에서 대치하고 있던 모두의 시선이 제 3자의 발소리가 들려온 층계로 몰렸다.

“오, 확실히 그냥 양아치들은 아니네.”

“자, 잘 부탁드립니다. 해결사 님.”

그곳에선 세 명의 남자가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한 명은 갱들을 이끌고 있는 남자가 일전에 봤던 사장.

다른 한 명은 그 사장을 부르러 가겠다던 종업원인지 뭔지 모를 남자.

그리고 그런 둘을 아랫사람 거느리듯 뒤로하고 걸어오는 잿빛 은발, 청안의 남자는…….

“해결사? 애쉬 론모어?”

“진짜 그 미친 칼잡이야?”

“은발에 파란 눈이긴 하네.”

슬럼의 뒷세계에서 활동하는 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특징에 갱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에 선두에 선 남자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애쉬를 바라봤다. 애쉬도 그런 남자를 한 차례 훑었다.

해진 옷자락 사이로 보이는 대구경의 권총 두 자루, 군용 대검 몇 개.

오랫동안 제법 많은 전투를 겪었다는 듯 세월에 풍화된 흉터들이 눈에 띈다.

불법 개조를 거친 게 분명한 대형 권총은 그렇다 쳐도 남자 자체의 분위기가 조금 있어 보이는 게, 어디 잡다한 갱단의 말단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소총은 없는 걸 보면 제대로 한바탕 해보려고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애쉬가 속으로 흉터를 대충 평가하는 사이 미소를 지은 흉터의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쪽이 그 유명한 애쉬 론모어인가?”

“그런데?”

“난 ‘뱀파이어’의 빌레이 포튼이다.”

뱀파이어의 빌레이 포튼. 흉터의 남자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애쉬는 굳이 알고 싶지 않았던 정보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곤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래? 그래서 자기 집구석에 처박혀있던 우리 뱀파이어 아가씨들이 왜 여기까지 오신 거지?”

“…저 새끼가.”

“가만히 있어. 저 새낀 그 미친 칼잡이라고.”

그의 조롱에 흉터의 남자, 빌레이의 부하들이 발끈하는 게 느껴졌지만 애쉬는 태연히 웃었다.

빌레이가 그런 애쉬의 태도에 재미있다는 듯 흉악한 웃음을 마주 보이며 답했다.

“주인 없는 땅이 있대서 냉큼 집어 채려고 왔지.”

“이런, 어디서 잘못된 얘기를 듣고 오셨나본데. 여긴 내 구역이거든.”

“흐, 그쪽 구역이라고?”

“그래. 그러니까 돌아가 주시지 않겠나? 우리 귀한 아가씨들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

“해, 해결사 님….”

“응? 왜.”

애쉬의 계속되는 조롱에 빌레이의 부하들의 분위기가 들끓었다. 그것을 본 고용주가 불안감에 찬 목소리로 그를 불렀지만 애쉬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빌레이는 그런 둘을 앞에 두고 여전히 흉악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쪽 얘기는 많이 들었지, 애쉬 론모어. 오마르의 망치를 혼자 분해했다지?”

“뭐, 그랬지. 내가 좀 유명하긴 해.”

“한 명의 인간이 그런 일을 해냈다는 걸 믿을 수가 없더군. 솔직히 말하면 존경심까지 들 정도였어.”

“그래? 가는 길에 사인이라도 하나 해줘야하나?”

애쉬가 능청스럽게 반응했지만, 빌레이는 애쉬가 어떻게 반응하던 자신의 얘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말이지…….”

빌레이의 흉악한 미소 사이에서 눈이 붉게 빛났다. 자연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인위적인 불빛이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건 그 전설적인 해결사가 아니라 이쑤시개처럼 가는 일반인으로 보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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