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20화 (20/230)

〈 20화 〉 2. 달의 꽃과 뱀파이어(11)

* * *

이쪽은 정말 도시 안쪽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두어 시간 정도 74구역의 길을 따라 걷던 애쉬가 생각했다.

온갖 역겨운 냄새가 풍기는 거리와 처음 보는 외부인을 향해 진한 경계심을 표하는 현지인들.

곧 무너질 것 같은 판잣집이 가득하고, 그나마 멀쩡한 건물조차 71구역의 슬럼과도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허름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의 차림 또한 마찬가지였다.

도시 안쪽의 슬럼이 지구의 한국이라면, 이곳은 지구 남아프리카 어딘가에 존재할 진짜배기 슬럼 같이 느껴질 정도.

당장 그를 바라보는 이곳 현지인들의 눈만 보아도 그렇다.

그들의 눈동자 안에서는 경계뿐 아니라 자신보다 잘 차려입은 자에 대한 질투와 분노, 미약한 살심까지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끼니나 제대로 챙길 수는 있을지 궁금한 이곳의 현지인들이 그에게 위협이 될 리는 없겠지만, 결코 오래 있고 싶은 곳은 아니다.

“이봐, 거기.”

“응?”

그렇게 현지인들의 시선을 받으며 얼마나 걸었을까. 누군가가 애쉬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에 애쉬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른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봤다.

여타 현지인들과 다를 바 없이 꾀죄죄한 옷차림과, 제대로 씻지도 못했는지 얼굴에까지 땟국물 마른 자국이 남아있는 거지꼴의 남자.

그는 애쉬가 자신을 발견하자 말을 계속했다.

“너 외지인이지? 계속 그렇게 다니면 오늘 밤쯤 저기 푸줏간 갈고리에 걸려있을걸.”

갑작스레 자신에게 경고인지 충고인지 모를 말을 던지는 남자.

애쉬는 그가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해 가까이 다가가려 했으나, 그에게서 열 걸음 정도를 남겨 두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윽.”

다른 게 아니라 남자에게서 풍겨 나오는 냄새가 너무도 심했기 때문이다.

“흐흐, 너무 노골적으로 싫다는 표정이구만. 이쪽은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려는 건데.”

“잠깐, 거기 멈춰.”

남자는 인상을 구긴 애쉬를 향해 웃으며 다가오려 했으나, 애쉬는 그가 다가오는 만큼 뒤로 물러서며 다급히 남자를 제지했다.

안 그래도 일반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감각이 뛰어난 애쉬였기에 지린내와 온갖 오물 냄새가 넘치는 이 거리를 걷는 것조차 고역이었는데,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는 그보다 한층 더 대단했다.

도저히 참고 더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남자는 애쉬의 제지에 순순히 멈춰 섰다.

“뭐, 알겠네, 알겠어.”

애쉬는 코를 틀어막고 자신의 말에 멈춰선 남자를 살폈다.

씻지도 않는 사람이 자기 관리를 할 리가 없다. 허허 웃는 입 속에는 싯누런 이빨이 자리하고 있고, 떡지다 못해 완전히 굳어버린 듯한 곱슬머리에는 이가 들끓었다.

워낙 더러워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목소리나 대충 보이는 외모 따위를 봤을 때 나이는 서른 후반에서 마흔 초중반 정도로 보인다.

대충 남자를 살핀 애쉬가 물었다.

“방금 한 말이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긴. 말 그대로지. 그런 차림으로 돌아다니다간 하루도 못가서 푸줏간 고깃덩어리가 되고 말걸.”

“…여기 현지인들이 식인이라도 한다는 건가?”

“흐, 차라리 식인만 하면 다행이겠지. 가까이서 보니 그쪽은 반질반질 한 게 노리개거리로도 잘 쓰이겠어. 검문소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나?”

“그렇다면.”

“운이 좋았어. ‘베이론’놈들한테 걸렸으면 벌써 팔다리가 잘려나가 잔뜩 쑤셔지고 있었을 텐데.”

남자는 농담 같지 않은 말들을 태연히 내뱉었다. 애쉬는 남자의 입에서 나온 ‘베이론’이란 이름에 귀를 기울였다.

“‘베이론’이?”

“그래. 외지인이라도 그 놈들 이름은 알겠지?”

“알기야 하지.”

다만 이름만 들었다 뿐이지 그 이상으로 아는 건 거의 없었다. 이번 의뢰를 받긴 했지만 별다른 사전 조사도 하지 않았고.

직접 와보기 전에는 그냥 좀 과격한 갱단인가보다 했지만, ‘베이론’의 구역으로 알려진 74구역에 와보니 그 느낌이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정말 매일 수십 수백씩 죽어나가도 아무렇지 않을 지역의 분위기와 눈앞의 남자가 툭툭 던지는 말들에서 느껴지는 뉘앙스.

살인, 식인, 남색 등등.

만약 이 거지꼴의 남자가 내뱉는 말이 모두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면, ‘베이론’은 애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미친놈들이 모인 갱단일 것이다.

“내 그쪽을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지금 당장 저 도시 안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얼마 전에 바깥에서 피를 보고 왔는지 놈들 눈이 완전히 돌았거든.”

“그래? 난 그놈들한테 볼일이 있어서 온 건데.”

“흐, 자살지망자였나? 내가 괜히 갈 길 가던 사람을 붙잡았군 그래.”

‘베이론’에 볼일이 있다는 말에 남자가 비꼬듯 말하곤 덧붙였다.

“하지만 자살에도 더 아프지 않고 좋은 방법은 많아, 젊은 친구. 잘 생각하고 돌아가든 말든 하라고.”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애쉬를 만류하지 않고 물러났다. 애쉬도 그런 남자를 굳이 붙잡지 않았다.

거지꼴을 하고 있긴 했지만, 그를 위해 저런 얘기들을 해준 남자다. 냄새 이전에 ‘베이론’과 부딪힐 게 분명한 애쉬 자신과 얽혀서 좋을 게 없었다.

남자를 떠나보낸 애쉬가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더 미친놈들인 모양인데.”

슬럼에 떨어졌던 애쉬도 처음 보는 부류. 식인까지 행한다는 것은 이미 인간이길 포기했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미친놈들, 미친놈들 하더니 진짜 대단히 머리가 돌아버린 짐승들이 모인 것 같다.

74구역에 들어오자마자 ‘베이론’의 아지트에 숨어들어 정보만 캐볼까 했던 애쉬는 거지꼴의 남자와의 짧은 대화 이후 생각을 바꿨다.

“조금 더 알아봐야겠어.”

애쉬는 자원봉사자가 아니다.

그렇기에 슬럼의 쓰레기들을 치우는 건 그의 일이 아니었지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을 잡아먹는 역겨운 짐승들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

­ 뻐억!

“꺼흡, 사, 살려….”

힘을 충분히 조절한, 가벼운 주먹질. 하지만 그조차도 인간을 한참은 초월한 근력이 더해지면 어지간한 둔기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어둑한 골목길, 애쉬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쓰러진 놈을 짓밟고 말했다.

“그러게 좋게 말 할 때 얘기 하라니까.”

“하, 할게, 할 테니까…아악!”

“새끼가 반말은.”

“하, 하겠습니다! 하겠습니다!!”

그냥 무게를 실어 누르고 있는 것 같은데, 수백 킬로그램짜리 철근이 올라온 것 마냥 숨이 턱턱 막힌다.

반말을 쓰다 팔이 부러진 남자는 애쉬의 바지자락을 붙잡고 무엇이든 말하겠다며 빌었다.

애쉬는 남자의 멀쩡한 반대쪽 팔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베이론’에 대해서 다 불어. 아니면 이번엔 반대쪽이다.”

팔이 부러지는 격통에 식은땀을 흘리던 남자가 소리쳤다.

“다! 전부 다 말하겠습니다! 제발!”

남자는 ‘베이론’ 소속의 말단이었는데, 혼자 나돌아 다니다 멀끔한 차림의 애쉬를 발견한 뒤, 달려들었다가 그대로 박살이 났다.

애쉬에게는 정말 운 좋은 일이었다. 때마침 아무런 의심도 없이 덤벼들어주는 ‘베이론’ 소속의 갱이 있을 줄이야.

덕분에 애쉬는 좀 더 편하게 ‘베이론’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저, 저는…….”

애쉬가 몇 대 두들겨 준 남자는 말단답게 쉽게도 입을 열었다.

자신이 ‘베이론’에 들어간 시점.

그리고 현재 ‘베이론’ 안에서 맡고 있는 직위.

‘베이론’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까지.

애쉬는 말단 갱의 이름이나 나이처럼 필요 없는 정보들은 가볍게 걸러 넘기며, 자신이 알고 있던 정보와 말단 갱이 떠들어대는 정보를 비교하거나, 전혀 모르고 있던 정보들을 머릿속에 입력했다.

“얼마 전에는 도시 안쪽으로 들어갔었다고?”

“예, 예. 갑자기 보스가 ‘뱀파이어’의 영역을 찔러 보라고 해서…….”

“너희 보스가 누구지?”

“‘방화광Pyromaniac 루이스’입니다….”

“‘방화광 루이스’?”

“예….”

애쉬가 처음 듣는 별명과 이름에 되물었고, 말단 갱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화광 루이스’.

방화광이라는 별명은 분명 불장난을 좋아해서 붙은 별명일 것이다.

‘베이론’뿐 아니라 다른 거대 갱단들의 보스에게도 비슷한 별명은 하나씩 있었다.

애쉬가 무너뜨린 ‘오마르의 망치’의 보스였던 ‘폭군Tyrant 오마르’.

외모와 이름이 바깥에 알려지지 않은 ‘뱀파이어’의 보스, 레이라 플로리스의 ‘뱀파이어Vampire’.

그리고 거대 갱단의 보스는 아니지만 슬럼 전체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애쉬 자신의 ‘미친 칼잡이’란 별명 등.

유명인들의 특색을 담은 별명을 붙이는 것은 뒷세계의 오랜 전통이었다.

애쉬가 그런 말단 갱의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쳤다.

“허, 식인에 남색에 방화광? 진짜 악질인 새끼들만 모였네.”

살인만으로는 부족해서 식인에 남색이 깔린 조직의 보스가 방화광이라니, 진짜 제대로 된 갱단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애쉬의 표정이 조금씩 식어가자 그의 발밑에 깔린 채 정보를 불던 남자가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시, 식인이나 남색은 진짜 역겨운 놈들이나 하는 짓거립니다! 저는 그런 쓰레기 같은 짓은 안했어요!!”

“그딴 새끼들이랑 같은 곳에 있다는 것부터가 똑같은 놈이라는 거지.”

“흐윽, 살려주세요…!”

“안 죽여.”

지금은.

애쉬가 뒷말을 삼켰다. 아직 이놈에게선 들어야 할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말단 갱은 애쉬의 뒷말과 곧 자신에게 찾아올 죽음을 직감했는지 필사적으로 ‘베이론’에 관한 얘기를 털어놓았고, 그것으로도 애쉬의 표정이 변하지 않자 변명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저희 조직이 이랬던 건 아닙니다, 진짜로요! 2년 전인가부터 몇몇 놈들이 갑자기 훼까닥 돌아서……!”

“…뭐?”

말단 갱의 끝없이 이어지던 변명과 살려달라는 애원을 흘려듣던 애쉬의 귓가에 한 문장이 잡혔다.

2년 전인가부터 몇몇 놈들이 갑자기 이상해졌다고?

“다시 말해봐. 뭐라고?”

“예, 예? 어, 어떤 걸….”

“2년 전인가부터 이상해졌다며. 그거 다시 말해보라고.”

“그, 그게…, 2년 전인가부터 갑자기 보스랑 몇몇 간부들이….”

애쉬의 지적에 말단 갱이 말을 더듬거리며 설명했다.

2년, 혹은 그보다 조금 더 전부터인가 갑자기 보스와 몇몇 간부들이 과도할 정도의 폭력성을 보이는가 싶더니, 위에서부터 점차 갱단 전체가 미쳐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식인과 남색 따위도 그 전까진 전혀……라고는 못하겠으나 어쨌든 식인 행위만큼은 전혀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분위기가 이상해지며 ‘베이론’ 대부분이 변했다는 것.

3년 전부터 지금까지 말단으로 ‘베이론’에 속해있었던 말단 갱은 그런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2년 전부터 거의 혼자 활동했다고 설명했다.

뭔가가 있긴 하군.

말단 갱의 설명을 들은 애쉬가 고개를 주억였다.

‘베이론’ 전체가 이상해지기 전까지는 74~76구역의 분위기도 지금처럼 나쁘진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상해지기 시작한 ‘베이론’은 지금에 이르러 온갖 괴악하고 역겨운 짓거리를 벌이는 집단이 되었다고.

무엇이 그들을 변하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그가 받은 이번 의뢰와 관계가 있는 일일까?

‘베이론’이 변한 이유와 직접적인 관계도 없는 말단 갱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게 전부였지만, 애쉬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무언가의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걸 느꼈다.

“저, 전부 다 말씀드렸는데, 살려주시는 겁니까?”

애쉬가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말단 갱의 목소리가 그의 정신을 일깨웠다.

끝까지 자신의 삶을 약속받고 싶어 하는 말단 갱.

그에게 단서가 될 만한 정보를 들은 애쉬였지만, 이 말단 갱에 대한 그의 생각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식인이나 남색, 방화 등을 저지르지는 않았다고? 그럼 완전히 인간을 벗어난 짐승 새끼가 된 건 아니긴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쓰레기에 불과했다.

이 말단 갱이 정말 그 자신의 말대로 멀쩡한 인간이었으면 그냥 길을 가던 애쉬에게 달려들진 않았겠지.

애쉬는 긴장에 젖어 자신을 바라보는 말단 갱에게 끝내 사형을 선고했다.

“아니.”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