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2. 달의 꽃과 뱀파이어(31)
* * *
‘신난다.’
두근두근. 심장이 터질 듯 뛰고 있었다.
퍼엉!
폭발음과 함께 다리 쪽에서 충격이 터졌다. 아뎀은 그것의 방향을 잘 유도해 자신의 움직임에 더했다.
평소에 있는 일들과 달리 이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앗!!”
기합과 함께 꽉 쥔 단검을 휘둘러 목을 노린다. 이대로 들어가기만 하면 새빨간 피가 허공에 흩뿌려지는 환상적인 광경을 볼 수 있었겠지만, 상대방은 여태껏 아뎀이 상대해왔던 이들과는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파앗!!
검과 부딪친 무광 처리된 단검의 날이 조각나며 비산했다. 아뎀은 허리춤에서 다른 단검 하나를 다시 꺼내 들었다.
‘아, 마지막이네.’
애쉬와 칼을 맞댄 지 몇 분. 네댓 개를 챙겨왔던 단검은 모두 부러져 이번에 꺼내는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이게 없으면 아뎀은 더 이상 애쉬와 제대로 싸울 수 없다. 무기를 들었음에도 이토록 불리한 형세인데, 맨 손으로 무얼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레디엄도 아뎀에게 이렇게 벅찰 것 같으면 그냥 부대원들을 버리고 도망치라고 했다.
하지만 아뎀에게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뎀은 분했다. 자신이 뭘 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는 게.
그의 평생은 실험과 훈련의 연속이었다. 죽기 살기로 모든 것을 끝마치고 바깥에 나왔는데도 철벽을 맨손으로 내려치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모든 것을 받아내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이 순간이 생에 어느 순간보다도 즐거웠다.
현재 상황은 분명 위험했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아뎀과 가까이 있었다. 실험을 받을 때도, 훈련을 할 때도, 임무를 나설 때도.
언제나 눈앞에 두고 살았기에 죽음은 두렵지 않다. 그저 이 순간에 자신이 쏟아내는 모든 것을 받아줄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게 너무도 즐겁고 신났다.
그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인 듯 애쉬 론모어라는 이름의 해결사는 아뎀을 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뎀은 실험실을 나온 자신에게 처음으로 생긴 친구들, 그리고 동료들을 버리고 도망치는 일은 상상조차 않았다.
살아도 같이 살고, 모두가 죽는다면 자신 또한 같이 죽는다.
아뎀이 책으로 배운 동료란, 친구란 그런 것이었다.
휘릭!
아뎀이 부러진 단검을 던졌다. 날이 부서지긴 했지만 손잡이에 남아있는 파편은 여전히 예리했기에 맞으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팅!
그러나 맑은 소리와 함께 날아가던 단검이 떨어진다.
상대방, 애쉬 론모어가 바닥을 구르던 탄피 하나를 차올려 그것을 상쇄한 것이다.
마주친 애쉬의 눈빛이 아뎀에게 물었다.
여기까지가 네가 보일 수 있는 전부냐고.
그래서 아뎀은 말 대신 행동으로 대답했다.
하체에서부터 상체를 타고 뜨거운 무언가가 흐른다. 아뎀만이 가진 특별한 감각. ‘회사’에서 만들어진 작품의 프로토타입 실험체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아뎀은 특이하게도 신경 인터페이스를 사이보그 신체에 연결해 그 에너지를 섬세히 조율할 수 있는 재능이 있었다.
그것은 아뎀을 프로토타입, ‘캐논’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캐논’과 이전의 제품들이 다른 건 별 것 없었다.
앞서 죽었던 대원과 달리 몸에서 비교적 먼 다리뿐 아니라 팔, 가슴 등 상체에서도 초소형 폭발을 일으켜 엄청난 파괴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
머리에서 상체 부위는 너무도 위험하기에 ‘회사’에서도 상용화시키지 못한 기술이었지만, 아뎀의 섬세한 감각은 그것을 안전히 기능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뜨거운 에너지가 상체를 타고 팔까지 흘렀다. 아뎀의 팔에 새겨진 회로가 옷 위로까지 밝게 빛날 정도로 시퍼렇게 들끓었다.
아뎀은 마구 날뛰는 에너지들을 팔에 억지로 눌러 담고 뚜껑을 닫듯 제어했다.
그리고 다리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그 추진력으로 다시 한번 돌진했다.
“흐아아앗!!”
여태껏 사용하지 않은 상체였기에 상대방은 반응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 점을 노린다.
최대한 반응을 늦추기 위해 애쉬의 눈 쪽으로 한 손에 들고 있는 단검을 찔러 넣었다.
이번에는 뒤따라오는 공격을 피하지 않을 생각으로 아주 깊숙이.
하지만 이건 페인트다. 어디까지나 진짜는 반대 손.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모든 것을 쏟는다.
솨아아악!!
바람 가르는 소리. 애쉬가 들고 있는 칼이 단검을 들고 있는 손목을 절단했다.
깨끗하게 잘려나간 손목이 얕은 전류를 방출하며 공중에 떠올랐다.
정확히 눈을 가리는 타이밍.
‘지금!’
아뎀이 눈을 빛냈다. 반대 어깨가 콰앙!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연기를 일으키며 폭발적으로 내질러졌다.
아뎀은 그것을 시행한 순간 반드시 맞출 것이라 확신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손목을 포기하고 시야를 가리는 판단, 자신의 반대 손목을 베기 위해 움직인 검의 위치, 에너지 조율, 격발의 타이밍까지.
“해냈…다……?!!”
확신한 아뎀이 환호했다. 그러나,
쩌엉!!
자연스럽게 호선을 그리며 끼어든 칼날이 그 주먹을 막아서며 산산이 부서졌다.
부서진 칼날 뒤로 아뎀의 검은 눈동자와 애쉬의 청안이 마주쳤다.
‘어떻게…?’
아뎀의 눈이 물었다. 그에 애쉬의 청안이 대답했다.
‘뻔해.’
애쉬의 상체가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는 검만 잘 쓰는 게 아니었다. 엄청난 신체능력과 그에 못지않은 감각.
몸을 다루는 것은 검을 쓰든, 총을 쓰든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다.
완벽한 자세로 뻗어진 애쉬의 주먹이 아뎀의 가슴께에 꽂혀 들었다.
콰직!!
아뎀은 신체 내부의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아뎀의 몸이 반대편으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
‘위험했네.’
애쉬가 전력으로 금속 덩어리를 깨부수곤 파편이 박혀 피가 흐르는 주먹을 쥐었다 펴 보이며 생각했다.
진심으로 방금 그 공격은 위험했다.
시야를 완벽히 가린데다 타격점이 좁아 피하기 쉬운 머리가 아닌, 가슴을 노리는 폭발적인 공격.
맞았다면 무조건 죽었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다행히 검을 들어 올려 막아내긴 했지만…….
“영감이 또 난리 치겠네.”
애쉬가 손에 들린 검을 바라봤다.
검은 손잡이만 남기고 날이 완전히 산산조각 나버렸다.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박살나버리면 핑계를 댈 수도 없었다.
툭. 애쉬는 손잡이만 남은 검을 대충 던져버렸다. 어차피 답도 없는 상태이니 손잡이까지 버려도 되겠지.
그리고 벽에 처박힌 뒤 떨어진 아뎀을 바라봤다.
‘끝났군.’
아뎀은 가슴을 덮고 있던 금속판이 박살나 내부의 부품을 노출하며 쓰러져 있었는데, 머리에서부터 시작돼 턱을 타고 흐르는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거듭 말하지만 사이보그라도 머리, 특히 뇌에 대한 충격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뇌의학은 이 세계의 첨단 의학도 깊이 파고들지 못한 분야 중 하나였다.
애쉬는 모처럼 자신에게 즐거움과 진짜 긴장감을 선물해준 아뎀을 향해 걸었지만,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
자신들의 수준을 한참은 뛰어넘는 싸움에 끼어들지도 못하고 있던 스물 남짓의 땅거미 부대원들이 뒤늦게 그를 막아섰기 때문이다.
애쉬의 정면에 선 땅거미 부대의 대장, 레디엄. 그가 애쉬를 막아서며 말했다.
“…멈춰주시죠.”
“내가 왜?”
이미 아뎀과 애쉬의 싸움은 끝났다. 서로의 목숨을 노리고 싸운 끝에 정해진 결과는 애쉬의 승리.
승자가 패자의 목숨을 가져가는 건 정당한 권리였다.
레디엄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애쉬를 막아설 수밖에 없었다.
“저희는 몰라도 아뎀을 죽인다면 정말 ‘회사’ 측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아뎀은 정말로 귀한 실험체다. 아뎀의 모든 행동 및 전투 관찰 데이터는 이대로 지속되기만 한다면 ‘캐논’의 결함이었던 신경 인터페이스의 에너지 조율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었다.
군사기술은 하나만 제대로 개발해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막대한 돈을 벌어다준다.
‘캐논’의 조율을 성공할 가능성을 여기서 애쉬가 지워버린다면 그들이 속한 ‘회사’ 측에서는 엄청난 보복을 실행할 것이었다.
애쉬가 그런 레디엄을 대놓고 비웃었다.
“프흐, 웃기는군. 그렇게 중요한 녀석이었으면 처음부터 살려달라고 빌었어야지.”
애쉬를 이길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건 변명거리도 안됐다. 최소한 망가질 위험이 있는 곳은 피해야 하지 않았겠는가.
레디엄은 멈출 기색이 느껴지지 않는 애쉬를 똑바로 보고 다시 한번 말했다.
“그리고…. 아뎀을 끝까지 노리시겠다면 저희도 모든 걸 걸고 저 여자를 죽이겠습니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저희 전부를 순식간에 죽일 수는 없을 겁니다.”
레디엄이 가리킨 것은 부하들에게 부축 받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레이라였다.
만일 당신이 아뎀을 건든다면 무슨 짓을 해서든 여자, 레이라를 죽인다.
레디엄은 애쉬와 레이라 사이에 오간 비밀 거래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무언가 주고 받은 것이 있으며, 애쉬가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게 레디엄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 협박이었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애쉬는 추잡하게 나오는 레디엄을 조용히 쳐다봤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애쉬라도 첨단 장비를 장착한 사이보그 스물 몇을 눈깜짝할 새 쳐죽일 수는 없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검도 없을 때는 더욱.
지금 레이라를 지키고 있는 부하들은 불과 몇 뿐. 나머지는 빌레이 측의 갱들과 싸우고 있으니 이들 중 몇이라도 도달한다면 그녀는 죽는다.
레디엄은 어떻게든 그것을 현실로 이루겠다는 듯이 각오한 눈빛으로 애쉬를 노려봤다.
그에 마주보던 애쉬는….
픽, 웃어버리고 말았다.
“해.”
“…예?”
“해보라고.”
“…….”
레디엄의 표정이 당황과 긴장에 굳었다.
애쉬는 그런 그를 보며 과거를 떠올렸다.
개업 초기, 애쉬는 주제도 모르는 버러지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협박 메시지들을 받았었다. 당장 장사를 접으라느니, 아니면 자신의 의뢰를 받으라느니.
웃기지도 않은 소리다.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가득한 메시지들이었지만, 협박편지들의 공통점은 모두 애쉬가 아니라 그 주변인들을 노린다는 데에 있었다.
애쉬는 자신들이 건드려서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으니 그 주변을 노리는 것이다.
그가 자주 가는 영업장의 여자, 그가 자주 이용하는, 그리고 가끔 말을 나눴던 어느 가게의 종업원, 그리고 애쉬의 사무소에서 일하는 꼬맹이 샤인까지.
애쉬는 여태껏 수많은 협박 메시지들을 받아왔으나 아직 그의 주변은 멀쩡했다.
그가 협박 메시지를 그냥 무시해서도, 그렇다고 겁을 먹고 모두 들어주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는 항상 그 모든 협박 메시지에 같은 식으로 대응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너와 네 주변, 네가 속한 모든 곳을 찾아서 모조리 쓸어 줄 테니까. 해 봐.”
수많은 협박 메시지들. 애쉬는 인질의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목숨을 포기했다.
그리고 협박범들에게 항상 약속했다.
반드시, 내게 무슨 일이 있어도 너희를 찾겠다고.
그리고 너희 당사자와 그 주변을 모조리 쓸어버리겠노라고.
그가 협박을 대하는 일관적인 태도.
그것은 복수의 약속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