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8화 (8/230)

〈 8화 〉 1. 애쉬 론모어(7)

* * *

애쉬가 71구역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의 상태는 그의 생각과 달리 무척이나 평온한 상태였다.

샤인은 유명 갱단 보스와 간부의 방문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손님들을 맞았고, 손님들도 그 신분과 달리 온건히 행동했다.

“늦네.”

“63구역에서 오고 있다니 시간이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샤인이 처음 보고 무척이나 예쁜 사람이라고 감탄했던 미인, 레이라 플로리스.

그리고 누가 봐도 일반인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듯 얼굴까지 온갖 흉터가 가득한 거구의 남자, 빌레이 포튼.

둘은 샤인의 안내에 따라 차분히 앉아 기다렸고, 덕분에 처음에는 그들의 눈치를 보던 샤인도 정상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허름한 곳이군요.”

“응. 내부는 나름 관리한 것 같은데, 외부는 지저분해.”

빌레이의 말에 레이라가 동의했다. 그녀가 봤던 이곳 론모어 해결사 사무소의 외견은 허름하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건물 외벽의 칠이 다 벗겨진데다, 간판이라고 달아놓은 것도 어디 고정하는 부분이 떨어졌는지 한 쪽으로 기울어있다. 심지어 간판 자체도 직접 만든 것인지 대충 휘갈겨 쓴 것처럼 보이고.

애쉬 론모어의 사무소에 처음 와보는 둘도 잘못 찾아온 건 아닌지 살짝 당황했을 정도다.

“돈도 제법 있을 텐데 왜 이렇게 사는 거지?”

“‘미친 칼잡이’가 괴짜라는 소문은 유명합니다.”

“음,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아.”

…그런가? 업무 중에도 은근히 들려오는 두 손님의 대화. 그것을 듣고 있던 샤인이 잠시 머릿속에 애쉬를 떠올려보았다.

매일 사무소 오픈 시간 이후에 일어날 정도로 게으르고, 업무를 본다고 사무실에 내려와서도 드라마나 영화만 보는데다 술과 여자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장님.

하지만 그래도 샤인에게 애쉬 론모어는 더없는 은인이었다.

저 더러운 뒷골목에서 빼내어 줬을 뿐더러 잘 곳과 먹을 것, 심지어는 좋은 일자리까지도 제공하고 있는 최고의 상사였으니.

게다가 애쉬도 겉보기엔 언행이 조금 거친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사람은 무척이나 잘 챙겨주는 편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샤인만이 알고 있는 모습. 애쉬에 대한 외부의 이미지는 결코 좋지 않아서, 온갖 이상한 소문이 돌곤 했다.

저 손님들이 얘기하고 있는 것과 같은 소문……은 아닌가? 사실 괴짜 같은 부분이 있긴 해서 완전히 부정할 수 없긴 한데. 샤인은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빠졌다.

두 손님이 대화하고, 샤인이 고민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

딸랑딸랑.

작은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자신의 사무소에 도착한 애쉬는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나 왔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

“오냐.”

자신의 사무용 책상에 앉아 서류들을 읽던 샤인이 고개를 들고 그를 반긴다.

애쉬는 그 인사를 받아주며 샤인의 상태를 슬쩍 살피곤,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즉시 외부인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거구의 남자와, 그 옆에 앉아 샤인이 내어준 것으로 보이는 컵을 입가에 가져가고 있는 여자.

애쉬는 그중 여자 쪽을 살피다 그 미모에 내심 감탄하고 말았다.

“안녕.”

전에 봤던 흉터 떡대와 함께 자리에 앉아있는 여성이 손을 가볍게 흔들며 인사한다.

애쉬는 그 인사에 무어라 대답도 않고, 둘의 맞은편에 앉은 채 여자 쪽을 바라봤다.

조금은 어둡게 가라앉은 금발과 비취빛 눈동자. 눈매는 고양이처럼 도도하며, 오뚝하게 선 콧대와 붉은 입술은 자신감에 차있다.

햇볕 한번 받지 않은 듯 새하얀 피부는 물론이고, 전체적으로 가녀리면서도 풍만할 곳은 풍만한, 천혜의 곡선을 그리는 몸매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무기가 되어 남자의 심장을 두드렸다.

솔직히 말해서 애쉬도 근래에 본 적 없는 대단한 미인이었다. 전날 밤까지만 해도 ‘달의 꽃’의 미녀들과 실컷 즐기고 왔음에도 그 매력적인 자태에 마음이 동할 정도로.

별 일도 아닌 걸로 즐거운 시간을 방해한 것이라면 손을 좀 봐줄 생각으로 잔뜩 벼르며 돌아왔던 애쉬는 미인을 보자 풀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삐딱하게 앉았다.

그리고 짜증이 묻어나는 투로 말을 던졌다.

“그쪽이 ‘뱀파이어’ 보스라고?”

“응. 그런데 인사는 안 받아주는 건가?”

“그쪽 때문에 좋은 시간을 방해 받아서 전혀 안녕하지 못하거든.”

‘달의 꽃’에 하루 정도는 더 있다가 올 예정이었는데, 상대방의 갑작스런 방문은 하루의 즐거움을 빼앗았을 뿐 아니라 그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움직이게 만드는 수고를 더했다.

레이라를 보고 조금 풀리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을 수는 없다.

명백히 불쾌감을 표하는 애쉬의 말에 레이라가 곱게 자존심을 접고 사과했다.

“음, 그건 미안하게 됐어. 이쪽도 여유 있게 시간을 잡고 싶었는데, 갑자기 일이 터져버려서.”

사실 이전에 전화로 조만간 찾아오겠다고는 했지만, 레이라 자신도 그 조만간이 이렇게 빨라질 줄은 몰랐다. 원래였다면 미리 연락이라도 취하는 게 예의였겠지만, 이번에는 그게 불가능할 정도로 급한 상황이었기에, 다짜고짜 찾아온 것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런 사과도 않았겠지만, 애쉬 론모어라는 인물은 ‘뱀파이어’의 보스에게서도 그만한 존중을 받을만한 인간이었다.

애쉬는 그녀의 사과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곤 다리를 꼬아 앉으며 물었다.

“뭐, 됐어. 그보다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

언제나 그렇듯 곧장 본론부터 찾는 애쉬에게 레이라도 마침 잘 됐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63구역. 거길 우리한테 넘겨줘.”

“흠?”

63구역을 자신들에게 넘겨 달라?

뜬금없는 레이라의 말에 애쉬가 의문을 표했다.

그도 여기저기서 얘기는 들었다. 뱀파이어가 63구역에 이미 손을 뻗었다는 것은 유명한 듯한데, 이제 와서 자신에게 63구역의 소유권을 말한단 말인가.

말도 없이 기어들어올 때는 언제고.

그런 애쉬의 의문을 읽은 듯 레이라가 설명했다.

“당신이 영역 관리에 관심이 없다는 건 이쪽도 알고 있어. 그래도 이런 말을 하는 건 곧 우리가 본격적으로 움직일 예정이어서야.”

레이라는 간략하게 ‘뱀파이어’의 계획을 얘기했다.

‘뱀파이어’는 곧 슬금슬금 먹어치우던 기존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인원과 장비를 투입해 미진하던 싸움을 끝내고, 단숨에 63구역을 집어삼킬 계획이다.

자세한 내용까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굳이 지금 애쉬에게 찾아와 구역을 넘기라는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면 그것만으로도 상대방의 의도를 읽기에는 충분하다.

애쉬 자신이 그들의 일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거겠지.

그런 애쉬의 예상대로, 레이라가 얘기를 계속했다.

“당신의 도움을 바라는 건 아니야. 다만, 이쪽의 일에 끼어들지 않아줬으면 하는 거지.”

‘뱀파이어’는 이미 63구역 기존의 세력들에 대한 파악을 끝냈다. ‘오마르의 망치’에서 떨어져 나온 떨거지들과 몇 안 되는 기존의 갱단들.

‘애쉬 론모어’라는 이름에 짓눌려 있던 그것들의 힘은 감히 ‘뱀파이어’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뱀파이어’가 마음먹고 움직이는 순간이 곧 63구역의 주인이 바뀌는 순간일 것이다.

거기에 변수가 있다면 ‘애쉬 론모어’의 존재 하나 뿐. 때문에 그녀는 그 변수를 제거하기 위해 직접 찾아왔다.

얘기를 끝낸 레이라는 애쉬의 대답을 기다렸고, 잠시 이것저것을 생각하던 애쉬가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당연히 거절이었다.

“그건 안 되겠는데.”

“…어째서?”

돌아온 애쉬의 대답에 레이라가 물었다.

이럴 수도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기에 놀람이나 당황은 없었다. 그녀와 빌레이, 그리고 부하들이 애쉬 론모어에 대한 정보를 구해오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상대방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는 법이었으니.

하지만 이유는 듣고 싶었다. 상대방의 성향을 알아본 결과 분명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거절이 돌아온 것이다.

그런 그녀의 물음에 애쉬가 대답했다.

“그쪽에 유감은 없어. 다만 난 이중 계약은 하지 말자는 주의라.”

“이중 계약?”

레이라가 의문을 표했다. 저건 또 무슨 얘기일까. 설마 먼저 애쉬 론모어에게 접촉한 놈들이 있었나?

애쉬가 레이라의 물음에 잠시 고민했다. ‘달의 꽃’과의 계약을 얘기 해줄지, 말지.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애쉬의 청안과 그녀의 비취빛 눈동자가 마주쳤다. 의문을 품고서 반짝이는, 보석 같은 눈동자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그리고 예술작품처럼 완벽한 그 미모는 말할 필요도 없었고.

“이중 계약이라니, 무슨 얘기야?”

애쉬가 고민하는 사이 다시 그녀가 묻는다.

애쉬는 그 목소리에 마음이 조금씩 기우는 것을 느꼈다. 저 정도의 미인인데, 계약사항 조금 알려주는 건 괜찮지 않을까? 적어도 어디 가서 떠들고 다니지는 않을 것 아닌가.

이걸 말해, 말아?

“으음….”

계속해서 고민하다 끝내 충동에 져버린 애쉬는 그만 입을 열고 말았다.

“…그쪽이 보기 드문 미인이라 애기해주는데, 한 동안은 63구역에 얼씬도 않는 게 좋을 거야. 며칠 안으로 그쪽을 싹 한번 정리할 예정이니까.”

“다른 갱단과의 계약은 아닌가 보네.”

“글쎄. 모를 일이지.”

“…….”

맞는다고도, 틀렸다고도 하지 않는다. 미녀에 대한 호의는 이것으로 끝. ‘달의 꽃’과의 계약이라는 것까진 밝히지 않겠지만, 이 정도는 알려줄 수 있다.

그것이 레이라에게 전하는 애쉬의 조언이자 경고였다.

그 예상치 못한 말에 레이라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여태껏 자신의 윗사람이 대화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끼어들지 않고 있던 흉터의 남자, 빌레이가 입을 열어 물었다.

“그쪽 혼자 움직이는 건가?”

“어.”

물음에 애쉬가 가볍게 대답했다.

애초에 그는 특이사항이 없는 이상 대부분의 의뢰를 혼자 끝마쳤다. 그것은 규모가 어찌 되던 마찬가지였고, 이번에 들어온 ‘달의 꽃’의 의뢰도 그렇다.

단순 무력이 필요한 일에 도움은 필요 없다. 오히려 동료라는 놈들이 방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일 만큼 그의 실력은 압도적이었고, 이는 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신감이다.

여태껏 애쉬가 진심으로 동료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도움이 된 사람은 오로지 그와 전혀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뿐이었다.

“대단한 자신감이군.”

“푸흐, 자신감?”

자신감이라는 말까지 나올 일인가?

빌레이의 말에 애쉬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긴, 그게 상식적인 생각이겠지.

어떻게 사람 하나가 못해도 수백은 될 무장 병력을 상대하는가, 그런 생각에 한 말일 것이다.

여태껏 애쉬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했음에도 항상 이런 반응이 돌아왔다. 그리고 해내면 또 놀라며 물을 것이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냐고.

그럴 때마다 애쉬는 답해왔다.

“별 것도 아닌데, 뭘 자신감까지.”

지금 그의 대답 그대로, 별 것도 아니었노라고.

“…….”

빌레이는 애쉬의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에 무어라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첫 만남에도 느꼈지만, 이 애쉬 론모어라는 남자에게는 특별한 아우라가 있었다. 무엇을 말하던 진짜 같고, 이런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정말로 그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의 보스에게서도 느끼지 못한, 아니, 그 누구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 이런 걸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리더십? 카리스마?

빌레이가 입을 다무는 것으로 둘의 짧은 대화는 끝났다. 질문에 대답 정도야 해줬지만, 애쉬는 굳이 자신이 먼저 말을 걸면서까지 흉악하게 생긴 남정네와 대화를 나눌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생각을 마친 레이라가 다시 애쉬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그 일이 끝나고 난 뒤는?”

“뭐, 별다른 일이 없다면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애쉬가 순순히 대답했다.

어디까지나 애쉬가 받은 의뢰는 63구역 중심가의 주변을 정리해달라는 것 뿐. 정리된 뒤에 누가 기어 들어오던 그것을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다만, 다시 한번 ‘달의 꽃’이 위치한 중심가 쪽에 피해가 가는 일이 생긴다면 한 번 더 정리를 나설 수도 있긴 했다. 이래 봬도 A/S가 훌륭하기로 소문난 해결사였으니.

“그래, 알겠어. 말해줘서 고마워.”

대답을 들은 레이라가 애쉬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애쉬는 아무것도 아니란 것처럼 툭 던져준 말이지만, 이건 상당히 중요한 정보였다. 멋모르고 계속해서 달려들었다면 그녀의 ‘뱀파이어’ 쪽도 상당한 피해를 봤을지 모른다.

다행히 지금 귀한 정보를 들었기에 현재 ‘뱀파이어’가 처한 상황에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기존의 소모가 아깝긴 하나,어차피 저쪽에서 정리를 해줄 거라면 그녀도 계속 뛰어들 필요는 없겠지.

그럼 한동안은 여유가 생길 것 같으니이제는 뒤쪽에 일어난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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