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14화 (14/230)

〈 14화 〉 2. 달의 꽃과 뱀파이어(5)

* * *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63구역의 모든 공직자들을 대신해 감사 인사를 전해드립니다.”

애쉬가 건물에서 나오자 그를 기다리던 대원이 유난히 거창하게 인사했다. 드디어 5일에 걸친 63구역 중심가의 갱단 정리가 끝난 것이다.

애쉬는 그런 대원의 감사 인사에도 코웃음쳤다.

“흥, 그놈들이 퍽이나 감사하겠군.”

의뢰를 처리하는 도중 자신도 나자빠지길 바랐을 텐데, 그렇게 되지 않아 아쉬워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대원은 애쉬의 시니컬한 반응에도 변함없이 웃는 낯으로 물었다.

“일도 완전히 끝나셨는데, 오늘도 유흥가로 가십니까?”

“어.”

“음…, 경찰이란 놈이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가끔은 그런 자유가 부럽습니다.”

“왜, 여기 경찰들은 유흥가 이용이 제한되나?”

“아뇨, 따로 그런 규칙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눈치는 좀 보이지요.”

경찰도 인간인 만큼 성욕이나 기타 물욕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들은 타 시민들처럼 자유로이 유흥가를 이용하기엔 얽혀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 대원의 말에 애쉬가 툭 던지듯 말했다.

“눈치 볼 게 있나. 불법도 아닌데.”

웨인 시의 자치법에 따르면 시 정부에 허가 및 신고가 된 업소에서의 매춘 행위는 불법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흥가는 도시 자체에서 그런 테마로 맞춰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을 정도.

법전에도 합법이라 명확히 명시되어 있으니 당연히 경찰이 이용하는데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애쉬의 말을 들은 대원은 고개를 저었다.

“저한테도 그런 당당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저는 그런 사람은 못되는 모양이어서요.”

“그래?”

“예, 사실 평상복을 입고 가볼까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역시 마음에 걸려서 못 갔습니다.”

“그렇게 착한 사람 같지는 않은데.”

“하하.”

대원이 애쉬의 말에 가볍게 웃었다. 그의 진심이었지만, 대원은 농담으로 들은 모양이다.

애쉬는 굳이 대원의 생각을 정정해주지 않았다. 착각이야 자유니까.

“녀석이 아쉬워하겠군요.”

“아, 그 녀석.”

차량을 향해 걷던 중 대원이 애쉬에게 다른 대원의 얘기를 꺼냈다. 며칠 동안 애쉬와 직접 얼굴을 보고 함께했던 어린 대원의 얘기다.

순수하게 보이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피와 시체에 거리낌 없던 녀석.

진압대의 막내일 어린 대원은 아직 현장을 정리하고 있을 것이었다.

애쉬는 그 이름도 모르는 어린 대원의 얼굴을 잠깐 떠올리다 이내 지워버렸다.

그가 ‘달의 꽃’에서 받은 의뢰도 방금으로 모두 끝났고, 이제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더 볼 것도 없는 사이였으니.

어린 대원 쪽에서는 그에게 무언가 환상을 갖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애쉬에게 그 대원은 조금 이상한 녀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저 차량에 타시면 됩니다.”

그렇게 애쉬가 생각을 정리하던 사이, 그와 그를 안내하는 대원이 목표한 차량에 도착했다.

대원은 차량을 몰아 유흥가의 중심부로 향했고, 애쉬는 창밖을 보며 어디에 밤놀이를 즐기러 갈지 고민했다.

*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애쉬 님. 혹시라도 63구역 경찰청과 문제가 생긴다면 특수진압대를 찾아주십시오. 최대한 편의를 봐드리겠습니다.”

“그래. 그쪽도 수고하고.”

“예. 그럼.”

애쉬를 태워다준 대원이 차를 몰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갔다. 아마 오늘도 밤늦은 시간이 돼서야 일이 끝날 것이다.

애쉬는 자신으로선 상상도 하기 싫을 만큼 빡빡한 경찰청 대원들의 일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 물이 좀 좋아 보이는데, 여기로 갈까?”

“아니. 내가 보기엔 영 아닌데.”

“어서 오세요!”

“지금은 특별한 이벤트 중입니다! 오시면 후회 하지 않으실 거예요!”

길거리를 가는 행인들과 그런 그들을 자신의 가게로 유치하려는 여성 접객원들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진다.

그것은 어두운 밤거리를 번쩍번쩍 밝히는 네온사인들, 영업장들의 창밖으로 새어나오는 붉은 불빛 등과 하나 되어 꽤나 그럴듯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가 과거 현실에 있을 적, 게임 속에서 보았던 유흥가와 같이 몽환적인 분위기.

애쉬가 이 밤거리를 끊지 못하는 것에는 이런 환상적인 분위기도 크게 한몫을 했다.

그렇게 유흥가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며 길을 가던 중, 그에게 헐벗은 여성 접객원 둘이 재빨리 다가왔다.

“오빠! 저희 가게 안 올래요? 오시기만 하면 뭐든지 다 해드릴 수 있는데!”

“응?”

“아니 그쪽 말고 저희 가게는 어때요? 저~쪽에 위치한 곳인데 오시면 제가 특별히 서비스해 드릴게요!”

애쉬의 외모는 이 어두운 밤거리에서도 꽤나 눈에 띄는 종류의 것이라, 곧장 알아보고 온 두 명의 여성은 서로 애쉬를 자신의 가게로 유도하기 위해 양쪽에 바짝 달라붙어선 이곳저곳 과감하게 손길을 내뻗었다.

이왕 누군가를 상대해야 한다면 애쉬 같은 미남자를 상대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노출이 심한 드레스를 입은 접객원과 바니걸 코스튬을 한 접객원은 애쉬를 데려가기 위해 팔을 끌었지만, 그가 꼼짝도 않자 반대편을 잡고 있는 상대방과 기 싸움을 시작했다.

“이쪽이 먼저 왔는데요?”

“먼저 온 게 뭐가 중요해요? 손님 마음에 들어야지!”

“아니, 상도덕이라는 게 있잖아요!”

“상도덕 따질 거면 그냥 가게도 다 일정 거리 이상 물러달라고 하시죠?”

애쉬는 그런 기 싸움과 별개로, 자신에게 달라붙은 둘의 풍만한 몸을 더듬었다.

그가 이 세상에 오며 가장 잘했다고 생각한 일 중 하나가 바로 스스로 캐릭터의 외형을 설정하지 않고, 비싼 값에 커스터마이징한 데이터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지구에서의 그는 그냥저냥 생긴 일반인이었지만, 커스터마이즈 데이터를 불러온 이 세상의 애쉬 론모어는 스스로 거울을 볼 때도 가끔씩 감탄이 나올 정도로 잘생긴 남자였다.

일반적으로 이런 유흥업소의 접객원들은 가게의 에이스급을 보내 손님들을 끌어오기 마련이었는데, 이곳 유흥가 중심부에 위치한 업소들은 기본적으로 수준이 높았고, 그 중에서도 에이스 급이라고 하면 어딜 가도 상당한 미인이라고 불릴 만한 이들이다.

그런 미인들이 그를 사이에 두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쪽 좀 놔요!”

“그쪽이나!”

잠시 둘을 몸을 즐기던 애쉬는 손을 뻗어 두 여성의 둔부를 적당한 힘으로 콱 쥐며 싸움을 말렸다.

“자, 둘 다 그만.”

“꺗!”

두 접객원들은 갑작스런 자극에 작은 비음과 함께 말을 멈췄고, 그때를 틈타 애쉬가 끼어들었다.

“싸우지 말고 일단 바깥에서 구경이나 해보자고. 둘 다 보고 결정할 테니까.”

“네, 네에.”

“그래요, 그럼.”

애쉬에게 시선을 빼앗긴 둘은 순순히 그의 말을 따라 서로의 가게로 안내했다.

“여기가 저희 가게에요.”

먼저 들른 곳은 바니걸 코스튬 접객원의 업소였다. 애쉬는 들어갈 필요도 없이 바깥에서 그곳을 찬찬히 훑어봤다.

붉은 등이 켜진 대형 쇼케이스 안.

늘씬한 몸매에 각기 다른 색과 디자인의 란제리만을 걸친 여성들이 앉아 거리를 바라보며 행인들에게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곳 63구역 유흥가 중심부에 위치한 업소들은 대체로 이런 느낌이었다.

바깥에서부터 구경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가서 지명하는 방식.

바니걸이 안내한 가게는 확실히 중심가에 위치한 곳인 만큼 하룻밤을 보내기엔 제법 괜찮은 여자들이 많았다.

애쉬가 천천히 쇼케이스 안을 훑어보자 자신만만해진 바니걸이 그를 향해 말했다.

“원래는 안 해드리는 건데 손님 정도면 한번에 여럿이라도 몇 명이든 가능할 걸요? 지금 저기 애들도 손님한테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잖아요.”

“그건 좋네.”

바니걸의 말대로 쇼케이스 안의 여성들의 시선은 이미 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옆에 자신들의 가게에서 나온 접객원이 있기 때문일까.

그가 자신들의 가게에 올지 고민 중이라는 것을 알아챈 여성들은 요염한 눈짓과 몸짓으로 그를 유혹했다.

여자든 남자든 마음은 다 똑같은 것이다. 기왕이면 잘생기고 예쁜 쪽이 좋은 거지.

짧게 구경을 끝낸 애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다음.”

“에, 바로 안 오시구요? 자신 있었는데….”

“승부는 공정해야지.”

“흥, 여긴 그냥 그 정도인 거예요. 자, 손님 이쪽으로 오세요.”

드레스 차림의 접객원이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애쉬가 그녀를 따라 움직였고, 얼마 가지 않아 또 다른 가게에 도착했다.

이곳도 앞에 구경했던 곳과 마찬가지로 대형 쇼케이스 안에 여성들이 앉아 있었는데,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붉은 등이 많은 유흥가 내에서도 흔치 않은 하얀 등을 켜뒀다는 것과, 안에 대기하고 있는 여성들이 란제리가 아닌, 은근한 노출을 보이는 드레스를 차려입었다는 것이다.

“최근에 오픈해서 거의 때가 타지 않은 친구들이에요. 다른 곳들이랑 다르게 나름의 품격을 컨셉으로 잡고 있죠. 어떠세요?”

“오. 이건 또 새로운데.”

애쉬는 쇼케이스 안에 앉은 여성들을 바라봤다. 은근한 노출은 있었지만 여타 가게들과 달리 대놓고 몸매를 노출하는, 어떻게 보면 천박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느낌이 별로 없었다.

그는 자신을 데려온 접객원이 입은 드레스의 노출이 심하기에 다 그런 정도일 줄 알았더니, 그녀가 유난히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도 여럿이서 되나?”

“저희도 원래는 안 되는데 손님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할 거예요. 사장님이 안 된다고 해도 가격만 조금 맞춰주시면 무조건 해드릴 수 있어요.”

“그렇단 말이지.”

“네!”

돈이야 얼마든지 있으니 고민할 거리도 안 된다.

애쉬는 자신을 바라보는 두 접객원들의 시선을 받으며 고민했다.

한 쪽은 화끈한 타입인 것 같고, 한 쪽은 조금 얌전한 타입.

양 쪽 다 나름의 개성이 있어 어디가 더 우월하다 할 수 없었다.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저희 가게로 오실 거죠?”

“아니, 저희 쪽이죠?”

잠시 고민하던 애쉬가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역시 흔한 바니걸 쪽보다는 조금 희귀한 드레스 쪽이 낫지 않겠는가.

마침 일도 하나 끝냈으니, 색다른 기분으로 즐기기 위해 드레스 쪽의 손을 들어주려던 때였다.

“그럼….”

“안녕, 여기 있었네.”

유흥가의 번잡한 소리들을 뚫고, 듣기 좋은 미성이 그의 귓가에 흘러들어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