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1. 애쉬 론모어(4)
* * *
그 외에도 기억에 강하게 남은 것이 그들 사체의 절단면이다.
단순히 인간의 목을 칼로 자르는 것? 그 정도는 날붙이라곤 컴뱃 나이프 정도밖에 잡아보지 않은 그녀도 할 수 있다.
아마 완력을 강화한 강화인간이거나 사이보그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어느 정도의 힘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들의 잘려나간 팔다리, 그 속에 있던 사이보그의 개조 신체는 어떠한가.
‘오마르의 망치’ 간부들의 개조 신체는 대구경의 총탄도 막아낼 정도로 무식하게 단단했다. 당연히 날붙이로 그것을 자르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하지만 그 애쉬 론모어라는 남자는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현실에서 해냈다. 그것도 무슨 공업용 커터로 자른 것 마냥 얼굴이 비칠 정도로 깔끔하게.
그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하긴 한 일이란 말인가?
“후우….”
툭, 툭. 레이라의 희고 고운 손끝이 담배를 튕겨 담뱃재를 털어냈다. 약기운에 나른하게 늘어지는 몸을 의자에 묻은 그녀가 생각했다.
63구역의 외곽을 어느 정도 먹어치우는 것은 성공했으나, 빌레이를 통해 간을 본 결과 그 이상의 진출을 노린다면 애쉬 론모어와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꺼림칙했다.
애쉬 론모어에게는 의문스러운 점이 너무도 많았고, 그것들은 하나하나가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다간 크게 잘못될 수도 있는 것들이다.
애쉬 론모어 개인의 무력, 그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녀석의 동료들과 뒷배경까지.
결국 이 자리에 앉아서는 어떤 결론도 낼 수 없었다.
어느새 수명을 다한 담배를 재떨이에 짓이긴 레이라가 입을 열었다.
“조만간 직접 한번 봐야겠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위험? 위험이야 하겠지.”
빌레이의 말에 레이라가 작게 웃었다.
위험에 대한 걱정이라. 저게 얼마 만에 들어보는 말인가.
빌레이는 나름 보스인 그녀를 걱정하는 것 같았지만 그녀에게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는 일은 일상과도 같았다.
그녀가 살아온 평생, 그 선택의 순간이 목숨을 건 도박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모든 도박에서 승리해 지금의 자리까지 오른 것이다.
만약 그녀가 위험을 두려워하며 무조건 피하기만 했다면 여성의 몸으로 이런 거대 갱단의 주인이 될 수 없었겠지.
위험을 감수해야만 그에 걸맞은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녀가 창밖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어.”
* * *
“그럼 잘 놀다간다.”
“예! 언제든 영업장에 찾아오시면 최고의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
“어.”
애쉬는 언제나 그랬듯 등을 보인 채 설렁설렁 손을 흔들어 답하곤 집 겸 사무소로 향했다.
며칠 동안 고용주의 영업장에 머물며 자리를 비워서 해야 할 일들이 좀 있었다.
AI가 운행하는 자율주행 택시를 잡은 그가 구식 휴대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했다.
네,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입니다! 어떤 것을 도와드릴까요?
“어, 난데. 일 끝나고 가는 중이다.”
아, 사장님! 고생하셨어요. 그럼 장부랑 며칠 간 들어온 의뢰서는 미리 준비해둘게요!
“그래.”
휴대폰을 통해 전해지는 기운찬 소년의 목소리. 그가 고용한 슬럼가의 고아 소년, ‘샤인’이었다.
소년의 또렷하고 힘찬 목소리는 듣는 사람도 기운이 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애쉬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소년을 떠올리며 피식 웃곤 전화를 끊었다.
그를 태운 자율주행 택시가 부드럽게 거리를 주행했다.
*
71구역, 론모어 사무소.
따르르릉.
“네,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입니다!”
그쪽 사장이랑 일적으로 얘기 좀 하고 싶은데, 지금 있나?
“아뇨, 지금은 부재중이시고 곧 돌아오실 예정이에요. 사장님이 오시면 연락드릴까요?”
응.
“그럼 성함 좀 알려주시겠어요?”
레이라 플로리스.
“아, 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께서 오시면 연락드릴게요.”
그래.
뚝. 옅은 갈색 머리칼과 눈동자의 소년, 샤인은 전화가 끊긴 수화기를 내려놓고 구식 유선 전화기에 찍힌 번호를 수첩에 적었다.
사장인 애쉬 론모어가 자리를 비운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다.
하지만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는 하루에도 의뢰 및 기타 문의 전화가 수십 통은 올 정도로 여전히 바빴다.
‘애쉬 론모어’라는 이름은 슬럼 전체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사장인 애쉬 론모어가 유명한 만큼 의뢰를 맡기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어디보자~ 1872에…….”
항상 들고 다니는 수첩에 번호를 적고 옆에는 ‘레이라 플로리스’라는 이름과 함께 ‘사장님이 오시면 말씀드릴 것!’이라고 쓴 뒤 작게 별표를 그린다.
샤인이 들고 다니는 수첩이나 사무소에 비치된 유선 전화나 요새는 슬럼가에서도 잘 사용하지 않는 구시대의 유물이었지만 소년의 고용주인 사장이 은근히 그런 것들만 찾았기에 소년도 적응하고 있었다.
연락처를 모두 적은 소년은 지난 며칠간 받은 의뢰서들의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 후 확인했다.
소중한 고양이 찾기 – 5,000 Credit
유흥가 거리에서 사라져버린 우리 나비를 찾아주세요.
떼인 돈 받아오기 – 10,000 Credit
갱단 소속 녀석이 빌린 돈을 안 갚아요, 받아와주세요.
요인 경호 – 12,000 Credit
살해 협박을 받았어요, 며칠만 지켜주세요.
………
……
…
당연하지만 의뢰서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옮긴 건 아니었다. 애쉬가 보기 편하도록 요점만 정리한 것.
애쉬는 의뢰서를 직접 보는 것보다 샤인이 이렇게 정리한 목록으로 보는 걸 더 좋아했다.
무슨 게임의 퀘스트를 받는 것 같다나.
샤인으로서는 알 수 없는 감성이었지만 어쨌든 사장인 애쉬가 원하니 하는 중이다.
샤인이 의뢰서를 보며 자신이 정리한 내용을 다시 점검하는 걸 마칠 때쯤 딸랑딸랑, 하고 사무소 문에 달린 작은 종소리가 들려왔다.
양 손에 맛있는 냄새를 잔뜩 풍기는 봉투를 들고 있는 애쉬였다. 사무소에 들어온 애쉬는 다짜고짜 손에 들고 있는 봉투들을 샤인에게 넘겼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
“어, 꼬맹아 간식이다.”
“감사합니다.”
샤인이 꾸벅 감사인사를 하며 그것을 받았다.
곧 둘은 자리에 앉아 간식과 음료를 즐기며 얘기를 시작했다.
“샤인. 그 동안 의뢰는 몇 개나 들어왔어?”
“서른 개 정도에요, 여기요.”
애쉬의 물음에 샤인이 의뢰서의 내용들을 요약해 정리해둔 노트를 건넸다.
노트를 건네받은 애쉬가 가장 첫 줄에 적힌 의뢰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또 뭐야, 고양이 찾기? 여기가 무슨 심부름센터인줄 아나.”
좀 어이가 없다는 투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샤인은 잘 공감하지 못했지만 소년의 사장이 말하길 해결사 사무소와 심부름센터는 하늘과 땅차이라고 했다.
심부름센터가 양아치들이 운영하는 아마추어라면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는 프로 중의 프로.
실제로 실력을 따지면 단순한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 이상이긴 하겠지만, 결국 외부에서 보면 심부름센터나 해결사 사무소나 다를 게 없어 보일 것이었다.
그래도 애쉬는 가끔 고양이 찾기나 잃어버린 물건 찾기 따위의 시답잖은 의뢰가 들어오면 저렇게 인상을 찡그리곤 했다.
의뢰금도 나름 나쁘지는 않았는데. 샤인이 속으로 생각했다.
고양이 찾기 의뢰의 의뢰금은 무려 5천 크레딧.
어지간히도 소중한 고양이인 모양이었지만 사장인 애쉬는 그것을 그냥 넘겨버렸다.
“흐음…. 별로 마음에 드는 건 없네, 수고했어.”
“네.”
샤인의 정리 노트를 다시 돌려준 애쉬가 다리를 꼬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샤인은 노트를 돌려받고 애쉬에게 아까 전 받았던 연락에 대해 알렸다.
“아, 그러고 보니 연락이 하나 있었어요, 사장님”
“연락?”
“네. 여성분이셨는데, 일적으로 할 얘기가 있다고 하시던데요.”
“일적으로 할 얘기라….”
샤인의 말에 애쉬가 잠시 머릿속을 뒤져봤다. 딱히 생각나는 일은 없다. 애쉬가 샤인에게 물었다.
“이름은?”
“레이라 플로리스라고 하시더라구요.”
“모르겠는데.”
애초에 애쉬에게는 사적으로 만나서 일 얘기를 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애쉬가 영 감을 잡지 못하는 듯하자 샤인이 물었다.
“일단 연락은 드려볼까요? 혹시 목소리를 들으면 떠오를지도 모르잖아요.”
“그래. 얘기나 한번 들어보지, 뭐.”
“네, 잠시만요.”
샤인이 휴대폰을 꺼내 적어둔 전화번호로 연락해 애쉬에게 넘겼다.
그러나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뚜르르르…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안 받는데?”
잠시 자동 메시지를 듣던 애쉬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 끊고는 샤인에게 휴대폰을 돌려줬다.
“네? 분명 연락 달라고 하셨는데….”
전화를 돌려받은 샤인이 말을 흐렸다.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왜 전화를 받지 않는 걸까.
수첩에 적어둔 번호와 자신의 통화 기록을 확인한 샤인이었지만 역시나 번호를 틀린 것은 아니다.
잠시 생각해보던 샤인이 무언가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아, 사무실 전화로 연락 주셨던데, 제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거 되게 까다롭게 구네.”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이 아는 번호가 아니면 절대로 전화를 받지 않는 사람들. 애쉬 자신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 중 하나였지만 남이 그러니 괜히 불평했다.
“일단 사무실 전화로 다시 걸어볼게요.”
샤인이 사무용 책상에 비치된 전화기로 다시 연락했다.
뚜르르르, 하는 소리가 얼마 이어지기도 전에 상대방이 연락을 받았다.
“여보세요?”
…그쪽 사장 왔어?
“네. 지금 바로 바꿔드릴게요.”
응.
아까 전에도 들었던 여성의 목소리가 맞다. 확인한 샤인은 애쉬에게 전화를 넘겼다. 애쉬가 전화를 받아들었다.
“누구?”
그쪽이 애쉬 론모어?
살짝 허스키한 미성. 듣기 좋은 여성의 목소리가 확인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외모가 그려지는 것 같다. 분명 미인일 것이다.
그에 애쉬는 조금 풀린 기분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음. 소문 때문에 험악할 거라고 생각했는데,생각보다 목소리가 좋네.
“칭찬은 고맙네.그쪽도 듣기 좋아. 근데 누구야?”
돌아온 칭찬에 애쉬도 칭찬하며 물었다. 실제로도 듣고 있으면 기분이 편안해지는 좋은 목소리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애쉬의 그런 감상을 단번에 깨부쉈다.
난 ‘뱀파이어’의 보스 레이라 플로리스야.
“응?”
조만간 찾아갈게.
“뭐?”
뚝. 자신을 ‘뱀파이어’의 보스라 밝힌 상대방은 애쉬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애쉬는 잠시 끊긴 전화를 바라보다 그냥 내려놨다. 목소린 진짜 듣기 좋았는데.
“그냥 장난 전환가보네.”
“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