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4화 (4/230)

〈 4화 〉 1. 애쉬 론모어(3)

* * *

자신이 진짜 애쉬 론모어인지를 의심하는 빌레이의 말. 애쉬가 붉은 안광을 뿜어내는 눈을 마주보며 픽 웃었다.

“그놈의 깡통눈깔은.”

대충 들어보니 예상할 수 있었다. 이 세계의 기계식 의안은 생각보다 다양한 기능을 탑재할 수 있다.

정말 별 것 아닌 시야 확대 및 축소 기능부터 시작해서, 녹화 기능, 탄도 계산, 그리고 눈앞의 빌레이 포튼이란 놈이 사용했을 ‘스캔 기능’ 등등.

아마 수백 가지도 넘을 기능들이 있었고, 그런 다양함은 원작 게임 내에서도 많은 재미와 편리성을 제공했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된 지금은 더욱 그렇다.

일반적인 인간의 눈과는 성능 면에서 비교조차 안 되는 기계식 의안. 그것을 이식한 사이보그들은 그 편리함과 기능성에 빠져들었고, 지나치게 그것을 맹신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만 봐도 그렇다.

눈앞의 같잖은 놈은 애쉬가 강화인간이나 사이보그가 아닌, 순수인간이라는 것을 몰랐다면 이렇게 까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에게 미지라는 것은 때로는 공포로서, 때로는 하나의 축복으로서 다가오기도 한다.

‘스캔해봤는데 너 강화 시술도 안 받은 일반인이잖아? 그럼 가짜네?’

그런 1차원적인 생각으로 덤벼들었다가 코가 깨지는 것이다. 상식에서 벗어나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당연히 애쉬도 그중 하나였고.

빌레이는 자신의 붉은 안광으로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의 애쉬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다시 한번 묻겠는데, 너는 그 ‘애쉬 론모어’가 맞나?”

흉악하게 웃으며 압박하는 중앙의 빌레이와 애쉬 자신이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죽일 듯 노려보고 있는 그의 부하들.

단순히 눈으로만 죽일 듯 노려보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들은 살인이라도 거리낌 없이 행할 갱이었다.

금방이라도 그를 도륙 낼 듯한 분위기. 평범한 사람이라면 오줌을 지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으나,

“프흐, 맞다니까. 왜, 한번 보여줄까?”

애쉬에게는 애들의 장난처럼 느껴질 뿐이다. 어이가 없어서 괜히 웃음이 나온다.

왜, 한번 보여줄까, 하며 애쉬가 그들을 향해 허리춤의 칼을 툭 쳐보였다.

‘뱀파이어’의 간부급으로 보이는 남자와 그 부하들 여럿?

전부 총기로 무장하고 있다고?

그런데 뭐 어쩌라고.

저런 잡졸 따위 몇이 있어도 위협조차 되지 않는다. 열이고, 백이고, 천이고.

애쉬는 이 슬럼의 왕이었다. 어떤 세력도 없이 홀로 정점에 선 왕.

그가 홀로 왕으로서 있을 수 있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자신의 무력이었다.

애쉬는 자신에게 적의를 보이는 빌레이와 그의 부하들을 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겨우 2년 반. ‘오마르의 망치’를 무너뜨린 지 3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자신을 잊고 달려들 듯 이를 드러내다니.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던 말이 다시금 떠오른다. 여기 다시 한번 실수를 저지르려는 인간들이 나타났다.

‘그럼 나도 다시 한번 그게 실수라는 것을 알려줘야겠지.’

일단, 칼을 뽑으면 끝을 본다.

애쉬는 감히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회의 쓰레기들을 가만히 보내줄 정도로 착한 인간이 아니었다.

아마 그냥 보내준다면 개나 소나 다 까불겠지. 그걸 예방하는 차원에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애쉬가 자신의 위신을 유지하는 것은 갱단의 그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애쉬가 찬찬히 자신이 목을 거둘지도 모를 것들을 둘러보는 사이, 노려보던 것을 멈춘 빌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다면… 뭐, 그런 거겠지.”

“응? 그게 끝?”

“그럼 뭐가 더 필요하지?”

어느새 의안의 붉은 안광도 거둔 채다. 애쉬로서는 정말 의외의 반응이었다. 주제를 모르고 달려들면 끝을 보려 했는데, 여기서 물러나다니.

빌레이의 부하들도 애쉬처럼 빌레이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는지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빌레이! 강화 시술도 받지 않은 가짜 아닙니까!”

“그딴 말들을 내뱉은 놈인데!”

“빌레이! 왜 그냥 넘어가는 겁니까!”

그러나 빌레이는 부하들의 목소리를 한 마디로 일축했다.

“닥쳐라.”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 그 낮은 목소리에 분노를 표출하던 그의 부하들이 입을 다물었다.

빌레이가 그 얼굴에 띄우던 미소조차 지우고 부하들을 돌아봤다.

“언제부터 너희가 나한테 의견을 내밀 수 있게 됐지?”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이라고?”

빌레이의 말에 용기 있는 작은 목소리가 항의했다. 빌레이의 얼굴이 목소리의 주인인 한 남자에게 홱 돌아갔다.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에게 몰렸다.

목소리의 주인인 남자는 그런 시선 집중에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보, 보스가 분명….”

“보스…. 흐흐, 그래. 보스의 명령은 중요하지.”

빌레이가 그 짧은 말을 듣고 대답했다. 단순히 내용만 놓고 보면 동의하는 말이었지만 낮은 웃음소리, 그리고 목소리에서는 그의 분노가 절절히 느껴졌다.

빌레이가 뚜벅뚜벅 걸어 목소리의 주인인 부하 앞에 섰다. 그리고 짓씹듯 낮게 내뱉었다.

“다시 한번 말해봐. 보스가 뭐라고?”

“그, 그, 그게…….”

눈을 마주친 부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더 이상 말조차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흐흐, 이것 참.”

분노에 차있던 빌레이의 표정에 다시 한번 흉악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에 부하들이 숨을 삼켰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빌레이가 자신들에게 저런 표정을 보일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뱀파이어’에 말도 제대로 못하는 버러지는 필요 없는데 말이야.”

철컥. 어느새 빌레이의 허리춤에 매달려있던 대구경 권총이 그의 손에 들렸다. 그것을 본 부하의 고개가 필사적으로 저어졌다.

“아, 안돼. 죄, 죄송, 죄송합니다, 죄송…!!”

­ 터엉! …퍽.

권총이라기보다는 핸드 캐넌에 가까운 발포음. 그와 함께 부하의 머리통이 사라졌다. 목 위가 사라진 시체가 바닥에 쓰러진다.

뜨거운 피를 뒤집어 쓴 채 아직 화약 연기를 내뿜는 권총을 쥔 빌레이가 말했다.

“끝까지 말을 더듬는군.”

“…….”

영업장 안이 잠시 적막에 휩싸였다. 애쉬는 흥미로운 눈으로 그들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바라봤고, 빌레이의 부하들은 기가 질려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했다.

곧 얼굴에 튄 피를 닦은 빌레이가 다시 몸을 애쉬와 고용주 측으로 돌렸다. 빌레이의 번들거리는 눈과 눈이 마주친 고용주가 숨을 삼켰다.

“히익….”

“이거, 청소거리를 늘려서 미안하게 됐군.”

“아, 아닙니다…!”

빌레이의 기세에 잡아먹힌 고용주는 고개라도 박을 기세였지만 애쉬는 아무렇지 않게 그런 고용주를 툭 건드렸다.

“아저씬 또 왜 그렇게 쫄아? 아저씨도 저쪽 부하야?”

“해결사 님….”

“흐흐, 그래. 맞는 말이야. 나도 일반인한테까지 이러진 않으니 걱정하지 마라.”

울상을 지은 고용주. 그의 반응을 뒤로하고 애쉬와 빌레이가 눈을 마주쳤다. 먼저 돌아선 것은 빌레이였다.

“그럼 확인 했으니 이쪽은 이만 돌아가 보지.”

“그래. 헛걸음 했네.”

“죽은 놈 장비 챙겨. 돌아간다.”

“…예.”

애쉬와 고용주를 뒤로하고 빌레이와 부하들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빌레이는 떠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말을 남겼다.

“만일, 그쪽이 가짜라면 조만간 다시 보게 될 거야.”

“예쁜 여자도 아니고, 그쪽 얼굴을 다시 보고 싶지는 않은데.”

“…부디 그러길 바라지.”

빌레이와 부하들이 완전히 떠나갔다. 애쉬는 얼이 빠진 채 입구만 바라보고 있는 고용주를 깨웠다.

“아저씨, 언제까지 서있을 거야? 저거 치워야지.”

“아, 아, 예.”

곧 정신차린 고용주와 그 종업원들은 목 위가 사라진 시체와 그 파편들을 치웠고, 애쉬는 다시 룸으로 돌아가 접대를 즐겼다.

* * *

“왔습니다, 보스.”

72구역에 위치한 ‘뱀파이어’ 아지트. 그 꼭대기 층에 있는 보스의 집무실. 빌레이가 사무용 책상에 앉아 화면을 들여다보는 여성에게 인사했다.

어두운 빛을 띠는 금발과 짙은 에메랄드 빛 눈동자. 가볍게 입은 옷차림 위로는 풍만한 몸매가 도드라지고, 빨간 입술에는 불붙은 담배 한 대를 물고 있다.

전체적으로 퇴폐적인 분위기를 흘리는 미인.

누가 그녀를 수천의 갱들을 발밑에 둔 거대 갱단의 보스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겉보기에는 평범한 여성으로만 보이는 그녀가 바로 72구역, 73구역을 다스리는 ‘뱀파이어’의 보스, ‘레이라 플로리스’였다.

레이라 플로리스, 레이라는 빌레이의 인사에도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충 대답했다.

“왔네.”

“예.”

빌레이는 그런 그녀의 태도에 익숙한 듯 반응했다. 그대로 들어와 사무용 책상 맞은편 소파에 앉은 빌레이에게 그녀의 목소리가 물었다.

“얘기는 들었는데. 어때?”

“스캔은 해봤는데, 확신이 서질 않습니다.”

이어 빌레이는 보스에게 자신이 보았던 애쉬 론모어라는 인물에 대해 설명했다. 자신의 부하들과 애쉬에게 보였던 모습과는 또 다른, 침착한 모습이다.

“강화 시술이나 개조 수술의 흔적이 보이지도 않고, 전체적으로 가벼운 분위기를 풍기더군요.”

“그래?”

“예. 그래서 가짜인가 하고 잠깐 물러서서 조사를 조금 해봤는데, 그게 본인이 맞답니다.”

“흐음….”

레이라가 잠시 화면에서 시선을 때고 빌레이의 말에 집중했다. 그녀의 사업에 있어 유흥가로의 진출은 상당히 중요한 사항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얽혀있는 ‘애쉬 론모어’라는 인물은 더욱 그랬고.

“그런 경우는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진짜 순수 인간이거나….”

“스캔 기능으로도 흔적을 찾기 힘들 정도의 고위 기술일지도 모르겠네.”

“예.”

빌레이의 대답에 레이라가 담배 연기를 푸욱 내뿜고는 생각했다.

63구역과 71구역에서 활동하는 해결사, ‘애쉬 론모어’라는 인물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다.

칼로 쏘아진 총알을 베어내는 실력자라느니, 홀로 ‘오마르의 망치’를 깨부순 괴물이라느니.

그 인물에 대해 들려오는 소문이라곤 터무니없는 것들밖에 없다.

혼자 슬럼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던 거대 갱단, ‘오마르의 망치’를 무너뜨렸다고? 칼을 휘둘러서 비처럼 쏟아지는 총탄을 베어내?

전부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들뿐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증거와 증인들이 너무도 많아 누구도 그것을 단순한 거짓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불과 2년 반 전에 있었던 ‘애쉬 론모어’와 ‘오마르의 망치’의 전쟁. 비록 속한 구역이 달라 직접 그 싸움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녀도 전쟁 이후의 결과는 볼 수 있었다.

‘뱀파이어’도 함부로 건들지 못하던 ‘오마르의 망치’의 간부들, 그리고 심지어는 그 두렵던 폭군, ‘오마르’까지.

그들 모두가 한 자리에서 참살 당했다.

레이라는 아직도 목이 깨끗하게 잘려나간 오마르와 ‘오마르의 망치’ 간부들의 표정을 잊지 못했다.

두려움과 경악에 찬,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을 본 듯한 그 표정.

목이 떨어지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한 듯 경악에 가득 찬 그 최후의 표정은 아직까지 그녀의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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