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2. 달의 꽃과 뱀파이어(30)
* * *
깨끗하게 반으로 갈라지며 장기 따위를 쏟아놓은 남자의 시체. 애쉬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 경악에 빠진 땅거미 대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방금 건 솔직히 놀랐어. 다른 놈은 이런 거 더 없나?”
이왕이면 이런 걸 좀 더 제대로 쓸 수 있는 녀석이 좋겠는데.
애쉬의 그런 태평한 목소리에 어느 땅거미 대원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마, 말도 안 돼. 아무리 아뎀이라도 저건….”
“아뎀? 아. 그 철없는 어린놈.”
건물 하나를 피바다로 만들고 나온 그에게 동경의 눈빛을 보내던 어린 대원. 어느 대원의 중얼거림을 들은 애쉬가 생각했다.
‘뭔가 하는 것 같더니 아직도 안 끝났나.’
문득 그의 존재를 떠올린 애쉬가 고개를 돌려 레디엄과 아뎀 쪽을 바라봤다. 레디엄은 아뎀의 등판에 무언가를 꽂으며 속삭이듯 말하고 있었고, 아뎀은 제 동료들이 몇이나 죽어나갔음에도 그 얘기를 들으며 방긋 웃었다.
“아뎀, 넌 여기서 죽으면 안 되니 만약에라도 벅차다면 곧장 물러나서 복귀해라. 너라면 ‘회사’ 측에서도 문제 삼진 않을 거다.”
“넵!”
“그리고 저쪽이…….”
지들 딴에는 귓속말로 한다고 하는 모양이었는데, 애쉬의 밝은 귀에는 똑똑히 들리고 있었다.
그를 상대할 방법 따위를 일러주고 있는 레디엄의 목소리.
정말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었지만 애쉬는 그것을 그냥 뒀다.
이런 상황에선 뭐라도 하고 싶겠지.
‘그나저나 저 녀석은 조금 다른 모양인데.’
몇 초 정도 레디엄의 속삭임을 훔쳐듣던 애쉬가 생각했다.
아뎀, 저 녀석은 ‘회사’ 내에서도 다른 대원들과 위치가 다른 것 같았다.
일단 일에 뛰어드는 기본적인 태도부터가 달랐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던 다른 대원들과 달리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라곤 보이지 않는 녀석.
애쉬를 상대할 때나 긴장한 상태로 식은땀을 흘려댔지, 그 외의 것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애쉬가 겪어 본 바 실력도 다른 땅거미 대원들과는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뛰어난 편이었는데, 임무를 포기하고 도망치게 해서라도 살아 돌아가기를 바라는 레디엄의 말까지 보면 그런 차이가 확연해 보였다.
그리고, 등에 꽂은 저것이 뭔지는 몰라도 심상치 않은 물건인 것은 분명했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아뎀이 입고 있는 옷 너머로 푸른 불빛이 비치고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저건 방금 전, 애쉬가 반으로 갈라버린 대원이 사용하던 다리 파츠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아마도 저쪽이 좀 더 제대로 된 물건일 테지. 아뎀과 반으로 갈라져 죽은 대원은 실력부터가 달랐으니까.
실력이 좋은 쪽이 더 좋은 장비를 사용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애쉬는 괜한 기대가 솟아오르는 걸 느꼈다.
저런 어중간한 놈이 사용해도 한 순간 깜짝 놀랄 정도였는데, 아뎀, 저 녀석이 사용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너무 재밌을 것 같아 자꾸만 기대감이 차오른다.
땅거미 부대원들도 애쉬가 방금 보인 장면에 침묵하고 덤벼들지 않고 있다.
결국 애쉬가 입을 레디엄에게 소리쳤다.
“이봐! 준비는 언제쯤 끝나는 거야? 네 부하들은 겁먹어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 같은데!”
“이…!”
애쉬의 도발적인 목소리에 어느 대원이 분노를 표출했지만 그뿐. 땅거미 대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던 작업이 모두 끝난 것인지 아뎀의 등에 꽂혀 있던 물건을 다시 뽑은 레디엄은 그에게서 손을 떼고 애쉬에게 대답했다.
“겁을 먹은 게 아닙니다. 개죽음을 피하는 거죠.”
가장 승산이 높을 때까지 전력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이다. 레디엄의 대답은 그런 뜻을 담고 있었다.
레디엄이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이쪽도 준비는 끝났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 그래? 이번엔 제대로 보여주는 건가? 방금 그 놈은 똑바로 다루지도 못하던데.”
애쉬가 반으로 갈라져 나자빠진 시체를 가리켰다. 레디엄은 한 차례 그것을 바라보고 다시 애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정확히 절반으로 갈라져 내용물을 모조리 쏟아낸 처참한 시체.
뛰어난 대원이긴 했으나 그럼에도 아뎀과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그 친구랑은 다르니까요.”
“부디 그러길 바래.”
그걸 위해서 지금까지 기다려 줬으니까. 애쉬가 말했다.
기다려줬다. 그 말이야말로 지금 상황에 딱 알맞은 말이었다.
땅거미 부대원들의 수준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갱들보다 월등히 높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권총과 짧은 단검 하나씩 들고 애쉬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는 결코 아니다.
완전무장한 채로 덤볐다면 상당히 성가셨을 수도 있으나, 저 정도의 경무장으로는 시간 벌이도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들 중 절반 정도 되는 숫자가 여태껏 살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저 애쉬가 손대중을 하고 있었기 때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애쉬의 말에 레디엄이 자신의 대구경 권총을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아뎀의 등을 툭 치며 말했다.
“그럼 제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가자, 아뎀.”
“네!”
힘차게 대답한 아뎀이 몸을 숙여 크라우칭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투웅!
퍼엉!
레디엄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그와 동시에 그 격발음이 신호탄이라도 되는 듯 예의 폭발음이 울리고 아뎀의 신형이 쏘아져나갔다.
“오.”
애쉬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탄환과, 그것을 뒤따르는 아뎀을 바라보며 작게 감탄했다.
폭발력을 이용한 가속.
다시 봐도 빠르다. 직전에 처리한 놈보다도 살짝 더 빠른 감이 없잖아 있었다.
‘게다가 자세도 안정적이야.’
촤아아악! 급격히 느려진 세상 속, 애쉬가 검을 들어 올려 먼저 다가온 탄환을 부드럽게 흘려보냈다.
총탄이 검면을 타고 불똥을 튀겼다.
이번엔 전처럼 누군가에게 보내 맞출 생각은 없었다. 그대로 뒤로 넘기고, 뒤따르는 녀석에게 집중한다.
“핫!!”
아뎀이 짤막한 기합 소리와 함께 검은 단검을 내질렀다.
앞에 처리했던 녀석과 완전히 같은 구도.
아뎀도 분명 그 장면을 보았을 것이나 완전히 똑같이 달려들고 있었다.
애쉬는 단번에 그 의도를 알아챘다. 이건 일종의 도전이었다. 어디 한번 자신에게도 똑같이 해보라는.
‘재밌네. 어디 어떻게 받아내는지 볼까.’
그래서 애쉬는 상대방이 바라는 대로 순순히 따라주었다.
완전히 같은 방향, 세기와 속도로.
만약 주제도 모르고 도전한 것이라면 반으로 갈라져 내용물을 쏟아놓은 시체가 둘이 될 것이다.
그럼 크게 실망하겠지.
하지만 날아오른 아뎀과 가까워진 애쉬는 곧 그 행동이 오만이 아닌 자신감이라는 것을 알았다.
‘똑바로 보고 있다.’
아뎀의 눈동자는 앞선 다른 대원과 달리 애쉬의 눈동자와 검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자신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애쉬의 검과 아뎀의 검은 단검이, 애쉬의 눈과 웃고 있는 아뎀의 두 눈이 마주쳤다.
결과는 앞선 다른 대원의 그것과 크게 달랐다.
치지지직. 슬쩍 빠진 단검의 날은 애쉬의 검과 정면에서 부딪히지 않았다.
예리한 단검의 날이 불똥을 튀기며 검면을 타고 올라온다. 마치 애쉬가 앞서 흘려보냈던 레디엄의 탄환처럼.
다만 다른 것이라면 탄환은 애쉬의 의지에 의해 움직여졌다는 것이고, 아뎀의 단검은 검면을 타 오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애쉬의 손까지 베어내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때요?’
마주치고 있는 아뎀의 눈이 그렇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애쉬는 자신도 슬쩍 웃어보였다. 그리고 눈으로 대답했다.
‘제법인데.’
직접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기에 그런 의지가 전해졌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런 느낌이라면 진짜 재밌는 싸움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의 아뎀은 이 세계에서 봐았던 이들 중에서도 최고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챙!
애쉬는 검을 털어 타오르는 단검을 떨쳐내며 몸을 살짝 돌려 정면의 아뎀을 피했다.
아뎀의 몸은 그대로 애쉬를 스쳐 지나가며 반대쪽 벽까지 날아갔다.
저 속도로 머리부터 부딪히면 무조건 두개골이 부서질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터억
일반인보다 한참은 무거운 사이보그의 신체가 뒤집혀 다리로 벽에 착지한다.
퍼엉!
그리도 다시 한번 폭발음과 함께 그 몸이 벽에서 쏘아졌다.
날아오는 아뎀의 단검을 다시 한번 쳐냈다.
채앵!
이번에는 반대편 벽, 그 다음은 애쉬 바로 앞의 바닥을 딛고 폭발적으로 가속한다.
“이런 거, 저도 할 수 있다구요!!”
퍼엉!
신이 난 어린아이처럼 웃고 있는 아뎀. 그러나 그 손에 들린 단검은 어떻게든 애쉬의 명줄을 끊기 위해 춤췄다. 애쉬는 그 흥미진진한 움직임에 계속해서 아뎀이 쏟아내는 것을 받아쳤다.
“어디 한번 끝까지 보여 봐! 전부 받아줄 테니까!”
이 녀석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너무도 궁금하다. 녀석이 모든 것을 건 최후의 공격까지도 모두 받아낼 의향이 있었다.
*
퍼엉!
아뎀이 울리는 폭발음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나 전세가 나아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애쉬는 여전히 두 다리로 똑바로 서서 아뎀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고, 아뎀의 에너지는 계속해서 닳고 있다.
그것을 지켜보던 레디엄은 점차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뎀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무한이 아니다. 시스템을 가동시킨 이후에도 저런 상태라면 그게 풀리는 순간 모든 게 끝이었다.
“언제까지 구경만 할 거야! 합공해!”
“대장, 하지만…!”
레디엄의 외침에 땅거미 대원들이 난색을 표했다. 폭발적으로 움직이며 애쉬의 사방을 난도질하는 아뎀의 움직임은 애쉬뿐 아니라 아군에게도 방해였다.
잘못해서 그들이 쏜 탄환에 애쉬가 아니라 아뎀이 맞거나, 저기에 끼어들었다가 아군끼리 부딪히기라도 한다면 큰 문제가 아니겠는가.
사실 레디엄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다만 초조함에 억지라도 부려본 것이다.
저 상태의 아뎀은 대장인 그나 다른 사이보그들과도 그 격차가 매우 컸다. 도움은커녕 괜히 자신들이 방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망할.”
‘회사’에서 내놓은 프로토타입. 아뎀의 생존은 어쩌면 이번 의뢰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들, 땅거미 부대가 이렇게 무력할 줄이야.
레디엄은 아뎀과 애쉬를 지켜보며 진심으로 바랐다.
부디 아뎀이 가동 시간 내에 모든 것을 끝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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