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2. 달의 꽃과 뱀파이어(15)
* * *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전혀 모르는 번호. 처음 듣는 목소리의 여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에 몸부림치던 루이스였지만, 그 평온한 목소리의 주인이 자신과 ‘베이론’ 간부들에게 작업을 친 장본인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연락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날 이렇게 만든 놈을 찾아 죽이겠다는 마음이 가득했지.
그런데 웃긴 게 뭔지 아나?
막상 전화가 오니 드는 생각은 어떻게든 ‘헤븐즈 게이트’를 얻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
흐흐흐. 루이스는 잔에 남아있던 술을 단숨에 털어 넘기곤 다시 술을 따르며 웃었다.
그것은 비웃음이었다. 거대 갱단의 보스이면서도 약 하나에 완전히 추락해버린 스스로에 대한 비웃음.
루이스는 얘기를 계속했다.
“처음엔 내놓으라고 소리 지르고, 협박도 했지만 통하지 않더군. 그래서 결국엔 빌었지.”
루이스는 제발 자신에게 ‘헤븐즈 게이트’를, 약을 달라고 빌었다. 자신을 이 지옥에서 꺼내달라고 빌었다.
“차라리 그때 죽었어야 했어.”
그런 루이스의 애원에 여자는 명령했다. 그 곧 ‘헤븐즈 게이트’가 전달될 테니 그것을 차츰차츰 ‘베이론’ 전체에 풀라고. 그렇게 하면 꾸준히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그것을 공급하겠노라고.
정신이 완전히 나가있던 루이스는 곧장 그리하겠다 약속했고, 얼마 뒤 약이 전달됐다.
‘헤븐즈 게이트’.
그 이름과 달리 갱단 전체를 지옥에 떨어뜨릴 망할 마약이.
“아니, 그 이름이 틀리진 않았을지도 모르지. 천국에서 지옥으로 나가는 문을 가리키는 이름일 수도 있지 않나.”
하하핫. 루이스는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던지곤 자기 혼자 웃었다.
그런 그에게 애쉬가 물었다.
“공급책은? 당연히 격추될 위험이 있는 드론으로 공급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공급책을 잡아서 심문할 생각은….”
“이봐. 내가 바보로 보이나? 당연히 생각이야 했지.”
다만 실행하지 못했을 뿐이다.
트럭 하나에 가득 실려 온 ‘헤븐즈 게이트’.
그 트럭의 운전사는 자신을 ‘공급자’의 대리인이라 말하며 ‘베이론’에 약을 공급했지만, 루이스는 그를 건들지 못했다.
당연하지만 공급책 하나 따위가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다만 공급책에게 손을 대면 더 이상 약을 공급하지 않을 것이라던 여자의 말이 두려웠을 뿐.
루이스는 그 지옥으로 되돌아간다는 생각만으로도 공포에 떨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어느 정도 길래.”
“흐흐. 그건 정말이지 내가 태어나 겪어본 고통 중에서도 가장 끔찍하더군. 이게 보이나?”
애쉬의 의문에 루이스는 자신의 상체에 걸치고 있던 셔츠를 벗어 맨몸을 보였다.
그러자 흉물스러운 흉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까맣게 착색되고 일그러지고, 또 갈라진.
척 봐도 심상치 않은 정도의 화상 흉터였다.
“십대 후반에 얻은 흉터다. 몸이 불탈 때도 차라리 죽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조차도 ‘헤븐즈 게이트’의 부작용만큼은 아니었어.”
오히려 그 고통을 겪었던 덕분에 헤븐즈 게이트의 부작용을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루이스는 그렇게 설명했다. 실제로 ‘베이론’에서 ‘헤븐즈 게이트’의 부작용을 겪던 간부들 중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자살을 택하기도 했고.
“나도 그냥 죽었다면 지금 같은 꼴은 되지 않았겠지….”
이제 와서는 다 늦은 일이다. ‘헤븐즈 게이트’에 빠질 대로 빠져버린 그는 이제 스스로 죽을 용기조차 잃은 채 이름 모를 여자가 내리는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도시 외부에 위치했다곤 하지만 무려 3개의 구역을 손에 넣고 굴리던 거대 갱단 보스의 말로.
그것은 실로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떨어지는 명령들을 따르다보니 ‘베이론’ 전체가 미쳐버렸다. 정말이지 한심한 꼴이지.”
루이스가 다시 한번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말단부터 중상위 간부들까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지만, ‘베이론’은 그런 과정을 통해 외부의 누군가에게 완전히 잠식당했고, 쾌락에 뇌가 망가지기 시작한 갱들은 미쳐버렸다.
그 결과가 지금의 ‘베이론’이다.
모든 저항 의지를 상실했던 루이스로서는 그런 변화를 막을 수 없었다. 그저 약이 끊이지 않길 바라며 쾌락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
그렇게 그의 짧은 얘기가 끝났다.
“…….”
지금까지 그의 말에 거짓은 없어 보인다. 잠시 그의 얘기를 곱씹던 애쉬는 다시 술잔을 입에 가져가는 루이스에게 물었다.
“어째서 이렇게 순순히 알려주는 거지?”
지금 루이스가 꺼낸 얘기들은 그에게 있어선 정말 들쳐 내선 안 될 치부와도 같은 일이었다.
모르는 사람은커녕 절친한 친구나 가족, 목숨을 걸고 따르는 부하들에게조차 알리기 싫었을.
그럼에도 처음 보는 자신에게 얘기해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물음에 루이스가 고개를 젓고는 웃음을 흘렸다.
“흐흐, 글쎄. 어딘가에 하소연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지. 나도 너무 지쳤거든.”
자포자기의 감정이 절절히 느껴지는 그 목소리는 끝내 그를 죽이기로 결정한 애쉬조차 움찔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애쉬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결론 내렸다.
결국 ‘베이론’이 미쳐버린 원인은 보스인 ‘방화광 루이스’가 아니었으며, 이들 또한 한낱 장기 말에 불과했다.
‘뱀파이어’를 공격한 것도 배후의 명령에 의한 것.
이곳에 와서 어떤 흑막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저 얘기에서 얻은 소득은 그게 끝이었다.
‘방화광 루이스’ 또한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던 인물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으니.
‘뱀파이어’의 의뢰에 관해 여기서 더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는 건가.
“그럼 하나 더 질문하겠는데. ‘달의 꽃’, 아니면 한세연이라는 이름. 아냐?”
“아니. 처음 듣는 이름이군.”
의뢰와 별개로 자신이 이곳까지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물은 애쉬였으나 루이스는 고개를 저었다.
마찬가지로 거짓말은 아닐지 유심히 지켜봤지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완전히 허탕 쳤군.’
결국 레이라의 의뢰와 그 자신의 목적 모두 충족시키지 못했다.
무언가 단서가 될 만한 게 있을지 이곳 방이라도 전부 뒤져봐야 하나.
애쉬가 그것을 진심으로 고민할 때였다. 술잔을 내려놓은 루이스가 물었다.
“궁금한 건 그게 끝인가? 분명 더 궁금한 게 있을 텐데.”
“뭐?”
“예를 들면, 그 여자와 했던 연락 기록이라거나, ‘헤븐즈 게이트’의 유통 기록이라거나.”
“그런 게 있나?”
“흐흐.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바보가 아니야. 거래를 할 때 기록을 남겨두는 건 조직을 이끄는데 있어서 기본 중의 기본이지.”
마치 애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 루이스는 서랍에서 무언가를 하나 꺼내들어 손바닥 위에 올려 보였다.
손가락 한마디만 한 이동식 저장 장치. 이른바 USB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그건….”
“그래, 여기 모든 기록이 남아있다. 어때, 갖고 싶나?”
약 올리듯 장난스럽게 말하는 ‘방화광 루이스’.
그야 당연히 갖고 싶다. 그의 말이 진짜라면 저 USB는 애쉬 자신과 레이라의 의뢰 모두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큰 단서가 되어줄 것이었다.
애쉬는 당장 루이스의 손목을 잘라내 저것을 챙길지 고민했다.
“워워, 진정해. 이건 처음부터 그쪽한테 주려고 준비한 거니까. 자.”
하지만 그런 애쉬의 날카로운 눈빛을 읽었는지 루이스는 곧장 장난을 멈추고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USB를 애쉬에게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USB.
애쉬는 그가 자신을 방심시켜 폭발물을 쥐게 만들려는 것은 아닌가 싶었으나, 루이스의 눈빛은 어디까지나 진심이었다.
어떻게 애쉬가 원하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그에게 넘기기 위해서 준비한 것이다.
애쉬는 USB를 가볍게 받아 손에 쥐었다.
폭발물이 들어있다면 화약이나 기타 장치들이 가득 차 묵직해야 했는데, 이것은 여타 USB들처럼 무척이나 가벼웠다. 적어도 폭발물은 아니다.
그렇다면 진짜일 가능성이 높은데…….
“…….”
애쉬는 어째서 루이스가 자신에게 이런 태도를 보이는지 의심어린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모든 게 너무 쉽게 풀린다. 애쉬의 모든 질문에 순순히 답한 것도, 자신이 쥐고 있던 정보들을 모두 넘긴 것도.
명백히 의심이 어린 애쉬의 눈빛에 루이스가 대답했다.
“오해는 하지 마. 그건 진짜니까. 잠금이 걸려있긴 하지만 해커한테 맡기면 금방 풀겠지.”
“…어째서지?”
애쉬가 그에게 물었다.
앞전에 이어 두 번째로 묻는 질문. 어째서 이렇게까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넘겨주는가.
애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그에게 겁을 먹은 것도 아니고, 기존에 잘 알고 있는 사이도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애쉬의 물음에 루이스가 답했다.
“그건 의뢰금이다.”
“의뢰금?”
“그래. 그쪽이 소문만큼 대단한 해결사라면 넘겨준 정보들을 가지고 그 망할 년에게 한 방 먹여줄 가능성도 있겠지.”
말하는 목소리는 장난스러웠으나 그의 눈동자는 어디까지나 진지했다.
약에 취해 탁한 눈동자에 피어오른 작은 불꽃.
결코 크지는 않지만 그것은 분명히 자신의 존재감을 발하고 있었다.
그 불꽃의 정체는 ‘헤븐즈 게이트’와 부작용에 대한 공포에 억눌려있던 반발심.
이른바 분노와 복수심이라 부르는 것들이다.
애쉬는 그 불꽃을 보고서야 루이스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애쉬를 통해 자유로운 자신에게 목줄을 매고 강압하던 흑막에게 복수하고 싶은 것이다.
그의 인생을 망치고, 그의 부하들의 목숨을 끊었으며, 그들 모두를 미치게 만들어버린 그 ‘망할 년’에게.
비록 실패할 가능성이 높고, 어떻게 성공한다 한들 제대로 엿을 먹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 눈을 읽은 애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그것을 품 안에 넣었다.
그는 돈이 얼마가 됐든 뒤가 구린 의뢰, 그리고 쓰레기의 의뢰는 받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해결사로서 정한 하나의 룰.
여태껏 그 누구도 깨뜨리지 못한 룰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번 경우만큼은 조금 봐주기로 결정했다.
목표하는 대상이 그와 같으며,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지옥도를 만든 흑막은 애쉬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USB를 품안에 챙긴 애쉬가 말했다.
“의뢰는 받았다.”
“흐, 그래. 그거 고맙군.”
애쉬의 말에 루이스가 답했다. 그리고 테이블 밑에서 무언가를 꺼내 쥐었다.
"그럼 내 쪽의 용무도 끝났으니, 의뢰를 받아준 답례를 하지."
손바닥 안에 딱 들어갈 크기의 무언가. 아무리 눈이 좋은 애쉬라지만 투시 능력 같은 것은 없었기에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루이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애쉬에게 천천히, 느긋한 어조로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그쪽의 소문은 많이 들었었지. 총알을 쳐내고, 강철도 베어낸다던가.”
아무리 소문이라는 게 믿을 게 못된다지만, 애쉬 론모어에 관한 소문은 너무도 무성하고 일관성 있었다.
누가 말하길 애쉬 론모어는 정면에서 쏘는 총탄으론 결코 맞출 수 없다더라.
누가 말하길 그는 사이보그의 특수 신체도 칼로 자른다더라.
또 누가 말하길 그는 총칼에는 상처를 입지 않는다더라.
“총이나 칼로는 사실상 상처를 입힐 수 없다는 소문이 있던데. 과연 폭탄까지 그럴까?”
조금 궁금하군. 그렇게 말한루이스가 손바닥을 펴보였다.
그 손에 들린 것은 어디선가 보았던 것 같은, 버튼이 달린 손잡이였다.
"이렇게 직접 실험해보는 건 내가 처음이겠군."
그는 애쉬가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손잡이의 버튼을 눌렀다.
꾸욱.
그런 효과음이 난 것만 같다.
그리고.
애쉬는 커다란 진동과 함께 건물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콰앙!! 콰앙!! 콰앙!!
뒤이어 무언가 터지며 무너지는 소리도.
"무슨."
폭발물이다.
밑층부터 터지기 시작한 폭발물이 건물을 뒤흔들고 있다.
진도 7 이상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는 방 안. 침착하게 중심을 잡던 애쉬가 물었다.
“이봐, 동반 자살이라도 할 생각이야?”
점차 애쉬뿐 아니라 루이스 본인이 있는 층이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폭발은 멈추지 않았다. 6층, 7층, 8층.
콰아앙!! 이젠거의 발밑까지 도달했다.
폭발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는 가운데, 평안한 표정의 루이스가 자신을 쏘아보는 애쉬에게 말했다.
“나도 이러고 싶진 않아. 하지만 이것도 명령이니 어쩔 수 없지. 의뢰는 잘 부탁하마.”
물론, 이곳에서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다면 말이야.
콰아앙!!
루이스의 선언과 함께 바로 밑층의 바닥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 이 새끼가.”
그 망할 년인지 뭔지한테 한 방 먹여주길 바란다더니, 이쪽에게 먼저 한 방 먹여주는군.
뒤늦게 이 방 건물 전체가 함정이란 걸 알아차렸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폭발은 지척까지 다가왔다.
콰아아앙!!!
귀를 찢는 듯한 폭음.
애쉬는 폭발과 함께 부유감에 휩싸였고, 어느 기둥에 매달려 자신을 내려다보는 루이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10층 아래의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