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사이버펑크 게임 속 칼잡이가 되었다-46화 (46/230)

〈 46화 〉 2. 달의 꽃과 뱀파이어 ­ 후일담(2)

* * *

애쉬 론모어는 강하다.

아무런 강화나 개조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주제에 어지간한 사이보그나 강화인간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신체 능력을 갖고 있질 않나, 요즘 시대에 무기라곤 거의 칼 하나밖에 쓰지 않는 인간이 강철도 무 썰듯 썰어버리기까지 한다.

애쉬 론모어에 대한 소문이라도 들어본 이들이라면 그 모든 것을 정말 혼자 한 것인지 의심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가 강하다는 것까지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애쉬 자신도 잘 알았다.

그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애쉬 론모어라는 인간은 강했다.

어떤 연습도, 훈련도 받지 않았음에도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것만으로 모든 위험을 헤쳐 나올 수 있었을 정도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사고 속도.

굳이 보지 않고도 주위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감각.

반사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자동적으로 움직인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날카로운 본능.

검을 휘둘러 총탄을 쳐내는 건 물론이고, 손에 튼튼한 장갑 따위를 낀다면 쏘아진 탄환을 잡아채는 일도 가능하다.

초인적인 신체능력과 첨단기기 이상으로 뛰어난 감각을 바탕으로, 지형만 조금 따라준다면 상대방의 숫자가 몇이든 일방적으로 학살할 수 있는 인간병기.

그게 바로 애쉬 론모어라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강하다는 게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애쉬 론모어라는 인간은 강한 것만큼이나 나태했다.

칼을 잡는 건 어디까지나 일을 할 때면 충분하다.

유흥가 탐방을 즐기고, 어딜 나가지 않더라도 게임이나 영화, 드라마 따위에 빠져 허송세월을 보내기 일쑤.

그는 전투에 있어서는 상식을 벗어난 괴물이라고 해도 좋을 인간이었지만, 평소에는 그저 술과 여자에 돈과 시간을 탕진하길 반복하는 한량이었다.

그만한 힘을 갖고도 아무런 책임도, 목적도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

누가 봐도 실로 한심한 행태였다.

애쉬도 외부의 시선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는 알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그런 생활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왜냐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무력, 돈, 여자.

그에게 부족한 것은 없었고, 필요한 모든 것이 충족된 삶은 그것만으로도 나름 즐겁다.

인간은 필요에 의해 발전했다.

그것은 반대로 말하면 필요하지 않으면 정체한다는 것이다.

애쉬 론모어라는 인간은 게임 속 세상에 떨어진 뒤 첫 몇 개월간을 제외하면 항상 정체되어 있었다.

몸에 적응하며 ‘오마르의 망치’를 무너뜨리고부터는 더 이상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고, 그의 강함은 오히려 독이 되어 시간을 갉아먹었다.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고치려 하지 않는 자신에 의해 그저 시간만 보내길 약 2년.

언제까지나 똑같이 살 것만 같았던 애쉬도 바뀌고 말았다.

지금의 애쉬는 답지 않게 사무소 건물의 옥상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 후웅!

날을 세우지 않은 검이 살벌한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휘둘러진다.

애쉬는 잠시 그것을 보고 고개를 기울이다 다시 한번 휘두르며 손의 감각에 집중했다.

“이게 아닌가.”

그렇게 몇 차례 휘두르고 검을 고쳐 잡길 반복한다.

믿을 수 없겠지만, 그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무려 훈련이었다.

그것도 몇 분 정도의 잠깐이 아니라 한 시간 이상이나 반복하고 있는 진짜 훈련.

샤인도 발견한 뒤 깜짝 놀라고 말았던 애쉬의 기행과도 같은 훈련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라 벌써 며칠 째 계속되고 있었다.

“역시 실전이 아니라 안 되나.”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던 애쉬가 그것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적당히 흐리고 적당히 파란 하늘이 두 눈 가득 들어온다.

“흐음….”

파란 하늘과 그곳에 떠다니는 뿌연 구름들을 바라보던 애쉬는 잠시 자신이 휘두르던 연습용 검에 시선을 돌렸다.

에리히 대장간에서 받아온 날을 세우지 않은 연습용 검.

항상 게을렀던 애쉬가 며칠 전부터 이런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은 최근에 느낀 게 있었기 때문이다.

‘베이론’에서 겪었던 ‘방화광 루이스’의 함정.

그것은 정말 그가 이 게임 속 세상에 떨어진 뒤 겪은 최대의 위기이자 이렇게 스스로 훈련을 하도록 만든 원인이었다.

당시의 애쉬는 수백이 쏟아내는 포화를 뚫은 뒤 극한의 상황에서 ‘방화광 루이스’와 간부들을 상대하며 자신이 변하는 것을 느꼈다.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을 해낼 때의 쾌감. 스스로가 앞으로 나아가며 느끼는 그 기분.

어쩌면 아름다운 여자와 값비싼 술보다도 중독적인 그것은 ‘베이론’ 전 이후 몇 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애쉬의 머릿속에 인상 깊게 남아, 그로 하여금 스스로 몸을 움직이도록 만들고 있었다.

가만히 연습용 검을 바라보던 애쉬는 원작 게임 속에서의 시스템을 떠올렸다.

원작 게임, ‘더 사이버펑크The Cyberpunk’의 스킬 시스템은 신체 능력과 숙련도가 상승함에 따라 다양한 스킬들이 개방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거기에 현실에서 크게 벗어날 만한 스킬은 거의 없다.

그저 신체 능력과 실력이 늘어나면 이런 것도 가능할 것이다, 라는 것을 패시브 스킬 같은 느낌으로 구현해주는 시스템.

대표적인 예로 애쉬가 자주 사용하는 ‘탄환 쳐내기’, 그리고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오버드라이브’ 등의 기능이 있었다.

‘탄환 쳐내기’는 신체 능력이 7레벨에, 그리고 도검류 숙련도가 8레벨에 도달하면 개방되는 스킬이었고, ‘오버드라이브’는 도검류, 혹은 총기류 숙련도와 신체 능력이 모두 7레벨에 도달하면 개방되는 스킬이었다.

그런 것 외에도 숙련도 레벨이 오르면 자동으로 모든 피해량이 증가하는 기본 스킬,‘공격력 상승’이나, 특정 조건(스피드 계열의 사이보그, 신체 레벨 7이상 및 도검류 숙련도 레벨 8 이상)을 맞추면 열리는 ‘일섬一?’ 스킬 등이 있었지만, 역시나 현실이 된 지금은 숨 쉬듯 사용하는 것들이다.

당장 애쉬가 아무렇지 않게 금속 따위를 베어 넘기는 것도 위에서 말한 기본 스킬, ‘공격력 상승’의 효과가 현실화 된 덕이 아니던가.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상에 떨어진 뒤 가장 판타지적인 효과를 드러내고 있는 스킬은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스킬, ‘공격력 상승’이었다.

애쉬가 캐릭터를 설정할 때 트레이너와 치트키를 이용해 건드린 능력치는 신체능력과정신력, 도검류 숙련도 뿐.

그 중에서도 신체능력과 도검류 숙련도는 게임 내의 한계치인 10레벨을 넘어 12레벨에 도달한 상태다.

그대로 다른 것을 변경하지 않고 시작한 뒤 곧장 이곳에 떨어졌으니 지금도 분명 같은 상태일 것이었다.

'그런데 분명 12레벨이라기엔 부족하지.'

하지만 애쉬 스스로 느끼기에 지금의 그는 게임 내에서 숙련도 10레벨을 달성했던 캐릭터보다 조금 강한 수준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 강함을 구분하는 그 기준은 ‘더 사이버펑크’의 게임내의 스킬 시스템이다.

원작 게임 내의 스킬 시스템은 할 수 없던 것을 강해지며 할 수 있게 된다는 개념으로 개방된다.

하지만 중화기의 총탄을 쳐내는 것은 게임 내에서도 숙련도와 신체능력의 레벨이 최고치인 10레벨에 도달하기만 하면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애쉬와 완전히 같은 수준은 아니고, 그 경우에는 어느 정도의 HP소모가 있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런 피해도 없이 중화기를 막아내는 것과 어느 정도의 체력 소모로 막아내는 것.

그 둘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10레벨과 12레벨의 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미약한 차이였다.

원작 게임과 비교했을 때 이번에 애쉬가 보인 바와 같이 중화기의 총탄을 무리 없이 쳐내는 건 잘 쳐줘야 숙련도 11레벨.

아니, 온전히 사용하고 있는 12레벨의 신체능력을 감안하면 10.5레벨 정도에 불과할 터였다.

이번에 막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10.5레벨. 그렇다면 나머지 1.5레벨 정도의 숙련도는 어디로 간 걸까.

이번 일에서 겪은 ‘베이론’ 전은 애쉬에게 그 답을 알려주었다.

'내가 제대로 못 쓰고 있는 거겠지.'

그냥 사용하기만 하면 되는 신체능력과 달리, 숙련도는 지식 따위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 전적으로 개인의 감각에 의지하는 것이었기에 본인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면 모든 것을 사용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지금 애쉬는 스스로에게 갇혀있었다.

만약 지난 몇 년간 충실하게 살아오며 서서히 자신의 한계를 넓혀갔다면 지금과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쯤이면 오히려 12레벨의 전부, 혹은 그 이상을 발휘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애쉬가 누구인가. 게으름의 화신, 돈 많은 한량이 아니던가.

그나마 뒤늦게라도 좀 정신을 차리고 훈련 비슷한 것이라도 하고 있으니 망정이지,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 아마 평생을 같은 모습으로 살아갔을 터였다.

­ 철컥.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며 다시 두어 시간 정도 연습용 검을 휘두르던 애쉬는 그것을 대충 옥상 바닥에 던져버리고 몸을 눕혔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아, 지루해.”

며칠 해봤자 효과도 없는 것 같은데 그냥 관두고 쉬러갈까.

금일의 훈련을 시작한 지 몇 시간. 이리저리 검을 휘둘러보던 애쉬는 벌써 회의감에 빠졌다.

‘이런 게 의미가 있나.’

상대도 없이 허공에 칼질을 하다 보니 괜히 기운만 빠지고 재미도 없었다.

이러고 아무것도 없으면 말 그대로 그냥 시간을 버리는 게 아니겠는가.

물론, 평소에 하던 것도 대부분은 시간을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인 일들이었지만 적어도 그땐 즐겁기라도 했지, 지금은 아니었다.

바닥에 누워 하늘만 보던 애쉬는 문득 자신의 손에 목이 떨어졌던 아뎀을 떠올렸다. 이렇게 지루한 헛짓을 하고 있자니 갑자기 그 녀석과 칼을 맞댔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그 녀석이 몇 명 정도 모이면 재밌을 것 같은데.”

‘회사’의 소속이라던, 특출 나게 강했던 녀석.

그대로 도망치면 살려줄 수도 있다고 했는데 굳이 달려들어 제 명을 재촉했던 녀석은 애쉬가 직접 만나본 이들 중에서는 압도적으로 강했다.

그가 이름을 기억하는 게 당연할 정도로 말이다.

잠시 아뎀을 떠올리던 애쉬는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을 바꿔갔다.

‘레디엄. 그 녀석이랑 부하들도 나름 괜찮았어.’

아뎀에서부터 시작된 생각이 녀석이 함께 했던 땅거미 부대. 그리고 그 뒤의 ‘회사’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뱀파이어’에서 모든 것이 사라진 직후. 그가 직접 연락해 ‘회사’에 대해 아는 게 있냐고 물었던 뒷세계의 지인, ‘빌헬름’도 함께 떠올랐다.

빌헬름은 애쉬가 ‘오마르의 망치’를 박살낼 때 연이 이어진 녀석이었는데, 20대 초반으로어리지만 굉장히 유능한 해커였다.

‘베이론’에서 ‘헤븐즈 게이트’의 데이터 팩을 본 애쉬가 전자마약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릴 수 있도록 그런 마약의 존재를 가르쳐줬던 것도 바로 빌헬름이었다.

"그 녀석은 잘 하고 있을라나."

애쉬는 얼마 전에 있었던 통화의 내용을 떠올렸다.

‘너 혹시‘회사’라고 아냐?’

­ …‘회사’요? 당연히 그 일반 사업자들이 차리는 회사를 말하는 건 아니시죠?

‘회사’를 아냐는 애쉬의 첫 물음에 돌아온 그에 돌아온 대답은 감조차 잡지 못하는 듯한 질문이었다.

슬럼 뿐 아니라 도시 전체의 뒷세계에 빠삭한 녀석이었기에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이었는데, 빌헬름 또한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 처음 듣는 이름인데, 조금 알아볼까요?

‘아니. 모르면 됐어. 위험하니까 신경 꺼.’

빌헬름이 대충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게 아닌 이상 크게 위험할 게 분명한 일을 먼저 권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그냥 넘어가려던 애쉬였지만, 그런 그의 반응에 오히려 상대방 쪽에서 먼저 조사를 해보겠다고 나섰다.

­ 잠깐만요,‘회사’라고요?제가 찾아볼게요.

나름 뒷세계에서 정보상 일도 하고 있는 녀석이었는데 애쉬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뒤늦게 애쉬는 자신이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든 걸 알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다. 애쉬의 만류에도 빌헬름은 기어코 자신이 그들의 정보를 캐내겠다고 선언했다.

‘위험하다니까?’

­ 위험한 거 걱정했으면 이 바닥에서 일 안했겠죠. 의뢰금만 확실하게 준비해주세요. 금방 연락 드릴 테니까.

자신만만한 장담과 함께 끝난 통화.

그러나 그 뒤로 빌헬름에게서는 ’회사‘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도시의 뒷세계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해커이자 정보상인 빌헬름조차 헤매고 있는 것이다.

‘회사’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는 몰라도 결코 단시간 내에 찾아내 결판을 볼 수 있는 이들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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