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2. 달의 꽃과 뱀파이어(2)
* * *
“꺄악!!”
건물 유리가 터져나가며 뒤늦게 바깥 행인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애쉬는 한 차례 총탄 세례가 지나가자 숙였던 몸을 세웠고, 그에 따라 총격을 멈춘 갱들이 그의 눈에 띄는 외모를 알아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은발에 청안? 애쉬 론모어?”
“…주변을 정리하고 있다는 게 저놈이었나?”
그를 알아본 갱들이 웅성거린다. 애쉬는 코트에 내려앉은 유리 파편 따위를 털어내며 그들에게 가볍게 말을 던졌다
“환영 인사가 거창한데?”
한 순간 쏟아진 총탄의 수만 백 수십에 달했다. 애쉬는 두터운 방탄 코트 위로 총탄을 받아낸 부위가 살짝 얼얼한 것을 느꼈다.
역시나 사회의 쓰레기들답게 불법 개조 정도는 개나 소나 다 하고 다니는 듯하다.
일반인이라면 방탄 코트로 받아내도 피멍이 들고, 잘못 맞으면 뼈가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충격이었지만, 애쉬에게는 가벼운 안마 정도에 불과했다.
“그렇군, 애쉬 론모어. 어제 있던 일들은 네놈 짓이냐?”
총탄 세례에 노출되고도 태연히 몸을 풀고 있는 애쉬에게 대표 격의 갱이 나서서 물었다.
그 물음에 애쉬가 장난스럽게 반문했다.
“총질 다음에 질문이라. 순서가 바뀐 것 아닌가?”
“닥치고 대답이나 해라!”
“오, 무서워라. 그래, 그쪽이 예상한 대로 어제오늘 해서 몇 군데 정리하긴 했지.”
한번 능청을 떨어 보인 애쉬는 순순히 그 질문에 답했다. 어차피 이 녀석들도 같은 처지가 될 텐데, 약간의 궁금증 정도는 풀어줘도 괜찮겠지.
그런 애쉬의 대답에 대표 갱이 다시 한번 물었다.
“왜지? 이쪽의 일에는 신경 쓰지 않는 게 아니었나?”
“뭐, 의뢰 정도라고는 대답해줄 수 있긴 한데…. 그게 중요한가?”
물음에 짧게 대답한 애쉬가 그들을 돌아보며 도발했다.
“언제까지 입으로만 떠들 거야? 혹시 쫄았냐?”
“…건방진 새끼.”
그의 도발에 대표 격의 갱이 인상을 구겼다. 놈의 눈짓에 서서히 다른 갱들이 총구를 다시 치켜드는 게 보였다.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죽을 자리를 찾아 왔다면 잘 온 거다.”
“호오, 그래.”
그 재치 있는 말에 애쉬는 가볍게 웃으며 갱들의 숫자를 헤아렸다.
당장 정면에 보이는 숫자만 서른. 양 옆에도 열 명 정도씩 자리 잡고 있고, 아마 이곳뿐 아니라 위층에도 상당수가 있을 것이다.
이곳 1층 로비에 쉰 정도가 있는 걸 보면 이 건물 전체에는 어림잡아 100 ~ 200 정도 되는 숫자가 있을 것 같다.
단순 숫자비로만 1 : 200.
더군다나 한 명인 쪽은 칼 한 자루만을 쥐고 있고, 200쪽은 총기를 비롯한 온갖 무기들로 무장되어 있다.
숫자만 놓고 본다면 어느 누구도 1 쪽이 이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 상대 쪽도 애쉬 론모어라는 이름을 알고 있으면서도 숫자를 믿고 뻗대는 중이고.
하지만 애쉬는 거리낌 없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자신에게 수십 개의 총구가 겨눠져 있었음에도.
그것을 본 갱들이 애쉬를 비웃었다.
“흐흐, 완전히 돌아버렸군. 여길 정면으로 돌파하겠다고?”
“제깟 놈이 그래봐야 인간이지…!”
인간은 총에 맞으면 죽는다. 그건 일반인이고, 강화인간이고, 사이보그고 모든 이들에게 통용되는 말이었다. 애쉬에게도 마찬가지.
아무리 그라고 해도 총에 맞으면 죽는다. 12레벨의 신체능력이 있다곤 하지만 그래봐야 사이보그보다 내구성이 부족한 게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간단한 사실은 여태껏 애쉬가 상대해왔던 모두가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애쉬는 지금 이곳에 멀쩡히 서 있었고.
“이봐, 지금이라도 동료를 부르시지! 물론 네 동료가 올 때쯤이면 넌 이미 뒈져있겠지만!”
“동료 같은 건 없는데.”
그리고,
“너희 같은 쓰레기를 치우는데 도움이 필요할 것 같지도 않고.”
애쉬가 덧붙였다.
어느새 그의 손에 뽑혀 나온 칼날이 조명을 받아 번뜩였다. 애쉬는 친절히 갱들이 반응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그러지 않으면 너무 시시하게 끝날 테니까.
“흐, 그래! 언제까지 건방지게 굴 수 있나 보자!뭐해! 씹창을 내버려!!”
앞장선 대표 갱의 목소리와 함께 총탄이 빗발치며,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
수십의 갱들을 앞에 둔 애쉬는 가만히 선 채 그들을 바라봤다. 자신들의 숫자를 믿고 뻗대는 머저리들. 애쉬 론모어라는 이름을 못 들어봤을 리는 없으나 그에 대한 모든 소문이 거짓이라 여기는 것 같다.
애쉬는 왜 자신이 그렇게나 명성을 떨치면서도 이 슬럼에서 상처 하나 없이 멀쩡히 살아갈 수 있는지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언제까지 건방지게 굴 수 있나 보자!뭐해! 씹창을 내버려어어!!”
외치는 목소리가 영상의 배속을 줄인 것 마냥 주욱 늘어나고, 가장 앞에 선 갱의 총구가 불을 뿜음과 동시에 시간이 끝없이 가속한다.
정면에서 쏘아지는 탄환들은 점차 느려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일반인도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릿하게 움직였다.
첫 탄환이 발사되며 튕겨나간 탄피는 아직도 절반도 떨어지지 않았다.
오버 드라이브(Over Drive).
원작 게임 내에서는 신체능력과 전투계열 숙련도가 일정 이상 올라야만 개방되는 특수한 전투 시스템.
스텟이 올라가면 캐릭터의 성능은 높아지지만,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플레이어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능이다.
전투 돌입 시 플레이어 캐릭터의 시간이 가속하여, 세상이 느려진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그 기능은 현실이 된 지금도 제몫을 다했다.
아니, 오히려 이전 신체능력과 숙련도가 10레벨에 도달했던 게임 속보다도 더욱 대단한 성능을 발휘했다.
애쉬는 느려진 세상 속에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탄환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이렇게 느려진 세상 속에서도 대기를 꿰뚫고, 회전하며 계속해서 전진하는 총탄들.
느려진 세상 속에서도 제법 빠른 총탄들은 그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아무리 그의 사고 속도가 최고조에 달할 정도로 가속됐다 하더라도 더 이상 가까워지면 위험할 수 있다.
몸을 움직이자 마치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적지 않은 저항감이 느껴졌다. 언제 겪어도 익숙해질 수 없는 감각.
시간이 느려지며 그의 몸이 움직이는 속도도 크게 느려졌다.
하지만 괜찮다. 이 느려진 세계에서 그보다 조금이라도 빠른 것은 막 쏘아진 탄환밖에 없었으니.
애쉬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탄환들을 피하지 않고, 발끝을 튕겨 오히려 앞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검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며 그것을 휘둘렀다.
게임 속 한계치인 10레벨을 초월하여 12레벨에 다다른 신체능력과 도검류 숙련도, 그리고 오버 드라이브.
그 세 가지가 합쳐지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도 가능하게 된다.
피할 수 있는 탄환은 피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은 칼날을 눕혀 자신이 원하는 각도로 탄환을 쳐낸다. 튕겨나간 그 탄환이 향하는 곳은 뒤따르고 있는 또 다른 탄환.
그래, 그는 지금 탄환을 튕겨내 다른 탄환과 상쇄시키고 있는 것이다!
쳐낸 탄환이 다른 탄환과 부딪혀 둘 모두가 떨어져나가고, 애쉬는 계속해서 피하고 튕겨내며 나아갔다.
그리고 그렇게 길을 만들며 나아간 애쉬는 어느새 대표 격으로 보이던 갱의 앞에 도달했다.
당장 팔만 뻗어도 닿을 거리. 갱의 혼탁한 눈과 애쉬의 청안이 마주쳤지만 상대방은 아직 그를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애쉬의 체감으로는 십여 초도 더 될 기나긴 시간이었지만, 저들에게는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새에 불과했을 테니.
애쉬의 팔이 움직이고, 허공에 그려지는 은빛 선이 부드럽게 대표 갱의 목을 가르며 지나간다.
놈의 목에 붉은 실선이 그어지는 것을 확인한 애쉬는 그대로 놈의 옆을 통과하여 연달아 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갔다.
칼날이 옆 놈의 어깨부터 옆구리까지를 통과한다.
그 다음에는 뒤에 위치한 한 놈을 사타구니부터 정수리까지 올려 벤다.
그 뒤에는 걸리적거리는 다른 놈의 팔을 베어내고,
놈을 지나치며 다른 한 녀석의 목을 자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치듯 지나가며 맨 뒤에 있던 셋의 목을 한 번에 베어내는 것으로 한 턴의 끝.
가장 먼저 총을 쏜 놈의 탄피가 바닥에 닿을 때 쯤, 느려진 시간이 서서히 가속하며 세계가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을 시점.
마구잡이로 총을 쏘아내던 갱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허공에 떠오른 머리들과 쏟아지는 내장. 그리고 피의 분수였다.
*
“허억, 허억…! 아, 악마! 악마야 저건…!”
동료들의 피를 뒤집어 쓴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다급히 계단을 통해 층을 올랐다. 어서 위층에 있는 동료들과 합류해야한다. 아니, 가능하다면 모든 층에 있는 녀석들을 모아서 한 번에 덮쳐야만 했다.
그들의 아지트를 찾아온 ‘애쉬 론모어’와 갱들의 전투는 일방적이라는 말조차도 부족했다.
갱들은 상대방의 수십 배는 되는 자신들의 숫자를 믿었지만 그것은 끔찍한 오만이었다.
남자는 자신이 봤던 장면들을 떠올리며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들, 갱의 자신감이 공포로 변하기까지는 그야말로 한 순간이었다.
그들이 방아쇠를 당긴 순간, 이미 ‘애쉬 론모어’는 그들의 앞에서 사라져 있었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순간 목이 날아간 동료들의 피 분수를 뒤집어썼다.
그뿐 아니다. 데칼코마니라도 하듯 몸이 정확히 절반으로 갈라져 내장을 쏟아내던 동료의 시체, 신체 내부에 기계 부품이 삽입된 사이보그임에도 토막이 난 또 다른 동료의 몸통.
그 모든 것은 영화 속의 장면을 구경하기라도 하듯 지독히도 현실감이 없었고, 그와 동료들은 탄창을 갈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조차 잊고 적막에 빠졌다.
그 뒤로는 광란에 빠진 발악과 사냥의 연속이었다.
현실이라곤 믿을 수 없는 장면에 그의 동료들은 반쯤 정신을 놓아버렸고, ‘애쉬 론모어’는 한 치의 자비도 없이 그런 갱들을 살해했다.
도망친 남자는 그나마 운이 좋았다. 애쉬 론모어와 가장 거리가 멀었고,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곧장 내뺀 결과 자신의 목숨만이라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부여잡고 뛴 결과, 다른 동료들이 대기 중인 곳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벌써 조용해졌는데?
에라이, 끝났나보네. 간만에 재미 좀 보려고 했더니.
아, 그럼 이따 카드게임이나 할까?
콜.
벽 너머로 한가로운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어서 알려야 했다.
덜컹!
도망친 남자는 있는 힘껏 문을 열어 재꼈다.
“헉, 허억…. 주, 준비…. 준비해야해…!”
“응? 뭐야, 너 맥카시냐? 밑엔 어때? 꼴을 보니까 한 바탕 시원하게 했나보다?”
“아, 부럽네. 이쪽도 몸 좀 풀고 싶었다고.”
아직까지 상황을 모르고 시시덕거리는 동료들. 도망친 남자는 목이 찢어질 것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빨리, 빨리 준비해야 해! 놈이 온다고!!”
“뭐?”
“…설마 밑이 다 당했냐? 그 많은 녀석들이?”
“하, 그래. 야, 네 소원대로 한 바탕하게 생겼네.”
남자의 절규와도 같은 외침에 그의 동료들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듯 무기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층에서 도망친 남자는 곧장 무기를 챙기는 동료들을 보고 안심할 뻔 했으나, 곧 바깥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작은 소리에 덜덜 떨 수밖에 없었다.
처억, 척.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달라붙었다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
도망친 남자는 싫어도 그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와, 왔다….”
“응?”
“왔다고?”
피에 젖은 신발이 붉은 발자국을 찍으며 내는 소리.
놈이, ‘애쉬 론모어’가 오고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