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2. 달의 꽃과 뱀파이어(22)
* * *
며칠 전 애쉬가 들렀던 뱀파이어의 아지트. 그곳은 갑자기 쳐들어온 갱들에 의해 전쟁통이 되어가고 있었다.
“쓸어버려!!”
“흐흐, 그래 속 시원하게 갈겨!!”
투다다다!!
“꺄악!”
총탄이 빗발치자 온갖 물건들이 부서지며 유리창이 깨져나간다.
일반인 직원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침입자들은 건물 내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그들의 소란에 내부 가드의 모습을 하고 있는 ‘뱀파이어’의 갱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떤 새끼들이 겁도 없이 여길…!”
“오호라, 잘 만났다!”
“너, 넌 벡메일?”
“그래! 외부 인원이니 뭐니 하면서 이곳에서 쫓겨났던 벡메일이다! 넌 깔끔하게 차려입고 아주 꼴이 좋아졌구나, 케인!!”
“네가 왜…?”
‘뱀파이어’의 갱들이 침입자들과 마주쳤다. 그리고 그들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침입자들 또한 다름 아닌 ‘뱀파이어’ 소속의 갱들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보스인 레이라 플로리스가 ‘뱀파이어’를 개편하며 외부로 빼낸 인력들이었다.
“왜? 왜냐고? 그걸 몰라서 물어?”
“보스께서 얼마나 잘 챙겨주셨는데 이딴 짓을 해!”
“잘 챙겨줬다고? 흐흐, 그래 잘 챙겨줬지. 저딴 개잡놈들의 아랫사람처럼 좆뺑이치게 해준 게 잘 챙겨준 게 아니면 뭐겠어? 응?”
앞장선 갱이 가리킨 것은 로비 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 벌벌 떨고 있는 일반인 직원들이었다. 그에 대화를 시도했던 갱이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는 듯 물었다.
“…그게 문제였냐?”
“그럼! 문제고 말고!! 내가 왜 내 먹잇감들의 발아래에 깔려 있어야하냐고!!”
소리친 갱의 말에 그와 함께 무장침입한 수십의 갱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그에 아지트 측의 갱, 케인이 표정을 굳혔다.
보스의 주도하에 벌어진 ‘뱀파이어’의 개편 초기에는 심심찮게 터져 나오던 불만이었다.
개편 당시 보스인 레이라는 내부 갱들을 두 갈래로 나눴다.
회사로 치면 본사 정도 되는 위치라고 할 수 있는 72구역, 73구역의 아지트에서 근무할 인원들과 그 외 구역들을 관리하는데 쓰일 인원들.
그러니까 사무직과 현장직을 어느 정도 구분한 것이다.
사실 거기까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야 기존 갱단도 조직인 만큼 그것을 운영하기 위해 비슷한 구분이 있었으니까.
다만 거기에 유입된 일반인들이 문제의 소지가 되었다.
위압적인 분위기라곤 찾아볼 수도 없고, 살짝 위협만 해도 벌벌 떨며 지릴 것 같은 일반인들이 자신들조차 들어가지 못한 아지트, 본사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현장직으로 구분된 갱들은 당연히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본사에서 내려오는 명령에 따랐고, 그 본사의 3분의 1, 절반 가까이가 피 한 방울에도 눈물을 찔끔 짜는 일반인들이다.
무력과 자존심으로 먹고 사는 그들이 그것을 그냥 넘어갈 수 있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끝내 한 차례 들고 일어났었고, 결국 빌레이를 비롯한 몇몇 간부진의 설득 끝에 힘겹게 받아들이게 되었던 적이 있다.
“그때 얘기가 끝난 줄 알았는데, 지금 갑자기 이딴 식으로 나오다니.”
“끝나긴! 어디까지나 잠깐 참고 있었던 것뿐이다!!”
벡메일이란 이름의 침입자 측 갱이 소리치곤 총구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아지트 측의 갱, 케인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뒈지기 싫으면 비켜.”
“바보가 아닌 이상 이렇게 해봐야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잘 알 텐데? 겨우 그 숫자로 보스를 어떻게 해보려는 생각이라면 그냥 개죽음이야.”
케인이 말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곳 72구역 아지트에 위치한 전투 인원의 숫자만 200 이상이고, 지금도 무전을 듣고 내려오는 갱들이 점점 쌓이고 있었다. 벌써 침입자 측과의 숫자 비는 5:5.
로비가 양측의 인원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 균형 또한 무너지겠지. 당연히 침입자 측은 불리한 상황이었다.
케인의 경고인지 조언인지 모를 말에 벡메일이 웃어보였다.
“그럼. 나는 바보가 아니야. 우리가 끝인 것 같아? 들어오라 그래!!”
그의 외침에 한 갱이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곧 와장창! 로비의 정면의 유리창들을 모조리 깨부수며 입구 주변을 가득 매운 인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뱀파이어’의 표식을 달고 있는 갱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누군지 모를 복면 쓴 수십의 인원들.
“우와아, 쓰레기들이 하나 가득! 지금 바로 청소하면 될까요?”
“아니, 명령이 내려올 때까지는 대기해.”
“네? 저도 시원하게 움직이고 싶다구요.”
“제발 가만히 있을 줄 좀 알아라.”
복면을 쓴 이들의 대화를 들은 케인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단순히 ‘뱀파이어’의 갱들이 정체를 숨기기 위해 복면을 뒤집어 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목소리나 대충 들리는 대화 내용만 봐도 그게 아니었다.
저들은 절대로 ‘뱀파이어’의 내부 인원이 아니다 다른 갱단, 혹은 이름 모를 단체에서 들여온 외부세력이 분명했다.
“너…. 진짜 미친 거냐? 외부 세력을 끌고 와?”
“오, 바로 알아봐? 역시 여기서 근무하는 분은 다르긴 한가 보네?”
케인의 심각한 물음에도 킥킥 웃는 벡메일. 그는 한 차례 케인과 그 뒤의 갱들을 훑어보곤 말했다.
“아,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말라고. 저 놈들은 내가 아니라 한참은 더 높으신 분께서 데려온 거니까.”
“…무슨 소리야.”
“아, 맞다. 넌 모르지? 누가 이번 일을 일으켰는지. 아마 들으면 놀랄 걸? 크흐흐.”
“…누구야. 너희 배신자들 대가리.”
“가르쳐줄까? 말까? 아 이거 너무 고민되네.”
“장난치지 말고 대답해!”
“아아, 그래 들었을 때 표정이 궁금하니까 가르쳐줄게.”
놀리듯 말하던 벡메일이 쓱 눈을 돌려 케인을 보며 웃었다. 불길한 미소.
케인은 그 미소와 함께 나온 이름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이야. 너희가 그렇게 믿고 따르는 그 인간.”
*
같은 시각, 건물 꼭대기 층에 위치한 레이라의 사무실.
1층에서 있던 소란과 함께 무전이 터지고, 그것이 사장이자 보스인 레이라에게 알려지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사장님! 회사 소속 외부 인원들이 무장을 한 채 들어왔다고 합니다!”
“…외부 인원들이?”
비서 다급한 목소리. 업무 중 커피 한 잔과 함께 휴식 시간을 갖고 있던 레이라가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비서는 계속해서 보고를 이어갔다.
“네! 현재 가드들과 1층 로비에서 대치중이라고 하는데 그 숫자가 몇 백은 된다고…!”
“그래?”
정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상황. 그러나 레이라는 당황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사무실 창가로 향했다.
‘뱀파이어’의 아지트 건물은 슬럼에서는 비교 상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큰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양측 모두 수백씩.
합쳐서 500은 될 대인원이 로비에 모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크지는 않다.
이곳 창가에서 내려다본다면 놈들의 일부라도 볼 수 있겠지.
창가에 선 레이라는 시선을 내려 건물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많네.”
가지각색의 복장을 하고 있는 갱들과 통일된 검은 옷, 그리고 검은 무언가를 뒤집어 쓴 수십의 인원들.
약 30여 층 아래로도 그만한 숫자가 모이자 뚜렷이 구분 됐다.
머리에 뭘 뒤집어써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쪽은 ‘뱀파이어’가 아니라 다른 세력에게서 빌려온 놈들인가?
저쪽은 처음부터 완전히 전쟁을 치르려고 작정하고 온 것 같다.
그런 레이라의 무미건조한 반응에 오히려 비서가 호들갑을 떨었다.
“사, 사장님. 지금이라도 자리를 피하시는 게….”
“어디로?”
“네? 그야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든지…….”
어떻게든 전쟁통이 될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불안감을 보이는 비서.
레이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곤 그녀를 진정시켰다.
“진정해. 단순히 숫자만 보면 이쪽도 모자라진 않으니까.”
이곳이 어디인가. ‘뱀파이어’의 아지트. 그것도 보스인 레이라가 머무는 사용하는 본체와도 같은 곳이었다.
평소에는 가드 일을 하고 있기에 가벼운 무장만 하고 있는 부하 갱들도 이만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으니 본격적으로 무장을 하고 맞설 것이다.
오히려 바깥으로 몰래 도망치려다 걸리거나 해서 붙잡히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뚜루루루루.
천천히 창밖의 배신자들을 내려다보던 레이라. 그런 그녀의 귓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잔뜩 긴장한 목소리의 비서가 그것을 알렸다.
“…사장님,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
레이라의 사무용 책상. 그곳에 비치된 전화기의 벨소리였다.
짧게 대답한 그녀는 창밖에서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전화를 받았다.
보스, 연락 들었습니다. 배신자들이 생겨났다는….
“맞아.”
낮고 굵은 목소리. 대외적인 직책은 부사장이며 사적으로는 그녀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자, 빌레이 포튼이었다. 그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듯 이런저런 잡음을 조금 내더니 이내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바로 본사로 찾아가 놈들을 처리하겠습니다.
“흐음…”
그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배신자들을 향해 분노를 터뜨릴 듯 것 같았다.레이라는 그런 빌레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시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러더니 이내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예?
“너잖아. 지금 일의주모자.”
레이라의 차가운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내리꽂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