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2. 달의 꽃과 뱀파이어(1)
* * *
인간은 수없이 많고, 각자 즐기는 오락거리도 다양하다.
누군가는 맛있는 것을 먹는 식도락을 최고로 칠 것이고, 누군가는 남녀 간의 성관계에서 발생하는 쾌락을 최고라고 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운동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애쉬 론모어라는 인간의 감성은 일반적인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는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최고의 즐거움을 느꼈다.
지구에서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즐기던 익스트림 스포츠 정도가 아니다.
매캐한 화약 연기와 함께 번쩍이는 총구의 불꽃.
살갗을 스치고 지나가는 총탄의 감촉.
그리고, 쏟아지는 총탄의 비를 뚫고 도달했을 때 경악에 찬 상대의 눈동자.
안전장비 하나 없이 낭떠러지 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은 아찔함이, 단 1cm만 잘못 움직여도 목숨이 떨어져나갈 전투만이 그를 진정으로 인간답게 만든다.
인간을 한참은 초월한 신체능력과 어떤 쾌락에도 금세 적응하곤 하는 정신력조차 그 짜릿한 감각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전투에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는 애쉬였으나, 최근 며칠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그의 기분이 매우, 매우 안 좋았기 때문이다.
*
“죽어어!!”
투다다다!
요란한 총성과 함께 쏘아진 탄환이 대기를 꿰뚫는다. 발악적으로 소리치며 난사한 갱이었지만, 적은 이미 정면에서 사라졌다.
귀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땅으로 꺼진 듯 사라진 형체. 충혈된 눈이 다급히 주변을 훑었지만 그와 동료들의 총탄에 희생된 가구들 외에는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 어디야!! 나와!!”
허억, 허억. 소리친 갱이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시간이 갈수록 늪에 집어삼켜지듯 공포가 짙어진다.
적막 속, 깨진 유리 따위를 밟는 갱 자신의 헐떡임만이 들려오던 그때.
드드득.
그의 뒤편에서 무언가 짓눌려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
갱이 반사적으로 몸을 돌린 순간, 그의 눈에 시퍼런 궤적이 잡혔다.
그리고 무언가가 묵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터억.
“…어?”
갱은 뒤늦게 바닥에 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여전히 그것만이 자신의 마지막 생명줄이라는 것처럼 총을 꽈악 붙잡고 있는 자신의 양손이었다.
와드득. 깨진 유리를 밟는 소리가 멍하니 무릎 꿇은 갱의 귓가에 들려왔고, 갱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
검은색과 흰 색이 배합된 운동화, 진한 청바지.
좀 더 위로 올라가면 핏방울이 군데군데 튄 흰 티셔츠와 새까만 코트가.
거기서 더 위로 시선을 향하면 잿빛 은발과 타오르는 듯한 청색 눈동자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
어디 산책라도 나온 듯 너무도 일상적인 차림이었지만, 산책을 나온 사람은 적어도 손에 새빨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들고 있진 않다.
그러면서도 너무도 평온하여 오히려 기괴하게까지 느껴지는 모습.
터벅, 터벅.
동료들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이제는 그 자신의 목숨마저 거두어 가려는 ‘사신’이 다가왔다.
갱은 자신의 피로 새빨갛게 물든 세상과 다가오는 사신을 보며 극심한 어지러움을 느꼈고,곧 정신을 잃었다.
*
“아아, 일거리가 하나 가득. 소각차가 바쁘겠네요.”
“야, 닥치고 뒤처리나 해. 오늘 여기만 할 것도 아닌데 호들갑 떨지 말고.”
“아니, 근데 이건 좀 너무하잖아요. 앵간하면 죽이지 말라고까지 했는데.”
“말만 그랬지 다 죽이라고 고른 놈인데 뭐. 꼬우면 가서 따져보던가.”
“아, 그건….”
솔직히 조금 무섭다.
어느 갱단의 아지트. 기밀 임무에 파견된 경찰청 특수 진압대의 대원들이 불평을 떠들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하나였다. 어느 해결사가 수행하는 의뢰의 ‘뒤처리’.
사실 어느 해결사라고는 지칭하긴 했지만 임무를 나온 대원 중 그 해결사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근데 진짜 대단하긴 하네요. 어떻게 인간이 이런 게 가능하지?”
“뭐, 괜히 유명한 게 아니겠지.”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신체 파편들을 줍고, 핏자국을 대충 씻어낸다. 아직 미세한 잔흔 등은 남아있지만, 곧 사후 처리반이 찾아와 제대로 닦을 것이다.
다른 구역은 모르겠지만 슬럼의 특수 대책팀들은 대체로 이런 짓에 익숙했다.
비단 이번 일뿐이 아니라 평소에도 가장 자주하는 게 여러 갱단들이 저지른 일에 대한 뒤처리였으니.
그러나 온갖 사인으로 죽은 시체를 다 봐온 그들조차도 이런 사체들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와, 이거 봐요. 무슨 도축용 칼로 절단한 것도 아니고.”
한 대원이 감탄하며 잘린 손목을 들어올렸다. 잘리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손목은 아직까지 온기를 품고 있었는데, 절단 부위가 어찌나 깔끔한지 공업용 커터로 자른 것만 같다.
한 대원이 자신을 향해 절단부위를 보여주자 동료 대원이 욕지거릴 내뱉었다.
“우웩! 이 미친 새끼! 그딴 게 보고 싶냐?”
“아니, 근데 신기하잖아요. 진짜 어떻게 이렇게 잘랐지?”
“으으, 뭐 단분자 커터라도 갖고 있나보지.”
“단분자 커터가 상용화 됐어요?”
“낸들 아냐?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우리 같은 말단이야 모르지만 윗대가리들은 혹시 몰라. 이미 만들어졌는데 그냥 숨기고 있는 걸지도.”
“와, 만약 있으면 나도 하나 갖고 싶네.”
“왜? 너도 손목 절단이나 해보게?”
“솔직히 간지 나잖아요. 그 사람 못 봤어요? 무장이라곤 칼 하나밖에 없던데. 여기 보면 진짜 칼밖에 안 쓴 것 같고.”
손목, 다리, 팔, 어깨, 목까지. 무슨 인간을 고기 부위 나누듯 토막 쳐놨다. 그 말을 들은 진압대원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멋있어? 이건 그냥 살인이야, 미친놈아. 그것도 산채로 인간을 토막 낸 토막살인.”
“뭐 어때요. 어차피 사회에 도움도 안 되는 쓰레기들인데.”
“어휴, 씹. 그래 네 맘대로 생각해라.”
비교적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진압대원이었으나, 저런 동료대원의 태도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분명 임용 테스트에 정신 감정도 받을 텐데 어떻게 통과했는지.
“오와! 이건!”
동료 대원이 무슨 총알 부스러기 하나를 들고 호들갑을 떠는 걸 보던 그는 한동안 계속해서 핏자국을 닦아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대원들에게 눈치를 줬다.
이쯤이면 그 해결사도 충분히 멀어졌겠지. 그렇다면 제대로 일할 시간이다.
“자, 다음 곳도 있으니 이제 슬슬 작업 시작하자.”
그들이 온 진짜 이유인 ‘뒤처리’를.
* * *
의뢰 수행 이틀 차.
애쉬는 기계적으로 움직여 의뢰를 처리했다. 아무리 갱단의 세력이 약한 63구역이라지만 그 숫자가 한둘이 아니라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의뢰는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 속도를 계속 유지한다면 곧 중심가 주변의 갱단을 모두 치울 수 있을 것이다.
달리는 차 안에서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애쉬는 한참 전부터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경찰청 소속 대원에게 물었다.
“뭐 할 말이라도 있냐?”
“아, 아뇨. 그냥….”
갈색 곱슬머리에 갈색 눈동자. 성인이 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을 것 같은 인상의 경찰청 소속 대원은 화들짝 놀라더니 말을 더듬었다. 그러자 앞자리에서 운전하고 있던 대원이 코웃음쳤다.
“흥. 아까는 신나서 그렇게 떠들더니, 정작 본인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는구만.”
“그, 그치만. 직접보니까 너무….”
“너무?”
“너무 멋있어서 말을 못 걸겠어요….”
“뭐?”
운전석의 대원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되묻고, 첫날부터 기분이 영 좋지 않았던 애쉬도 내심 황당한 눈으로 옆자리에 앉은 녀석을 바라봤다.
아까부터 힐끔힐끔 보던 게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라 멋있어서였다고?
이 녀석도 자신이 저지른 현장들을 정리했을 텐데,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쉬가 지나온 몇 개 갱단의 아지트는 완전히 피바다가 됐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토악질을 하는 게 당연한 지옥도와 같은 풍경.
싸우는 모습을 보고 멋있다고 했다면 그나마 이해라도 했을 텐데, 그 이후 시체와 살덩이가 굴러다니는 곳을 직접 정리한 놈이 저런 정신 나간 소리를 한단 말인가.
아무리 어리다지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저, 저기….”
정신이 이상한 대원이 조심스레 애쉬를 불렀다. 그에 애쉬가 눈으로 왜, 하고 물었다.
“혹시 다음번엔 저도 데리고 가주실 수 있으신가요…?”
“야 이 미친놈아!”
다시 한번 터져 나온 어처구니없는 말에 운전석에 앉은 대원이 소리쳐 나무라곤 애쉬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 녀석이 아직 머리가 덜 자라서 그러니 이해 좀 해주십쇼.”
“네? 아닌데, 진짜 저도 구경 좀…….”
“제발 좀 닥쳐라, 제발.”
애원하듯 앞자리의 대원이 애원하듯 말했지만 알아듣는 것 같지는 않다.
애쉬는 만담이라도 하는 것 같은 둘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픽 웃었다. 어제오늘 기분이 영 별로였는데, 예상치 못한 만담 개그에 그게 조금 풀렸다.
애쉬는 간만에 온건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따라오고 싶으면 따라 오던가.”
“네? 정말요?!”
“아, 선생님….”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탄식하는 게 들려왔지만 그런 건 상관할 바 아니고.
“따라오다 죽어도 상관없으면.”
“네!”
“하아….”
위협인지 허락인지 모를 애쉬의 말에 정신이 이상한 대원이 힘차게 대답하고, 운전석에 앉은 대원은 한숨을 내쉰다.
그런 셋을 태운 차량과 뒤따르는 차량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날의 마지막 목적지 인근에 도착했다.
“저기 보이는 건물입니다.”
애쉬가 탄 차가 멈추자 뒤따르던 차량들도 멈춰 섰다.
애쉬는 운전석의 남자가 가리키는 건물을 바라봤다.
“흐음.”
“이번 건 조금 큰 조직이라고 들었습니다.”
대략 500미터 정도 밖. 이 슬럼에서는 보기 힘든 깔끔하고 큰 건물이 보였다.
여타 상가 건물처럼 저급한 네온사인에 뒤덮여있지도, 외견이 투박하지도 않다.
확실히 운전석 대원의 말대로 이번에는 제법 규모가 있는 놈들 같았다. 아마 주변 갱단을 쓸어버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테니 나름의 대비는 하고 있겠지.
옆에 대충 세워뒀던 칼을 집은 애쉬가 차량에서 내렸다. 그러자 아까 전의 말이 진심이었는지 정신이 이상해 보이던 대원이 따라 내렸다…가 그대로 잡혀 끌려갔다.
“야, 야! 이게 진짜 미쳤나! 이리 와 임마!”
“아앗! 갈 거라니까요!”
“얌전히 있어라 좀!”
둘이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목소리만 들어도 웃긴 것 같은 둘의 대화.
다시 한번 픽 웃은 애쉬는 굳이 붙잡혀 있는 대원을 기다리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따라와서 구경해도 된다는 말은 진심이었지만, 처음부터 따라올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도 안했다.
동료라는 놈들이 그냥 보내줄 리는 없지 않은가.
사실 그의 입장에서도 귀찮은 게 붙어 있어봐야 좋을 게 없었으니.
애쉬는 조금 풀린 기분으로 발걸음을 계속했고, 목표가 되는 건물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러자 곧장 요란한 총성이 울리며 그에게 환영 인사 대신 총탄의 세례가 쏟아졌다.
투다다다!!
"으하하하! 죽어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