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32화 (32/230)

〈 32화 〉 2. 달의 꽃과 뱀파이어(23)

* * *

­ …….

수화기가 잠시 정적에 잠겼다. 그녀의 목소리가 울린 사무실 안도 덩달아.

레이라의 말을 들은 두 비서들이 눈동자만 굴리며 그녀를 바라봤고, 레이라는 그런 비서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통화에 집중했다.

그렇게 침묵의 시간이 이어지길 몇 초. 수화기에서 빌레이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 무슨 말씀이십니까. 장난이라면 조금 지나치신….

“변명은 안 해도 돼. 이미 알고 있으니까.”

레이라가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끊었다. 저런 같잖은 연기는 이미 그녀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저 수화기 너머에서는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분명 무기질적인 표정으로 어디서 적발된 거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레이라는 보지 않아도 저 건너편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

한 차례 레이라에 의해 목소리가 끊긴 빌레이였으나, 그는 침착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했다.

­ 제 어떤 행동이 의심을 샀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해가 있으십니다, 보스.

“글쎄. 오해일까.”

그녀가 의구심을 갖게 된 부분은 너무도 많았고, 그것 하나하나를 설명하기에 우연과 오해라는 말은 턱없이 부족했다.

레이라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따지고 보면 이번 일의 처음부터 이상했지. 63구역에 진입할 때도,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돌아올 때도.”

단순히 63구역에 도착한 후 있었던 ‘베이론’의 공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타이밍 한번 정도는 얼마든지 우연이라고 볼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전에 따져볼 게 있었다.

‘베이론’은 대체 어떻게 무장 상태로 검문소를 통과했는가.

‘베이론’에 미친놈들이 넘쳐난다는 것은 근처 슬럼에 사는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그것은 검문소의 요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베이론’은 절대 공권력과 섞일 수 없다.

애초에 그들은 공권력과 손을 잡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그렇게 그들이 위치한 곳, 74~76구역이 도시 구역으로 인정을 받았음에도 외부 구역과 도시 내를 구분하는 검문소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그들이 지닌 폭력성이 너무도 강했기에.

당연히 그들에 대해 아는 검문소의 요원들이 ‘베이론’의 갱들을 그냥 도시 내부로 들여보내줬을 리가 없었다.

무장까지 했다면 ‘절대로’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검문소를 통과했다.

그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총 세 가지였다.

놈들은 도시 내부로의 진입을 위해 검문소 요원들과의 커넥션이 있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으며, 처음부터 무장을 하지 않고 들어왔다.

도시 안으로 들어온 뒤에서야 자신들의 진입을 도운 누군가에게서 무기 따위를 받은 것이다.

­ …….

“그래도 그때까지는 내부를 의심하진 않았어.”

그것은 그저 돈 있고, 검문소 요원들과의 깊은 관계를 터놓은 자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굳이 빌레이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63구역에서 ‘뱀파이어’의 영역으로 돌아갈 때. 두 번째로 일어난 일은 내부자의 소행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상당한 고위급 간부의 소행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베이론’ 쪽의 반응이 너무 빨랐으니까.”

당시 레이라는 3일에 걸쳐 인원들을 뺐다. 기존에 집어삼켰던 부분에서 챙길 것들은 챙겨야 했으니까.

첫째 날에는 주로 경호 인원과 물건들을 실어 보냈고, 둘째 날과 셋째 날에는 본격적으로 인원들을 움직였다.

그런데 ‘베이론’ 놈들이 첫째 날, 인원이 도착하기도 직전에 물러났다는 게 아닌가.

첫째 날에는 눈에 띌 만큼 대규모 인원이 움직인 것도 아니었기에 단순한 외부 관찰로만 알아챘을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좋았다.

외부에서 보았다면 그냥 63구역 외곽 갱단들을 턴 물건들을 옮기는구나했겠지.

심지어 ‘뱀파이어’ 소속의 갱들조차 그게 철수인지, 아니면 단순한 물건 호송인지 몰랐을 것이다.

레이라는 자신이 직접 불러 모은 간부들을 제외하곤 누군가에게 굳이 알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베이론’은 그들이 철수한다는 것을 알고 칼같이 물러나 다시 자신들의 구역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레이라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고위 간부들이 아니라 그 바로 아래의, 그러니까 고위 간부들의 심복이나 직속 부하 같은 이들이 내통자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고위 간부들과 가까운 만큼 얘기를 주워들었을 가능성도 있으니.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배신자의 존재는 확실히 알 수 있었지.”

우리 중 누군가가 ‘베이론’ 측과 내통하고 있다.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그렇습니까? 하지만 그걸로 제가 배신자라고 할 수 없을 텐데요.

“그렇지. 그래서 난 생각했어.”

‘뱀파이어’의 안에 기생충, 혹은 기생충들이 존재한다. 그것을 어떻게 걸러내야 하는가.

레이라는 여러 방법을 생각했고, 그것을 곧 실행으로 옮겼다.

“우선은 본사 내부 간부들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살폈어.”

레이라는 직속 부하들을 보내 고위급에 위치한 간부들, 그리고 그들의 측근의 모든 행동 양상을 보고받았다.

“그런데 어디서도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았지.”

그러나 어디에서도 배신자의 꼬리가 잡히질 않았다. 그래서 레이라는 본사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다음으로는 외부 인력으로 분류된 간부들이었는데….”

그쪽에서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녀의 부하들이 무능해서, 혹은 어떠한 단서가 있었는데도 레이라 본인이 지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몇 번이나 보고를 되돌아본 레이라는 결국 간단한 방법으로는 대상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계속해서 다른 방법으로 간부들을 시험했다.

하지만 끝까지 어느 누구에게서도 수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배신자가 있는 것은 분명하나 철저히 그 흔적과 단서들을 감추고 있어서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하신 것 같은데요. 어째서 제게….

“그래. 그래서 거의 포기하고 있을 때였지.”

도저히 자리에 앉아서 받는 보고만으로는 답을 내릴 수 없다는 생각에 직접 나서볼까 생각도 하던 레이라였다.

그런데 때마침 의뢰를 끝내고 돌아온 애쉬 론모어. 그리고 그와 나눴던 대화가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애쉬 론모어. 그 남자와 했던 대화는 기억하겠지?”

­ 그야 물론입니다.

레이라의 물음에 빌레이가 대답했다. 불과 며칠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그 일을 벌써 잊어먹을 정도로 기억력이 좋지 않았다면 레이라의 오른팔과 같은 존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게서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했지. 어쩌면 네가 배신자일 수도 있겠다고.”

­ …어째섭니까.

“그때 들은 얘기가 이상하지 않았어?”

애쉬 론모어는 레이라의 의뢰를 받고, 빌레이의 배웅을 받으며 74구역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는 그곳의 말단 갱을 찾아 심문한 뒤 늦은 심야. ‘베이론’의 아지트로 숨어들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는 ‘베이론’의 보스인 ‘방화광 루이스’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화광 루이스, 그 남자가 어떻게 애쉬 론모어의 방문을 알았을까. 그건 어쩌면 간단하게 설명할 수도 있겠지.”

길거리를 거닐던 그를 갱이나 주민이 발견하고 보고했다고 하면 미심쩍은 부분이 있을 수는 있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일어난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방화광 루이스’는 그 남자에게 자신이 준비해둔 USB를 넘겼어.”

마치 애쉬가 받은 의뢰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듯 그 내용물이 무엇인지 설명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함정으로 만들어뒀던 자신의 방 전체를 폭파시키며 애쉬 론모어를 궁지로 몰았고, 끝내 애쉬 론모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불길과 하나 되어 산화했지.

건물 전체를 함정으로 만든 그 준비성, 애쉬 론모어에게 넘긴 USB. 그 모든 것을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도 잘 맞아 떨어졌다.

“그 의뢰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단 셋뿐이었어.”

의뢰주인 ‘레이라 플로리스’, 의뢰를 받은 해결사 ‘애쉬 론모어’, 그리고…….

“그를 배웅한 너, ‘빌레이 포튼’.”

­ …….

“거기서 반쯤 확신했어. 내부에 숨어있는 배신자는 바로 너일 거라고.”

거기까지 말을 마친 레이라는 천천히 물을 한 모금 삼켰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오늘 100%라고 확정지었지.”

어떻게 확신했느냐. 그것은 바로 전날 빌레이가 어딘가에 들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제 전산실에 들렀었지.”

­ …….

“어땠어? 네가 본 그 USB의 내용은.”

­ …….

“대답하기 싫다면 하지 않아도 돼. 충분히 예상은 가니까.”

­ …….

“분명 인상 깊었겠지. 그러니까 바로 다음날에 일을 벌인 거고.”

레이라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입을 꾹 닫고 있는 빌레이를 향해 말을 계속했다. 전화를 끊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숨소리가 들리고 있었으니까.

평소 말을 많이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레이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으나, 그녀에게도 이번 일은 제법 크게 다가왔다.

그녀와 가장 오랫동안 일을 해온 동료가 바로 빌레이 포튼이라는 남자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외부 세력과 내통하고 있는 배신자였다니.

그러나 마음을 다잡는 것 또한 빨랐다. 그녀가 살아온 세상은 누군가를 전적으로 믿을 수 있을 만큼 상냥하지 않았기에.

레이라가 한층 더 차가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배신자에 대한 처분은 잘 알고 있겠지, 빌레이 포튼.”

배신자는 예외 없이, 누구라도 처형이다. 그것이 설령 부사장이자 보스의 오른팔과 같았던 존재라 할지라도.

이 순간부터 레이라 플로리스와 빌레이 포튼은 동료가 아니다. 배신자와 배신당한 자, 처형인과 죄수.

“아마 직접 찾아오겠지. USB의 내용물은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으니까.”

“이따 봐, 빌레이 포튼.”

­ 보스. 아니, 레…….

뚝. 레이라는 입을 땐 빌레이의 목소리가 들려옴에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전화는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저쪽에서도 직접 찾아와 얘기하겠다는 듯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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