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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22화 (22/230)

〈 22화 〉 2. 달의 꽃과 뱀파이어(13)

* * *

“아, 내가 왜 이 시간에 이 지랄을 해야 하는 거냐.”

“내 말이.”

“‘그거’ 좀 적당히 좀 쳐 할 것이지.”

“이봐, 여자. 넌 이쪽으로 와.”

“네, 네….”

“뭐야, 하나 빨아 죽인 년인데 데리고 자려고?”

“그럼 아깝게 그냥 지하로 보내라고? 얼마나 좋았으면 하다 뒤졌는지 나도 느껴봐야지.”

“큭큭, 미친 새끼. ‘그거’ 때문에 뒤진 거지 섹스하다 뒤진 거겠냐고.”

“아, 몰라. 이 시간에 좆같이 뺑이치는데 이 여잔 내꺼야.”

겁에 질린 듯한 여자 하나와 남자 셋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올라가던 애쉬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바로 아래층 복도 쪽으로 몸을 숨겼다.

“야, 방은 내가 정리할 테니까 시체는 니들이 지하로 가져가라.”

“방금 하나 뒤진 곳에서 하게? 진짜 미친놈이네, 이거.”

“빨리 꺼지기나 해.”

“오케이, 오케이. 네 맘대로 해라. 대신 제대로 치워.”

“알았다니까. 야, 넌 이리 와.”

“꺅!”

작은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바깥에서 납치해온 여자일 것이다.

쾅!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무게감 있는 발걸음 소리가 계단 쪽으로 움직였다.

아마 저들이 시체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들고 내려오고 있는 것을 테다.

애쉬는 잠시 시체를 들고 내려오는 두 놈들을 붙잡아 정보를 캐볼까 싶었지만, 무언가를 알기에 그보다도 좋은 방법이 있었다.

“빨리 끝내고 나도 즐기러 가야지.”

“쓰읍, 난 좀 신선한 고기 좀 들어왔으면 좋겠다. 이런 거 말고.”

“우웩, 역겨운 새끼. 그걸 씨발 왜 쳐먹는 거야.”

­ 뚜벅, 뚜벅.

짧은 대화와 함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진다. 애쉬는 그들의 대화에서 한 가지 정보를 더 얻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지하가 인육을 가공하는 곳인가 본데.’

74구역 외부뿐 아니라, 아지트 내부에도 저렇게 시체가 된 인간들을 가공해 인육으로 만드는 곳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앞서 말단 갱에게서 캐낸 정보처럼 인육을 먹는 게 역겹다는 반응을 하는 놈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계속 함께하고 있는 것 같고.

아마 저놈들이 ‘그것’이라고 부르는 약이 그 원인일 것이었다.

애쉬는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완전히 멀어지자, 다시 계단을 올라 한 남자와 잡혀온 여자가 들어갔을 것이라 예상되는 곳으로 향했다.

계단과 복도의 경계쯤에 위치한 방이었다.

­ 흐윽, 흑….

­ 이 씨발년!

문 앞에 서기만 해도 안쪽에서 흐느끼는 여자와 욕지거릴 내뱉으며 헐떡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쉬는 복도로 누군가 나오기 전에 안쪽으로 진입하기 위해 문고리를 돌려봤지만, 갱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받지 않기 위함인지 문이 잠겨 있었다.

그렇다면 당장 문을 열 방법은 몇 없었다.

문을 부수거나, 칼로 베어 열거나, 아니면 안쪽에서 스스로 열게 만들거나.

그 중에서도 부수거나 검으로 문을 베는 것은 위험부담이 좀 컸다.

부수는 건 아무래도 소리가 울릴 것이었고, 문을 완전히 베어버리면 혹시라도 누군가 복도론 나와 발견하곤 비상을 울릴 수도 있었으니.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다. 안쪽에서 문을 열게 만드는 것.

“크흠. 아, 아.”

애쉬는 한 차례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은 뒤 시체를 들고 지나간 갱 중 하나의 목소리를 최대한 묘사하며 문고리를 거칠게 돌렸다.

­ 덜컹, 덜컹.

“이봐, 문 좀 열어 봐!”

목소리가 그렇게 비슷하지는 않았지만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니 헷갈리게 하는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그런 애쉬의 의도대로, 안쪽에서는 짜증 섞인 반응이 돌아왔다.

­ 아 씨발, 뭐야 또!

“뭘 좀 두고 갔어.”

­ 나중에 가져가!

“아, 진짜 중요한 거라고.”

­ 빨리 안 꺼지면 진짜 뒤진다!

대화가 길어지면 들킬 위험이 있다. 애쉬는 더 이상 대답도 않고 문고리만 덜컹덜컹 흔들었다.

그렇게 몇 초 정도 계속하자 드디어 화가 잔뜩 난 갱이 문을 벌컥 열어 재끼며 튀어나왔다.

“이런 씹…!”

“나도 반갑긴 한데, 시간이 늦었는데 조용히 해야지.”

터업! 애쉬의 손아귀가 뛰쳐나온 남자의 입을 틀어막았다.

“으읍?!”

문 밖으로 나왔다 곧장 입이 틀어막힌 남자는 애쉬를 발견하곤 무어라 말하며 저항하기 위해 팔을 들어 올렸지만, 애쉬에게 그것은 달팽이가 기어가는 것보다도 느리게만 느껴졌다.

애쉬는 갱의 팔이 채 절반을 올라오기도 전에 반대 손날로 목을 분질렀다.

­ 뿌각.

무언가 박살나는 소리가 작게 울리고 동공이 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된다. 들어 올리던 팔이 중력에 다시 떨어지고 남자의 몸이 축 늘어졌다.

애쉬는 남자의 시체를 든 채로 방 안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흐윽….”

방 안에는 발가벗은 여자가 흐느끼고 있었는데 갖은 폭력은 다 당한 듯, 온 몸에 멀쩡한 부분이 없었다.

팔, 다리, 몸통 가리지 않고 시퍼렇게 든 멍과 터진 입술. 그리고 부어오른 눈두덩까지.

확실히 인육이나 처먹는 놈들답게 당장 병원으로 실려 가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의 여자에게 성욕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애쉬가 그런 여자를 보며 자신이 들고 있던 시체를 툭 방구석으로 던져 넣었지만, 여자는 그 소리를 들었음에도 아무런 반응조차 없이 흐느끼기만 했다.

아마 이곳에 속한 갱들끼리도 죽고 죽이는 모습을 몇 번 보아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뒤이어 나타난 애쉬가 자신을 범하지는 않을지 겁먹고 있겠지.

물론 애쉬에게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마음같아선 이대로 여자가 진정할 시간을 주고 싶었지만 시간은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다.

애쉬는 저 여자에게 들어야 할 얘기가 있었다. 그것을위해 이 방에 들어온 것이었고.

“…?”

이봐, 하고 여자를 부르려던 애쉬는 여자가 누워있는 침대 위와 그 주변에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는 물건들을 보고 말을 멈췄다.

두부를 감싸는 전자 기어와 거기에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손바닥만 한 데이터 팩 하나.

얼마 전까지 누군가 사용했는지 접촉 단자가 노출되어 있는 그것은 슬럼에서 보기 힘든 물건이었지만, 어느 해커의 집에서 직접 보고 간단한 설명까지 들은 적 있는 애쉬는 곧장 알아볼 수 있었다.

저것은 신경 인터페이스, 그러니까 인간의 신체에 삽입되어 뇌와 연결된 장치와 전자기기를 연결하여 딜레이 없이 빠른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기계였다.

그런데 복잡한 작업은커녕 머리가 텅텅 비어있을 것이 분명한 갱들이 이것을 왜 갖고 있는 걸까.

“설마….”

잠시 생각하던 애쉬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게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변해버렸다던 ‘베이론’의 갱들.

정신 나간 약쟁이들과 그들조차 언급을 꺼리던 ‘그것’이라는 물건.

그리고 ‘그것’을 과도하게 사용하다 이 방에서 죽은 갱.

애쉬는 분명 이 모든 상황들과 관련이 있을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과거, 어느 해커와 나눴던 짧은 대화를 떠올렸다.

‘이건 뭐야, 게임기인가?’

‘아, 그거요? 신경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뇌가 보내는 전기 신호를 컴퓨터나 기타 전자기기랑 바로 연결하는 기계에요. 보통 많이 복잡한 작업을 할 때 쓰죠. 쓴 거랑 안 쓴 거랑 차이가 꽤 나요.’

‘그럼 이거로 가상현실 게임 같은 건 못해?’

‘이론상 할 수야 있는데, 그것도 가상현실 게임이 있어야 하죠. 국제법률상 인간의 감각을 조정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불법이에요.’

인간의 뇌와 전자기기를 직접 연결하는 기계라는 것이 그 해커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지금 떠올려야 할 것은 그게 아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뒤의 내용. 그 해커가 짧게 언급하고 지나갔던 말이었다.

‘그래? 아쉽네.’

‘저도 가상현실 게임 같은 게 있으면 해보고 싶기는 한데, 그건 만드는 걸 걸리기만 해도 무조건 사형이에요. 인간의 감각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건 곧 그 인간을 조종할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런 점을 악용해서 이걸로 전자마약 같은 걸 만드는 놈들도 있어요. 매년 걸려서 사형당하고 있죠.’

그래, 그거였다.‘전자마약’.

갱들이 말하던 ‘그것’이 바로 전자마약에 대한 얘기라면 약에 취할 대로 취한 그들조차 입을 조심하는 이유도 납득할 수 있었다.

연방에서 극도로 엄격히. 그것도 걸리면 무조건 사형 이상의 극형에 처할 정도로 엄격히 관리하는 최악의 범죄.

이들 ‘베이론’이 전자마약을 생산, 혹은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연방 정부나 시 정부에 알려진다면 어떻게 될까.

멀쩡한 대기업에서 그런 일을 벌인다고 해도 박살이 텐데, 일개 갱단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곧장 군대를 동원한 감찰관들이 튀어나와 조사를 시작할 것이고, 사실임이 밝혀진다면 모든 관계자들의 목이 떨어질 것이다.

‘베이론’은 분명 악명 높은 거대 갱단이었지만, 진짜 전쟁을 위해 본격적으로 나선 군대에 비할 수는 없었다.

흐느끼고 있는 여자가 안타깝기는 했지만 애쉬의 머릿속에서 이미 그것은 우선순위가 한참 뒤로 떨어졌다. 이것만큼은 제대로 확인해야 했다.

애쉬가 낮은 목소리로 겁먹은 채 흐느끼고 있는 여자를 불렀다. 그리고 전자 기어를 가리키며 물었다.

“어이, 대답해.”

“흑…. 네.”

“이 방에서 죽은 놈. 그놈이 저걸 사용하다 죽었나?”

“흐윽, 마, 맞아요. 갑자기 제 위에서 입에 거품을 물더니….”

애쉬의 차가운 목소리에 겁먹은 여자가 대답했다. 이 방에서 죽은 갱은 저 전자 기어를 머리에 쓰고 허리를 흔들다 갑자기 거품을 물고 죽었노라고.

애쉬는 그 대답만으로도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이들은 ‘전자마약’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거지?’

애쉬는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일이 한참은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잘못하면 이 일은 단순히 갱단과 갱단, 지역 경찰만의 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슬럼 전체를 완전히 초토화 시킬 수도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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